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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선희] 내시의 딸 - 내시의 딸 13
나는 힘없이 앉아 거기 공항에서 그렇게 서로 마주보던 두 사람을 생각하였다.
후줄근한 양복 차림으로, 흰 머리칼을 하고 천연하게 서 있던 이성훈씨.
그가 엄마를 만난 것은 홍안의 소년이었지만 다시 돌아올 때에는 이미 반백의 노인이 되었던 것이다.
이성훈씨는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었지만 참으로 눈빛이 맑은 사람이었다.
자세도 꼿꼿하고 음성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다정하고 겸손하고 그리고 은근한 정이 묻어날 정도로 그는 목소리가 특히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는 정말 인격이 훌륭해 뵈고 자상한 그런 모습이 느껴졌었다.
그런 사람이 어찌하여 자신의 가족을 버리고 이데올로기라는 곳에 갇혀 있어야 하였을까?
자신의 신념이 그 가족과 함께 하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
나를 보고도 나를 딸이라 여기면서도 하나도 흔들림 없이 나를 대하였으며 나에게로 오지 않았다.
거기서 영윤이가 꾸린 초라한 집에서 남들과 똑같은 초라한 식사를 하고 또 초라한 옷차림으로 살아가려 하였던 것이었다.
“정말 내가 잘한 일일까?”
나는 남편에게도 아니고 나에게도 아니고 그냥 허공에 의문을 던졌다.
“이미 활시위는 당겨진 건데 뭐.
그나저나 난 당신이 더 걱정이야.
정말 어머님 없이 그렇게 살아갈 수 있겠어?”
“나 아무런 준비도 없어. 준비하고 한 일은 아니야.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면서 그냥 하였던 거야.”
나는 이제 엄마가 없는 아이였다. 엄연하게 공주에 시어머님이 계시고 내게는 양어머니도 있었다.
시어머니는 예전과 다르게 나를 무척이나 애틋하게 보살펴 주시고 또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더구나 양어머니는 자신의 친자식들보다도 더 나를 따뜻하게 보살펴 주시지 않는가.
그래도 나는 이제 엄마가 없는 아이였다.
어린 시절,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 내게 엄마가 없었다면 나는 모두에게 불행한 아이로 보였을 것이다.
엄마가 없어 밥을 제대로 못 먹고 옷을 못 갈아입고 또 기를 못 펴던 그런 친구들이 있었다.
난 이제 새로운 내 가족이 있고 내 아이에게는 또 내가 그런 엄마인데 나는 너무나 너무나도 허전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정말 우리 엄마의 냄새가 좋았다.
엄마 곁으로 다가가면 남의 엄마들에게서 나던 그런 화장품 냄새는 없어도 마늘냄새, 된장냄새, 가신 물 냄새나던
포근한 엄마의 행주치마.
엄마는 늘 긴 한복을 즐겨 입었고 그 긴 한복을 덮을 만큼 긴 새하얀 행주치마를 입었었다.
광목이 바래 삶고 또 삶은 새하얀 빛깔의 행주치마.
그 행주치마를 입고 엄마가 뒤울안에서 도라지를 캐고 있을 때마다 나는 왠지 엄마가 애처로웠다.
남들처럼 호사 한 번 안 하고 늘 손님이 와도 가게로 가기보다는 뒤울안으로 먼저 가서 상추며 쑥갓이며
도라지를 캐고 감자를 캐던 그 손길.
자줏빛 감자는 눈이 많아서 좀처럼 껍질 벗기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윗부분이 하얗게 닳을 정도로, 감자껍질 벗기는 용도로 사용하였던 그 윤이 나는 놋숟가락으로 우물가에 앉아
하염없이 감자껍질을 벗기던 엄마.
그 감자는 밥 위에도 얹고 감자조림도 되고 밀가루를 넣어 떡으로도 만들었다.
아무렇게나 만든 그 떡이 그렇게 맛있었던 것은 그 옆에서 물 한 그릇을 놓고 먹여주며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따뜻한 눈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중 강중”
내가 뒤뚱뒤뚱 걸을 무렵 엄마가 그렇게 나를 얼렀던 일도 기억났다.
나는 이상하도록 너무 어릴 때의 기억을 갖고 있었다.
뒤뚱뒤뚱 잘 걷지도 못하는 나를 마당에 앉혀두고 하얀 이불 빨래를 널 때 나는 그 이불호청 빨래를 널어놓은
마당으로 나가서 길을 잃곤 하였다.
