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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5년 인제 하남초교 제13회 졸업 기념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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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일주 인제 하남초교 교장 | 고향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따뜻해진다. 출세를 해서 고향에 다시 돌아오는 것을 금의환향(錦衣還鄕)이라고 한다. 그만큼 고향은 어머니의 품 속 같이 아늑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곳곳이 모두 아름답지만 나에게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누가 뭐래도 조선시대에 역이 있었다고 역골로 불리고 있는 내 고향 기린이다.
역골은 인제군 기린면 동북쪽 산세가 깊은 점봉산 기슭에 자리 잡은 두메산골인데 부친께서 월남한 후 차씨 집안에 양자로 들어가 생활하시다가 눌러 앉게 되었다고 한다.
공부를 위해 타향에 있을 때도 고향은 늘 내 가슴 속에 살아 있었다. 마음속으로만 그리워하고 있었는데 교장으로 첫 부임지가 고향이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 설레는 마음은 그야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내 고향 기린은 내린천 상류에 자리 잡은 곳으로 진동리에서 내려오는 심산유곡의 물과 미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합수하여 북한강의 최상류 지역의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이다.
기린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아버지가 전근 가시는 바람에 인제읍으로 나갔다가 하남초교에서 졸업하고 다시 기린중학교를 입학 하였으니 학창시절 대부분을 고향에서 보낸 거나 마찬가지다.
부임하던 그날 차창 밖으로 다가오는 풍경들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내린천에서 뛰어놀던 옛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그 시절이 못 견디게 그립기만 했다.
늦가을 산에 올라가 머루, 다래를 따서 입안에 적셔 보았을 때의 달콤한 입맛과 집 뒤에서 여름철에 오디를 한 움큼씩 따서 입 안에 넣고 배고픔을 잊기도 했던 그 시절 그 때가 1960년대였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이 수정 같은 맑은 물이 흐르는 천혜의 하늘이 내린 곳이 내 고향이라는데 뿌듯하고 흐뭇하기만 하다.
쉬리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 나는 잠시 고향을 떠올린 적이 있다. 여름철이면 학교 앞 덕고개를 넘어서 여울물에 보쌈을 놓고 낚시를 하던 생각이 난다. 양재기 그릇에 비닐이나 천으로 씌운 다음 그릇 안에 돌이나 자갈을 넣어 떠내려가지 않게 하여 된장이나 깻묵을 넣고 기다렸다. 기다릴 때도 쉬지 않고 낚시를 하면서 20분정도 지나면 보쌈에는 쉬리가 한가득 들었을 때 그 기쁨은 만선이 되어 돌아오는 어부의 기분 같았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산기슭에 검은 그림자가 생기면 버드나무 가지에 고기를 꿰어서 낚싯대를 메고 집으로 오던 나의 모습을 돌이켜 보면 감개가 무량하기만 하다.
겨울이 되면 학교 앞 화전밭은 눈썰매장이 된다. 쌀 포대나 비닐방석 짚으로 만든 자리를 가지고 점심도 잊은 채 썰매를 타고 배고프면 집에 와서 솥에 있는 삶은 옥수수 간식은 지금의 피자와 비교할 수도 없을 것이다.
아버지께서 만들어주신 썰매를 내린천에서 손을 호호 불며 신나게 타던 생각이 지금도 머릿속에 스치곤 한다. 삼각형 장작개비에다 반듯한 철사를 밑에 대고 휘감은 썰매는 구두스케이트보다 날쌔게 달리곤 했다. 외발구를 만들어 얼음이 꽁꽁 얼 계곡 시냇물 가운데 있는 돌과 돌 사이를 빠르게 다니던 스릴과 고무다리 건너다가 물에 빠져 양말을 적시곤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모교 교장으로 와서 유년시절을 돌이켜 보게 되었으니 세월은 흐르는 물처럼 빠르기만 하다.
아버지가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셨지만 가정은 넉넉지 못하였다. 어머니께서는 나무를 하시고 참나무를 머리에 이고 집으로 들어오시는 모습을 생각하면 허리 때문에 고통을 받고 계신 것이 그때 나무를 많이 이고 다니셔서 뼈가 물러앉은 것이 아닌가 되새겨본다.
아버지나 어머니는 부지런하신 분이셨다. 논농사도 지으시고 돼지도 기르시고 여름철이면 옥수수 밭과 감자밭을 손수 김매시면서 알곡으로 우리를 길러내신 그 은혜 어찌 갚아야 할까?
44명의 초등학교 친구 가운데 지금 고향에 남아서 농사를 지으며 성실히 살아가는 친구가 4명 있다. 이들이 고향의 파수꾼이 아닌가 하면서 지난 날 못 다한 고향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이제부터라도 흠뻑 쏟아 붓고 싶다.
40년 전 뛰놀던 강은 변함없이 흐르고 솔잎 향기를 맡으면서 놀던 숲은 그대로인데 고향에 타인들이 내려와서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사니 나만의 고향이 아니고 만인의 고향인 듯싶다.
이제 내가 다니던 모교의 재학생도 20여명밖에 없으니 언제 통·폐합이 될까하는 두려움과 다시 옛 모습의 고향을 만들 수 있을까하는 조바심에 마음을 졸여보기도 한다.
2009년이 새롭게 밝아 왔는데도 말없이 흐르는 내린천 강물은 오늘도 흘러 흘러가고 방태산 기슭의 그림자가 하남리 다리골을 덮고 고향을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하는 가로등 불빛만 희미하게 켜지고 물소리만 고요속에 외침을 한다.
아, 그리운 내 고향, 오늘도 나는 그 따스한 품속에서 잠든다.
◆ 프로필 - 53년 12월 11일생 - 하남초, 인제중, 춘천고, 춘천교대 졸업 - 횡성 봉덕초교, 춘천 동부초교 교감 - 연극협회 강원도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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