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의 숨은 명산 거제 대금산] '큰 비단' 이름 어울리는 경치
월간산 2022년 5월호에 수록된 기사
글·사진 다독한 미식가 김병용 북텐츠 대표
거제 대금산 438m
봄은 만물이 시작하는 계절이다. 그중 대표 만물을 꼽자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꽃을 부를 것 같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 꽃 중에서도 대부분은 벚꽃을 꼽을 것이다. 벚꽃의 매력은 꽃 한 송이보다는 나무 한 그루 전체의 형상에서 진가를 느낄 수 있다. 또 한 그루보다는 군락이 더욱 더 화려하다.
산은 계절마다 매력을 품고 있다. 봄철 산행의 묘미는 아마도 꽃구경이라 할 수 있다. 봄이 내뿜는 화려함과 흐드러짐을 만끽하려 벚꽃 산행을 찾아봤는데, 우연히 진달래가 절정을 이루고 있다는 거제의 대금산을 발견하게 되었다. 신라 때 쇠를 생산해 대금산大金山이라는 명칭을 받았지만, 산세가 순하고 비단 폭 같은 풀이 온 산을 뒤덮고 있어 크게 비단을 두른 산이라 하여 대금산大錦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비록 집에 비단 옷은 없지만, 비단을 밟아 보는 호사를 누리는 산행은 어떨까 하는 마음에 대금산으로 향했다.
바다와 산의 싱그러움을 품은 섬
거제는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다. 산이 많고 그 산마다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것이 거제에 있는 산의 매력이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곳곳에서 바다의 매력과 꽃들을 만끽할 수 있었다. 외포항에 내렸을 때 바다향이 나다가 이내 산에서 불어오는 향이 한 번 더 반겨 주었다. 외포항은 산이라는 둥지에 마치 알이 놓인 듯한 느낌을 풍긴다.
거북이는 알에서 깨면 바다로 향하지만, 우리는 알에서 깨어 산으로 향했다. 들머리 입구까지 포근한 경사와 햇빛이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오르면 오를수록 마을 경관과 바다의 품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졌다.
외포항에서 20분 정도 걷다 보면, 큰 불상이 들어선 도해사가 있다. 왼쪽에 ‘산 입구’라는 표지판을 접하게 되는데 좀더 포근한 산행을 위해 오른쪽 길인 임도를 선택했다. 그리고 30여 분간 음료도 마셔가며 천천히 시루봉(중봉) 등산로까지 대금산이 주는 경치를 즐겼다.
이정표에서 시루봉(356.7m)까지 0.6km라고 쓰여 있다. 시루봉을 가지 않고 임도를 따라 3km 가면 진달래 군락지로 곧장 갈 수 있다. 시루봉으로 향하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비가 많이 오지 않은 탓에 흙바닥이 말라 있어 미끄러웠다. 문수산 깔딱고개가 생각나는 길이었다. 아무리 작은 산이라도 힘든 코스는 존재하니 겸손해야 한다는 말도 떠올랐다. 같이 올라온 부모님에게 ‘곧장 진달래 군락지로 가시라고 할 걸’ 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등산의 묘미는 폐에 한 번 부담을 주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추천할 만한 코스다.
시루봉 정상까지의 길은 험난했지만 보상은 완벽했다. 돌무더기에 아담하게 서 있는 정상석과 그 주위에 진달래가 피어 있었다. 정상 아래에는 섬들이 보이고 그것을 이어주는 대교는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10여 분간 휴식하고 대금산 정상으로 향했다.
시루봉에서 바라보는 대금산 정상은 분칠을 마쳐놓은 듯했다. 대금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시루봉까지 오는 길에 비해 아주 편안했다. 정상 도착하기 전에 사진 찍기 좋은 곳을 발견했다. 그곳에서 모르는 등산객에게서 방울토마토 4개를 받았다. 코시국(코로나 시국)에 낯선 이의 호의는 조심스러웠지만, 20년 월간<山> 애독자라는 말과 방울토마토에 대한 추억에 의해 경계를 풀었다.
입대하기 전에 선배의 제안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도보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7월의 더위를 뚫고 우리는 최소한의 돈을 가지고 대장정에 나섰지만, 뜨거운 햇살 아래 강행군 덕에 타오르는 갈증을 물로는 더 이상 해갈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었다. 해가 떠 있는 동안은 걸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려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서 쉬기로 했다. 그때 아파트 화단에 심어 놓은 방울토마토를 주인의 허락도 없이 허겁지겁 먹었다. 그리고 해가 지기를 기다려 다시 걷기 시작했지만, 가냘픈 내 의지는 두 다리로 부산을 내려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천안에서 기차로 부산에 도착했다. 그 방울토마토의 귀중함을 잊을 수 없다. 그때부터 내 무의식 세계에서는 방울토마토를 주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는 공식이 성립된 것 같다.