마치 세상이 다 하얀 듯이 이불호청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다가 나는 엄마를 부르면서 애써 널어놓은 이불 호청을 땅에
떨어뜨리기도 하였다.
“승화야. 승화야.”
엄마의 음성이 다가오고 엄마는 나를 번쩍 안아 올렸다.
“여기 숨어있었구나.”
엄마는 그러고도 우물 안의 시원한 물을 퍼내어 새로 이불 호청을 헹구고 있었다.
나를 제대로 야단 한 번을 안치고 시어머니에게도 단 한 번의 꾸중을 안 들을 만큼 집안일에 헌신적이었던 엄마는
잠시도 쉴 틈은 없었다.
하루 종일 세 끼니의 밥을 새로 하고 유난히 군입거리를 좋아하는 할머니 탓에 늘 무언가 색다른 것을 만들고 있었다.
“볕이 참 좋다.”
시원시원한 성격의 할머니는 그렇게 일하는 엄마에게 무어라 말을 하였고 엄마는 할머니께 팥을 가져다 드렸다.
할머니는 눈이 안 좋아 안경을 걸치시고도 하루 종일 팥을 골랐다.
돌이나 뉘를 골라내는 할머니는 그래도 늘 혼자 중얼거리면서 창가도 부르고 그랬다.
본시 사람을 좋아하고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할머니는 어쩌면 말이 없는 며느리가 불만스러울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엄마 대신 당신이 말을 많이 하고 남에게 듣기를 즐겨하는 탓에 가만히 있는 엄마하고도 말이 많이 통하는 느낌이었다.
힘든 일은 엄마가 하였지만 그렇게 작은 일은 하루 진종일 엄마가 하고 그렇게 억척스럽게 일을 한 밤에도 엄마는
할머니하고 마주 앉아 종일 다듬이질을 하였다. 다림질 한 번을 안 해도 이불 호청이 그렇게 빳빳했던 것은
할머니하고 늦은 밤까지 다듬이질을 한 까닭이었다.
“탁탁 탁탁탁 탁탁탁탁 탁탁.”
다듬잇돌을 서로 마주 보면서 다듬이 방망이를 들고 두 여인은 엇갈리면서 다듬이질을 하였고 그것은 한 치의 빗겨감도 없이
잘 어울렸다.
나는 그런 밤이면 할머니하고 엄마가 다듬이질을 끝내고 이불 이청을 꾸미는 대청마루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새로 한 이불은 보기도 좋지만 감촉도 좋고 냄새도 좋았다.
나 혼자만이 그렇게 데굴데굴 구르면 그때마다 할머니도 엄마도 내게 눈길을 주면서 나를 얼렀다.
“아이고, 승화는 재주도 잘 넘는구나.”
그 바람에 나는 이불 위에서 재주를 몇 번이나 넘고 엄마가 타가지고 오는 시원한 홍차를 마셨다.
작은아버지 가게에서 가져온 티백 홍차는 따로 찻잔에 담고 그런 것이 아니었다.
시원한 우물물을 길어 커다란 놋그릇에 티백을 넣으면 빠알갛게 홍차물이 우러나왔다.
그 홍차에 설탕을 넣은 것이 우리 집의 홍차였고 할머니를 위하여 가져온 그 한 대접의 차를 얻어 마시면서
한여름 밤의 평화를 느끼곤 하였다.
조부에게 시집와 한평생을 수절과부처럼 살았고 단 한명의 소생도 없이 그렇게 허망하게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는
무척이나 성정이 활달한 편이었다.
어떤 이유로 우리 조부에게 시집을 왔는지는 지금 나도 잘 모르지만 엄마를 무척 아껴주는 편이었다.
엄마가 한 마디 따스한 말을 제대로 할 줄 모르고 간간히 필요한 말만 하였고 아버지나 작은아버지도 재미있는 성품은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주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나와 할머니였다.
그렇게 할머니와 같이 대청마루에서 노닥거리고 있으면 엄마는 새로 강낭콩을 따서 소쿠리 가득 가져다 놓곤 하였다.
그것을 뭐 껍질을 벗겨라, 뭐 그런 말도 없었다. 그냥 가져다 놓으면 할머니가 알아서 벗기고 내놓고 하는 식이었다.
