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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3: 35. 순교자의 피 - 마 23: 36. 이 세대에게
마 23: 35. 순교자의 피 -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
이러한 사건은 단지 의인 아벨로부터 역사상 흘려진 의로운 자들의 피흘림의 절정이 될 뿐이다.
이것은 그들이 그들 조상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
1]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이 구절 역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아벨이 성경에 나타난 첫 번째 살인의 희생자인 것은 분명하다.
* 창 4: 8 -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그러나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Zechariah son of Berekish)가 누구인가는 문제가 된다.
몇 가지 견해들에 대하여 살펴보면
Ⓐ 세례 요한의 아버지인 사가랴(Zecharish)였다는 설
세례 요한의 아버지인 사가랴(Zecharish)였다는 설이 있으나(Chrysostom) 그가 순교했다는 증거는 없다.
Ⓑ 바리스(Baris, 또는 Baruch 또는 Bariscaeus
이 이름들은 사본들에 따라 다르게 나타남)의 아들로서 성전에서 두 열심 당원들(Zealots)에게 죽임을 당한(Jos. Wars, IV, 334-44<4절.) 사가랴(Zechariah)였다는 설이 있다(Penn).
그러나 그가 선지자이거나 순교자(殉敎者)였다는 증거는 없다. 그가 성전 경내 한 가운데서(*, 엔 메소, in the mist) 죽임을 당했다 할지라도 제사장이 아니었다면 그는 지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죽임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에 대한 증거도 없다.
Ⓒ 구약에서 베레갸의 아들(son of Berekish)인 선지자 스가랴(Zecharish)였다는 설
그러나 그가 죽임을 당했다고 말하는 기록은 없다.
* 슥 1: 1 – 다리오 왕 제이년 여덟째 달에 여호와의 말씀이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가랴였다는 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가랴였다는 설이 있는데(Albright and Mann) 이런 견해는 가능한 이야기이지만 역시 증거가 없다.
Ⓔ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Zechariah the son of Jehoiada)라는 설
또 하나는 대하 24: 20-22에 나오는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Zechariah the son of Jehoiada)라는 설이다.
* 대하 24: 20-22 – 20 이에 하나님의 영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매 그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하지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하나 21 무리가 함께 꾀하고 왕의 명령을 따라 그를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돌로 쳐죽였더라. 22 요아스 왕이 이와 같이 스가랴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베푼 은혜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그의 아들을 죽이니 그가 죽을 때에 이르되,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 하니라.
이 스가랴는 성전 뜰 안에서 죽음을 당했는데, 이 사건은 히브리 정경(正經) 마지막 책의 끝 부분에서 언급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의 이 말, 곧 히브리 성경의 첫 책(창 4: 8)에서 마지막 책(대하 24: 20-22)에 기록된 모든 순교자란 기독교적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이 말이 적용될 수 있는 범위는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의 모든 순교자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예수가 말하는 사가랴(Zechariah)가 대하 24: 20-22에 나오는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Zechariah)라고 생각한다면 '여호야다'라는 부칭(父稱)이 문제가 된다. 이것을 해결할 수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슥 1: 1에서는 선지자 스가랴의 아버지인 베레갸의 이름이 언급되는 한편 스 6: 14에서는 그의 할아버지인 잇도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다.
* 스 6: 14 – 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의 권면을 따랐으므로 성전 건축하는 일이 형통한지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과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따라 성전을 건축하며 일을 끝내되
여호야다가 대하 24장에 나오는 스가랴의 아버지가 아니라 할아버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여호야다가 130세까지 살았던 사실은 이런 견해의 가능성을 높여준다.
* 대하 24: 15 - 여호야다가 나이가 많고 늙어서 죽으니 죽을 때에 백삼십 세라.
왜냐하면 스가랴는 여호야다가 죽은 직후부터 그의 사역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른 방법으로는 알 수 없는 바라갸(Berekiah)는 스가랴를 낳고 평온한 세월을 살다가 그의 아버지보다 먼저 죽음으로써 아버지의 대제사장직을 계승하지 못했다.
