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liest of Trees, the Cherry Now
Loveliest of trees, the cherry now
Is hung with bloom along the bough,
And stands about the woodland ride
Wearing white for Eastertide.
Now, of my threescore years and ten,
Twenty will not come again,
And take from seventy springs a score,
It only leaves me fifty more.
And since to look at things in bloom
Fifty springs are little room,
About the woodlands I will go
To see the cherry hung with snow.
(A. E. Housman)
가장 어여쁜 나무
가장 어여쁜 나무, 벚나무가
지금 가지에 꽃을 매달고
부활절 맞아 하얀옷 차림으로
숲 속 승마 길 가에 서 있네.
헌데 내 일흔 인생에서
스무 해는 다시 오지 않아
일흔 봄에서 스물을 빼면
고작 쉰 번이 남는구나.
꽃핀 것들 바라보기에
쉰 번의 봄 많지가 않아
나는 숲 속으로 가리라
흰눈 드리운 벚나무 보러.
(손현숙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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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Carpe Diem류의 시라고 합니다.
삶을 즐기기에는 시간이 넉넉치 않으니, 충분히 향유하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군요.
동서양 공히 인생을 70세 정도로 보았던가 봅니다.
그런데 어떤 스물의 젊은이는 남은 50년을 지겹게 긴 시간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길지 않은 눈 깜짝할 시간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50번이라 해도 벚꽃을 볼 수 있는 시간은 봄 중에서도 아주 잠깐 동안이니까요.
마지막 행의 snow는 눈같이 흰 벚꽃일수도 있지만, 진짜 눈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네요. 눈으로 덮힌 숲속 벚나무를 생각하며, 봄뿐 아니라 겨울이라 해도(계절에 상관 없이) 인생을 충분히 누리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연의 첫 행 'look at things to bloom'(꽃핀 것들 바라보는 것)은 반드시 벚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또 다른 꽃들이나, 행복한 것, 아름다운 것 등 모든 좋은 경험들을 의미할 수도 있답니다.
즉, 벚꽃의 아름다움을 향유해야겠다는 화자의 의지는 길지 않은 인생을 즐기자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