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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군 여행] 보련산 보탑사의 화려한 3층 목탑........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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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군 여행] 보련산 보탑사의 화려한 3층 목탑........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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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유랑자가 찾아 간곳은 진천에서 가장 높은 만뢰산(611m) 자락에 자리 잡은 ‘寶塔寺(보탑사)’라는 비교적 근
래에 지은 비구니들만의 절집이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내리자 먼저 수백 년은 묵었을 것 같은 정자나무(느티
나무)가 유랑자를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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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유랑자는 자세와 옷매무새를 다듬어 본다. 왜일까? 스님들의 조용한 분위기와 言行(언행) 때문일까. 이상할
만큼 절집을 방문 할 때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고즈넉함과 왼지 모를 경건한 분위기 때문일까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은 비록 유랑만의 心情(심정)일까? 아님 어디선가 들려오는 孤寂(고적)한 목탁소리 때문일까 오늘도 역시 마음
이 차분해 지면서 편안함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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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보탑사 느티나무’는 2003년에 불사를 마친 새 절집 ‘보탑사’의 풍광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대략 400년
세월을 살아온 것으로 짐작되는 이 나무는 절집의 사천왕문을 마주하고 섰는데, 이 나무를 마을 사람들은 옛 스
님이 심어 키운 나무라고 이야기한다. 수고는 18m 중심 줄기의 둘레는 3.5m쯤 되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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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열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을 열면 행복이 들어온다는 진리 때문일까, 사실 유랑자는 불교 신자는 아니지
만 절집에 오면 마음이 안정되는 분위기가 좋아 종종 찾는 편이다. 아무래도 산사는 고즈넉함과 그리고 순수함이
가득한 부처님의 慈悲(자비)와 대 자연을 벗 삼을 수 있는 마음의 풍요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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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寺(사.(절)는 불교 의 믿음으로, 修養(수양)과 度(도)를 위해 승려 가 상주하며 불상 을 모시고 불자 가 함께하
는 의식에 참여하기 위해 모이는 집이나 장소를 말한다. 그래서 유랑자는 그냥 절집이라고 부른다.
절집을 사원, 사찰, 伽藍(가람) 이라고도 부르며 순 우리말로는 ‘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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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의 어원은 상가람마(Sa○-ghā-rā-ma)로서, 교단을 구성하는 출가한 남자(比丘)와 출가한 여자(比丘尼)가 모여
사는 곳이다. 이것을 한문으로 번역하여 僧伽藍摩(승가람마)라 하였다, 다시 말하면 승려가 살면서 불도를 닦는
곳이라는 뜻으로 줄여서 ‘가람’이라 표기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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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돌계단을 따라 오른다. 싱그러운 날씨, 초록 녹음 사이로 울긋불긋 연등이 질서 정연하게 늘어서 있는
풍경이 조화롭다. 그 샛길을 걷는 중생은 몸과 마음이 자연과 깊은 인연으로 이어져 있음을 느끼게 된다. 가람은
지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입구에 큰 느티나무가 너무나도 당당하게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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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연곡리 절터는 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에 이르는 큰 절터로만 전해 왔는데, 그 중심에 삼국 시대 목탑 건
축의 전통을 잇는 3층 목탑을 세움으로써 새롭게 되살아났다. 신라시대 이후 사라진 목탑을 재현했다는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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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문을 지나자 저 윗쪽으로 한 쌍의 종각이 보인다. 7각의 범종각과 9각의 법고각이다. 육각정, 팔각정은 흔
히 들어봤어도 7각, 9각은 좀 생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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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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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떠나도 나무는 남는다는 진리인가. 세월이 흐르면 한때 번성했던 절집이라 해도 터만 남기고 가뭇없이 사
라진다. 홀로 사람살이의 무늬를 지키는 건 오직 늙은 큰 나무뿐인가? 아무래도 이 고목은 과거의 영광을 알고 있