나는 할머니가 그렇게 강낭콩 껍질을 벗기면 그 곁에서 어서 껍질이 모이고 그 껍질로 방석을 만들어 줄 일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는 껍질이 생기면 횃간에 휙 가져다 던지고 마르면 불쏘시개로도 썼지만 할머니는 내가 실컷 가지고
놀다 버리도록 허용하였기 때문이었다.
“할머니 난 이다음에 커서 고모도 되고 이모도 되고 외숙모도 되고 외할머니도 되고 엄마도 되고 다 될 거야.”
“그래그래, 다 되고말고.”
친척이라야 작은 아저씨라 부르던 삼촌 밖에 없어서 나는 입버릇처럼 내가 그런 것을 다 된다고 하였고
그러면 할머니는 무엇이나 오냐오냐 하였다.
엄마가 그래도 외롭지 않았던 것은 그런 할머니가 있었고 늘 엄마를 배려한 때문이었다.
사실 우리 집에는 할머니 외엔 더 식구도 없었기 때문에 우리엄마는 적어도 집안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시달림을 당할 일은 없었다.
엄마는 늘 집안에 머무르기를 좋아하였고 굳이 어디를 갈 때는 늘 아버지와 함께였다.
세상의 많은 이목을 받고 사람들의 의혹을 갖게 만들지라도 그것은 그 사람들만의 추측이었지 엄마하고 상관있는 일은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오늘은 찹쌀떡을 만들자.”
할머니는 군짓 질을 좋아하였기 때문에 시간만 나면 음식 만드는 일을 종용하였고,
엄마는 말없이 쌀을 빻고 할머니가 좋아할 군입거리를 만들 뿐이었다.
유난히 팥을 많이 골라 놓은 까닭은 우리 할머니가 팥죽도 좋아하고 찹쌀떡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많이 웃고 그저 맛있는 것을 청하여 먹고 아무런 고민도 없어보이던 할머니는 엄마에게 커다란 위안이 되었으리라.
어느 날이었다.
할머니가 어린 나를 무릎에 앉히고 말하였다.
“누구든 미진한 게 있어도 잘한다.
잘한다.
세 번만 칭찬하거라.
그 사람은 그 칭찬을 받고 힘을 얻어서 진짜 잘하게 된단다. 잘한다.
잘한다.
칭찬하고 착하다 착하다 하면서 살거라.”
그런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남들은 드러내 놓고 통곡을 해도 엄마는 눈물만 비 오듯이 흘릴 뿐 소리 내어 울지를 못하였다.
그렇게도 엄마를 잘 이해하던 할머니를 보낸 것은 엄마에게 큰 슬픔이었고 그 이후 엄마는 너무나 힘든 세월을 살아왔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엄마와 할머니 이야기를 나눈 일은 별로 없었다.
할머니 이야기가 나오면 내가 외갓집을 묻고 엄마에게 꼬치꼬치 묻는 것을 괴로워한 까닭이리라.
내가 어느 날 할머니 앞에서 “엄마 외할머니는 성이 뭐야?”
엄마는 가만히 있었고 그 틈에 할머니가 다시 “승화야 우리 도라지나 캐러갈까?”
나를 뒤울안으로 데리고 가서 닭들이 한창 헤집어 놓은 밭에서 도라지꽃도 보고 해당화 나무 열매도 따곤 하였다.
할머니도 외로웠던 탓일까? 어린 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늘 중얼거렸다.
“사람의 마음을 다스릴 수 없음이 내 탓만은 아니지.” 하거나 “억누르고 억누르는 것이 어디 사람 할 짓인가.”
나는 알아듣지 못할 이야기를 하고 집안을 서성이곤 하였다.
“그 분이 무심도 하지.”
아직 소녀 시절 중년의 조부에게 시집을 온 할머니는 그래도 조부를 무척 따른 모양이었다.
아버지 못지않게 사당을 자주 드나들었고 푸념처럼 무심하다고 조부를 두고 탄식하곤 하였다.
“우리 제일시장에나 가보렴?”
할머니가 자주 엄마를 데리고 나서는 곳은 작은아버지가 대흥상회를 하는 아랫동네였다.
아랫동네는 제일시장이 있고 커다란 극장도 있고 또 은행도 있는 번화한 곳이었다.
지금은 상계동에서도 가장 변하지 않은 동네가 제일시장 근처겠지만 당시만 해도 청량리 못지않은 번화가여서
거기는 사람들이 늘 버글버글한 편이었다.
