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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일족> -其2-
-2015년 5월 18일-
'아베' 일족의 당주(堂主) '아베 야이치에몬'
그는 1500석 녹봉을 받는 '호소카와 다다오키'의 중신중 한사람이다.
그는 사람들에게는 주군이 죽으면 응당 순사를 해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이었고 그 자신 또한 당연히 순사하리라 마음 먹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아무리 간청하여도 주군 '호소카와 다다오키'는 '아베 야이치에몬'에게만은 순사를 허락하지 않는 것이었다.
녹봉이 고작 여섯석 짜리 개지기에게도 허락하는 순사를.
<"저 야이치에몬은 생전 주군에게 한번도 부탁을 드린 적이 없습니다, 이것이 제 생애 유일한 부탁입니다">
야이치에몬은 부복하여 몇번이고 주군께 간청하였으나 그때마다 다다토시는 그의 간청을 뿌리쳤다.
<"그대의 뜻은 충분히 알겠노라. 하지만 그대는 살아남아 미쓰히사(자신의 아들)를 돌보아라">
그런데 다다오키의 불허락에는 무슨 뚜렷한 명분이나 이유가 있었던게 아니라 순전히 심리적인 문제였다.
모든 일을 알아서 척척 처리하여 한치 빈틈이 없는 '아베 야이치에몬', 그런 그에게 다다오키는 신임은 두텁게 두었지만 정서상으로는 그다지 정이 가지 않는 타입이었다.
이를테면 주는 것 없이 미운, 그런 대상이었던가 보았다.
평소에도 주군은 야이치에몬에게는 괜히 어깃장을 잘 놓았고, 그가 간청하는 순사에 있어서도 왠지 모르게 허락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이 비극의 씨앗이었다.
그리하여 주군 다다오키는 야이치에몬에게만은 순사를 허락치 않고 죽어 버렸다.
죽고 싶건만 죽을수 없는 야이치에몬, 그는 진퇴양난에 빠져 버렸다.
자신은 결단코 죽음을 두려워 하는 사나이가 아니노라, 다만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할복하지 못할 뿐이노라고 필사적인 묵시(默示)로써 주위 사람들에게 항변하지만 자신에게 꽂혀지는 주위의 시선은 영 달가운게 아니었다.
고뇌를 거듭하던 야이치에몬은 급기야 허락이 없는채로 순사를 결행하기로 결심한다.
날을 잡아 저택으로 다섯 아들을 불러모아 자신의 뜻을 밝힌다.
자식들 또한 '아, 아버지가 드디어 죽어주시는구나' 하고 그때까지 마음에 쌓여있던 불안감이 사라진다.
이제 곧 죽음을 앞둔 아버지와 자식들이 웃으면서 환담을 나눈다.
아버지 아베 야이치에몬은 자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스스로 자신의 배를 가르고 그래도 힘이 남아 자신의 목을 좌에서 우로 갈라 죽었다.
가이샤쿠(介錯, 옆에 서서 할복하는 자의 목을 베어 고통을 빨리 끝내주는 보조자)도 없이 결행한 훌륭한 하라키리였다.
그렇게 아베 야이치에몬은 죽었다.
새로운 주군('호소카와 다다오키'의 아들 '미쓰사다')은 허락받지 못하고 결행한 그의 순사를 탐탁치않게 여겼으나, 자비를 베풀어 아베 야이치에몬을 순사자의 반열에는 올려주었다.
그러나 젊은 영주는 노련하지 못하였다.
다른 순사자들과는 달리 야이치에몬의 순사에 대하여는 다소 납득할수 없는 판정을 하였던 것이다.
가독(家督)을 장자에게 물려주는 관행을 깨고 장자 상속분을 다른 아들들에게로 나누어 분배하는 조치를 취하였던 것이다. <사무라이에게 호주상속에 반하는 이런 조치는 굉장한 모욕이 되는가 보다.>
그와 같은 조치에 대하여 야이치에몬의 장남 곤베에는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지만 주군의 조치에 대하여 감히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었다.
선대주군(先代主君)의 일주기 행사를 하는 날, 곤베에는 위패에 분향을 하고 물러날 즈음에 허리에 찬 조그마한 칼을 꺼내어 자신의 상투를 잘라 위패 앞에 바치는 행동을 한다.
사무라이가 자신의 상투를 자른다는 것은 무사로서의 신분을 버리겠다는 의사표시이다.