으리라…….,유랑자는 등을 돌려 절집을 향해 오르자 의당 절집이면 있어야할 一柱門(일주문)이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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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일주문은 사찰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으로, 한 줄로 세운 기둥 위에 맞배지붕 양식으로 되어 있다. 이 기둥
양식은 一心(일심)을 상징한다. 청정한 도량에 들어가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말끔히 씻고 불교와 일심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문을 통과함으로서 몸과 마음의 정화를 하고 불가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의미이다. 즉 절집에
서 중생의 생각이 많아지면 윤회,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해탈의 의미가 없다. 그런데 일주문이 없다! 조금은
의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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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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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등은 소나무와 단풍나무, 이팝나무 등 나뭇가지에 매달려 방문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연등에는 저마다 소
망하는 글들이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쓰여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소원지에는 건강과 무탈, 만사대길,
취업 성취, 대입 합격 등 소망을 담은 글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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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가 계단을 다시 오르자 바로 맞이하는 寶蓮山寶塔寺(보련산보탑사)란 현판이 걸려있는 ‘사천왕’문이다. 사
천왕 을 모신 문이라는 뜻이다. 보통 절집에서 일주문에 이은 2번째 문이다. 이 때문에 중문이라고 불리는 곳도
있다. 문에 부품 사천왕 조각상이 왼쪽에 2좌( 서방광목천왕, 북방다문천왕), 오른쪽에 2좌( 동방지국천왕, 남방
증장천왕)가 구성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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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은 동서남북 네 하늘을 협의하며 수호하는 역할을 하는 보통 우락부락하고 강인한 근육질로 묘사하며 아
주 위압적이다. 원래 사천왕은 고대인도 종교에서 숭상했던 귀신들의 왕이었으나 불교에 귀의하여 부처님과 불
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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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신록과 청정한 도량에 다양한 야생화와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 땅에는 울
긋불긋한 야생화가, 그 위에는 오색 연등이 매달려 형형색색의 꽃과 연등이 조화를 이뤄 보탑사는 그야말로 색의
향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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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須彌山(수미산) 중턱에서 각각 그들의 권속들과 살면서 동서남북의 네 방위를 지키며 불법 수호와 사부대
중의 보호를 맡게 되었다. 또한 이들은 중생을 보살피고, 불법과 그에 귀의하는 자들을 보호하고, 항상 도량을 지
킨다고 하기 때문에 첫 번째인 일주문에 이어 사찰의 중간 문에 모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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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문을 지나자 이번엔 우측으로 법고각, 좌측으로는 범종각이 사이좋게도 나란히 서있다. 이들은 소리로써
佛音(불음)을 전파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범종은 청정한 절집에서 쓰이는 맑은 소리의 종이라는 뜻이
지만 지옥의 중생을 향하여 불음을 전파하고, 법고는 북으로 축생의 무리를 향하여, 구름 모양의 운판은 허공을
나는 생명을 향하여, 나무로 만든 물고기 형상의 목어는 수중의 어류를 향하여 소리를 내보낸다는 상징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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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계단을 완전히 올라서자 응당 있어야 할 불이문은 오간데 없고 보탑사의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는 3층의
목탑이 당당하게 서있다, 不二文(불이문)이 어디 갔지? 아무리 둘러보아도 불이문은 보이지 않는다. 이 또한 일반
적인 절집과는 다른 가람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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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不二文(불이문)이란 무의 3문 구조 중 마지막 문이다. ‘불이’는 진리 그 자체를 달리 표현한 말로, 본래 진리
는 둘이 아님을 뜻한다. 유마거사의 不二法門(불이법문)이 유명하다. 일체에 두루 평등한 불교의 진리가 이 불이
문을 통하여 재조명되며, 이 문을 통해야만 진리의 세계인 佛國土(불국토)가 전개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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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목탑: 안내문에 따르면 보탑사는 고려시대 옛 절터에 각원사가 1975년 창건, 지광 스님과 묘순 스님, 능현
스님의 발원으로 1988년 절터를 마련하고 1992년 대목수 신영훈을 비롯한 여러 장인들이 참여한 불사에 참여하
여 1996년 8월 삼국시대 목탑 건축의 전통을 잇는 3층 목탑을 완공하였다, 이로서 대가람의 면모를 자랑하며
