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화상
전호준
세월이 흐를수록 세상은 살기 좋고 나이가 들수록 편리하고 좋은 시절이 되어가는 것 같다. 도시철도 3호선이 개통되고부터 도시철도 이용이 부쩍 늘었다. 집에서 지산역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다.
3호선이 개통되기 전에는 지하철 이용을 거의 하지 않았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1호선 명덕역과 2호선 대구은행역이다. 시내버스를 타고 가도 20여 분이 소요된다.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시간과 기다리는 시간을 합하면 3.40 분은 기본이다. 거기다 버스요금까지 계산하면 도시철도는 나 같은 지공선사 백수들에겐 감지덕지 정말 편리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볼일이 있어 수성우체국에 들렀다가 대구은행역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리는데 어디서 고함 소리가 들려와 둘러봤다. 7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혼자 고함을 지른다. “무슨 놈의 역 플랫폼에 앉을 자리 하나 없이 아픈 사람이 어떻게 서서 기다리나! 이것이 시민을 위한 행정인가?” 잔뜩 화가 난 모습이다. 낮술을 한잔하신 걸까? 병원을 다녀오시는 길일까? 영문은 알 수 없으나 허리가 몹시 불편하신 것 같다. 동병상련이라 할까?
같이 늙어가며 애처로운 마음이 든다. 주위를 두리번거려도 앉을 만한 자리가 보이질 않는다. 옆에 계시던 중년의 아주머니가 안타까운 듯 "어르신 허리가 많이 불편하시면 우선 기둥에라도 좀 기대시지요?" 남의 말은 들은 체 만 체 아픈 몸의 짜증을 고함으로 잊으려는 듯 불평불만을 멈추질 않는다.
고함 소리를 들었는지 나이 지긋하신 노란색 조끼를 입은 역무원이 다가 온다. 물 만난 고기처럼 기다렸다는 듯 화살이 역무원에 쏟아진다.
“당신네는 뭐 하는 사람이요!” 사람이 앉을 의자도 하나 없이 지금 당장 의자 하나 갖고 와요“ 그 기세를 미루어 짐작건대 몸이 그렇게 불편하지 않다는 생각마저 든다. 선생님 저쪽에 의자가 있으니 거기 가서 좀 앉으시지요? 역무원이 가리키는 쪽으로 가까이 가보니 고정된 평상 형 의자가 놓여있다. 역사 기둥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던 곳이다.
기둥을 둘 건너뛴 세 번째 기둥 옆이다. 불과 8.9m쯤 되는 것 같다. 여린 마음에 다시 한번 “선생님 저기 의자가 있네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픈 내가 그곳까지 가란 말이요?” “당신들은 상관 말아요!” 한 방 맞고 나니 어안이 벙벙하다. 다시 역무원을 향해 당장 의자를 갖고 오라고 고래고래 명령이다. “선생님 고정형 의자라 옮길 수가 없습니다.” 뭐야! 그럼 사무실 의자라도 당장 하나 갖고 오라며 몽니를 부린다. 역무원은 묵묵부답 어이없는 심통에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버린다. 한동안 소란을 피워도 소용이 없자 역사 기둥 옆에 비치된 소화기 위에 앉으려고 엉덩이를 갖다 댄다.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질겁하며 거기에 앉으면 소화기가 고장 납니다. 앉으시면 안 된다고 한다. 나도 덩달아 거기에 앉으면 손잡이가 눌러 소화기가 작동될 수도 있으니 앉으시면 안 된다고 만류했다.
얼마나 괴로우면 저러실까? 그의 알 수 없는 행동이 꺼림칙하다가도 마음이 아리다. “선생님 그렇게 견디기 힘드시면 차가 올 때까지 저쪽 의자에 가서 잠시라도 앉으시지요?” “누가 의자가 있는 걸 몰라서 이러는 줄 알아 몸이 아파 갈 수가 없어 그러지!” 듣고 보니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다. “그러시면 바닥에라도 잠시 앉아 기둥에 등을 좀 기대어 보시지요?” “당신이 뭔데 남의 일에 상관해!” 예상외의 두 번째 날벼락이다. “뭐! 나보고 땅바닥에 앉으라고!” 눈을 치뜨고 바라보는 눈길에 주눅이 들어 입을 다물어 버렸다.
