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品 조연들의 1인극]
술꾼 - 1인 19역 실감나게 소화
술 한 잔… - 라이브 연주·노래
"아이고, 화장실이 그냥 시베리아 벌판이야." 머리가 살짝 벗어진 중년 남자가 툴툴거리며 무대로 나온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여성팬이 이 술집에서 만나자고 했다며 은근한 기대를 드러내더니,
그곳에 있는 기타, 드럼, 피아노를 하나씩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며 자기 인생 이야기를 담담히 털어놓는다.
그가 계속 친근하게 말을 거는 객석의 관객 중 상당수가 아웃도어 재킷을 입은 40~60대 남녀다.
등산 모임을 끝낸 뒤 단체로 모노드라마 '술 한 잔 따라주세요'(이하 '술 한 잔')가 공연되는 극장을 찾은 것이다.
대학로에서 펼쳐지는 중견 배우의 1인극에 중장년 관객이 몰리고 있다.
최성웅의 '술꾼'과 이달형의 '술 한 잔'이다. 둘 다 '술'을 주제로 인생의 신산한 곡절과 애환을 그렸으며,
젊은 배우들에게선 보기 어려운 관록과 진솔함이 담겼다.
TV에서 만년 조연을 맡던 '을(乙)'이 무대에서만큼은 한 시간 반 동안 온전히 자기만의 연기를 펼치는 '갑(甲)'이 되는 것이다.
- ‘술꾼’의 최성웅. /극단 단홍 제공
한국연극배우협회장을 맡고 있으며 숱한 TV 드라마에 단역으로 출연한 최성웅(김재훈과 더블캐스트)은 '술꾼'이 시작되면
웨이터 복장으로 등장해 1인 19역의 다채로운 연기를 펼친다.
취객으로 나와선 술 취한 연기를 실감 나게 보여주더니 춤과 노래, 액션, 젓가락 장단까지 소화했다.
웃음을 터뜨리던 관객은 "어렸을 때 배가 고파 양조장 술지게미를 먹다가 '술꾼'이란 별명을 얻었다"는 대사에선 숙연해졌다.
수십 년 동안 술장사를 한 끝에 룸살롱을 개업한 주인공은 미성년자를 잘못 고용해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되고,
포장마차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는다.
배우는 수시로 관객과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기도 하고, 노래나 춤을 시키기도 한다.
지난해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드링커(Drinker)'란 제목으로 참가해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 모노드라마 ‘술 한 잔 따라주세요’의 이달형. /후플러스 제공
최근 드라마 '미생'에서 오 과장의 얄미운 친구로 나왔던 이달형은 연극 '술 한 잔'에서 자신이 실제로 살아온 이야기를 펼친다.
홀아버지 밑에서 자라다 가출하고, 대학로 연극판에 뛰어들어서 고생하다 연애를 했다는 이유로 극단에서 혼쭐이 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신에게도 도시락을 싸 주던 새엄마가 잠시 있었다는 회상도 이어진다.
마지막 장면 반전(反轉) 뒤의 노래에선 세상에 내던져져 거칠게 살아온 남자가 인생의 무게를 담아 부르는 열정이 느껴진다.
▷'술꾼' 6월 28일까지 대학로 모노드라마 전용극장, (02)309-2731
▷'술 한 잔 따라주세요' 22일까지 대학로 해오름예술극장, 0505-894-0202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