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영아살해(2)
가장 명료하게 영아살해 지지 견해를 밝힌 사람들은 예일대학교 의과대학의 레이몬드 더프(Raymond S. Duff)와 에이 캠프벨(A.G.M. Campell) 일 것이다. 이 두 사람은 "끝이 없이 무겁게 짓누르는 것처럼 보이는 집"으로부터 신생아의 부모들과 형제자매들을 구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신생아를 죽게 내버려 두어도 무방하다고 말한다. 이들에게 있어서 신생아란 "몸에 붙어 있는 쓸모없는 물건(built-in obsolescence)"과도 같아서 생존경쟁의 현실에서 유용하면 달고 다니다가 거추장스러우면 떼어내 버려도 상관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쉐퍼는 영아살해 행위를 사회에 짐이 된다고 간주한 사람들을 제거했던 나치 정권의 만행과 노예시장에서 흑인 노예들, 여자들, 어린아이들을 가축처럼 거래했던 초창기 미국의 인간 생명경시 행동에 비유하면서, 심지어는 종교인들도 이 행동을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웨슬리 신학교의 필립 위거만(Philip Wogaman)은 하나님은 현존하는 사람을 더 사랑하신다는 논리를 내세우면서 자라나고 있으나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권리를 무시함으로써 "낙태의 권리를 지지하는 종교인들의 연합"이 추구하는 대의를 지지했다. 1977년 캐나다 성공회의 전략팀은 최소한의 인간적인 행동과 지능의 자취도 발견되지 않고 다만 외형상 인간처럼 보이는 것들을 인간처럼 다루는 것은 심각한 오류이며, 이와 같은 결함이 있는 영아들을 인간답게 다루는 유일한 방법은 이들을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는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영아살해 관행이 아무런 비판 없이 진행되었던 것은 아니다. 영아살해는 약하고 힘이 없는 사람들로부터 시작하여 반체제 지식인들까지 잔인하게 살해한 독재정권의 만행에 비견할 만한 형태이며(J. Elgelburt Dumphy), 인종, 신앙, 피부색, 가난 등의 이유로 인간을 차별하는 것과 같은 인종차별행위이며(Robert D. Zachary), 장애를 지니고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의미를 느끼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 장애인들의 삶의 현실을 무시한 행동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장애인들이 원하는 것은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이라는 주장도 등장했다. 처음에는 선천성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예외적인 때에만 영아살해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 주장은 원하지 않는 아이에 대해서, 그리고 나아가서는 장애나 중증질환을 앓는 성인에 대해서까지 확대 적용되는 것은 시간문제에 지나지 않는다는 우려도 제기되었다. 예컨대 만성 심폐증이나 단장증후군 또는 다양한 형태의 뇌손상을 가진 영아를 죽도록 버려둬도 좋다면, 같은 질병을 앓는 성인을 살해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여기서 문제가 되는 영아살해는 "생존할 가능성이 없는 영아들의 죽음이 아니라 정상적인 삶은 아니지만, 치료만 하면 살 수 있는 영아들을 죽이는 행위"라는 점이 지적되기도 했다.
~ 이상원, 《프란시스 쉐퍼의 기독교 변증》, p.157~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