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참여 IPEF 14개국… ‘공급망 中견제’ 협정
[미중 반도체 전쟁]
美주도 출범 1년만에 첫 협정 타결… 공급망 위기대응 네트워크 등 합의
반도체-배터리 공급망 中의존 낮춰… 中의 자원무기화에 대응체계 구축
한국이 참여하고 있는 미국 주도 경제협력체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가 27일(현지 시간) 공급망 협정에 합의했다. IPEF 회원국들은 이 합의에 따라 반도체와 핵심광물 공급망에서 대중(對中) 의존도를 낮추고 중국의 자원 무기화로 인한 위기 발생 시 공동 대응할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미 상무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IPEF 14개 회원국이 각료회의에서 공급망 협정에 실질적으로 합의했다”며 “IPEF가 협정에 합의한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IPEF는 지난해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주도해 출범시킨 중국 견제 경제협력체다. 한국과 미국, 일본, 인도 등 14개 회원국이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무역·공급망·청정경제 등 4개 분야에서 협상을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공급망 분야에서 첫 협정을 타결한 것이다.
IPEF 공급망 협정에 따라 회원국들은 공급망 위기 발생 시 대응을 위해 비상 소통 채널인 ‘공급망 위기 대응 네트워크’를 가동하기로 했다. 또 공급망 병목 현상을 조기 식별할 수 있도록 ‘공급망 위원회’를 설치하고, 각 ‘노동 자문위원회’를 통해 각국의 노동환경 개선 이슈도 다루기로 했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IPEF 회원국들이 사전에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공급망 문제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희토류 등 반도체·전기차 핵심 소재를 무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이에 상시 대응할 수 있는 협력체를 구축하겠다는 뜻이다. 다만 최근 창설을 선언한 주요 7개국(G7)의 플랫폼이 중국의 경제 보복에 맞서 직접적인 공동 행동을 하기 위한 것이라면 IPEF의 협력체는 핵심 원료 개발과 대체 공급망 구축 등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는 이번 IPEF 협정을 통해 국내 기업이 공급망 관련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IPEF 회원국으로서 이번 협상 참여가 자칫 최대 교역국인 중국을 자극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도 있다.
중국 왕원타오(王文濤) 상무부장은 26일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만나 중국을 견제하는 IPEF의 움직임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고 중국 상무부는 밝혔다.
美, 中의 ‘자원 무기화’ 겨냥 新공급망 구축… 中 “美, 다른나라 협박”
IPEF, 공급망 中견제 협정 타결
美, 반도체-전기차 배터리에 초점… 中 “글로벌 공급망에 심각한 타격”
정부 “공급망 다변화 기회” 평가 속… “中과 긴밀한 관계 유지-확대” 신중
27일(현지 시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각료회의에 참석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왼쪽에서 일곱 번째),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오른쪽에서 여섯 번째),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산업상(왼쪽에서 여섯 번째)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산업부 제공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가 출범 1년 만에 공급망 분야에서 첫 협정을 타결하면서 반도체와 전기차 등 핵심 산업에 대한 미국 주도의 새 공급망 구축 움직임이 가시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과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미국의 핵심 동맹인 이른바 아시아태평양파트너국(AP4)과 함께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대거 참여한 IPEF를 통해 중국에 대한 공급망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것이다.
다만 미국은 최근 중국과 고위급 대화 채널 복원에 나서는 등 미중 경제 분리를 뜻하는 ‘디커플링’(탈동조화) 대신 ‘디리스킹’(탈위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 한국과 동남아 국가 등 중국과의 교역 비중이 큰 국가들이 포함된 만큼 중국에 대한 IPEF의 실질적인 압박 수위는 높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 ‘中 견제’ 공급망 재구축 나선 美
IPEF는 지난해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새로운 인도태평양 경제틀’을 내걸고 출범시킨 협력체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27일(현지 시간) 협정 합의 타결 사실을 전하며 “14개 회원국이 공급망에 대해 첫 국제 합의를 갖게 된 것은 큰 성과”라고 밝혔다.
이번 공급망 협정의 핵심은 ‘공급망 위기 대응 네트워크’와 ‘공급망 위원회’ 창설이다. 중국을 구체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중국의 자원 무기화를 겨냥했다.
공급망 위기 대응 네트워크는 공급망 혼란 시 회원국들이 대체 공급처와 운송 경로를 개발하고 신속 통관 등 협력 방안을 협의하는 채널이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가 사활을 건 반도체와 전기차 공급망이 핵심 의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전기차 배터리 등 첨단산업에 필요한 핵심 소재인 리튬과 니켈, 희토류 등 핵심 광물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자원 무기화에 대비해 공급망을 다변화하겠다는 취지다. 미국은 IPEF 참여국인 인도네시아 등 천연자원이 풍부한 동남아 국가들과 광물 협정을 맺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상무부는 공급망 위원회에 대해선 “공급망에 중대한 병목 현상이 발생하기 전 문제 해결을 지원하기 위한 기구”라고 설명했다. 공급망 위기에 대한 조기 경보 체계를 만들고 핵심 광물 채굴 확대 등 IPEF 회원국 간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중국은 반발했다. 마오닝(毛寧)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6일 정례 브리핑에서 IPEF의 움직임에 대해 “중국의 발전을 막기 위해 다른 국가들을 협박해 글로벌 공급망 안정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행위에 대해 중국은 단호히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 韓 “공급망 다변화 기회”… 中 반발은 우려
정부는 이번 IPEF 협정을 통해 공급망 다변화 기회를 확보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28일 “지난해 기준 특정국 의존도가 75% 이상인 품목이 600개를 넘는다”면서 “한국이 호주, 인도네시아 등 자원 보유국은 물론이고 베트남, 인도 등 주요 생산기지와도 함께 갈 수 있다면 대체 공급처를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도 23일 브리핑에서 “(IPEF의 협정이) 공급망 불확실성을 줄여 우리 기업의 투자 전략 수립 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정부는 이번 협정 참여가 최대 교역국인 중국을 자극하는 결과로 이어질까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이에 산업부 관계자는 “협정에 참여한 14개국 중 10개국이 중국을 제1의 교역 파트너로 두고 있는데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참여했다”며 “중국은 (우리의) 중요한 파트너인 만큼 긴밀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상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중국에 대한 과의존을 어느 정도 해소하자는 느슨한 수준의 합의”라며 “중국의 반발이나 보복을 우려할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세종=조응형 기자,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고도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