버스 종점이 있고 멀리 폭포수가 바라보이는 폭포수 밑 동네가 있고 그 아래로는 은행주택이나 백운주택이 있어
동네 최고의 부자동네라는 인식이 박혀있었다.
더구나 제일시장 근처는 이층집이 많았다.
하나같이 번듯한 이층집인데다가 어떤 집은 집 전체를 타일로 붙인 집도 있어 밖에서 집을 구경하는 것도 무척이나
재미있는 일이었다.
집집마다 향나무며 소나무가 있고 꽃나무가 펼쳐진 정원은 무척이나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할머니가 부잣집 마나님처럼 양단 치마저고리에 배자까지 걸치고 지나가면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숙였다.
그 마나님이 당고개 넘어 홍대감댁의 젊은 마나님이란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뒤로는 요조숙녀처럼 고개를 숙이고 걸어가는 키 큰 며느리가 있었고 그 며느리의 미모도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하였던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걸어 제일시장으로 들어가면 상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마나님, 나오셨구만유.”
“생선이 물 좋은데 들여가시지요?”
“푸줏간에 다녀올 테니 거기 계시게.”
영규네가 푸줏간을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양반가에서 본시 백정의 업이던 푸줏간을 한다고 할 때 그 김씨 문중도 그렇지만 우리 남양홍씨 가문에서도
건너편 이내관 댁에서도 말이 많았다.
세상이 아무리 변화하였다고 하여도 어찌 양반가에서 푸줏일을 하는가?
하지만 영규 아버지가 푸줏간을 택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이었다.
가게 터가 자기 터인데다가 동네에서 알음의 폭이 컸던 영규네는 인근 모든 양반집의 고객을 단골로 확보할 수 있었고
남들보다는 좀 더 좋은 고기를 준다는 소문으로 인기가 많아 나날이 번창해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겨우 밭 몇 떼기에, 논에서 나는 쌀로 반년을 못 버틴다는 어렵던 영규네는 나날이 살림살이가 불어가는 중이었다.
어디 정육점뿐이랴.
그 일가붙이들이 시장에서 터를 잡은 후에는 그 집 떨거지들은 하나같이 시장에 와서 어디 좋은 터가 없는 지 살피게 되었고
곧 쌀집도 하나 마련할 터라는 소문이 상계동에 파다하게 번지고 있었던 무렵이었다.
할머니는 시장에 들어가자마자 제일 먼저 영규네 정육점으로 갔던 것이다.
“아이고, 마님께서 이렇게 손수 나오셨어요?”
영규 엄마는 앉아있던 낡은 의자에서 일어서면서 반색을 하였다.
아직은 몸집이 그렇게 풍만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정육점에 앉아있기 아까울 정도로 화사한 화장을 한 영규엄마가 할머니를 앉히고
미숫가루를 가져오고 또 나에게는 사탕을 쥐어주면서 호들갑을 한창 떨 때 쯤 할머니는 호기 있게,
“국거리로 한 닷근하고 구이로 한 닷근 썰어보게.”
“구이로야 어디 닷근 갖고 되시겠어요?
등심이 오늘 워낙 좋아요.
장조림도 하셔야지요?”
쇠고기는 쇠고기 대로 사고 돼지고기도 사고 우리는 할머니가 열거하는 그 모든 것들을 그저 지켜볼 따름이었다.
“새댁, 오랜만이군요.
왜 가끔 한 번 들르시라니까…”
영규엄마가 엄마의 곁으로 가서 부채질을 해주고 있었다.
엄마는 그저 모든 것이 수줍은 양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이렇게 오셨는데, 당고개 가셔서 냉면이라도 한 그릇 잡숫고 가세요.”
“아니 무슨….”
그렇게 한참을 기다려 고기가 다 썰어지면 곧 지게꾼을 불러 직접 우리 집에 가져다 놓으라고 하였고
할머니는 또 어물전으로 갔다.
싱싱한 생선과 맛있는 생선을 고르는 방법은 그 중 제일 비싼 것을 고르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진 할머니는
또 가장 크고 비싼 아지나 조기를 잔뜩 샀고 집에는 없는 생강이나 양파 같은 채소도 산 후 그것도 지게꾼을 불러
집으로 보내고 나면 우리는 작은아버지가 하는 대흥상회로 갔다.
