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잠 못 이루는 밤
김시습(金時習 : 1435~1489)
구름보다 흰 종이 장막을 치고
동창에 햇빛 들기까지 밤을 지새우네
꿈에라도 그대 보고픈데 잠은 안 오고
몇 줄기 향 연기만 줄어들었네
나는 백 척 음지 벼랑 밑의 얼음
그대는 높이 솟은 한 줄기 햇살
한 줄기 아침 햇살 빌어다가
벼랑 밑 응달 얼어붙은 나를 녹여 냈으면
밤은 어찌하여 다하지 않고
별은 서편으로 가고 달빛은 침상에 오르네
인간 세상 정 많은 게 가장 괴로워
몸 뒤척이며 잠 못 들어 애간장만 태우네
竹枝詞(죽지사)
一片紙帳白於雲(일편지장백어운) 夜撤東窓直到昕(야철동창직도흔)
擬夢情人眠不得(의몽정인면부득) 數條香線減三分(수조향선감삼분)
儂如百尺陰崖氷(농여백척음애빙) 爾似一竿陽曦騰(이사일간양희등)
願借一竿朝陽暉(원차일간조양휘) 鎖我百尺陰崖凝(쇄아백척음애응)
夜如何其夜未央(야여하기야미앙) 星移西嶺月侵床(성이서령월침상)
人間最是多情苦(인간최시다정고) 輾轉不寐空斷腸(전전불매공단장)
[어휘풀이]
-竹枝詞(죽지사) : 중국의 악부 죽지사가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이를 본떠 향토의 경치와 풍속 등을 노래 하는데 7언 절구의 연작 형태가 보통이다.
-直到昕(직도흔) : 바로 아침이 되다. 昕(흔) : 새벽, 아침, 해 돋을 무렵
-儂(농) : 나, 너, 당신
-陽暉(양휘) : 햇빛, 햇살
-輾轉不寐(전전불매) : 몸을 뒤척이며 잠들지 못함.
[역사 이야기]
김시습(金時習 : 1435~1493)은 조선 세조 때의 문신이며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호는 매월당(梅月堂)이다. 이름 시습(時習)은 논어의 첫 구 ‘學而時習之不亦說乎’에서 따온 듯하다. 저서로 『매월당집(梅月堂集)』과 우리나라 초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가 있으며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등이 있다. 1782년(정조 6년)에 이조판서로 추증되었으며 영월의 육신사에 배향(配享)되었다.
그는 3세에 외조부에게 글자를 배우기 시작하여 다섯 살 때 이미 시를 지을 줄 알아 오세동자로 불릴 만큼 천재성을 지녔다. 그러나 세조의 왕위찬탈(계유정란) 소식을 들은 후, 자신이 가진 모든 책을 불사른 후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평생 전국을 방랑하면서 마음의 시름을 문학을 통해 극복하려 했다. 사육신이 처형되던 날 밤, 온 장안이 세조의 포악성에 떨고 있을 때 그는 거열형(車裂刑)에 처해진 사육신의 시신을 바랑에 담아다가 노량진 가에 임시 매장했다고 한다.
그의 나이 31세, 1465년(세조 11년) 봄 경주에 내려가 금오산에 금오산실을 짓고 칩거하였다. 그곳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쓰고 그 후 많은 한시를 남겼다. 그는 50대에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다 충청도 홍산 무량사(無量寺)에 들어가 1493년 59세의 나이로 병사했다. 그는 심유천불(心儒踐佛)이니 불적이유행(佛跡而儒行)이라고 인식되었듯이 그의 사상은 유불적인 근본 요소를 다 포용하였다. 그는 근본 사상을 유교에 두고 불교적 사색을 병행하였다고 한다. 현재 전하는 시편만 2,200여 수가 된다. 역대시인 가운데 자신의 모든 것을 시로 말한 시인은 김시습밖에 없었다고 한다.
출처 : 한기와 함께하는 우리나라 역사 『노을빛 치마에 쓴 시』
지은이 : 고승주. 펴낸 곳 : 도서출판 책과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