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몸과 그림자
김시습(金時習 : 1435~1493)
너와 오래도록 괴롭게 얽혀서
서로 따른 지 얼마이더냐
달과 등불 아래선 네가 나를 따르지만
그늘 속에선 너는 어디로 가느냐
한곳에서 기쁨돠 슬픔 함께하지만
항상 내 곁에 있음을 알지 못하네
내가 고요할 때는 너 또한 고요하고
내가 움직이면 너 역시 약속한 듯하구나
때맞추어 어디서 오는 건지
눈 감고 깊이 생각해 보내
말하고 춤출 때는 만나도 좋지만
눈물 흘릴 때는 내 곁에 있지 말거라
새벽에 거울 닦고 들여다보면
나와 똑같아 의심할 게 없구나
바라건대 세상을 사는 동안
우리 함께 기쁨 누리며 살아가자
和靖節形影神(화정절형영신)
與汝苦相累(여여고상누) 相從能幾時(상종능기시)
月燈汝隨我(월등여수아) 處陰汝何之(처음여하지)
同處悲歡中(동처비환중) 不知相在玆(부지상재자)
我靜汝亦靜(아정여역정) 動則如有期(동즉여유기)
適從何處來(적종하처래) 暝目時紬思(명목시주사)
相期辭舞中(상기사무중) 莫伴涕交洏(막반체교이)
向曉拭鏡看(향효식경강) 似我無復疑(사아무부의)
願言百歲內(원언백세내) 爲歡君勿辭(위환군물사)
[어휘풀이]
-和靖節形影神(화정절형영신) :: 도연명의 시 「形影神(형영신)」 삼수에 차운하여 지음.
-適從(적종) : 때맞추어 따르다.
-紬思(주사) : 생각하다. 紬(주): 명주, 실을 잣다. 뽑아내다.
-涕交洏(체교이) : 눈물이 섞여 흐르다.
[참조]
이 시는 중국 도연명 시인의 시 「形影神(형영신)」 삼수에 차운(次韻)하여 지은 시라 한다. 형체가 그림자에 말하는 형식의 이시 “和靖節形影神(화정절형영신)”의 화(和)는 다른 사람의 시에 화답한다는 뜻으로 차운과 같은 뜻이며, 정절(靖節)은 도연명의 시호이다.
[역사 이야기]
김시습(金時習 : 1435~1493)은 조선 세조 때의 문신이며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호는 매월당(梅月堂)이다. 이름 시습(時習)은 논어의 첫 구 ‘學而時習之不亦說乎’에서 따온 듯하다. 저서로 『매월당집(梅月堂集)』과 우리나라 초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가 있으며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등이 있다. 1782년(정조 6년)에 이조판서로 추증되었으며 영월의 육신사에 배향(配享)되었다.
그는 3세에 외조부에게 글자를 배우기 시작하여 다섯 살 때 이미 시를 지을 줄 알아 오세동자로 불릴 만큼 천재성을 지녔다. 그러나 세조의 왕위찬탈(계유정란) 소식을 들은 후, 자신이 가진 모든 책을 불사른 후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평생 전국을 방랑하면서 마음의 시름을 문학을 통해 극복하려 했다. 사육신이 처형되던 날 밤, 온 장안이 세조의 포악성에 떨고 있을 때 그는 거열형(車裂刑)에 처해진 사육신의 시신을 바랑에 담아다가 노량진 가에 임시 매장했다고 한다.
그의 나이 31세, 1465년(세조 11년) 봄 경주에 내려가 금오산에 금오산실을 짓고 칩거하였다. 그곳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쓰고 그 후 많은 한시를 남겼다. 그는 50대에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다 충청도 홍산 무량사(無量寺)에 들어가 1493년 59세의 나이로 병사했다. 그는 심유천불(心儒踐佛)이니 불적이유행(佛跡而儒行)이라고 인식되었듯이 그의 사상은 유불적인 근본 요소를 다 포용하였다. 그는 근본 사상을 유교에 두고 불교적 사색을 병행하였다고 한다. 현재 전하는 시편만 2,200여 수가 된다. 역대시인 가운데 자신의 모든 것을 시로 말한 시인은 김시습밖에 없었다고 한다.
출처 : 한기와 함께하는 우리나라 역사 『노을빛 치마에 쓴 시』
지은이 : 고승주. 펴낸 곳 : 도서출판 책과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