괌 태풍에 발묶인 韓관광객 3200명… “아버지 혈압약 다 떨어져”
“바닥 마른 호텔 화장실서 생활
식수도 거의 끊겨… 내일이 두렵다”
괌 공항 빨라야 30일 재개 전망
외교부, 비상의약품 전달 등 나서
‘슈퍼 태풍’ 마와르가 강타한 괌 현지 모습. 26일 태풍으로 부서진 나무와 주택 잔해들이 나뒹굴고 있다. 교민 백수진 씨 제공
“아버지 혈압약을 구할 수 없어 피가 마르는 심정입니다.”
태평양 휴양지 괌을 부모님과 함께 방문했다가 초강력 태풍 ‘마와르’ 때문에 발이 묶인 도모 씨(34)는 26일 동아일보와의 메신저 대화에서 “노약자 등 지병을 앓고 계신 분들에 대한 외교당국의 빠른 조치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그는 현재 수도와 전기가 끊긴 채 고립돼 있다면서 “호텔 내부까지 물이 차올라 유일하게 마른 바닥이 있는 화장실에서 이불을 깔고 지내는 상황”이라고 했다. 또 “영사관도 태풍에 피해를 입어서 그런지 전혀 연락이 없다”고 말했다.
● “식수 떨어져” 악몽 된 신혼여행
괌 국제공항은 활주로가 침수되면서 항공기 운항이 중단된 상태다. 괌 국제공항 대한항공 카운터에 항공편 취소 소식을 알리는 한글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23, 24일(현지 시간) 괌을 강타한 마와르는 최고 시속 225km의 강풍을 동반한 ‘슈퍼 태풍’으로 시간당 50mm의 비를 뿌려 괌 국제공항 활주로를 비롯해 많은 호텔, 식당 등이 침수됐다. 강풍으로 전신주가 쓰러지면서 전선이 끊어져 광범위한 지역에 정전이 발생했으며, 상하수도 설비도 작동을 멈춰 단수된 지역이 적지 않다.
태풍이 물러난 후에도 국제공항 운영 중단 상태가 이어지고 있어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휴가를 떠났던 한국인 관광객 3200여 명은 현지에 고립된 채 기본적인 의식주마저 못 챙기는 상황이다.
임신 7개월 차인 아내와 태교 여행을 온 이모 씨(37)는 “체류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아내가 두통을 호소하고 배 뭉침 증상도 생기고 있다”며 “식당과 식료품점이 대부분 문을 닫아 미리 챙겨둔 라면이나 인스턴트 음식으로 간신히 끼니를 때우고 있다”고 했다. 한 관광객은 “숙소가 물에 잠겨 에어컨도 안 나온다. 지금은 렌터카 안에서 지내는 중”이라고 말했다.
신혼여행이 악몽이 되기도 했다. 손유경 씨(30)는 이달 20일 결혼 후 괌으로 신혼여행을 왔는데 이제 식수가 거의 떨어졌다고 했다. 손 씨는 “호텔에서 더 이상 숙박 연장을 해줄 수 없다고 해서 당장 잘 곳도 없다”며 “내일이 오는 게 너무 두렵다”고 했다.
현지 관광객들은 인터넷 커뮤니티와 카카오톡 공개 채팅방을 통해 소통하고 있는데 방을 나눠 쓸 사람을 찾거나 ‘노숙 중인데 샤워만이라도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 등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 공항 이르면 30일 재개될 듯
고립이 길어지면서 늘어난 체류 비용도 부담이다. 관광객 김모 씨(29)는 “마트마다 사람들이 몰려 식료품이 동났다. 호텔 식당이 있긴 한데 가족과 밥을 먹으면 최소 40달러(약 5만3000원)는 든다. 하루 한 끼만 제대로 먹더라도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그나마 문을 연 마트나 편의점에선 신용카드 결제가 제대로 안 돼 현금을 뽑기 위해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찾으러 다니는 관광객도 적지 않다.
교민들도 불편을 겪고 있다. 교민 김모 씨(58)는 “생수가 거의 떨어졌는데 수돗물이 안 나온다. 몸을 씻지도 못하고 마실 물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했다.
괌 국제공항은 이르면 30일 다시 문을 열 것으로 예상된다. 외교부 관계자는 26일 “괌 공항청장이 전날(25일) 면담에서 30일 공항 재개를 목표로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며 “교민단체, 여행사 등과 긴급 지원방안을 협의 중이다. 필요한 분들에게 비상의약품을 전달하고 있고 자원봉사자들을 활용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일부 여행사들은 괌에서 발이 묶인 여행객을 위한 지원 방안을 마련했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천재지변의 경우 보상할 의무는 없지만 1박에 10만 원 정도 숙박 지원금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인터파크 측도 패키지 고객 70여 명을 대상으로 호텔 숙박 비용 전액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이기욱 기자, 신나리 기자, 오승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