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과 여행을 다녀온 뒤 가장 아쉬움이 남는 대목은 지역의 맛집을 다녀오지 못한 점이다. 여러 가지 핑계가 있지만 제일은 경제적 이유이고 그다음으로는 맛집과 여행의 목적이 상충된다는 나름 소신 있는 여행 계획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리가 없지는 않지만 지역을 대표하는 맛집이라는 것이 단지 영리만 목적으로 하는 그저 그런 집이 아니라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거기에다가 지리적 특성을 담아낸 음식 문화라는 점을 간과한 점이 뼈저리게 아픔으로 다가온다. 고상한 말로 표현했지만 쉽게 말하자면 무식했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더 잘 보이듯이 알고 먹으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이 음식임을 깨닫는다. 음식은 결국 지리를 벗어날 수 없으며 모든 답은 지리 안에 있음을 '맛집에서 만난 지리 수업'에서 알게 된다.
장거리 출장을 다녀올 때도 가끔 있다. 강원도를 벗어나는 출장 말이다. 가족 여행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출장 목적에도 충실한 체 쨉 싸게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나의 출장 패턴이다. 지금에서야 후회로 남는다. 먼 거리를 오랜 시간 걸려 갔는데 그 지역의 맛집도 들르지 않고 온 적이 태반이다. 이제는 집에 조금 늦게 오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맛집 여행을 한 군데라도 꼭 하고 돌아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갑을 열어서라도 언제 또 오겠느냐는 마음으로 그 지역의 특징을 담아낸 음식을 꼭 맛보고 오리라 결심해 본다.
지역을 상징하는 맛집은 하루아침에 짠하고 등장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쌓여 축적된 결과물이다. 음식의 이름만 보더라도 역사와 사람들의 삶을 유추해 낼 수 있다. 가령 예를 들면 이렇다. 춘천은 막국수로 유명하다. 지금이라 도시로 발달된 지역이지만 예전에는 화전민들이 밭을 일구며 살아오던 지역이었다고 한다. 가난한 화전민들이 산에서 내려와 살게 되면서 값싸게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이 막국수였다고 한다. 말 그대로 막 먹을 수 있는 국수가 막국수였었다. 수원 하면 왕갈비로 유명하다. 왕갈비는 크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실제 의미는 조선의 임금이었던 정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정조 임금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 씨의 회갑연을 축하하기 위해 소갈비를 재료로 음식을 대접한 것에서 수원 왕갈비가 유래되었다고 한다. 음식은 곧 역사임을 알 수 있다.
연천 냉면, 구룡포 과메기, 동래 파전, 통영 충무 김밥(지금의 통영시는 예전에 충무시였다고 한다), 영광 굴비, 목포 세발낙지, 전주비빔밥, 속초 오징어순대,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황태(내가 군복무를 했던 703 특공연대 1대대가 용대리에 있었다. 1990년대에도 황태 덕장이 즐비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남대문 갈치조림, 병천 순대, 안동 간고등어, 제주 흑돼지 이름만 들어도 입안에 침이 돈다. 여행지에서 맛집을 순례하기 위해서는 결국 돈이 문제 이긴 하지만 아껴 두었다가 모처럼 가게 될 기회가 생기면 망설이지 말고 꼭 지리 수업 겸 맛집을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