이렇게 생각할 때 바라갸가 사가랴(대하 24장에서는 스가랴)의 아버지라는 것도 설명이 된다. 그러나 이런 설명들이 확실히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2]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의로운 피' - 이는 '의인의 피'(애 4:13), '무죄한 자의 피'(왕하 21:16. 24:4)라는 표현과 흡사한 의미로서 의롭다 인정받는 자의 죽음 및 그 피 흘림과 관련되어 하나님으로부터 범죄자(犯罪者)의 선고를 받은 것 까지를 포함한 넒은 의미이다.
* 애 4: 13 - 그의 선지자들의 죄들과 제사장들의 죄악들 때문이니 그들이 성읍 안에서 의인들의 피를 흘렸도다.
* 왕하 21: 16 – 므낫세가 유다에게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한 것 외에도 또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득하게 하였더라.
* 왕하 24: 4 - 또 그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 그의 피가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니라.
* 히 11: 4 –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이것은 아벨과 마지막 순교자 스가랴까지 의(義)를 위해 순교당한 모든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말한다.
그런 측면에서 공동 번역에서는 '땅에서 흘린 무죄한 피 값'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는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질러왔던 불의한 모든 죄에 대하여 심판하는 형벌의 선언이다.
조상들이 저질러왔던 악행은 예언서들과 시편에 잘 나타나고 있다.
* 시 94편 – 1 여호와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추어 주소서. 2 세계를 심판하시는 주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들에게 마땅한 벌을 주소서. 3 여호와여 악인이 언제까지, 악인이 언제까지 개가를 부르리이까? 4 그들이 마구 지껄이며 오만하게 떠들며 죄악을 행하는 자들이 다 자만하나이다. 5 여호와여 그들이 주의 백성을 짓밟으며 주의 소유를 곤고하게 하며 6 과부와 나그네를 죽이며 고아들을 살해하며 7 말하기를 여호와가 보지 못하며 야곱의 하나님이 알아차리지 못하리라 하나이다. 8 백성 중의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생각하라. 무지한 자들아 너희가 언제나 지혜로울까? 9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 10 뭇 백성을 징벌하시는 이 곧 지식으로 사람을 교훈하시는 이가 징벌하지 아니하시랴. 11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 12 여호와여 주로부터 징벌을 받으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13 이런 사람에게는 환난의 날을 피하게 하사 악인을 위하여 구덩이를 팔때까지 평안을 주시리이다. 14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자기의 소유를 외면하지 아니하시리로다. 15 심판이 의로 돌아가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가 다 따르리로다. 16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 행악자들을 치며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 악행하는 자들을 칠까? 17 여호와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내 영혼이 벌써 침묵 속에 잠겼으리로다. 18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고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19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20 율례를 빙자하고 재난을 꾸미는 악한 재판장이 어찌 주와 어울리리이까? 21 그들이 모여 의인의 영혼을 치려 하며 무죄한 자를 정죄하여 피를 흘리려하나 22 여호와는 나의 요새이시요 나의 하나님은 내가 피할 반석이시라. 23 그들의 죄악을 그들에게로 되돌리시며 그들의 악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끊으시리니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 그들을 끊으시리로다.
3]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공동 번역에서는 '피'를 '피값'으로 번역하여 본문의 의미, 곧 악행에 대한 대가를 지불 받게 될 것이라는 의미를 뚜렷이 하고 있다.
35절은 27: 24-25의 예언이다.
* 마 27: 24-25 – 24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25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그때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자 유대인들은 예수에 대한 무지로 끔찍한 일에 대한 책임을 소리 지르며 자청하여 떠맡았다.
마 23: 36. 이 세대에게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 )
이 세대는 그 피 흘린 죗값으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29절에서 일곱 번째 저주 선언이 시작될 때 대상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다.
35절에서도 '너희'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해 한 말이라는 것은 의심할 바가 없다. 여기서는 피 값을 받아야 할 대상이 이 세대(世代)로 지목되고 있다.
즉 그 시대에 살던 모든 유대인을 가리킨다. 이것은 죄에 대한 집단적, 사회적 책임성을 말하고 있다(31절 주석).
역사 속에서 조상들이 저지른 죄악을 이 세대에서 회개하고 바로잡지 못하고 오히려 그 조상의 악의 양을 충만히 채우면(32절) 이 세대가 멸망의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 예수의 이 예언은 A. D.70년에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그들은 경험하였다.
