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마리아가 '나가기' 버튼을 클릭하자 모니터에서 인터넷 창이 닫혔습니다.
요셉은 실망한 얼굴로 한숨을 지었습니다. 베들레헴에는 여관이 하나밖에 없는데, 이미 모든 방의 예약이 끝났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래도 계획대로 출발해요. 별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베들레헴에 가는 동안 누군가 예약을 취소하거나 일찍 방을 비울 수도 있어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서류를 작성해서 제출한 다음, 곧바로 나자렛으로 돌아오면 돼요."
마리아와 요셉은 로마 황제의 인구 조사 명령에 따라 고향에 가서 서류를 제출해야 했습니다. 로마의 관리들은 제국의 모든 주민이 각자 자신이 태어난 지역의 관공서에 가서 신상 정보를 기록한 서류를 제출하게 했습니다. 관리들은 주민들의 삶을 한 곳에 앉아 통제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만삭의 몸으로 길을 떠나도 괜찮을까요?"
걱정이 된 요셉이 마리아에게 물었습니다.
마리아는 볼록한 배에 손을 얹으며 대답했습니다.
"아기가 기다려 줄 거예요!"
그렇게 마리아와 요셉은 여행 가방을 꾸려 기차역으로 나갔습니다.
12월이었고 날씨는 무척 추웠습니다.
베들레헴에는 각지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여관으로 향했습니다. 여관 로비는 많은 사람이 몰려 혼잡했습니다.
사진작가들과 신문기자들 그리고 방송국 시자들과 카메라 맨들이 로비 의자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매우 중요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들 가운데 누구도 마리아와 요셉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빈방이 있느냐고 물어보지도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예비 엄마인 마리아의 발걸음이 주춤거렸습니다. 갑작스럽게 진통이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요셉, 제 몸이 이상해요. 아기가 예상보다 빨리 나오려나 봐요."
젊은 요셉은 걱정스럽게 한숨을 쉬었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려 한다는 것은 기쁜 소식이었지만, 지금은 아기를 낳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를 안심시키면서 힘을 내서 잠시만 참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요셉은 곧바로 거리로 나가 아기를 낳기에 적당한 방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와 태어날 아기를 위해 방을 내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요셉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요셉은 처음에 찾았던 여관으로 돌아가 빈방이 있는지 물었지만, 거기에도 머물 곳이 없었습니다. 길을 지나던 어떤 친절한 아저씨가 두 사람을 보고는 산부인과가 딸린 병원을 가르쳐 주었지만, 병원은 20km나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요셉은 경찰서에 가서 도움을 청했지만, 그곳에는 당직 경찰관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경찰들은 모두 오늘 밤 베들레헴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는 어느 고귀한 부부를 경호하기 위해 출동했다고 했습니다.
여관 뒤쪽을 지나던 요셉은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작은 오두막 한 채를 발견했습니다. 그곳은 깨끗하게 정리된 작은 마구간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순하게 생긴 나귀 한 마리와 소 한 마리가 평화롭게 앉아서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두 짐승 사이에는 커다란 구유가 있었고 그 안에는 잘 마른 짚 다발이 깔려 있었습니다. 급한 상황에서는 곧 태어 날 아기와 엄마를 위한 잠자리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에게 돌아가 자신의 계획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얼굴이 창백해진 마리아는 요셉의 계{획에 찬성했습니다. 요셉은 아직 문을 닫지 ㅇ나호은 상점을 찾아가 먹을 것과 기저귀를 구입했습니다. 계산대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이 많아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마리아는 몹시 힘이 들었습니다. 상점을 나오자마자 마리아는 요셉에게 몸을 기댄 채 언덕 위 마구간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두 사람은 여관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화려하게 불을 밝힌 꽃마차를 발견했습니다. 여고나 앞에는 '환영합니다!'라고 쓰인 전광판이 번쩍이고 있었습니다. 마구간으로 향하는 길에는 경찰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습니다. 마구간 한가운데에는 나무로 만든 멋진 요람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 주위에는 외국에서 온 낯선 사람드링 모여 있었습니다.
그중 세 사람은 매우 값비싼 옷을 입고 있었고 두 손 가득 선물 상자를 안고는 참을성 없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머리를 흔들었는데, 머리에 쓴 무거운 왕관이 떨어질 것 같았습니다. 목자들과 농부들은 담배를 피우고 잡담을 나누면서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사진작가들은 마구간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댔습니다.
두 대의 큰 카메라를 매단 기중기가 마구간 앞쪽을 향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마리아와 요셉이 마구간에 들어가는 것을 막아섰습니다.
그때 어떤 남자가 메가폰을 입에 대고는 흥분한 목소리로 두 사람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거기서 비키세요! 저쪽으로 가세요! 잠시 후면 주인공들이 도착하는데, 당신들이 이 중요한 장면을 망치게 놔둘 수는 없어요!"
그 남자는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을 향해서도 외쳤습니다.
"지금은 매우 거룩한 시간입니다. 일반적인 축제가 아니에요! 이 순간을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다고요!"
마리아와 요셉은 당황해서 그곳을 떠났습니다. 천천히 발길을 되돌려 걷다가 아까 그 여관 앞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여고나 로비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여관의 주방 문이 열리면서 새하얀 김이 밀려 나왔고 청년 한 사람이 그 사이를 뚫고 큰 쓰레기통을 들고 나왔습니다.
청년은 두 사람을 잠시 바라보고는 가까이 다가가 말했습니다.
"빈방을 찾으러 돌아다니는 것이라면 헛수고예요. 오늘 베들레헴에 빈방이 있는 집은 없어요"
마리아의 창백한 얼굴과 요셉의 걱정 가득한 얼굴을 바라보던 청년이 물었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려고 하는 것 맞지요?"
청년은 쓰레기통을 내려놓고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방을 내어 드릴게요. 층계 아래 차지한 작은 방이지만 주방 옆에 붙어 있어서 매우 따듯합니다. 저는 오늘 밤새도록 만찬과 축제를 위해 주방에서 일해야 해요. 조금 시끄러운 것을 빼면 괜찮을 거예요. 그리고 여기서 가까운 곳에 사는 의사도 한 사람 알고 있어요. 제 친구거든요. 어서 방에 들어가 서 태어날 아기를 위해 준비하세요. 저는 가서 그 친구를 불러올게요."
청년은 까만 얼굴에 하얀 이를 보이면서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 거리를 텅 비어 있었습니다. 신문 기자들과 방송국 사람들은 물론이고 환하게 불을 밝힌 조명들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이 버린 휴지 조각들만 아침 산들바람에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갓 태어난 아기를 데리고 조용히 베들레헴을 떠났습니다.
25가지 성탄 이야기 중에서..........
가톨릭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