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사의 독으로 수많은 중환자를 살린다?
선지식이란 놓을 때는 다 놓아버리고
거둘 때는 흔적 없이 완전히 거둔다.
道는 독사와도 같다.
섣불리 건드리면 제가 목숨을 잃고
완전히 가지고 놀 정도가 되면
독사의 독으로 수많은 중환자를 살린다.
그 정도는 되어야 선지식이라 할만하다.
키질 제80굴의 벽화. 수행자가 뱀을 좋아하여 스승의 충고도 무시하고 키우다가 물려 죽었다. 도(道)를 잘못 다루면 이 독사보다 훨씬 위험하다.
강설
선지식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담담하고 당당하다. 드세게 밀고 들어오면 슬쩍 함정으로 몰아넣어 버리고, 노골적으로 치고 들어오면 단숨에 제압해 버리며, 슬그머니 비틀고 들어오면 그냥 던져 버린다.
밝고 긍정적이어야 할 때는 밝고 긍정적으로 대하고, 엄하고 차갑게 대할 때는 엄하고 차갑게 대한다. 놓을 때는 다 놓아버리기도 하고, 거둘 때는 흔적도 없이 완전히 거두기도 한다.
도(道)는 독사와도 같다. 섣불리 건드리면 제가 목숨을 잃고, 완전히 가지고 놀 정도가 되면 독사의 독으로 수많은 중환자를 살린다. 그 정도 되어야 선지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암두 전활(巖頭 全豁, 828~887)선사는 당대(唐代)의 선승이다. 천주(泉州) 출신으로 청원 의공(淸原 誼公)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고, 앙산 혜적(仰山 慧寂)선사에게 참학하였다. 이후 덕산 선감(德山 宣鑑)선사의 법제자가 되었다. 동정호반(洞庭湖畔)의 와룡산(臥龍山)에 은거했지만 후학들이 찾아오자 가르침을 폈다. 암두(巖頭)는 주석한 사찰 이름이다. 시호(諡號)는 청엄대사(淸儼大師).
본칙 원문
擧 巖頭問僧 什處來 僧云西京來 頭云黃巢過後還收得劍 僧云收得 巖頭引頸近前云 과(口+力) 僧云師頭落也 巖頭呵呵大笑 僧後到雪峰 峰問什處來 僧云巖頭來 峰云有何言句 僧擧前話 雪峰打三十棒出
서경(西京) 지금의 서안(西安, 시안) 산시성(陝西省, 섬서성)의 성도, 옛날에는 서경 또는 장안(長安)으로 불렸음.
황소(黃巢) 당말 조주(曹州) 원구(寃句) 사람. 당(唐) 희종(僖宗) 건부(乾符) 2년(875) 왕선지(王仙芝)가 반란을 일으키자 그도 무리를 모아 호응했다. 5년(878) 왕선지가 전사하자 전군을 통솔하였다. 어느 날 길에서 칼 한 자루를 주웠는데, ‘천사황소(天賜黃巢)’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에 스스로 충천대장군(衝天大將軍)이라 칭하면서 왕패(王覇)로 건원했다. 여러 전투에서 대승하였고, 낙양과 동관(潼關)을 함락하고 장안(長安)에 입성하여 스스로 황제에 올라 국호를 대제(大齊), 연호를 금통(金統)이라 했다. 884년 장안에서 철수하여 채주(蔡州)를 함락하고 진주(陳州)를 포위했지만 300일 동안 함락시키지 못했다. 이후 여러 차례 전투에서 패하고 다음 해 태산(泰山) 낭호곡(狼虎谷)까지 쫓기자 결국 자결했다
본칙 번역
이런 얘기가 있다.
암두선사께서 찾아온 스님에게 물었다. “어느 곳에서 왔는가?”
그 스님이 답하였다. “서경에서 왔습니다.”
암두선사께서 말씀하셨다. “황소의 난이 끝났으니 검을 얻어 왔는가.”
그 스님이 답하였다. “얻었습니다.”
암두선사께서 목을 쑥 내밀며 “자!”하고 외치니, 그 스님이 “선사님의 머리가 떨어졌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암두선사께서 껄껄대며 크게 웃으셨다.
그 스님이 뒷날 설봉선사께 갔다.
설봉선사께서 물었다. “어디에서 왔는가?”
그 스님이 답하였다. “암두선사님 계신 곳에서 왔습니다.”
설봉선사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말씀을 하시던가?”
