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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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다윗(David)
축일 3월 1일
드위(Dewi)로도 알려진 성 다윗에 대하여
우리들이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은 11세기에 기록된
불확실한 그의 전기에 근거한 것이다. 그 전기에
의하면 성 다윗은 사우스 웨일스(South Wales)의
샌트(Sant) 국왕의 아들로서 사제가 되었으며,
성 바울리누스(Paulinus, 11월 23일)의 문하에서
몇 년 동안을 공부한 후 선교활동에 투신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 다윗은 브레피(Brefi) 시노드에도
참석하여 큰 공헌을 하였고, 550년경에 행한
그의 뛰어난 설교로 인하여 웨일스 지방 교회의
최고 책임자로 선출되었다.
또한 그는 성지를 순례하던 중에 예루살렘의
총대주교로부터 케얼레온(Caerleon)의 대주교로
승품되었고, 빅토리(Victory) 시노드로 불리는
회의를 주재하여 명성을 날렸다. 이때 그는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를 최종적으로
배격하는데 성공하였고, 브레피의 칙령을 인준하였으며,
영국 교회의 규정을 제정하는 등 교회 안팎에
큰 공헌을 하였다. 그는 자신이 세운 메네비아(Menevia)
수도원에서 운명하였고, 1120년경 교황
칼리스투스 2세(Callistus II)로부터 그에 대한
공경이 승인되었다. 그의 출생과 사망 연대는
불확실하지만 그는 웨일스의 수호성인으로서
높이 공경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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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레오(Leo)
축일 3월 1일
프랑스 루앙의 주교인 성 레오는
사라센족(Saracens)이 침략했을 때 순교하였다.
약탈자들은 바욘(Bayonne) 부근에서 그를
참수하였다. 성 레오는 바욘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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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루데신드(Rudesind)
축일 3월 1일
에스파냐 갈리칸(Gallican) 귀족 가문 출신인
성 루데신드는 불과 18세의 나이로 몬도네도의
주교로 임명되었으나 자신의 뜻은 아니었다.
그의 삼촌인 시스난드(Sisnand) 주교가
직무 유기로 산초 왕에 의하여 투옥되었을 때,
그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교구를 맡게 되었다.
그 후 성 루데신드는 주교직에서 은퇴하여
산 후안 카베이로(San Juan Caveiro) 수도원으로
들어갔다가 셀라노바(Celanova)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셀라노바 수도원에서 선종한 그는
특히 치유의 은혜를 받은 것으로 유명하였다.
그는 로센도(Rosendo) 또는
루데신두스(Rudesindus)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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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루페르코(Lupercus)
축일 3월 1일
성 루페르쿠스(또는 루페르코)는
프랑스의 루르드(Lourdes) 근방 타르브에서
주교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는 프랑스 또는 에스파냐 출신으로
루페르쿨루스(Luperculus)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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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 르네 로크(Peter Rene Roque)
축일 3월 1일
베드로 르네 로크(Petrus Rene Roque)는
브르타뉴(Bretagne) 사람으로 프랑스의
반(Vannes)에서 태어났다. 그는 고향에 있는
신학교에서 수업하여 1782년에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4년 뒤에는 파리(Paris)로 가서 라자로회에
입회하였다. 이 라자로회는 곧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Vincentius a Paulus)
선교회를 말한다.
수련기를 다 마치기도 전에 그는 반에서
신학교수로 활약했는데, 프랑스 혁명이 터지자
어느 누구보다도 온갖 형태의 사도직을 영웅적으로
실천하였다. 그는 악법인 성직자 헌장의 서약을
거부하였고, 그 때문에 숨어 지내야 했다.
그러나 어느 밀고자 때문에 혁명 주체들에게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로크 신부는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그는 1796년 3월 1일에 단두대의 이슬로
하느님의 품에 안겼다. 그의 유해는 반 주교좌에
안장되어 공경을 받고 있다.
그는 1934년에 복자품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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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보나비타(Bonavita)
축일 3월 1일
성 보나비타는 원래 대장장이로 생계를 유지하던
가난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탈리아 라벤나
(Ravenna)에서 14마일이나 떨어진 루고라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살다가 그곳에서 운명한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작은 형제회 3회원으로
엄격한 생활을 하였다. 그는 어디를 가거나,
앉거나,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언제든지 쉽게
명상에 잠겼으며 항상 평온하였다.