<"나의 아버지 야이치에몬은 평생 주군을 부족함 없이 모셨기 때문에, 주군의 허락을 받지 못하고 할복했음에도 순사자 반열에 들었고, 유족인 나도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주군의위패에 분향할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어리석어 아버지와 같이 주군을 모시지 못하는 것 같다. 주군꼐서도 그렇게 생각하셨는지 아버지의 녹봉을 형제들과 나누어 상속받게 하셨다. 나는 돌아가신 주군과 새로운 주군, 돌아가신 아버지, 그리고 가족과 동료들에게도 면목이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선대 주군의 위패에 분향하는 순간 감정이 북바쳐 차라리 무사의 신분을 버리자고 결심했다. 이곳에서 한 행동에 대한 문책은 달게 받겠다.">
분노한 새 주군 미쓰히사는 곤베에를 형장으로 끌고 나가 목을 베어 죽여 버렸다.
선대의 위패에 감히 불경한 짓을 한 것과 주군을 두려워하지 않고 저지른 소행에 대한 조치였다.
당주(堂主)를 상속한 큰아들이 그렇게 처형 당하자 아베일족은 모여서 숙의(熟議)를 거듭한다.
사무라이에게 '셋부쿠'가 아니라 목을 베어 죽임을 당하는 '처형'이라니.
'아베' 가문으로서는 말할수없는 모욕이었으며 견딜수 없는 수치였던 것이다.
<곤베에의 소행이 죽음을 당할만큼 무례하였음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무사답게 할복하도록 했다면 좋았을걸. 그렇다면 우리에게 무슨 이의가 있겠는가. 그런데 도적의 무리처럼 백주에 형장에서 목을 베어 처형하였다. 형장에서 목이 잘린 사람이 있는 우리 일족이 무슨 면목으로 동료들과 어울려 이제부터 주군께 봉사하겠는가. 우리는 일족이 모두 토벌 될 것을 받아들이고 모두 함께 죽는 수 밖에 없다.>
아베일족은 부인과 자녀들을 모두 데리고 당주의 저택에 들어가 농성에 돌입하였다.
그러자 영주 '미쓰히사'는 토벌대를 조직하여 아베일족의 토벌을 명한다.
아베 일족의 어린아이들을 비롯한 여자들은 스스로 단도로 목을 찔러(찔러주거나) 자결하고 남자들은 토벌대와 맞서 싸우다가 모두 전사하고 만다. (아베일족의 결사적인 항전으로 토벌대의 많은 무사들도 죽었다.)
그리하여 아베일족은 남녀노유(男女老乳) 할 것 없이 씨도 남기지 않고 멸족되고 말았던 것이다.
한편 아베일족 토벌대의 대장 '가즈마'를 보자.
출전하기 전 날, 자신이 아베일족 토벌대의 대장직의 명을 받은 사유에 대하여 주위로부터 흘러나오는 풍문을 들었다.
<"뭐야, 이번 임무는 게키가 주선하여서 내려진 것이란 말인가?" "그렇다네. 게키님이 주군께 말씀드렸다네. 가즈마는 선대 때 파격적으로 대우를 한 사람이니 이번에 은혜를 갚게 하라고 주청했다네. 뜻밖의 행운 아닌가?">
이 몇마디 귀동냥으로 '가즈마'는 소스라치게 깨닫는다.
이를테면 이런.
"아, 나 역시 순사를 하여야 할 입장이었구나. 주위에서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걸 나는 모르고 있었네. 너는 선대의 '옹'을 크게 입은 자인데 순사를 하지 않았다니 부끄럽지도 않느냐? 이 번에 죽을 자리를 주는 것이니 싸우다 죽어라...주군께서 내게 토벌대장을 명한 것은 이런 뜻이라는걸 이제야 깨닫다니. 이런 바보자식 같으니라구!"
실은, 젊은 주군의 뜻은 그것이 아니었는데도 가즈마의 자격지심이 그렇게 받아들인 것이다.
가즈마는 수치심과 모욕감으로 몸을 떨면서 아베일족의 토벌작전 수행중에 죽기로 결심한다.
그리하여 가즈마는 토벌전투중 스스로 아베 일족의 창을 받아 자결과 다름없는 전사를 하고 말았다.
아베 저택의이웃에 살고 있었던 '마타시치로'는 또 어떤가.
그는 '아베 야에치에몬'의 차남 '야고베에'와 절친한 친구 사이이다.
토벌 전날 밤, 주군의 명령에 의하여 아베 저택에는 삼엄한 경계가 펼쳐졌다.
그러나 마타시치로는 몰래 자신의 아내를 보내어 내일이면 최후를 맞아야하는 친구네 가족들을 위로케 한다.
야고오베 와 아베일족의 여인들은 친구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며 극락왕생의 기원을 부탁하면서 크게 위로를 받는다.
