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1서 2:7]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로마서 13: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찌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새언약의 계명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이미 십계명과 율법에 들어있던 거고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딤전1:5 딤전1:5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
딤전1:8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법 있게 쓰면 율법은 선한 것인 줄 우리는 아노라
딤전1:8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법 있게 쓰면 율법은 선한 것인 줄 우리는 아노라
롬7:12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율법이 표면적으로는 육적인 부분만 그 행위를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적인 선한 양심을 요구하고 있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7:14에서 율법은 신령하다고 했지요.
그러므로 새언약에서 율법을 바르게 드러낸 것이고 또한 율법을 법 있게 선하게 사용하면 되는 것입니다.
고로 도덕법을 예수님이 바르게 재해석해주신 겁니다. 율법은 틀을 제공하고 복음은 그 실체를 나타낸다고 봐야 하며 율법을 구지 터부시할 필요는 없는 것이죠. 상호보완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첫댓글 그럼 예수님이 왜 죽나? 안죽어도 되겠네
@명탐정(조상민) 완전히 우상숭배 군
구약은 단 1차례도 양심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는 율법이 외면의 행실만을 규제하는 타율이 강한데 반해
예수님의 산상수훈에 설명한 새법의 취지는 양심의 작용에 의한 내면으로부터의 적극적인 자율을 강조하는 성령의 법의 성격을 보여줍니다
신약에서는 예상보다 많이 '양심'을 강조하고 때로는 믿음과 비슷한 무게 비중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양심 없는 믿음은 파선한 것이라고 까지 말씀하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