그는 참으로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
성인의 정신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성당이나
부유한 집에서 내쫓긴 가난한 걸인에게 먹을 것을
주고, 추운 겨울에 헐벗는 이를 보고는 자기 옷을
벗어 줄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당대의 주민들은 이런 사람이 곧 성인이라 하여
그를 크게 칭송하였고, 3회원의 생활이 곧
수도생활임을 널리 인식시켰다고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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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수이트베르토(Swithbert)
축일 3월 1일
노섬브리아(Northumbria)에서 태어난
성 수이트베르투스(Suitbertus, 또는 수이트베르토)는
스코틀랜드 국경에서 가까운 어느 수도원으로
들어갔으나, 성 에그베르투스(Egbertus, 4월 24일)의
지도하에 아일랜드에서 공부한 뒤 성 빌리브로르두스
(Willibrordus, 11월 7일)를 수행하여 독일 선교사가
되었다. 그는 주로 남부 폴란드와 북부 브라반트
(Brabant)에서 선교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그의 설교와 열심에 탄복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693년 몇 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요크(York)의
주교인 성 발프리두스(Walfridus, 10월 12일)로부터
선교사 주교로 축성되었다. 그는 다시 라인(Rhine)
강변 지방으로 선교활동을 떠나 베스트팔렌(Westfalen)의
베르크(berg) 지역에서 고대 게르만족의 하나인
브룩테리(Bructeri) 사람들을 개종시켰다.
만년에 그는 뒤셀도르프(Dusseldorf)에서 가까운
라인 강의 한 섬에 수도원을 세우고 평화로운 삶을
살다가 선종하였다. 그의 유해는 1626년
카이제르즈베르트(Kaiserswerth)에서 다시 발견되어
그곳에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는 앙기나(Angina),
즉 일종의 편도선 염증을 앓는 사람들의 수호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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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안토니나(Antonina)
축일 3월 1일
성녀 안토니나는 이교도의 신상에 희생 제사를
바치라는 요구를 거절했기 때문에 고문을 당한 후
순교하였다. 그녀는 고대 소아시아 북서부 지역
비티니아(Bithynia)의 니케아(Nicaea)에서
자루에 넣어 꿰맨 뒤 못에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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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알비노(Albinus)
축일 3월 1일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Bretagne)의 반(Vannes)
교구에서 태어난 성 알비누스(또는 알비노)는
잉글랜드(England)나 혹은 아일랜드계로 젊어서
틴실락(Tincilloc) 수도원에 입회할 정도로 신심이
돈독하였다. 그는 35세의 나이에 원장으로 피선되었고,
그의 지도하에 수도회가 전성기를 맞았다고 전해 온다.
529년 앙제의 주교좌가 공석이 되었을 때 교구민들이
그에게 몰려와서 그를 주교로 영입하고자 하였다.
그는 완강히 거부하였으나 렌(Rennes)의 주교이던
성 멜라니우스(Melanius, 1월 6일)의 권유에 못 이겨
앙제의 주교가 되어 열심히 사목하였다.
그는 매일 설교하는 것으로 유명했고, 항상 병자나
가난한 과부들 곁에 있었다고 한다.
그는 또한 노예의 대속금을 지불하기 위한
자금 마련과 외교인들의 개종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의 유해는 파리(Paris)의 성 게르마누스(Germanus)
성당에 안치되었다. 그는 오빈(Aubin)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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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에우도치아(Eudocia)
축일 3월 1일
성녀 에우도키아(또는 에우도치아)는
시리아(Syria)의 헬리오폴리스(Heliopolis)에서
태어났는데, 그녀의 가족은 원래 사마리아(Samaria)
출신이었다. 그녀는 젊어서 창녀로 방탕한 생활을
했으나, 회개한 후로는 젊은 날의 잘못을
보속하기 위해 극도의 참회 생활을 하였다.
성녀 에우도키아는 트라야누스 황제의 박해 때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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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요안나 마리아 보노모(Jane Mary Bonomo)
축일 3월 1일
요안나 마리아 보노모(Joanna Maria Bonomo)는
이탈리아 비첸차(Vicenza) 교구의 아지아고(Asiago)
태생으로 트렌토(Trento)의 클라라회에서 교육을
받고 1622년 바사노(Bassano)에서 베네딕토회
수녀가 되었다. 그녀는 수녀원장과 수련장 수녀
등의 직책을 역임한 후 1670년 3월 1일에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수도원에서 운명하였다.