'마타시치로'의 그러한 행동은 지엄한 주군의 문책을 각오하고 행하는 친구로서의 의리였던 것이다.
그러나 다음 날, 토벌대의 일원도 아닌 '마타시치로'는 가장 먼저 아베저택으로 뛰어들어 '야고베에'와 싸워 친구의 가슴에 창을 꽂는다.
'정'은 '정'이고 '의'는 '의', 마타시치로의 저 이중적인 의식구조를 어떻게 납득하여야 할까.
아연할 따름이다.
오늘은 안녕.
<아베일족> -其3-
-2015년 5월 19일-
아베일족.
책장을 덮고서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하나의 개별적 인격이 무거운 신의(信義)에다 자신의 실존을 예속(隸屬)시켜서 엄정한 형식으로 결행하는 자결.
단호하고 단정한 그 형식미는 얼마든지 아름답다.
그런데 명색 주군(主君)짜리를 따라 죽는 순사에 대한 일련의 것들. 저게 정말로 인간적 신의에서 비롯된 순수한 것이란 말인가하는 명제가 머릿속을 차지하기 시작하였다.
그건 전(前)과 같은 감동적 전율이 아니라, 모종의 당혹감이었다.
요매(妖魅)한 가치체계에 절대적으로 순복하려는 저 맹목의 집체적(集體的) 인간성.
인간성의 어둡고 부정적인 곳에 숨겨진 어떤 그로테스크한 모습.
보편적 인간성에 대한 모독감이랄까.. 모종의 분노까지 엄습하였다.
공동체 삶의 형식은 일단 인간의 원초적 감정이 머무는 곳으로부터 시작되는게 아닌가.
사유도 윤리도 도덕도 말이다.
인간성이 본원적으로 지니고 있고 응당 지니고 있어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 성정(性情)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저 가공(可恐)한 것들.
생각해 보라. 너무나 요상스럽지 아니한가.
한 인간이 죽었다고 하여 수십명의 인간이 당연하게 따라 죽어야 하는 저 순사(殉死)라는 것.
스스로 배를 갈라 죽겠다고 자신의 죽음을 엎드려 구걸하는 저 기묘한 간청(懇請).
자신을 따라 죽겠다는 자살 청원에 대하여 짐짓 관용(寬容)의 폼을 잡고 고개를 끄덕이는 저 괴기스런 허여(許與).
아버지의 자살이 고맙고 자랑스러워 아버지가 배를 가르고 목을 따고 피를 뿜으면서 죽어가는 광경을 태연하게 참관하는 자식들의 저 엽기적인 윤리의식.
죽으러 가는 아들과 남편을 대하는 저 천연덕스러운, 그 죽음이 자랑스러워 뿌듯해하는 어머니와 아내짜리의 요상스러운 정애(情愛).
한조각 예사로운 풍문을 심각하게 오도(誤導)된 것으로 인식하여 수치심과 치욕감으로 죽기를 작정하는 저 민감한 자의식.
위험을 무릅쓰고서 위무(慰撫)를 아끼지 않았던 절친한 친구를 그 다음날에는 창을 들고 처들어가 찔러죽이는 저 불가사의한 멘탈리즘.
그런 것들은 충(忠)과 의(義)라기에는 너무나 사적(私的)이고 윤(倫)이라기에는 너무나 병적(病的)이다.
생각건대 동양윤리적 사유체계가 구현하는 모습이 저러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일본의 문명은 우리와 동일한 공맹(孔孟)과 불교(神佛)로부터 시발(始發)하였다는데 저것은 전혀 다른 모습이 아닌가.
저건 공맹의 것도 석가의 것도 아니다.
저들이 인식하는 인의(仁義)는 우리의 것과는 확연하게 다른 이질(異質)의 것이다.
부자(父子)가 그러하고 군신(君臣)이 그러하고 붕우(朋友)가 그러하다.
일본에서만 고유하게 조작된 관념체계.. 일본인에게만 세뇌(洗腦)된 행위규범..
도서(島嶼)의 나라는 저토록 폐쇄성(閉鎖性)의 오리지널리티를 구현하는가.
그러나 도버 해협을 사이에 둔 영국과 프랑스 국민의 가치체계는 그닥 다르지 않다.
아, 현해탄의 바다는 도버보다도 엄청 너르고 깊었던 것인가.
다른 책들을 끄집어내 여기저기를 떠들처 본다.
이원복의 만화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편',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등 이것저것 일본에 관한 책들을 들여다 보았다.
일본은 'わ'(和)의 나라다.
7세기초 쇼토쿠(聖德) 태자가 일본 최초의 헌법(율령) 제1조로서 강조한 것이 바로 <'와(和)'를 존중하라>였다고 한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쌓여 고립된 섬나라에서 뒤엉켜 티격태격하였다가는 모두 멸망해버리고 말것이다.