2003년 불사를 마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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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불이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佛(불)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보통 불이문은 주로 法
堂(법당)이 바로 보일 수 있는 자리에 세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문을 번뇌에서 벗어나 열반에 들어가는 마지막
문 해탈문(解脫門)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없다! 이 또한 의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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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바로 마당 건너편에 3층 목탑이다. 우리나라 절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목탑이 아니다. 본시 보련산
자락에 자리한 보탑사는 고려시대 절이 있던 터였다고 전한다. 문헌 기록조차 따로 남지 않아 내력을 알기 어려
운 충북 진천 보련산 자락의 ‘연곡리 절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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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탑 1층 대웅전에는 사방불[동방-약사우리광불, 서방-아미타여래불, 남방-석가모니불, 북방-비로자나불]이
배치되어 있다. 대웅보전 현판이 위치한 방향에는 역시나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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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대로이다. 저 수박은 초파일에 올려둔 것으로 세월이 지나 동짓날 팥죽과 함께 먹는다고 한다. 팥죽도 팥
죽이지만 저 수박 한 조각 먹으려는 사람들로 동짓날 보탑사는 장사진을 이룬다고 한다. 반 년 이상을 저렇게 있
어도 상하지 않는다니, 정말 신통방통하다. 수박은 사방불 중에서도 약사전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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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각은 물론이고, 절집 이름조차 사라진 폐허의 터다. 그나마 10세기에 세워진 ‘진천 연곡리 석비’와 입구 400여
년쯤 되는 느티나무가 남아 있어서 고려 전기에 번창했던 절집으로 짐작할 수는 있지만 그러나 이 석비조차 명문
이 없는 白碑(백비)여서 절집 내력의 실마리는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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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문에 따르면 보탑사는 고려시대 옛 절터에 각원사가 1975년 창건, 지광 스님과 묘순 스님, 능현 스님의 발원
으로 1988년 절터를 마련하고 1992년부터 약 5년여에 걸친 공사 끝에. 1996년 8월에 3층 목탑은 준공되었다. 삼
국시대 목탑 건축의 전통을 잇는 황룡사 9층 목탑을 본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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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층은 법보전으로 '윤장대'를 중심으로 네 귀퉁이에 법화경을 모셨으며, 네 벽에는 세계 각국의 보탑 사진들
이 전시돼 있다. 총 9t의 돌판에 한글법화경을 새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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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장대: 팔각형으로 된 책장에 밑에는 바퀴를 달고 중앙에는 기둥을 세워 궤를 돌리면 찾고 싶은 경전(책)을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만든 책궤다, 문을 열어 경전을 넣고 보관할 수 있다. 극락정토를 기원하는 의례를 치를
때 쓰였으며,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윤장대를 돌리면 경전을 읽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본다고 여겼다.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이 윤장대를 찾아 돌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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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층은 미륵전으로 '미륵삼존불'이 봉안돼 있다. 2층과 3층 외부에는 탑돌이를 할 수 있도록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 3층은 미륵전으로 미륵삼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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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니 사찰인 보탑사에는 남북통일을 기원하여 만들어진, 탑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커다란 3층 통일대탑이다.
높이는 42.71m로, 상륜부까지 더하면 그 높이가 52.7m에 이르며 이는 본채만 14층 아파트와 맞먹을 정도로 3층
목탑은 우뚝하다. 목탑은 풍수지리상 연곡리 보련산 연꽃터전 중에서도 연꽃수술에 해당한다고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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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탑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은 모두 29개이다. 강원도 산 금강소나무를 자재로 단 한 개의 못도 사용하지 않고 전
통방식으로 지었다. 보탑사 목탑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걸어서 1~3층 내부까지 오르내릴 수 있다.
