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규대사와 의병장 조헌의 금산전투.
과거에 충청 지역은 ‘절의(節義)의 고향’으로 불렸습니다. 민족의 명운(命運)이 ‘바람 앞의 등불’과 같았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위급한 시기에 충청도와 인연 깊은 인물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례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충남 아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임진왜란 당시 큰 공적을 세운 의승장 영규 대사와 의병장 조헌‧고경명의 활동 무대가 충청도였습니다. 그리고 병자호란 때 청(淸)나라에 항복을 거부하며 순절(殉節)한 윤집과 오달제가 충청도 출신이었습니다.
충청도는 조선 말기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절의의 인물을 배출하기도 하였습니다. 국민 모두에게 잘 알려진 대표적인 인물 몇 분만 살펴보겠습니다.
충남 홍성 출신 만해 용운(萬海龍雲, 1879~1944)스님은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 서명자로 활동하다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불교 개혁가로, ‘님의 침묵’‧‘조선독립의 서’ 등을 통해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자주성을 노래했으며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일제에 협력하지 않았고 “총독부 쪽을 바라보지 않겠다”며 성북동 심우장을 북향으로 지을 정도로 민족에 대한 자존심이 강한 분이었습니다.
충남 예산 출신 매헌 윤봉길(尹奉吉, 1908~1932)은 중국 상하이(上海) 홍커우(虹口) 공원에서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 축하 행사장에 폭탄을 던져 일본의 상하이파견군 사령관 등을 즉사시키는 거사를 치르고 현장에서 체포되어 순국했습니다.
충남 홍성 출신 백야 김좌진(金佐鎭, 1889~1930)은 1920년 10월 청산리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승리로 이끈 독립군의 명장으로 만주에서 무장 독립운동을 이끌었으며, 대전 출신 단재 신채호(申采浩, 1880~1936)는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로, 《조선상고사》‧《독사신론》을 집필하며 민족의 역사를 바르게 세우는 일에 헌신하고 중국 망명 시절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였으며, 중국 상하이에서 발간되는 《독립신문》과 중국 신문에 뛰어난 논설[칼럼]을 정기적으로 써서 중국인들에게 항일 정신을 일깨우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며 목숨을 마칠 때까지 절의를 지켰습니다. “왜놈들에게 고개를 숙이기 싫다”며 고개를 든 채 세수를 했던 것으로도 유명한 분입니다.
이처럼 충청 지역은 ‘절의의 고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인물들이 활동하고 배출된 곳입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1868년 독일 출신의 상인이자 모험가인 오페르트(E. J. Oppert)가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프랑스 신부 페롱의 길 안내로 충남 덕산(현재의 예산군 덕산면)에 있는 남연군(고종 임금의 할아버지이며 당시 실권자였던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아버지)의 묘를 도굴하려다, 마을 주민들이 몰려와 막고 관리들도 병력을 동원하여 현장으로 이동하자 겁을 먹고 급히 철수하며 실패한 적이 있었죠. 그때 덕산 주민들과 지방 관리들의 신속한 대응이 없었다면, 서양 세력의 무덤 도굴이 성공하는 굴욕을 겪을 수도 있었습니다.
# 역사왜곡에 앞장서는 충청지역 자치단체들
남연군묘 도굴사건 주범 오페르트를
서양음악 전수자로 추앙하는 당진시
조선멸망 위해 프랑스 군대 요청했던
황사영 기려 순례길 조성하는 제천시
무창포 ‘신비의 바닷길’ 홍보한다면서
기독교 성경 속 ‘모세’상 만든 보령시
이토록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진 충청 지역에 언제인가부터 역사 왜곡에 앞장서는 자치단체들이 줄을 이어가고 있어서 국민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당진시의 서양음악도래지 선포
남연군묘 도굴사건 주범 오페르트.
남연군묘 도굴 사건의 주범 오페르트에게 독일 대법원에서는 “오페르트의 행동은 모험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매우 위험한 탐험이었다. 이는 해당 국가인 조선인뿐만 아니라 그가 고용한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탐험의 목표였던 국제무역 개시와 기독교 전파를 위해 그가 사용한 수단은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 따라서 3개월 동안 복역과 재판 수사의 모든 경비를 부담한다”고 최종 판결하였습니다.(고혜련 지음, 《우아한 루저의 나라: 독일인 3인, 대한제국을 답사하다》 31쪽)
그런데 충남 당진시에서는 2023년 9월 29일 시장(오성환)과 지역구 국회의원(어기구) 등이 참석하여 ‘서양음악 도래지 선포식’을 개최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뜬금없는 선포식도 심각하지만, 오페르트가 도굴범이라는 사실은 밝히지 않고 “조선 개항기 독일계 유대 상인인 오페르트 등 서양 상인들이 들어와 최초로 내국인에게 서양음악을 들려준 역사적 장소로 당시 서양음악을 처음 들었던 조선 관료들이 음악에 맞춰 춤추고 노래하는 등 그에 몹시 매료됐다”고 설명하여, 마치 평화로운 국제 교섭과 문화 교류가 이루어졌던 곳으로 역사를 왜곡하며 국민들 특히 젊은 세대들을 잘못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이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에 너무 어이가 없어 ‘어떻게 이런 일이? …’ 하면서 한참 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2023년 9월 충남 당진시가 개최한 대호지 조금진 서양음악도래지 선포식.
