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남은 2.1 초
1992년, 심야에 TV 채널을 돌리다가 미국 대학 농구 8강전을 보게 됐다.
못 알아듣는 영어 방송인데 본 이유는 듀크대 감독의 외모가 내 취향이어서였다.
이런 단순한 이유로 듀크대를 응원했는데 상대인 켄터키대도 만만치 않았다. 연장전까지 끌며 1점씩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막판에 켄터키대가 2점 슛을 성공시켜 1점을 앞질렀다.
시간상 마지막 골 찬스였기에 켄터키대는 축포를 터뜨렸다.
이때 잘생긴 듀크대 감독이 타임아웃을 외쳤다.
종료 2.1초를 남긴 상태.
저 짧은 순간에 뭘 어쩌겠다고 작전을 짤까?
외모에 홀려 어려운 이름인 ‘시셰프스키’ 도 외웠건만, 이런 나도 혀를 찼다.
2004년 올림픽에서 미 농구팀은 동메달에 그쳤다.
미 프로농구(NBA)의 최고 스타들로 짠 드림팀이었기에 온 세계가 경악했다.
스타들은 미국이 아닌 자신의 몸값을 위해 뛰었다.
미국은 팀을 재정비해 ‘리딤(만회)팀’ 을 만들었고, 시셰프스키에게 감독을 맡겼다.
리딤팀은 이름처럼 2008년에 금메달을 되찾았다.
이들의 여정을 그린 다큐멘터리가 '리딤팀 다시 드림팀으로' 이다.
시셰프스키는 그 후 두 번의 올림픽을 더 치르며 미국에 연달아 금메달을 안겼다.
그는 “전 세계가 우리의 경기를 볼 때는 NBA 어느 팀의 누구라고 보지 않고
미국 선수로만 본다.
우리 모두 미국을 위해 하나가 되자”고 독려했다.
리딤팀을 전설로 만든건
최고의 기량보다도
최고의 팀워크였다.
1992년의 그날, 듀크대는 2.1초 안에 한 골을
더 넣어 1점 차로 승리한다.
내 눈을 의심했다.
반대편 골대 옆에서 길게 던진 공을 4학년인 크리스천 레이트너가 점프로 받아내
한번 툉기고 골대로 던졌다.
공이 그의 손을 떠나자마자 경기 종료를 알리는 신호음이 길게 울렸다. 포물선을 그리며
골대로 들어가는 공을 축하 하는 음악 같았다.
이때 깨달았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게 아니다.
30년도 더 된 일이지만, 지금까지 이 장면의 덕을 수없이 봤다.
지쳐서 그만두고 싶을 때, 더 이상 방법이 없다 여길 때마다
시셰프스키 명장이 알뜰히 써먹은 2.1초를 떠올리며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쥐어짰고,
그 결과 언제나 그에게 감사했다.
시셰프스키는
듀크대 농구팀을 42년간 이끌다가 2년 전, 75세로 은퇴했다.
NBA의 천문학적인 연봉을 마다하고 평생을 대학 농구에 바친 그가 말한다.
승리의 눈물도 좋지만 다 같이 흘리는 패배의 눈물도 값지다고.
2.1초 안에 역전 11골을 성공시킨 레이트너는
신입생일 때 우승을 결정짓는 마지막 자유투에서 실수를 범해 패한적이 있다.
종료 직후 선배들이 그에게 달려가 따뜻하게 다독였다.
이때 원망과 비난을 받았다면
3년 뒤, 지금도 명장면으로 회자되는 그 슛을 성공시키지 못했을 수도 있다.
시셰프스키가 옳았다.
역시 팀워크다.
(이 정 향 / 영화 감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