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칼럼
공명지조와 스윙보터
서울대총동창신문 제502호(2020. 1.15)
김광덕 (정치82-86, 56세)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 / 본지 논설위원
좌우 진영은 ‘양쪽 날개’_
동문들 총선 균형 추
돼야~
2020년 새해를 맞아 ‘공명지조(共命之鳥)’를 떠올리게 된다. 공명지조는 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이다. 어느 한 쪽이 없어지면 자기만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공멸하게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매년 한국 사회를 풍자하는 말을 선정하는 교수신문이 지난달 뽑은 ‘2019년 사자성어’다. 공명조는 ‘아미타경’ 등 여러 불교 경전에 등장하는 상상 속의 새이다. 한 머리가 몸을 위해 항상 좋은 열매를 챙겨먹는 다른 한 머리를 질투한 나머지 독이 든 열매를 몰래 먹게 되었고, 결국 두 머리가 모두 죽게 되었다.
양극단 진영으로 갈라져 으르렁대는 한국 사회는 공명조와 닮은꼴이다. 이념·세대·계층·지역 등으로 협곡처럼 갈라진 다층적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조 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를 둘러싸고 국론 분열이 증폭됐다. 광화문 집회 참가자들은 ‘조국 구속’, ‘문재인 퇴진’을 외쳤다. 반면 서초동 집회에선 ‘조국 수호’, ‘검찰 개혁’ 등의 구호가 쏟아졌다. 지난해 한국 사회는 좌우파가 맞대결하는 거대한 전쟁터 같았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위협과 2%가량의 경제성장률로 상징되는 안보·경제의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 몰려오고 있다. 이런 위기에서 공명조처럼 싸우면 우리의 생존도 장담할 수 없다.
4·15 총선이 석 달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국민들은 또 여당과 야당 편으로 나뉘어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할 것 같다. 진영 대결이 마주 달리는 자동차와 같은 치킨게임처럼 전개되지 않게 하려면 갈등을 조정해주는 균형 추 역할이 필요하다. 칡과 등나무처럼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를 풀어줄 수 있어야 하나의 나라를 만들어갈 수 있다.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모여 사는 미국이 하나의 국가로 우뚝 설 수 있게 된 것은 이런 칸막이를 녹여주는 ‘멜팅팟(melting pot)’ 즉 용광로 기능이 가동됐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갈등의 소용돌이를 진정시키려면 좌우파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건전한 중도 층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선거에서 특정 정당에 쏠리지 않는 유권자를 ‘스윙보터(swing voter)’라고 한다. 누구에게 투표할지 결정하지 못한 이들이어서 ‘부동층 유권자’라고 할 수 있다. 확고하게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이 없기 때문에 정치 상황과 이슈 등에 따라 표심이 달라진다. 여야 접전이 진행되는 선거에선 스윙보터의 선택이 승부를 결정한다. 스윙보터의 합리적 선택은 첨예한 진영 대결에서 어느 쪽이 옳은지를 판가름하는 잣대 역할도 한다.
여론조사에서 스윙보터는 ‘무당층’이나 ‘중도층’으로 나타난다. 리얼미터가 1월 첫째 주 전국 유권자 1,5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자신을 중도층으로 규정한 응답자는 37%였다. 진보층과 보수층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각 각 27.8%와 21%였다. 한국갤럽이 지난해 12월 셋째 주 전국 유권자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이 24%로 집계됐다. 여론조사에 나타난 24%의 무당층
과 37%의 중도층이 진영 대결 증폭을 막는 브레이크 기능을 할 수 있다. 스윙보터 중 절반쯤은 투표장으로 가고, 나머지 절반쯤은 투표하지 않는다고 한다. 좌우 두 날개로 날아야 균형을 잡을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중심을 잡으려면 이념에 휘둘리지 않고 합리적 선택을 하는 유권자들이 적극 투표해야 한다. 우리 동문들이 균형 추 역할을 하는 스윙보터가 돼야 대한민국이 공명지조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