‘시장과 국회의원이라는 막중 소임을 맡은 이들이 도대체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들인지, 혹 중‧고등학생 시절 국사 선생님이 역사를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아서 우리 역사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이처럼 바보 같은 일을 하는 것인지?’, 아무리 이해를 해주려고 애를 써도 할 수가 없습니다.
하긴 도굴범 오페르트 일행뿐 아니라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제독 로스의 강화도 침범 때에도 안내인 역할을 했던 프랑스 신부 페롱은 잠시 피신했다가 다시 돌아와 조선교구에서 활동하였음을 1900년 5월 6일 명동성당에서 ‘사제 수품 50주년’ 기념사진에서 확인하게 되니, 답답합니다.(오페르트와 길 안내자 페롱은 자주국가인 조선의 땅을 무단으로 침범하며 법을 어긴 범죄자일 뿐 아니라 고종 임금 개인에게는 자기 할아버지 묘를 파헤쳐 교섭의 무기를 삼으려고 했던 ‘용서할 수 없는 악인’인데 그가 버젓이 활동하게 한 것이 프랑스의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었는지, 아니면 아예 아무런 생각이 없어서 그랬는지 궁금합니다.)
# 충북제천 황사영 순례길
제천시가 황사영을 기리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순례길.
2024년 4월 <가톨릭신문> 보도에 따르면, 충북 제천시(시장 김창규)는 천주교 측에서 성지라고 홍보하는 배론(舟論) 성당에서 박달재에 이르는 7.8km에 황사영을 기리는 순례 길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이 사업에는 국비와 도비를 포함해 총 53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고 합니다. 제천시에서는 “배론~박달재 숲길에 제천을 알릴 수 있는 약초를 심고 성당 미니어처를 설치해 한국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만들겠다”고 밝히고. ‘2025년 말 공사에 착공해 2026년 말까지는 순례길 조성을 완료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황사영이 어떤 인물입니까? “프랑스 함대를 보내 천주교 신앙 자유를 막는 조선정부를 무너뜨려 달라”는 비밀 편지[백서(帛書)]를 써서 보냈다가 전달 과정에서 발각되어 처형을 당한 반국가사범이었습니다. 물론 천주교 입장에서 보면 순교자라고 주장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를 들어 그를 옹호‧변호하려고 할지라도, 그가 외국 군대의 침략을 간절히 호소하며 민족을 배신한 인물이라는 평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인물을 기리기 위해 막대한 혈세를 들여 순례 길을 조성하겠다는 제천시와 여기에 국비를 지원하기로 한 중앙정부가 제 정신일까요?
그럼 그 길을 걷는 국민들, 그 중에서도 어린이‧청소년들이 어떤 교훈을 받게 될까요? 혹 “나라와 민족을 배신하여 외세 침략 앞잡이가 되더라도 이런 대접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괜한 걱정, 기우(杞憂)일까요?
#모세의 기적은 신의 저주였다
모세의 기적.
얼마 전부터 유대교‧기독교와 이슬람에 대해 이해하려는 뜻에서 그 세 종교가 함께 성경으로 여기는 이른바 《구약성서》를 매일 조금씩 읽고 있습니다. 그 중 <출애급기Exodus>를 읽으면서는 생생한 장면 묘사에 놀라기도 하고, 사랑과 자비를 보여주는 대목에서는 공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유대 민족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잔인하기 짝이 없는 그들의 신(神)에게 화가 나는 적도 많습니다.
한국 기독교인들도 아주 좋아하는 다음 대목을 함께 읽어보시죠.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왜 부르짖느냐?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여라. 너는 지팡이를 들고 바다 위로 너의 팔을 내밀어, 바다가 갈라지게 하여라. 그러면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한가운데로 마른 땅을 밟으며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집트 사람의 마음을 고집스럽게 하겠다. 그들이 너희를 뒤쫓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와 병거와 기병들을 전멸시켜서, 나의 영광을 드러내겠다. 내가 바로와 그의 병거와 기병들을 물리치고서 나의 영광을 드러낼 때에, 이집트 사람은 비로소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진 앞을 인도하는 하나님의 천사가 진 뒤로 옮겨가자, 진 앞에 있던 구름기둥도 진 뒤로 옮겨가서, 이집트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를 가로막고 섰다. 그 구름이 이집트 사람들이 있는 쪽은 어둡게 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있는 쪽은 환하게 밝혀 주었으므로, 밤새도록 양 쪽이 서로 가까이 갈 수 없었다.
