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 레 이 스 키 (고 려 인)
민 경 준
모두가 잠든 고요한 새벽 4시, 이 시각엔 여명도 없다. 달도 곤히 잠들고 별들도 코를 곤다. 눈꺼풀이 무거운 채로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찬물에 세수하기다. 정신이 번쩍 들도록 몸의 이완 상태를 조이고, 수 천 개의 뇌세포를 깨우기 위해서다. 로션을 대충 바르고, 하루의 각오를 다진다. 매섭고 차가운 공기가 식도를 지나쳐 장기까지 전해졌다. 눈만 빼꼼 보일 정도에 목도리로 얼굴을 칭칭 감았고 겨울 모자를 푹 눌러쓰고, 고된 노동과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가고 있다. 잠시 그가 되고 싶다. 그의 내면 속으로 들어가 본다.
'알렉산드리아' 나의 이름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났고, 우리를 흔히 '카레이스키'라고 부르는 고려인이다. 나이는 43세, 아내와 아들, 딸,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타슈켄트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해, 많은 자격증도 보유하고 미래가 보장되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황인종' 즉 아시아인이다. 인종차별이 심했다. 직장 생활은 언감생심, 살아보려고 무엇이든지 찾아보고 노력했지만, 기회는 점점 멀어져만 가고, 나이는 들고 애들은 하루가 다르게 크기만 한다. 변화가 필요했다. 이역만리 고국, 한국에서 적응해 보기로 했다. '그래,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여기보다는 났겠지' 망설임 없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공항 도착 후, 한국의 상큼한 공기를 마셔보고 푸근함을 느껴본다. 먼저 정착한 지인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다시 한번 확인한 후, 청주행 버스에 올랐다. 창가로 보이는 한국의 발전상에, 아니 고국의 발전상에 가슴이 뿌듯해졌다 지금까지의 고생은 끝나고, 물기 쏙 뺀 솜이불 위에서 살 것만 같았다. 하지만, 환상은 여기까지였다. 처음 간 증평의 어느 돈사(豚舍) 농장, 비위생적인 환경에, 무식한 주인 영감은, 우리를 노예처럼 대하였다. 게다가 월급도 차일피일 미루기 일쑤다. 첫 직장에서의 가혹한 모멸감에, 한국에 온 걸 후회하며 눈물로 지새운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청주로 나와서 인력사무소로 방향을 정했다. 당일 일당을 준다니, 돈 받을 걱정 안 해서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여기서도 만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북적거리는 건설현장에 와서야 비로소 고려인 문화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아무리 같은 피가 흘러도, 말이 통하지 않으면서 역시 외국인임을 실감했다. 피부색과 얼굴형은 같아도, 외국인이라고 함부로 한다. 가슴을 후벼 파고, 속이 뒤집히고 다리에 힘이 쭉 빠지는 소리들은, 사전 예고도 없이 눈물샘을 작동하게 만들었다. 또한 노동 강도가 심한 축에 들어가는 일은 나에게 배당된다. 낯선 땅에 삶의 뿌리를 내리는 데는, 고통과 슬픔이 따르기 마련인가 보다. 꾹 참았다. 이른 새벽에 노가다 차량에 몸을 싣고 하루하루 버티길 근 4년이 지났다. 이런 한국 노가다 생활에 적응되었고, 약간의 목돈도 쥘 수 있었다. 세상에 견뎌내지 못할 고통도 이유없는 삶도 없다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조금 여유가 있다 생각되니, 우즈베크에 있는 식구들이 그리워졌다. 전전반측하며 뜬눈으로 밤을 새운 날들, 전전긍긍하며 속을 태우는 날이 계속됐다. 한국으로 불러들이기로 했다.
4년 만에 온 식구가 만났지만, 혼자 가정을 꾸려왔던 화장기 없는 파리한 얼굴의 처와, 두 애들은 초췌해 보였다. 가난과 싸우며 힘들게 지내온, 초라하고 궁핍한 냄새가 풀풀 났다. 애들은 아직도 아버지의 온기(溫氣)가 필요할 때인데, 가난이 죄였다. 하기야 세상의 삶이 의지대로 되는 게 얼마나 있던가?
이른 새벽 잠자고 있는 식구들을 가만히 바라본다. 나의 피붙이들, 뭔가 주체할 수 없는 울컥함이 치밀어 오른다. 식구들에 대한 책임감, 그래 잘 살아보자. 이빨을 지그시 문다. 동시에 가장(家長)인 나의 주먹에 힘이 들어가고, 안전화 끈을 질끈 졸라매본다.
아버지라는 가장의 무게는 그 어떤 질량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누구보다 많이 울었고, 누구보다도 눈물을 삼켰지만, 보이지 않는 눈물의 결정체는 땀이었다. 피부를 타고 흐르는 땀은 무엇보다 정직하다. 비록 삶의 무게가 짓누르지만, 이것도 내 삶이라 안고 가야 하는 게 인생이지 싶다. 온몸이 부서질듯한 노동, 암울한 가난 속에서 희망을 꽃피워 보려 한다. 희망의 꽃은 꼭 필 것이라는 믿음으로, 오늘도 별을 보고 출근하고, 달을 보며 퇴근한다. 그래도 내일의 태양은 떠 오른다 2023, 02, 초순
첫댓글 아버지라는 가장의 무게는 그 어떤 질량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누구보다 많이 울었고, 누구보다도 눈물을 삼켰지만, 보이지 않는 눈물의 결정체는 땀이었다. 피부를 타고 흐르는 땀은 무엇보다 정직하다. 비록 삶의 무게가 짓누르지만, 이것도 내 삶이라 안고 가야 하는 게 인생이지 싶다. 온몸이 부서질듯한 노동, 암울한 가난 속에서 희망을 꽃피워 보려 한다. 희망의 꽃은 꼭 필 것이라는 믿음으로, 오늘도 별을 보고 출근하고, 달을 보며 퇴근한다. 그래도 내일의 태양은 떠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