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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9. 16 – 9. 21 갤러리인사아트 (T.02-734-1333, 인사동)
빛이있으라
박병근 개인전
박병근 작가의 작품은 한양도성의 성돌을 모티브로 현대적 재질과 감성으로 표현하였으며
첨단기술을 응용한 특허기술을 근거로 작품 활동을 한다.
글 : 안현정 (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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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다이나믹 큐브들은 어릴 때 보아왔던 전통소재의 재발견이자, 구상(具象)에서 출발한 개별의 종합이라고 할 수 있다.” 성실하게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온 박병근 작가의 철학이 담긴 말이다. 단순화된 작가의 작품은 세밀함을 끄집어내는 좋은손맛으로부터 발전한 것이다. 풍경·정물 등의 구상에서 추상으로(큐브들의 향연)의 전이는 유행보다 기본에 충실한 작가정신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마음의 울림을 주는 가치 있는 작품은 손이 구현한 시각적 충실함에 기인한다고 믿는다. 색채에 감정을 입힌 것은 작가의 생(生)이 녹아든 독특한 작업 방식 덕분이다. 작가는 이름 모를 전통 장인이 구현한 기왓장과 한양도성을 가득 메운 울퉁불퉁한 자연미감 속에서 오늘의 가치를 발견한다. 국적이 불분명한 모더니즘의 홍수 속에서 반복(Reiteration), 반사(Reflection), 다중성(Multiplicity)의 가치는 작가의 정체성과 연계돼 발현돼야 한다는 것이다.
단색조의 모노크롬 회화를 보는 것 같지만, 움직이면서 달라지는 색감의 깊이는 전통적 삶을 반추하듯 발산과 침잠을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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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매체와 만난 전통미학, Simplified Heaven
들쑥날쑥 마감이 덜된 듯한 다형(多形)의 큐브들이 조화를 이룬 한국문화재가 있다. 도시의 경계를 통찰력으로 마감한 '한양도성(서울성곽 사적 제10호)'이 그것이다. 박병근 작가는 오래도록 성곽의 세월을 공유해 왔다. 검었던 머리엔 어느덧 새하얀 시간이 녹아내렸고, 성곽의 의미는 비로소 작품 철학이 되었다. 그는 디자이너(삼성전자
와 SK텔레콤)로 살았던 40여 년 동안 “한국적 정체성을 어떻게 세계화 할 것인가”를 고민했고, 작가로 활동하면서 시대를 관통하는 한국적 미감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형식과 내용에 충실한 작품이 탄생한 계기는 디자이너로서의 대중성과 화가로서의 예술성이 적절히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앤디 워홀(Andy Warhol) 이나 키스 헤링(Keith Haring) 같은 작가들의 성공 뒤에는 디자이너로서 출발한 감각과 시대를 읽는 탁월함이 공존해 있었다. 이 두 가지 요소를 고루 갖춘 박병근은 성벽의 반복적 조화 속에서 ‘전통의 현대화’를, 개별 속 전체 속에서 ‘단아한 모티브’의 향연을 떠올려냈다. "저는 오랜 기간 서울 종로에서 살았습니다. 망가졌던 서울성곽이 ‘디자인수도 서울’속에서 복원되면서,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복을 입고 성곽을 거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Dynamic Korea’라는 용어처럼, 한국의 세계화에 기여한 다양한 요소들이 제가 목도(目睹)한 오늘의 삶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만들어내는 매체들은 거친듯 조화롭고, 멈춘 듯 변화합니다. 같아 보이는 성벽의 돌들도 우리의 삶처럼 제각각 입니다. 가만히 그들을 들여다보면 선조들의 삶과 희생이 느껴집니다. 하나하나의 돌이 모두 다른 것처럼,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성곽의 모티브들은 제 작품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한국적 소재 속에서 삶을 발견하고, 성곽풍경과 어우러진 오늘의 삶속에서 세계로 뻗어가는 미감을 되새기는 것, 단순화된 통일성 속에서 새로운 영토를 넓혀가는 것, 이러한 ‘변화하는 스타일’이 바로 박병근 작가의 미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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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소재와 반도체로 구현된 아날로그 감성
붓 터치를 최대한 자제하고 나이프를 통해 직설적 힘을 전달한 기법은 자기반성을 통한 혁신의 모티브를 기법 속에서 발견하려는 시도이다. 박병근의 작품은 길지 않은 작품 활동 속에서도 이미 힐튼호텔, 쉐라톤호텔, 뉴욕 ATOMIX와 ATOBOY(뉴욕타임즈 선정 스타 레스토랑), 밍글스(미쉐린 투스타 레스토랑), 파리 Univers des Arts등 세계적인 랜드마크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심지어 그의 풍경화·정물화 등의 구상성 있는 초기 작업들은 탁월한 드로잉 실력을 바탕으로 많은 인기를 누렸다. 그럼에도 그가 구상에서 추상으로의 전이를 택한 이유는 작품이 보는 이들에게 다양하게 읽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창덕궁 청기와 시리즈와 한양도성의 담장시리즈, 코드화된 한글 문자 시리즈 등은 눈맛의 인상(印相)을 한정시키기보다 확장시키는 역동성을 지닌다. 이른바 치유하는 그림, 디지털 시대 속에서 아날로그 감성을 재인식시키려는 것이다. 박병근의 작품미학은 한국적 선이 가진 반복의 미감 위에 자연스럽게 반사하는 소재를 겹쳐 올림으로써 한복·한옥·한지 등에서 발견되는 은근하고 여유 있는 미감을 표출한다. 미니멀리즘과 미래주의의 양가적 시간성을 머금은 작품들, 멈춰있으나 점-선-면 사이를 흐르는 시간성의 표현들, 울퉁불퉁한 비정형의 전통소재를 최소 단위로 환원한 작업들, 이 모든 가치들은 개별이 모여 전체를 만드는 전통 미의식의 현재화로 요약된다. 이처럼 어긋나기도 겹쳐지기도 한 큐브들은 미묘한 차이를 내뿜으며 다이나믹한 가치를 보여준다. 이른바 ‘사이의 품격(品格)’, 우리 미감을 서구 화법으로 전환시킨 그의 작업은 한국과 서양 사이에 놓인 오늘의 아이덴티티를 찾아가는 여정인 셈이다. 한양도성과 성벽 드로잉을 모티브로 삼은 반추·반사·비정형의 모티브들은 전통과 만난 역동적인 개별(Dynamic Cube) 조건 속에서 새로운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