점심 값이 아까워 집에서 밥 한 그릇을 들고나가는 작은아버지였지만 그래도 할머니에게는 극진하였다.
“어머님, 냉면 한 그릇 드실래요?”
그렇게 말하고는 우리를 당고개 냉면 집으로 데리고 갔다.
냉면이라는 빨간 휘장을 사이로 들어가면 모시적삼을 입은 남자 주인이 우리를 보고 반색을 하였다.
뜨거운 육수 국물을 가져다주고 수육부터 한 접시 가져다주면 할머니는 나에게 먼저 한점을 주었다.
“맛있니?”
할머니가 그렇게 자꾸 입에 넣어주는 수육은 고소하고 감칠맛이 났다.
나는 그것이 맛이 있어서 거의 한 접시를 혼자 다 먹으면 그제야 나온 냉면을 또 나의 입에 넣어주기 시작하였다.
“우리 승화는 국수 호줄세.”
내가 국수를 좋아하는 것은 할머니의 그런 부추김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나는 할머니가 입에 넣어주는 국수면발이 유난히 질기고 그 맛이 시원하고 깨끗하다는 것을 진작 터득하였다.
“그래그래.
맛있는 음식을 이렇게 많이 먹어보아야 나중에 그런 맛을 내는 게다.”
늘 형수를 수줍게 대하는 작은아버지는 눈짓으로만 엄마에게 어서 먹으라고 했고 엄마도 그 냉면은 퍽 좋아하는 눈치였다.
아무리 인색한 작은아버지여도 냉면만큼은 인심이 후하였다.
우리가 그 냉면을 다 먹기도 전에 국수를 더 시켰고 시원한 육수를 더 부어 배가 아삭아삭 씹히는 냉면은 정말 시원하고 맛이 있었다.
“에미가 냉면을 참 좋아하는 구나.”
할머니도 아무 말 없이 한 그릇을 다 비우고도 사리로 나온 면을 그릇에 붓는 엄마를 보면서 미소 지었다.
날씨는 지극히 무더웠고 양단 한복에 마고자까지 걸친 할머니의 이마에서는 쉴새없이 줄줄 땀이 흘러내렸다.
“이표야. 너도 곧 성혼을 해야지.”
할머니는 늘 그 걱정이었다.
“뭐하러요? 전 지금 같이 이렇게 지내는 것이 좋아요.
우리 승화나 보면서 그렇게 살지요. 뭐.”
할머니가 눈을 흘겼다.
내 머리를 쉴새없이 쓰다듬으면서 나를 보면 눈부터 웃는 젊은 날의 작은아버지는 참 좋았다.
“어머니, 또 김내관 댁에서 고기 사셨지요?”
갑자기 생각난 듯이 작은아버지가 말하였다.
“왜 그러느냐?”
“아이고, 그 집 순 바가지예요. 양주 가서 고기를 잡아온다는 둥 하면서 비싸게 팔지만 그건 다 헛말이구요.
다 마장동 가서 잡아온다구요.”
“그게 무슨 말이냐?”
“저도 시장에서 장사하는데 그거모르겠어요?
아무튼 아는 처지가 더 무섭더라니까…”
작은아버지는 할머니가 고기를 많이 산 것이 불만이고 또 깎지도 않고 덥석 비싼 값을 다 주고 산 것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고기는 좋지 않느냐?”
“아유, 좋기는요. 뭐.
고기가 다 고기지.
고기가 뭐 달라요.
양념 잘해서 볶으면 그게 다 그거고.”
“아니다. 고기는 맛이 다 달라.”
작은아버지도 길게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그 얼굴에는 억울한 빛이 역력하였다.
그리고는 할머니 귓속에 대고 “이 집, 고기 맛이 좋지요?”
“그렇구나.”
“이 집, 고기도 마장동에서 가져와요.”
“그러냐?”
할머니는 작은아버지의 말을 듣고는 좀 기분이 상한 모양이었다.
기세 좋게 나오다가는 괜히 그 냉면 주인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그 덕분에 엄마는 민망한 얼굴로 나오고 할머니는 그렇게 그 집을 나왔지만 집에 도착하였을 때는 할머니는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고기 양념을 하는 엄마 곁으로 와서 설탕을 넣어라 배를 갈아라. 일일이 참견을 하지만 사실 우리 할머니의 음식 솜씨는 별로였다.
