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읽기
요한계시록이 오늘의 독자들에게 얼마나 이질적으로 다가오는가에 대해서는 여기서 굳이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관한 몇몇 신앙적 훈계를(1-3장) 제외하면 22장에 이르는 거의 대부분이 비현실적인 묘사로 가득하다. 일례로 4장 2절 이하를 잠시 보자.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12장 7-9절은 다음과 같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마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 쌔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라.” 요한계시록이 오늘 우리의 세계관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이런 정도의 인용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극단적인 초현실주의 문학작품처럼 보이는 요한계시록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초기 기독교는 왜 그것을 경전으로 선택했을까? 이런 질문은 오늘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과도 연결된다. 오늘의 요한계시록 읽기가 어느 정도로 왜곡되어 있는지는 이미 알만한 분들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한쪽에서는 그것을 단순히 문자의 차원에서 이 세상을 규정하는 실증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다른 한쪽에서는 오늘의 삶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죽은 문서로 간주하고 있다. 전자의 입장을 따른다면 요한계시록은 현실을 파괴하는 문서로, 후자를 따른다면 현실과 무관한 문서로 남게 된다. 양쪽 모두 성서읽기의 탈선을 피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정통교회에서도 강도의 차이만 두고 늘 나타나는 이런 탈선의 극단적인 현상은 사이비 이단의 출현이다. 예컨대 666이나 144,000의 숫자를 오늘의 국제질서나 구원받은 사람의 실증적 기호로 해석하는 일들이 없지 않다. 아주 특이한 경우에는 요한계시록에 근거해서 로마 가톨릭의 교황제도를 비판한다거나 자신들의 교주를 신성화하기도 한다.
이런 억지 논리가 나름으로 대중적인 설득력을 얻는 이유는 요한계시록의 문학적 특징이 담고 있는 특이성으로 인해 그 해석의 스펙트럼이 거의 무한대라는 사실에 놓여 있다. 요한계시록은 전체적으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신구약성서의 중간기 특징이라 할 묵시문학에 속한다. 묵시문학은 현재의 세상을 악한 것으로 규정하고 하나님의 전권에 의해서 시작될 새로운 세계(에온)를 향한 강렬한 기다림에 그 무게를 두고 있다. 이들의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선악이원론이다. 현재를 지배하는 악한 세력은 곧 새롭게 열릴 하나님의 힘에 의해서 멸망 받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런 선악이원론에 근거해서 이 세상을 해석한 이유는 그들의 역사경험에서 확실하게 드러난다. 아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 등, 이스라엘 주변에서 막강한 힘을 행사한 여러 제국은 이스라엘이 감당할 수 없는 초능력의 세력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희망을 걸어둘 수 있는 대상은 오직 하나님뿐이었을 것이다. 그 하나님은 이 세상의 가장 강력한 세력인 제국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초능력을 소유한 존재이어야만 했다. 이런 초능력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초현실주의적 기법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천사, 용, 일곱 촛대, 뿔 달린 짐승이 등장하는 건 이런 이유이다.
요한계시록 저자는 초기 기독교가 처한 상황을 바로 이런 묵시문학적인 선악대립의 이원론적 구도로 바라보았다. 초기 기독교의 순교역사를 감안한다면 요한계시록 기자의 이런 해석을 틀렸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 당시에 로마의 케사르에게만 해당되던 ‘퀴리오스’라는 칭호를 예수에게 돌린 기독교가 로마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당연한 역사적 결과이다. 물론 사도행전 기자 같은 이들은 로마와 기독교의 화해를 시도했으며, 사도 바울도 나름으로 로마 제국과의 극단적인 대립만은 피해보려고 했지만, 현실 역사에서 로마와 기독교의 대립이 해소될 수는 없었다. 특히 우리는 요한계시록 기자가 처한 ‘삶의 자리’가 얼마나 혹독했는가 하는 점을, 우리가 모두 파악할 수 없는 그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질문이 남았다.
첫째, 신약의 정경화가 결정된 397년(카르타고 회의)은 이미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자리 잡은 때인데 왜 요한계시록이 교회의 경전으로 채택되었을까? 그 당시의 기독교는 요한계시록에서 제시되고 있는 악을 로마가 아니라 이방세계로 보았고, 또한 요한계시록에서 정치적인 것보다는 예수의 재림신앙을 강조함으로써 나름으로 로마 제국과의 적당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기 때문에 경전으로 채택되었을 것이다.
둘째, 요한계시록의 세계관과 전혀 다른 시대를 사는 오늘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가? 비록 루터와 쯔빙글리가 요한계시록을 불신했지만, 오늘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도 괜찮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이 묘사하고 있는 그 묵시사상적 표상은 기독교의 종말론과 아주 깊은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묵시사상도 다가올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고 있으며, 기독교도 역시 종말론적 희망을 안고 있다. 요한계시록의 문학적 특징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것이 가리키고 있는 세계를 오늘의 현실에서 재해석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뜻밖의 영적 소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 핵심은 곧 예수 그리스도가 최후의 승리자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