그 스님이 암두선사와의 대화를 말씀드렸더니, 설봉선사께서 삼십 방망이를 쳐서 내쫓아 버렸다.
강설
한 스님이 찾아오자 암두스님께서 시험의 말씀을 던지셨다. “어디에서 왔는가?” 눈 밝은 이는 대개 여기서부터 달라지지만, 이 스님은 그저 단순하게 ‘서경에서 왔습니다’하고 답하였다.
암두스님께서 두 번째 시험의 질문을 하셨다. 내용은 얼마 전에 끝난 ‘황소의 난’ 얘기였다. 이것은 당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던 관심사였다. 암두스님은 그 가운데서도 황소가 길에서 주웠다던 보검 얘기를 꺼내셨다. “모두들 황소가 하늘에서 내린 보검을 주웠다고들 하더니만, 그래 황소가 죽고 난 지금 자네는 그 보검을 주워왔는가?” 이 질문에는 깊은 함정이 있다. 과연 피할 수 있을까?
역시 바로 함정에 빠졌다. “주워 왔습니다.” 이제 함정에서 꺼내 주려는 암두스님의 시도이다. 그 보검을 시용해 보라는 듯 목을 쑥 뽑아 내밀고는 고함을 꽥 질렀다. 하지만 이 스님 깊은 꿈속이다. “스님의 머리가 떨어졌습니다”하고 호기를 부렸다. 아니, 제 머리는 어쩌고? 암두스님께서 다시 한 번 자비를 베푸셨다. 껄껄 웃는 그 웃음소리에 깨어났어야 했는데….
이 스님이 훗날 암두스님의 사제인 설봉스님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암두스님과의 대화를 그대로 녹음기처럼 되풀이해서 말하였다. 설봉스님은 더 자비로운 방법을 사용하였다. 사정없이 두들겨 패서 내쫓아 버렸다. 아직도 자신이 왜 맞았는지를 모르고 있으려나?
송 원문
黃巢過後曾收劍 大笑還應作者知
三十山藤且輕恕 得便宜是落便宜
산등(山藤) 산등나무. 산등나무 몽둥이.
편의(便宜) 상거래상의 이익.
송 번역
황소의 난 지난 뒤 거듭 검을 주웠다니,
껄껄댄 웃음 응당 선지식이라야 알리라.
서른 번 몽둥이질 또한 가벼운 용서니,
이익을 본 것이 곧 손해를 본 것이라네.
강설
설두선사는 제1구에서 “황소의 난 지난 뒤 거듭 검을 주웠다니”라고 잘못을 짐짓 나무랐다.
영리한 놈은 꼭 영리함 때문에 함정에 빠진다. 황소의 검을 언급한 자체가 함정인줄도 모르고 곧바로 주웠노라고 답을 하고 말았다. 자신의 검을 써도 부족할 터인데, 하물며 이미 소용이 없어진 남의 검이야 더 말해서 무얼 하겠는가.
설두노인네는 제2구에서 “껄껄댄 웃음 응당 선지식이라야 알리라”라고 하여 암두스님의 웃음이 평범한 것이 아님을 알렸다.
암두선사가 껄껄대고 웃은 까닭이 무엇일까? 두 번째의 자비였다. “검을 주워 왔느냐?”하는 함정에 상대가 떨어져버리자 첫 번째 자비를 베풀었다. ‘그럼 내 목을 한번 쳐 봐라’하고 목을 빼고 꽥 고함을 질렀더니, 이 멍청한 친구 제 목 달아난 줄도 모르고 “스님의 머리가 떨어졌습니다”하고 잠꼬대를 늘어놓았다. 그래서 껄껄 웃어서 자비를 베풀었는데, 안타깝게도 잠을 깨지 못하고 말았다.
설두스님은 제3구와 제4구에서 “서른 번 몽둥이질 또한 가벼운 용서니, 이익을 본 것이 곧 손해를 본 것이라네”라고 하여 안타까워했다.
설봉스님이 몽둥이질을 하고는 쫓아내 버렸는데, 그렇게 용서를 하면 어떻게 하는가. 아예 죽였어야 다시 태어나던가 하지.
아, 이것을 어찌할까나. 암두스님과 설봉스님이 자신들의 솜씨를 뽐내기는 하였지만, 결국 그 선객을 꿈에서 깨게 하지 못했으니 헛수고만 하고 말았다. 얻은 것 없이 애만 쓰고 말았네. 쯧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