다만 엄마가 음식 하는 것을 즐기셨기 때문에 옆에서 양념을 더 넣어라 마라 하는, 하나마나한 충고를 하는 것이다.
“산적은 숯불에 구워야 제격이다.”
작은아버지를 불러 숯불에 구운 고기를 연신 가져다 놓으면서 또 공치사였다.
작은아버지는 이 모든 것이 할머니가 사고 그 돈은 아버지에게서 나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별 불만도 없이 고기를 엄청 많이 먹었다.
“소금에 찍어 먹으니 얼마든지 먹겠다.”
이렇게 아버지도 마음 놓고 고기를 먹었고 그 고기 굽는 냄새는 인근으로 퍼졌다.
엄마는 고기는 먹지 않고 연신 고기를 굽기 바빴지만 그래도 밥은 먹었다.
“고기를 먹어라.
고기를 먹어.”
할머니는 엄마에게 고기를 가져다주기도 하였지만 엄마는 고기를 즐기지 않는 편이었고
상에 올린 고기에 별 관심이 없었던지 물김치만 먹었다.
그렇게 저녁을 다 먹은 후면 대청마루는 내 놀이터가 되었다.
할머니는 나에게 자라면서 작은 요를 가져다가 마루에 펴주었다.
그리고 부채질을 계속 해주었기 때문에 모기에 물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엄마는 우리 집 우물에 담가두었던 시원한 수박을 한 통 잘라왔고
우리는 그 대청마루에 앉아 얼음처럼 시원한 수박의 맛을 즐길 수가 없었다.
어찌 보면 나는 그 시절이 나에게 있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이었다.
괜히 잠자기 싫어 칭얼거리면 할머니는 어느 새 알고 나를 데리고 할머니 방으로 갔다.
화초장 하나가 있고 이야기 책이 많이 꽂혀 있는 할머니 방에서는 어딘가 구수한 냄새가 났다.
일찍 홀로 되신 할머니가 머리맡에 담배를 두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장수연 큰 봉지를 열어 담배를 꺼내면 긴 담뱃대에 불을 붙이고 재빨리 빨아야 하는데 조금만 성급하게 빨면
그 담뱃대 안의 담배가 홀랑 다 타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성냥불 붙이는 법을 일찍 터득하였다.
그것은 다 할머니의 담뱃대에 불을 붙여드리던 습관 탓이었다.
긴 담뱃대에 담배를 가득 채우고 나면 할머니는 흐뭇한 얼굴로 담배를 빨았다.
“아, 담배 맛 좋다.”
마치 술 마시는 사람이 ‘커 술맛 좋다!’ 하듯이 할머니는 그렇게 담배를 예찬하였다.
아버지나 작은 아버지는 할머니에게도 무척 효자였기 때문에 싸구려 담배보다는 장수연이 더 맛이 좋다고 늘 장수연을 찾아다녔다.
게다가 아버지는 동네 어디 마실 방이라도 가면 꽁초를 전부 모아다가 담배를 털어놓곤 하였다.
새마을이나 아리랑 같은 담배 보다는 훨씬 더 맛이 좋은 고급 담배여서 그 꽁초를 털어 할머니 담배합에 넣어두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할머니가 좋아도 엄마가 더 좋았다.
밤중에 엄마에게 가고 싶었지만 할머니가 놓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부터는 배가 아프다고 하였다.
배가 아프다고 하면 할머니는 무조건 배부터 쓸어주었다.
자신의 손이 약손이라면서 오래오래 배를 쓸어내리면 나는 할 수 없이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잠이 들면 대개 엄마는 나를 안아다가 안방에 뉘어주곤 하였는데
어느 날 내가 할머니 방에서 잠이 깨면 나는 무엇인가 자꾸 억울하였다.
그래서 아침나절을 괜히 징징거리면 눈치 빠른 할머니가 ‘엄마랑 못 자서 그렇구나.’ 하면서 내 정곡을 찌르곤 하였다.
아침상을 받으면 그 상에는 늘 깨소금 양념한 새우젓이 있었다.
별다른 비린 반찬이 없는 날에는 나는 그 새우젓을 꽤 좋아해서 그 새우젓 국물에 밥을 비벼먹기도 하였는데
늘 할머니는 국물을 꼭꼭 더 짜내어 비벼주면서, “고 녀석 얕은맛은 알아가지고…”하면서 나를 놀리기도 하였다.