모세가 바다 위로 팔을 내밀었다. 주님께서 밤새도록 강한 동풍으로 바닷물을 뒤로 밀어 내시니, 바다가 말라서 바닥이 드러났다. 바닷물이 갈라지고,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한가운데로 마른 땅을 밟으며 지나갔다. 물이 좌우에서 그들을 가리는 벽이 되었다. 뒤이어 이집트 사람들이 쫓아왔다. 바로의 말과 병거와 기병이 모두 이스라엘 백성의 뒤를 쫓아 바다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새벽녘이 되어, 주님께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에서 이집트 진을 내려다보시고, 이집트 진을 혼란 속에 빠뜨리셨다. 주님께서 병거의 바퀴를 벗기셔서 전진하기 어렵게 만드시니, 이집트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쫓지 말고 되돌아가자. 그들의 주가 그들 편이 되어 우리 이집트 사람과 싸운다!’ 하고 외쳤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너는 바다 위로 너의 팔을 내밀어라. 그러면 바닷물이 이집트 사람과 그 병거와 기병 쪽으로 다시 흐를 것이다.” 모세가 바다 위로 팔을 내미니, 새벽녘에 바닷물이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왔다. 이집트 사람들이 되돌아오는 물결에서 벗어나려고 하였으나, 주님께서 이집트 사람들을 바다 한가운데 빠뜨리셨다. 이렇게 물이 다시 돌아와서 병거와 기병을 뒤덮어 버렸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의 뒤를 따라 바다로 들어간 바로의 모든 군대는 하나도 살아남지 못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한가운데로 마른 땅을 밟으며 지나갔는데, 바닷물이 좌우에서 그들을 가리는 벽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 바로 그 날,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 사람들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셨고, 이스라엘은 바닷가에 널려 있는 이집트 사람들의 주검을 보게 되었다.
(새 번역 판 《구약》<출애급기Exodus> 제14장)
‘모세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이 사건이 이토록 잔인한 것임을 아는 이들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집트에서 도망쳐 나오는 유대민족을 구한 일은 거룩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 사회의 독재자가 아니고 하느님이라면 그들을 구해내면서 그 뒤를 쫓는 병사들의 길을 가로막고 유대인들을 무사히 건너가게 하는 것으로 그쳐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사랑의 하느님’으로 존경받을 자격이 있지 않을까요?
결국 이토록 잔인하게 몰살시키는 하느님의 행위를 충실하게(?) 따르는 아브라함의 세 종교의 후손들이 인류 역사에 흘린 피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수백 년 간 이어진 이른바 ‘십자군전쟁’과 히틀러의 종족 말살, 오늘 이 순간에도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리의 적을 모조리 죽여야 한다”는 잘못된 종교적 확신이 바로 이런 구약의 가르침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생각을 버리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충남 보령시가 무창포 앞 바다에서 한 달에 두 차례 썰물 때에 바닷물이 갈라지는 곳에 ‘무창포 신비의 바닷길 조형물을 세우겠다’면서 실제로는 유대인들의 이집트 탈출을 이끌었다고 알려진 모세의 상(像)을 건립하겠다고 합니다. 한 달에 두 차례 바닷물이 갈라지는 것은 달이 지구의 물을 끌어당기는 인력(引力) 때문에 일어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자연과학 지식이 없던 시절에는 신기하게 보이는 이런 현상을 따라 신화와 설화가 생겨났습니다.
무창포해수욕장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석대도에 있었던 아기장군과 바다를 지키는 해룡이 줄다리기를 할 때마다 땅이 솟아났다”는 ‘아기장군과 석대도’ 설화가 바로 그것이고, 구약에 기록된 ‘모세의 기적’ 이야기도 그렇게 생겨났을 것입니다.
그러니 보령시가 관광객 유치를 위해 조형물을 굳이 세워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하면 ‘아기장군과 석대도’ 이야기를 소재로 삼아야 자연스럽고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보령시가 강행하려는 사업은 괜한 갈등만 일으키고 있습니다. 설사 보령시장 개인이 자신의 돈으로 이 사업을 추진한다고 할지라도 국민의 동의를 얻기 어려울 터인데 시민의 혈세 7억 원을 들이겠다고 하니, “정신 나간 사람 아니냐?”고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꼭 모세 상을 세우겠다고 고집을 부린다면, 한 가지 방법을 알려주고 싶군요. 모세 상 아래 좌대(座臺)에 ‘하느님이 이집트 사람들을 모조리 몰살시킨 잔인한 행위’와 함께 “우리들은 이렇게 하지 말자!”는 글귀를 새기면 관광객 유치와 국민 계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방자치제 전면 실시 이후 민선 자치단체장들이 마구잡이로 추진하는 사업들이 막대한 국민 혈세를 낭비하고 국민 갈등과 분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젠 우리 지방자치가 제 자리를 잡을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제대로 자리 잡게 하려면 앞으로는 충남 당진시‧보령시, 충북 제천시 등등 정신 나간 짓을 하는 단체장들을 닮은 인물들을 뽑지 않도록 다 함께 애써야 할 것입니다.
https://www.bulgyo-in.com/news/articleView.html?idxno=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