과거의 죄악을 청산(淸算)하지 못하면 오늘 이 세대는 과거의 죄악을 용인(容認)하고 반복하는 것이 되며 결국 과거와 마찬가지로 멸망의 화를 초래하게 된다는 의미에서 본 절은 일곱 가지 저주 선언문의 최종적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주께서 선지자들과 지혜자들과 율법 교사들을 그들에게 보낼 때 그들은 그들을 죽이고 채찍질하고 핍박할 것이다. 주의 종들은 유대인들에게 죽임과 채찍질과 핍박을 받을 것이다.
교회는 이것을 기억하고 담대한 마음을 항상 준비해야 한다.
유대인들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의인 아벨로부터 역사상 흘려진 의로운 자들의 피흘림의 절정이 될 뿐이다.
이것은 그들이 그들 조상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 그러나 이 세대는 그 핏 값으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2] 유대인의 오점
사람의 행위는 언젠가는 반드시 평가받게 되어있다. 그것이 개인이든 민족이든 마찬가지다. 그 삶의 흔적이 오점을 남긴 것이 있으면 그 사건은 역사의 오점이 된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바로 이 유대인들의 완악한 마음의 사람들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준엄하게 책망하셨다.
그 조상들이 저지른 역사의 오점에 대한 대가가 동일한 범죄를 반복하려는 그들에게 반드시 돌아가리라는 선고다.
(1) 역사상에 남긴 유대인의 오점
예수께서 지적하신 유대인들이 역사 속에 남긴 오점은 '의인의 피를 흘리게 한 살인의 역사' 였다.
가인에 의해서 살해된 성경에 나타난 최초의 희생자인 아벨로부터 히브리어 성경의 맨 마지막 책인 역대하에 나타난 사가랴의 희생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배척하고 살해한 역사였다.
의인의 피를 흘리게 한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선민 이스라엘 역사의 오점이었다.
(2) 되풀이 되는 범죄
역사가 주는 교훈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는 데 의미가 있다.
그런데 슬픈 사실은 피 흘린 의인들의 장엄한 순교를 찬양하고 기념하면서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그 조상들의 시대에 살았다면 결코 이런 어리석은 학살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엄숙하게 다짐하면서 놀랍게도 그들은 같은 일을 되풀이했다.
본문에서 보면 지금도 바리세인들과 서기관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그의 아들을 죽이려 하고 있다. 의인의 피를 흘리게 하는 역사의 오점을 수없이 되풀이하며 여전히 입으로는 하나님을 찾는 자칭 의인인 유대인들이었다.
이 모순된 모습은 바로 바리새인들괴 서기관들의 행위를 증오하면서도 외아들을 주시기까지 한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한 채 죄악을 되풀이하여 행하고 있는 오늘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다.
(3)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길
① 참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자신의 부족을 발견하고 바울처럼 '겸손과 눈물'로 참회와 은총을 구하는 마음을 상실치 말아야 한다.
* 행 20: 19 -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교만을 먼저 버려야 한다.
* 잠 16: 18 -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우리는 주님께서 겸손한 자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을 일깨우시려고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비교하여 교훈하신 것을 잊을 수 없다.
* 눅 18: 9-14 –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② 성경을 깊이 상고해야 한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표준은 성경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체험이나 교회의 전통보다도 성경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 딤후 3: 16-17 –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③ 주님의 인격과 삶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주님은 예언된 하나님의 계시를 충실히 따르셨다.
* 마 4: 4, 7, 10 –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 마 26: 53-54 – 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54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그는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셨다.
* 마 26: 39 -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 히 5: 8 -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그는 한 사람을 구원하시는 데 자신을 송두리째 내놓으시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으셨다.
* 막 3: 1-6 –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그는 죽으므로 많은 열매를 맺는 한 알의 밀알이 되었다.
* 요 12: 24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역사의 오점을 되풀이하지 않고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고 주님의 인격과 삶을 본받는 가장 확실한 길은 주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사는 길이다.
* 요 15: 7, 10 –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우리의 생애에서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반복할 수도 없고 연습의 기회도 없다. 때문에 역사의 오점을 거울삼아 실패를 반복하는 길을 결코 따라가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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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세대는 그 피 흘린 죗값으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은 건강을 가져오고 행복을 안겨 줍니다.
사랑이 꽃피고 행복이 넘치는 웃음 가득한 날 되시길 바람니다.💖
이 세대는 그 피 흘린 죗값으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설교 감사합니다.
이 세대는 그 피 흘린 죗값으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