“우리 승화는 장차 무엇이 되려는고?”
학교 근처도 안 가본 우리 할머니지만 그래도 글씨는 알았고 한자도 드문드문 많이 알고 있어서 밤새도록
이야기 책 읽는 것을 무척이나 즐기고 있었다.
세로로 글씨가 써지고 잘 연결이 되지 않는 어색한 문장의 춘향전이나 심청전 같은 원색 표지의 이야기 책은 우리 집에
셀 수 없이 많았다.
“아가, 네가 좀 크게 읽어보아라.”
가끔은 할머니가 엄마에게 이야기책을 읽으라는 주문을 하기도 하였다.
할머니가 그렇게 말하면 엄마는 거침없이 이야기 책을 읽어 내려갔다.
맑고 고운 목소리의 우리 엄마는 이야기 책을 읽는 것도 잘하였다.
마치, 동화를 읽기 위하여 이 세상에 나온 성우의 목소리처럼 곱고 차분한 엄마의 이야기 책은 무척 재미가 있었다.
숙영낭자전도 읽고 이춘풍전도 읽고 장화홍련도 읽으면 밤이 깊었다.
나는 어느새 늦도록 잠 안 자는 아이가 되어 있었고 일곱 시만 되어도 이불을 펴는 다른 집들과 달리
우리 집에는 밤이 살아있는 집이었다.
그렇게 밤이 깊으면 할머니는 또 엄마에게 국수를 비벼 먹자거나 밥을 비벼 먹자고 하였다.
엄마는 지체없이 그렇게 하였다.
한밤중에 국수를 삶아 시원한 물김치에 말거나 아니면 송송 썬 포기김치를 넣고 파, 마늘을 넉넉히 넣어
깨소금, 고춧가루와 참기름으로 무친 비빔국수는 별다른 고명 없이도 맛있는 음식이었다.
게다가 한겨울 밤이라도 되면 화롯불을 끼고 앉아 그 화로에 밥을 비볐다.
고추장은 안 넣고 다만 김장 김치만으로 밥을 비비면 밑은 눅고 위는 뜨거워 호호 불며 먹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
할머니는 참 낙천적이었다.
당신이 배가 고프면 남들이 다 배가 고프다고 생각하였고 자신이 기분이 좋으면 남들도 대개 다 좋다고 믿는 때문이었다.
효자 아들이 둘이나 있고 당신의 양어머니라고 해도 친아들로 키워온 할머니는 마음이 퍽 온화한 편이라
식구들을 편안하게 하였다.
할머니가 그렇게 많이 먹을 것을 청하여도 대개 그것은 식구들과 나누어 먹었고
어느 날 담뱃불에 불이 튀어 버리게 된 한복 저고리를 가지고 엄마에게 나의 옷을 만들라고 내주면
엄마가 베개 껍데기를 만들어도 할머니는 탓하지 않았다.
“이렇게 꼼꼼하게 누비니 참 곱구나.”
대개 그렇게 말하였고 세상에 나를 둘도 없는 손녀로 취급하였다. 할머니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작은 아버지의 아이이고 당신에게 하나 밖에 없는 손녀임을…
그래서 처지가 남달랐던 엄마를 배려하려고 날마다 그렇게 즐겁게 식구들을 돌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 번도 우리 할머니가 불행하다는 생각도, 내가 불행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남들이 오히려 우리 집의 내력을 다 아는 듯이 우리를 동정하곤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어설픈 몸짓에 불과하였다.
자신들이 아무리 불행하게 보아도 우리 집은 늘 화목하였고 또 풍족하였고 평화로웠다.
진실로 사랑하는 남자에게 배신을 당하고 죽을 결심까지 하였던 엄마에게 우리 할머니 같은 시어머니가 있었던 것은
우리 엄마에게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우선 엄마의 살림솜씨를 무척이나 신뢰하는 편이었다.
어린 나이에 시집을 오고 집안을 돌보는 찬모도 있고 침모도 있고 심부름 할 사람이 버글버글하던 시절.
할머니는 아무것도 배울 일도 없고 또 할 일도 없었다.
게다가 무서운 시어머니가 있던 것도 아니었고 남편보다는 상전 같기만 하던 무서운 성품의 조부가 있었지만
그래도 조부는 할머니에게 무척 따뜻한 정을 나눠주었던 것 같았다.
