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산대재(開山大齋) 법어
저 신라 때의 고승 자장 율사가 선덕여왕 15년에,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님 진신사리를 영축산에 모셔놓고
산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일천삼백오십칠 주년이 됩니다.
성상(星霜)이 반복되면서 부처를 잇는 지혜로운 종장(宗匠)들이 줄을 이었고,
무생(無生)의 곡조는 영취 도량에 번갈아 울리고 있습니다.
서천축 영산회상에 줄을 댄 최상의 종풍(宗風)은 화장세계에 서로 이어지고 있나니
물건마다 법희(法喜)와 선열(禪悅)이요, 불빛마다 반야지(般若智)의 광명입니다.
실로 세상이 바뀌고 사람이 달라진 지 수백 년을 몇 차례 겪었으며
흑마(黑馬)의 풍뢰(風雷)에 쓰러지고
적계(赤鷄)의 왜화(倭火)에 불탄 명산대찰이 그 얼마나 많았습니까?
영축총림의 오늘은 어떠한 변화와 무상에도 불구하고 전신(全身)을 그대로 드러내 보임은
찬연히 유지해 온 부종수교(扶宗樹敎)의 법등(法燈)에 있었음을 만천하에 두루 알리는바 입니다.
총림을 장엄하는 청청한 푸른 대와 울울(鬱鬱)한 짙푸른 녹림(綠林) 등
온갖 만상은 모두 문수와 보현의 경계이니 하나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불보사찰의 이력이자 영축 문중의 내력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세상 사람들에게 고합니다.
먼저 사람이 아니었으면 누가 영축산에 이 주석과 저 계단을 놓았겠으며
뒤의 사람이 아니었으면 누가 이 도량을 세웠겠습니까?
부종수교(扶宗樹敎)의 법등이 단절되지 않고 오래오래 영원히 지속되려면 서로가 상응해야 하나니
마치 경쇠 소리가 바람에 섞여 나오면 그것이 하나이듯 불이(不二)의 도에 합일해야 할 것입니다.
불이의 경계를 알게 될 때 여러분들은 비로소 개산 소식을 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1,357이라는 수량적 놀음에 끄달리지 않고
전삼삼(前三三) 후삼삼(後三三)의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된다는 말입니다.
산상고산수상상(山上高山須上上)
수중심수향중중(水中深水向中中)
기위경비구주술(期爲鯨飛龜走術)
막설오언사부동(莫說吾言似不同)
산 위의 높은 산이라 모름지기 자꾸 오르고
물속의 깊은 물이라 부디 자꾸 들어가라.
기어이 고래가 날고 거북이가 달리는 재주를 이루려니
내 말이 그럴듯하다 부디 말하지도 말라.
불기 2546년 10월 14일
- 영축산 통도사 월하 대종사 -
* 전삼삼 후삼삼(前三三 後三三) : 벽암록(碧巖錄)에 있는 이야기.
이것은 문수보살이 말씀하신 이야기이다.
무착 문희(無着文喜) 선사가 문수보살을 친견하려고
오대산에 갔다가 금강굴(金剛窟) 앞에서 어떤 영감을 만났다.
그 영감을 따라가니 아주 좋은 절이 있어서
그 절에 들어가 영감과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영감에게 무착 스님이 물었다.
“여기는 불법이 어떠합니까? [此間如何住持]”
“범인과 성인이 같이 살고, 용과 뱀이 섞여 살지[凡聖同居 龍蛇混雜].”
“그럼 숫자는 얼마나 됩니까? [多少衆]”
“앞으로 3, 3, 뒤로도 3, 3이지[前三三 後三三].”
그 절을 나온 스님이 다시 절을 돌아보자 웅장했던 절은 어느새 간 곳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