그녀는 1783년 교황 비오 6세(Pius VI)에 의해
시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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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크리스토포로(Christopher)
축일 3월 1일
크리스토포루스(Christophorus, 또는 크리스토포로,
크리스토폴)가 이탈리아 북부 리구리아(Liguria)의
사도로 불리는 이유는 리구리아 지역에서 행한
그의 선교활동이 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는 도미니코 회원으로 서품되자마자 위대한
설교가로 명성을 떨쳤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감화를 받았다. 그는 회개를 주제로 하면서 윤리적인
개선을 강조했으며, 그의 설교는 항상 복음에
기초를 두고 성 토마스 데 아퀴노(Thomas de Aquino)와
교부들의 신학을 예리하게 활용함으로써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설교는 대중적이었고,
가식이나 이론이 없었으며, 복음의 선포로 인정받았다.
다른 선교사들처럼 그 역시 겁 없이 돌아다녔으나
해를 입지 않았다.
그 후 타기오(Taggai)의 자비의 모후 수도원의
원장이 된 그는 예언의 은혜도 받았다.
어느 날 카스텔라노 광장에서 춤추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자, “여러분이 지금은 흥겹게 춤추고
있으나, 밤이 되면 여러분의 기쁨이 슬픔으로 변할 것이다.”
고 하였는데, 과연 페스트가 퍼져 온 도시가 슬픔에
휩싸였다. 또 그는 타기오 시가 투르크족의 침략을
받을 것이며 홍수가 닥쳐올 것이라고 예언하고,
사람들에게 그 도시에서 빨리 피하라는 경고를 수없이
하였다. 과연 타기아의 강둑이 무너지고 온 도시가
물이 잠기자 사람들은 그의 예언을 무시하였음을
인정하였다. 그는 타기아의 수도원에서 사순절 강론을
하다가 병을 얻어 운명하였다.
그에 대한 공경은 1875년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승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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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펠릭스 2세(Felix II)
축일 3월 1일
로마 순교록에 따르면 성 펠릭스 교황은
교황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9월 3일)의
조상이다. 그리고 그를 교황 펠릭스 3세라고도
부르는 것은 대립교황 펠릭스 2세 때문에 일어난
기록상의 혼란 때문이라고 한다. 자세한 이력은
알 수 없으나 그는 교황 성 대 레오 1세(Leo I, 11월 10일)
스타일의 용감하고도 솔직한 로마인이었다.
그의 재임 기간에 그리스도단성론(monophysitism)이
대두되어 분쟁이 있었다. 482년 제로 황제는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의 총대주교
아카키우스(Acacius)가 착상한 헤노티콘이란 칙서를
반포하여 칼케돈(Chalcedon) 공의회의 결의를 무시하고
오히려 단성론을 옹호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2년 후 성 펠릭스는 라테라노(Laterano)에서 시노드를
소집하여 아카키우스를 단죄함과 아울러 정통 교리를
재차 확립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세속 권력에 대항하여
만국 공의회를 개최한 위대한 교황으로 부각되었다.
아카키우스 이교는 약 35년 동안 지속되다가 소멸되었다.
그는 재위 9년만인 492년에 서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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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헤르메스(Hermes)
성 하드리아누스(Hadrianus, 또는 하드리아노)
축일 3월 1일
성 헤르메스(Hermes)와
성 하드리아누스(Hadrianus, 또는 하드리아노)는
24명의 동료와 함께 북아프리카 누미디아(Numidia)의
마실리스(Massylis)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은 아마도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8월 28일)가
칭송하는 마실리스의 순교자들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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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헤라쿨라니(Heraculani)
축일 3월 1일
성 헤라쿨라니는 이탈리아 페루자의 주교로
동고트족(Ostrogoths)의 왕 토틸라(Totila)에 의해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아마도 페루자
지역의 복음화를 위해 시리아(Syria)에서 파견되어 온
성 헤르쿨라누스(Herculanus, 11월 7일)와
동일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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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로제로 혹은 로저 르 포르, 주교(1367년 순교)
축일 : 3월 1일
성 로저는 스스로 주교위에 오르기를 주장했던
특이한 인물이다. 그러나 주교 선출 시에 고위 성직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친애하는 형제 여러분, 하늘과 땅이
증명하듯이 여러분은 로저를 주교로 뽑았읍니다.
사실 그는 성덕과 지혜가 뛰어난 주교의 자격을
갖추고도 남음이 있읍니다." 이리하여 그는 주교가
되었는데, 과연 성령의 역사하심을 거역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후 그는 1343년에 부르쥬스의 대주교로
선출되었는데, 아마도 성모의 무염 시태 축일은
그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듯 보인다.
로저 주교에 의하여 이 축일이 비로소 보편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90 세의 고령으로 선종했는데,
그가 남긴 유산은 가난한 소년들이 훌륭한 교육을
받도록 유언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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