목탑은 한옥문화원장 신영훈 선생의 감수로 당대 최고의 도편수 故 조희환, 단청장 화사 故 한석성 옹 등 여러 장
인들의 혼이 담긴 대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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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탑사 영산전 : 보탑사 영산전은 부처가 500명의 비구니에게 설법하던 모습을 재현해 만들었다.
영상전은 부처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그린 팔상도를 모신 사찰 전각으로 영은 영축산의 준말로 석가모
니가 설법했던 영산 불국을 상징한다. 이 곳 영산전은 참 독특~하다. 일렬로 나한상이 놓여있지 않고, 마치 영산
이며 천태산 바위 여기저기에 좌선하고 계신 듯 더욱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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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층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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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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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그 기술과 정성이 대단하기만 하다. 이 목탑이 향후 수백 년, 천 년을 고스란히 이어나가 후손들에게 물려
줬으면, 그리고 그 행복한 마음까지 함께 남겨지길 바라며 유랑자는 1층 탑 안을 둘러본다.
목탑 내부는 3층 구조로 되어 있는데 1층은 중앙 4면에 불상을 모신 금당이, 2층은 법보전으로 법화경을 모신 윤
장대가, 3층은 미륵불을 모신 미륵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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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금당 동쪽의 약사여래 불단에 신도들이 5월 초파일날 올려놓은 수박은 동짓날 기도가 끝난 신도들이 공양
할 때 까지도 썩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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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대로 그 수박은 동짓날 팥죽과 함께 먹는다고 한다. 아무튼 팥죽도 팥죽이지만 저 수박 한 조각 먹으려는 사
람들로 동짓날 보탑사는 장사진을 이룬다고 하니 신기하죠? 반 년 이상을 저렇게 있어도 상하지 않는다니, 그 또
한 신통방통할 일이다. 수박은 사방불 중에서도 약사전에 놓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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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탑 1층 대웅전으로(61평)이다. 보탑사 대웅전은 동서남북으로 사방불이 배치되어 있는 것이 독특하다. 동방 약
사우리광불, 서방 아미타여래불, 남방 석가모니불, 북방 비로자나불의 얼굴엔 인자한 미소가 옅게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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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탑 2층으로 오르면 법보전(51평)이다. 법보전은 불 법 승 3보 중 석가세존의 가르침이 담긴 경전인 법보를 봉안
한 법당이다. 법보전에는 윤장대(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회전하도록 만든 책장)를 두고 팔만대장경 번역
본을 안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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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탑 3층 보탑사 미륵전(42평)이다. 미륵전에는 화려한 금동 보개 아래 미륵 삼존불을 모셨다. 석가모니께서 열
반에든 뒤, 한동안 부처가 안 계신 세상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미륵전은 그 후 이 땅에 새로운 정법 시대를 연 미
래불인 미륵불을 모신 법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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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탑사 지장전 : 지장전은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모시는 곳으로 장수왕릉(장수총)을 재현해 만든 전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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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탑사는 3층 목탑을 기준으로 장수왕릉(장수총)을 재현해 만든 지장전, 너와지붕을 얹은 귀틀집 형식의 산신각,
부처가 500명의 비구들에게 설법하던 모습을 재현해 만든 영산전, 와불 열반적정상을 모신 적조전, 법종각·법고
전·불유각·삼소실 등의 건축물이 조성되면서 어느새 대가람의 면모를 자랑하며 2003년 불사를 마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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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에는 보물 제404호로 지정된 고려시대의 석비인‘진천 연곡리 석비’도 있다.