사실 말이 땅바닥이지 지하철역 바닥은 우리 집 거실보다 더 깨끗하다는 느낌이다. 바닥이 찬 겨울도 아닌 한여름에 그렇게 아프고 견디기 힘들면 찬밥 더운밥 가릴 겨를이 있을까? 더는 말을 걸지 않는 것이 오히려 나와 그분을 위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입을 다물었다. 차가 들어온다. 멀쩡하게 걸어 차에 오른다. 참 별 사람도 다 보겠네, 가끔 노인들이 차 안에서 젊은이들에게 자리 양보를 하지 않는다고 야단치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설마 했는데 오늘 본 이 모습에 서글퍼지는 마음이다. 5분이 멀다 하고 열차가 들어오는 플랫폼, 별 의의(意義)는 없지만, 몸이 불편한 분들을 위해 간이 의자라도 몇 개쯤 비치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원한 냉기에 더위가 한순간 사라지는 열차 안, 이렇게 좋은 시절에 왜? 그러실까? 그렇게 잠깐 서 있기 힘들 정도면 어떻게 혼자서 지하철을 타러 오셨을까? 택시도 보호자도...? 새삼 궁금해진다. 잠시 나을 버리고 참을 수는 없었을까? 이것이 우리네의 자화상일까? 다행히 주변에는 젊은이나 다른 승객 분들이 없었으니 망정이지 그들의 눈에 우리네의 이런 모습이 어떻게 비쳐질까? 무임승차에 노약자석까지... 나이가 무슨 훈장도 아닐 텐데, 그래도 대다수 젊은이가 자리를 양보하는 아름다운 광경을 흔히 보아왔다.
“말 타면 종 앞세우고 싶다”는 옛말이 생각난다. 세상이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더 나은 것을 바라는 인간들 욕구의 끝은 어디일까? 감사를 모르는 오늘 날, 나의 자화상 같아 가슴이 먹먹해 온다. 2018.8.6
첫댓글 지하철에서 가끔 보는 풍경입니다. 참 딱한 일이지만 아직도 나이를 무슨 벼슬로 아는 사람이 있다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대체로 그런 사람들이 줄 설 줄 모르고, 앉아서는 다리를 쩍 벌리고 등 등, 노인이 모범을 보일때 젊은이들이 온 몸으로 배울 것이라 생각됩니다.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잘되면 자기탓 못되면 조상탓" 이란 말과 같이 못되면 남의 탓으로 돌리려는 관습을 특히 노년기에서는 더욱 고쳐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지하철을 이용하다 보면 막무가내로 고집을 피우며 자기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더러 볼 때가 있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는 지하철을 보면 그 나라 국민들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게 됩니다. 남녀노소할 것 없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을 삼가하도록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할 듯 합니다.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지하철에서 저도 비슷한 모습을 자주 봅니다. 안방처럼 전화를 받으면서 웃고 큰소리로 말하고 그래도 점점 나아지는 모습도 보이더랍니다. 자리를 양보할 때 곧 내린다면서 사양하는 노인분도 있더랍니다.
지하철을 타면 자기 집인줄 아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지하철에서 전화하는 사람은 양반입니다. 양가에 있는 경로석으로 안가고 구태여 젊은 사람들이 앉아 있는 곳에 서 있습니다. 젊은 사람이 좌석 양보하면 고맙다는 말도 없이 앉아 버립니다. 서울에 있는 지하철을 대여섯 번 탔습니다.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경로석으로 가더군요. 경로석이 없으면 그 주위에만 있지 젊은 사람이 앉아 있는 좌석으로 가지도 않더군요. 이런 점은 배우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지하철에서 느낀 심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였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과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글을 읽고 만일 내가 늙어져서 이런 행동을 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글 잘 읽었습니다.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나이듦을 이유로 막무가내로 떼를 스는 광경을 보면 안타갑습니다. 직장에서도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무조건 편한 일만하고 대접받으려는 분을 보면 속상할 때가 있습니다. 저런 모습이 되지는 않도록 해야지 하면서 마음을 다잡습니다. 선생님 말씀처럼 나의 자화상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나이듦을 훈장이라고 생각하시는 노인들이 주위에서 더러 많이 보입니다. 저도 그 쪽 나이에 더 가깝다고 생각되어 제가 더 밈망하고 부끄러워집니다. 존경과 경의는 남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상대를 존경할 때만 그 경의가 저에게 메아리 되어 옵니다.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시설은 좋아지고 혜택은 나날이 늘어나는데 더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선의의 친절을 베푸시려는 선생님께 한방? 먹이는 그 사람이 미워지려고 합니다. 지하철 이야기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지하철 탈 자격이 없는 노인네 같네요. 그 모습을 보느라 애 많이 쓰셨네요. 나의 자화상이 아니고 쓰레기 조각이라 해야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