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까지였으면 좋았을 텐데. 그 후로는 술이 술을 부르고 막걸리가 나를 마셔버렸다. 밤새 토역질한 나는 아침에는 완전히 탈진했다. 속이 울렁거려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다. 명예군민증 수여식 참여는 물론 진료까지 포기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마을회관에 혼자 누워 있는데 갈증이 몰려있다. 이리저리 살피다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투명한 액체가 담긴 큰 페트병이 있었다. 사막을 헤매다 발견한 오아시스였다. 아무 생각 없이 벌꺽벌꺽 마셨다. 목구멍을 넘어가는 순간 접막을 찌르는 자극이 강렬했다. '아뿔싸 소주구나! 온몸에 취기가 남아 있던 내 코와 혀는 소주의 향과 맛을 금방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나 어찌하랴. 소주는 이미 식도를 타고 위장까지 내려간 상태였다. 그리하여 나는 알코올에 의해 두 번 져격당했다.
"장 원장. 어른들께 드려야 할 포도당 수액을 당신이 맞네." 내가 계속 나타나지 않자 의사 회원 한 분이 내 팔에 수액을 놓아주었다. 숙취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떨어지는 수액 방울을 바라보며 지난 의료봉사 현장을 회상해 보았다. 찾아온 이 대부분은 연만한 노인이었다. 자식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고 마을에는 노인들만 모여 살았다. 사실 진료라고 할 수도 없었다. 노인들이 호소하는 증상을 귀 기울여 들어주고 간 단한 약을 며칠 분 조제해 주는 정도였다. 노인들이 가장 좋아한 것은 수액 정맥 주사였다. 포도당 수액에 삐콤헥사 주사액을 섞자 보기 좋은 노란 빛을 띠었다. 값비싼 영양 수액처럼 보였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옆 마을 노인들까지 모여들었다. 침대가 없어 바닥에 돗자리를 깔았다. 기둥 사이에 빨랫줄을 연결하여 수액 걸이로 삼았다. 줄에 매달린 수십 개의 노란 수액은 녕쿨에 주렁주렁 열린 참외 같았고, 그 밀에 누워 수액을 맞는 노인들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다. 포도당 수액은 노인들에게 만병통치약이었다. 의학적으로는 치료제 투약을 위한 정맥 확보의 교두보일 뿐 약리 효과는 미미하다.
주사한대 맞고 싶어도 차로 삼십 분은 나가야 한다는 노인들, 모두 않던 이가 빠진 듯 즐거워했다. 그들에게 늙음의 초라함은 없었다. 아이의 천진함뿐이었다. 진료는 나에게는 일상이지만 의료봉사는 업으로 할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어쩌면 봉사는 나를 위한 일인지도 모른다. 베푼 것보다 더 큰 자기만족이 있기 때문이다. 주사를 놓으며 노인들의 주름투성이 얼굴을 살폈다. 주름은 삶의 기록이며 표정을 지울 때 도드라진다. 내가 주삿바늘로 물으면 그들은 주름의 움직임으로 응답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알 수 없는 기운이 홀러나와 내 뼛속으로 파고들었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인생 역정을 순화했고 기쁨이라는 이름으로 이 순간을 충만하게 했고, 설렙이라는 이름으로 다음을 기약하게 했다. '싼 게 비지떡'이 항상 옳은 말은 아니다. 막걸리와 포도당 수액. 절댓값이 낮은 두 유형의 물질은 몸 안에서 바로 분해되어 소멸하지만, 무형의 존재로 남아 영원하다. '정情'은 값어치를 헤아려 매길 수 없다. 잠든 도시 위로 별빛이 흐른다. 잔잔하다. 고흐가 생레미의 요양원에서 붓질했던 [별이 빛나는 밤] (1889)에 보이는 혼돈의 소용돌이가 아니다. 기억 속에서 명예군민증을 꺼내 펼친다. 은은한 막걸리 향이 나를 감싼다.
장석창 의학박사, 비뇨의학과 전문의 제19회 한미수필문학상 대상, 제16회 보령의사수필문학상 대상 ddolchang@naver.com 살아가며 정에 울고 정에 웃는다. 편 가르기는 그만하고 정이 넘치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