시루봉에서 약 40분을 걸어 대금산 정상(438.6m)에 도착했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등산객들이 상당히 많았었다. 아마도 진달래가 절정이라 많이들 찾은 것 같았다. 그리고 진달래 군락지까지 차로 접근이 가능한 것도 인파를 설명해 주는 한 요인인 것 같았다. 정상에 이층으로 된 정자 형태의 구조물이 보였는데 사람이 꽉 찬 관계로 곧바로 정상석으로 향했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정상석과 함께 사진 한 장을 남긴 후 데크로 향했다. 데크 아래에는 절경이 펼쳐졌다. 내려다보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진달래 군락지 그리고 약간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벚꽃 군락지가 보였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바다가 펼쳐졌다. 진분홍의 봄바람이 넘실넘실 타고 연분홍 바람으로 바뀐 뒤, 다시 파란 바람이 흩뿌려지는 모습이었다. 사람, 하늘, 진달래, 벚꽃, 바다 모든 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경치의 바다에 빠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군락지로 향하다 보니 아주 큰 바위를 볼 수 있었다. 고소공포증이 있어 가급적 바위에 올라가는 일은 하지 않지만, 그 녀석의 유혹은 뿌리치기 힘들었다. 여자 친구에게 카메라를 주고 바위에서 사진 한 장을 부탁했다.
바위에서 내려 진분홍의 바다로 텀벙 뛰어들었다. 10여 분을 유영하다 보니 진분홍과 연분홍의 경계선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벤치에 앉아 비단 같은 풀을 밟고 경치를 즐겼다. 뒤에서는 꽃비(벚꽃잎)가 내리고 앞에서는 진달래가 눈앞에 펼쳐졌다.
안평대군이 꿈에 도원에서 노닐던 것을 안견에게 그리게 한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가 있다. 안평대군이 대금산 진달래 군락지에 왔었다면 아마도 그림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기후변화 영향으로 꿀벌이 많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었는데 찬란한 향연을 꿀벌과 함께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꿈에서 깨어 마저 남은 진달래 군락지를 감상하고 하산하기로 했다. 진달래 군락지 끝 임도에 다다랐을 때 포장마차들이 눈에 보였다. 눈으로 즐기는 진달래 향도 좋았지만, 코끝으로 전해지는 전과 도토리묵 그리고 막걸리 향도 우리 일행을 희롱했다. 참을 인忍을 외치며 포장마차 숲을 통과했다.
비밀의 정원 같은 정골마을
임도를 따라서 왔던 길로 하산하기보다는 좀 더 많은 풍경과 추억을 담기 위해 다른 길을 선택했다. 군락지에서 걷다 보면 정골마을 이정표를 볼 수 있다. 오른쪽으로 10분 정도 걷다 보면 작은 팻말로 다시 한 번 정골마을 이정표를 볼 수 있다. 길이 좁아 찾기 힘드니 잘 살펴서 가야 한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아 바닥에 넝쿨 같은 식물이 있어 조심해야 한다.
펜스를 따라 걷다 보면 아주 어여쁜 오솔길이 보인다. 길을 찾기 위해 약간 고생해서인지 몰라도 비밀의 정원으로 향하는 길처럼 보였다. 사뿐사뿐 길을 따라가면 고즈넉하면서도 한가한 정골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서 바라본 대금산 자락은 바람에 이끌려 움직이는 듯한 감탄을 연출했다. 비록 사람이 살지 않은 듯한 가옥이지만, 집집마다 알지 못하는 꽃들이 피어 있었다. 봄과 어울리는 마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남들과 다른 조금은 특별한 하산으로 대금산의 추억을 깊게 채색했다.
대금산 산행은 다른 산행에 비해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머릿속에 떠다녔지만, 아쉽게도 잉크 안에 그 많은 것들을 가두어 놓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산행길잡이
외포항주차장~도해사~시루봉 이정표~시루봉 정상~대금산 정상~진달래 군락지~임도~정골마을~외포항주차장 (5시간 소요)
교통 및 숙박
부산 지하철역 1호선 하단역에서 내려 2000번 버스를 타고 외포에서 하차하면 된다. 숙박은 거제시에서 해도 되지만 부산으로 돌아와 하단에서 숙박하는 편이 선택의 폭이 넓다.
식당(지역번호 055)
거제 외포는 대구가 많이 잡히기로 유명한 곳이다. 대부분의 식당에서 대구정식을 맛 볼 수 있다. 겨울이 지난 봄에도 다양한 회를 맛볼 수 있다. 국자횟집(636-6023)과 외포11번가 횟집(637-9977)이 대표적인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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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대금산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