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는 1982년생으로 지난 2001년 한 의류광고 지면 광고 모델로 데뷔했다. 배우의 꿈을 안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한 그는 당구장, 호프집, 주유소, 패스트푸드점 등에서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바퀴벌레가 득실거리고 겨울에는 수도꼭지가 얼어서 물이 안 나오는 옥탑방에서 힘든 시절을 겪은 그는 한 해에 50번의 오디션을 낙방하는 시련에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도전했고, 오디션 박람회를 통해 만난 한 기획사와 계약하면서 본격적으로 연기활동을 시작했다.
단역과 조연으로 연기 경력을 쌓던 이준기는 2005년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는 작품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이준익 감독의 영화 '왕의남자'이다.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광대 '공길'과 '장생'이 예기치 않게 폭군 '연산군'과 얽히면서 벌이지는 영화 이야기 속에서 그는 여장을 한 '공길' 역을 맡아 중성적인 비주얼로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무명에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이준기가 맡은 '공길' 역은 약 한 달 동안 이어진 3번의 오디션에 참여하면서 다른 지원자들과 차별화될 수 있도록 연기는 물론 비주얼과 아크로바틱 동작을 연구해서 3000:1의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뽑히게 되었다고 한다.
해당 작품으로 이준기는 '제42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신인연기상', '제43회 대종상 신인남우상, 국내 남자인기상, 해외 남자인기상' 등 모든 상을 휩쓸며 신드롬급 인기를 얻게 되었다.
무명에 가까운 신인배우에서 단숨에 천만 영화배우가 된 이준기는 자고 일어나니 대스타가 되었지만, 너무 빠른 변화에 심한 연예인병에 걸려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는 당시 매니저 없이는 외출도 하지 않고, 누군가를 상대하거나 인터뷰를 응할 때는 시종일관 건방진 태도로 응했다고 한다. 심지어 같이 일하는 스태프들에게조차 '내가 잘하니까 다 먹고사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까지 들정도였다고.
쉴 새 없는 일들로 인해 제정신으로 살 수 없었던 이준기의 연예인병은 점점 심각해졌고, 순식간에 달라진 그의 시건방진 태도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건 무명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친구들이었다.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 "널 보는 게 역겹다. 우리가 알던 이준기가 아니다. 말 섞기도 싫다"라고 친구들에게 쓴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친구들의 진심 어린 충고에 큰 충격을 받은 이준기는 일주일 정도 매일 밤 울면서 되돌아보니 이미 너무도 변해버린 자신이 보였다고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알려준 친구들 덕분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이준기는 그 사건 이후로부터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고 한다.
현장의 분위기메이커를 자처하고, 스태프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다 외우면서 말 한마디를 해도 진심을 다해서 말하는 등 그런 습관들을 현재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첫댓글 무명의 연예인이 뜨면 한번은 꼭 걸린다는 ㅅㅌ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