모쪼록 가지런하게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어울릴, 화할, 합칠, '和' 字.
わ'(和)로써 정돈된 형식이야말로 일본이라는 나라의 안정과 질서와 평화를 유지하는 길이라는 인식이 건국이념으로 뿌리깊게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므로 천수백년 동안 연연하게 이어져 일본인의 사고방식과 생활태도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和(わ)사상인 것이다.
わ가 추구하는 세계관의 본령은 각자 정해진 제 위치에서 벗어나지 않는, 질서로 이루어지는 화평의 세계이다.
그를 위하여 계급적(hierarchy) 계층구조를 공고하게 구축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천황을 허수아비로 만들지언정 최고 정점인 천황을 갈아치우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은 일본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정돈된 형식의 정점인 천황을 건드린다는 것은 ‘わ'(和)의 근본을 무너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천황을 만세일계(万世一系, ばんせいいっけい)의 표상으로 세워놓고 실질적 권력을 놓고 전국의 세력가들끼리 쟁투를 벌여 시대에 따라 쇼군이다 바쿠후다 간바쿠다 다이묘다하여 정돈된 권력의 형식을 메꾸어 나갈 뿐이다.
'와'의 디테일은 어지러워도 '와'의 큰 틀은 불여튼튼이다.
유혈 낭자한 싸움은 세력가끼리의 수평적 전쟁일뿐, 민중봉기나 하극상(下剋上)과 같은 계층 간의 충돌도 일본에서는 흔치 않다.
자신이 속한 계층적 지위에 대한 자각이 너무나 견고하게 굳어있어 그것을 넘는 것에 대하여는 진한 죄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베네딕트는 일본인에게 깃든 가장 중요한 정신적 요소는 바로 '자신에게 적합한 지위'에 대한 강박이라고 한다. 태평양 전쟁 또한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의 맏형님으로서 세계질서 속에서의 마땅한 지위찾기의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세습된 지위에 의하여 그 영역에 안주시키기.
일본에서는 사농공상(士農工商) 간의 계급적 신분이동은 철저하게 금지되었다. <우리나라 역시 신분사회였지만 계급에 따른 의식주까지 통제하지는 않았는데 일본에서는 의식주 자체에 대한 규제가 있었고, 우리나라는 계층이동이 일본처럼 완벽하게 봉쇄된 것도 아니었다.>
전국시대의 혼란을 평정한 도쿠가와의 에도막부 이래 계급질서 유지는 더욱 완고하여 계층구조는 더욱 강고하게 고착되었다.
막부는 이것이야말로 권력유지와 국가안전의 기본요체임을 혼란을 극한 전국시대의 역사적 경험을 통하여 간파한 것이다.
지위에 따라 그에 걸맞는 대접과 체면과 분수가 있고, 그것을 훼(毁)하는 것은 죄(罪)이고 수치스러운 짓이며, 분수를 넘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다.
자신의 신분을 천래적(天來的)인 것으로 인식하라, 자신의 위치에 자족하고 그에 걸맞는 삶을 누려라,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라...
대대로 이어지는 가업(家業), 축적된 기술의 전문성, 다양한 방면에서 빼어난 장인(匠人)들의 탄생... 이런 부분은 고착된 계층구조가 가져다 준 순기능적 열매였을 것이다.
일본처럼 양식문화가 발달한 나라가 있을까.
내 듣기에 신재효가 정리한 우리나라 판소리는 일본의 노(能)나 가부키(歌舞伎)만큼 양식적이지 않다.
쓰모를 볼라치면 거구(巨軀)가 쭈그려 앉아 양다리를 번갈아 들았다 내렸다하는등 우스꽝스러움도 스모판에서는 빼놓을수 없는 하나의 양식이다.
일본인은 형식성에 의미를 부여하고 양식성에서 미학(美學)을 찾는 민족이고 필경 그들의 문화적 자부심의 요체도 거기 있을 듯 싶다.
관계의 정형화(定型化) 그리고 커무니케이션의 양식화(樣式化)가 있어야 그들은 관계에 대하여 안도하고 만족한다.
일본인은 무릇 행위유발에 있어서도 동기의 명분화(名分化)를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인식한다.
일본에 가면 누구라도 느끼게 된다. 조신하고 단정하고 반듯하고 친절하고 경우바른. 그 양식화된 태도를.
그 이면(裏面)에 도사리고 있는 '혼네'(本音)는 어떠한지 모르겠으되.
오늘은 안녕

첫댓글
댓글 사양~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