유랑자는 3층 목탑을 나와 화려한 꽃으로 단장된 경내를 둘러본다. 보탑사 경내 곳곳은 요즘 비구니 스님들이 정
진의 손길로 가꾼 야생화와 봄꽃으로 치장하여 불자와 관광객의 눈을 호강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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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탑사 산신각 : 산신각은 산신(남성)을 봉안한 곳으로 산령각, 산왕각이 있고, 산신만 모신 전각이다. 본래 불
교 건축물이 아니었으나 우리나라에서 불교를 정착시키기 위해 당시 강력했던 토착 민간신앙을 수용한 것이다.
보탑사 산신각은 너와 지붕을 얹은 귀틀집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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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상:우리나라 문화재로 지정된 반가사유상은 여러 점이 있지만 이중 가장 유명한 반가사유상은 국보 제78
호, 제83호에 지정된 금동미륵보살반가상(金銅彌勒菩薩半跏像)이다. 이 두 불상 삼국이 전쟁 중이던 시기인 6~7
세기 만들어진 유물로, 세계적으로도 아름다운 고대 불교 문화재 중 하나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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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 과의 여러해살이풀인 금낭화, 미나리아재비 과에 속하는 할미꽃, '나를 잊지 말아줘요'란 꽃말을 가진 물
망초, 하늘나라에서도 피고 마음에서도 핀다는 천상초, 바람꽃의 별명을 가진 아네모네, 이밖에 수레바퀴 채송
화, 하늘매발톱, 한련화, 여우꼬리 양귀비, 노랑 나비팬지, 빨강·노랑 튤립 등 온갖 색깔의 야생화가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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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땅에는 울긋불긋한 야생화가, 그 위에 소나무에는 오색 연등이 주렁주렁 색의 향연을 펼치면서 신록과 청
정한 도량은 야생화와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 산사에는 봄꽃 향연이, 산사 밖
속세에선 고된 삶 속에서 잠시 여유를 찾는 중생들의 이야기꽃이 만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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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탑사 적조전 : 적조전 에서는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기 직전 깨달음을 얻은 와불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얼굴
은 달관에 이른 평화로운 모습이었고, 누워서도 흐트러짐 없는 꼿꼿한 자세는 피안의 세계(해탈 후의 내세)와 이
승을 이어주는 연결고리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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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눈의 호사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궁금한 것은 경내를 돌아보는 내내 유랑자의 머릿속에 신앙이란 무엇일
까 각 종교가 갖는 그들의 믿음이 무엇인지는 또 그 신앙의 힘은 어디까지 인지에 대한 명쾌한 답은 나오지를 않
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자가 된 그들의 일상생활은 어떨까 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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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란 무엇일까? 불가에 출가한 불자는 極樂淨土(극락정토)의 나라에서 度(도)에 정진하고 수행하기 위해 승려
로 입문한 이들이 통과해야 하는 첫 번째 관문은 行者(행자) 교육이다. 1년 동안 불교의 기본교리·의례·기초경전
등을 공부하며, 그 이후 具足戒(구족계)를 받아 정식으로 승려생활에 입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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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의 하루 일과를 보면 새벽 3시30분, 오후 6시 30분의 조석예불, 법당에서의 獻香(헌향), 오전 11시에 행하는
摩旨儀式(마지의식:불전에 밥을 지어 올림)의 獻供(헌공), 그리고 禮懺(예참:참회의식) 등은 공동의 수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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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百丈淸規(백장청규: 중국의 백장이 지은 규칙)로서 이어오는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 一日不
作, 一日不食(일일부작, 일일불식).’이라는 철칙을 잘 준수하고 있다. 그밖에 運力(운력)이라 하여, 절의 큰일이나
산림 가꾸기 등에는 그 절에 거주하는 모든 승려들이 참석하는 것이 상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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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afe.daum.net/b2345/9toB/2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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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천여행은 여기에서(클릭)
■ https://www.jincheon.go.kr/site/tour/mai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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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탑사 찾아가기
*주소:충북 진천군 진천읍 김유신길 641
*구(지번) 주소:진천읍 연곡리 483 (지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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