어느 날이면 사당에 들어가 혼자서 먼저 떠나가 버린 조부를 원망하기도 하고 나를 불러 무릎에 앉히고는 틈틈이
조부의 일화를 이야기 해 준 것도 다 우리 할머니였다.
그렇게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할머니에게는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집안 식구 누구하고도 격의가 없이 어울렸고 엄마에게는 지엄한 시어머니의 위풍보다는 자애로운 어머니를 연상할 만큼
다정하였으니 말이다. 그런 뜻에서 엄마는 집안에서 제일 바쁜 사람이었다.
부리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노환으로 잃고 때로는 자식에게 보내고 또는 살길을 마련해 주어 떠나보낸 것은
작은 아버지의 부축임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한 입이 먹는 것이 열 시간 일하는 것보다 더 과하게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식구도 별로 없는 집에 뭐 하러 일하는 사람을 많이 두어 먹을 것을 축내느냐는 작은아버지의 설득도 있었고
사실 조부가 들인 그 사람들은 하나 같이 다 늙어있었던 것이었다.
아버지가 작은아버지의 충고를 받아 사람들을 내 칠 때에도 할머니는 스스로 쌈짓돈을 풀어
그 사람들이 원한을 사지 않을 만큼 충분한 보상을 한 것도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뭐 하러 그러세요?”
작은아버지는 그런 할머니의 처사에 반감을 표시하였지만 무조건 효자이기만 한 아버지는 할머니의 뜻대로 하였다.
“논밭을 떼어주는 것도 아니고….”
아마 할머니의 여력이 그랬다면 서슴없이 논도 주고 밭도 주었을 풍요로움을 세상의 최고로 치던 우리 할머니는 엄마와
더 가까워진 것도 사람들을 다 내보낸 후의 일이었다.
엄마와 함께 절에도 가고, 엄마와 함께 과수원에도 가고 할머니는 나들이를 참으로 좋아하는 편이었다.
“꽃을 가지고 가자.”
손이 없던 할머니가 절에 갈 때 마다 먼저 챙기는 것은 꽃이었다.
“꽃을 부처님 전에 공양하면 어여쁜 자식을 많이 얻는 단다.”
내시의 집안에서 어여쁜 자식을 얻으려고 꽃을 바치는 할머니가 어이가 없어 다들 그런 할머니를 흘깃 거려도
할머니는 누구보다 꽃을 좋아하였다.
시장에 기별을 하여 꽃장수를 부르면 그 꽃장수는 커다란 양푼 가득 꽃을 이고 왔었다. 장미꽃도 있고 카네이션도 있고
백합꽃도 있고 수국과 도라지꽃도 있었다.
꽃들은 하나같이 싱싱하고 방금 꽃봉오리를 피운 양 청초하기만 하였다.
할머니는 기어이 그 꽃을 다 사고 지게꾼에게 지워 절로 갔던 것이다.
흥국사 너른 절에 가면 그 꽃은 대웅전에도 가고, 산신각에도 가고, 스님들 계시는 요사채로도 퍼졌다.
스님들은 그런 우리 할머니를 무척 좋아하였고 같이 온 새 며느리와 어린 손녀에게도 절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커다란 과일도 다 내게 봉숭으로 싸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꼭 절에서 점심을 먹었다. 초하루 보름 불공에는 모든 신자들이 다 같이 공양을 하지만 무시로
드나드는 참배객에게 점심을 주는 것은 언제나 의외인 일이었다.
우리가 절에서 스님들과 상을 받으면 그 상에는 잘 볶은 머위 나물이 있었다.
절에서나 먹어 보는 머위 나물도 고소하지만 온갖 마른 야채로 만든 튀각도 있고 연근을 튀기고
고구마를 튀긴 맛있고 향기로운 튀김도 나왔다.
“절에서 밥을 먹으면 이렇게 맛있는 것을.”
할머니는 걸터듬 하듯이 온갖 나물을 끌어다가 밥을 비볐고
결국 그 밥을 남기게 되었을 때 엄마는 아무 말 없이 할머니가 비벼놓은 그 밥을 먹었다.
절에서 음식을 남기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일부러 눈치만 보다가 자신이 남긴 밥을 대신 먹으려 하는
며느리를 알아서 일까.
할머니는 엄마가 더러 말을 안 하고 더러는 퉁명스럽더라도
“저런 사람은 저렇게 사느니라.” 하면서 껄껄 웃어넘기곤 하였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