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다시 4.3
작년에 읽은 <녹색평론 2023년 겨울호>에서 서평으로 소개해주어
현기영 님의 <제주도우다>(전 3권)을 알게 되었단다.
현기영 님은 <순이 삼촌>이라는 단편소설로 유명하신 분인데,
<순이 삼촌>은 제주도의 아픈 역사인 4.3 사건을 다룬 몇 안 되는 작품이란다.
그것도 4.3사건을 금기시하고 있던
군사독재 시절에 4.3사건을 다룬 소설을 내셨어.
당시에는 큰 용기가 필요했던 일이야.
오랫동안 4.3사건의 대표 소설이었던 <순이 삼촌>.
현기영 님은 이번에는 3권짜리 장편 소설로 4.3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셨어.
<녹색평론 2023년 겨울호>에서 <제주도우다>의 서평을 보고,
꼭 한 번 읽어봐야겠다고 리스트에 올렸다가
얼마 전 4월 3일 즈음 아빠 나름대로 4.3 사건을 추념하면서 읽어보았단다.
밀린 독서편지를 차례로 쓰다 보니,
이제서야 <제주도우다>를 이야기하게 되는구나.
책 제목 ‘제주도우다’의 ‘우다’는 “입니다”의 제주도 방언이란다.
오늘은 <제주도우다> 1권의 이야기를 해줄게.
1. 해방직전 제주
임창근과 안영미는 결혼한 지 2년이 갓 지난 신혼부부란다.
그들은 4.3사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고 있었어.
안영미는 제주도 출신으로 아직 생존해 계시는 할아버지께서 직접 4.3사건을 경험하셔서
할아버지의 증언을 듣고자 했단다.
4.3사건이 발생한지 오래되었지만,
그 사건을 엮은 이들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아픔이기 때문에
그 사건에 대해 증언을 듣는 것만으로도
다시 상처를 줄 수 있어 조심스러웠단다.
안영미의 할아버지 안창세는 조심스럽게, 하지만 자세하면서 친절하게
임창근과 안영미에게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해주셨단다.
4.3사건이 일어난 1948년 안창세의 나이는 열여섯이었고,
소설의 시작은 그로부터 5년 전인 1943년 제주 조창리라는 곳에서 시작된단다.
1943년이면 안창세의 나이는 열 하나였어.
1943년이면 일제 말기로
얼마 전 조정래 님의 <아리랑>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일제의 강제 공출이 심해지고 징용, 징병 등으로 젊은이들이
전쟁터에 많이 끌려가던 그런 시기였단다.
열한 살 안창세와 누이 안만옥은 야학에 다녔는데,
그 야학은 불법이었단다.
이 야학이 일제에 발각되어 야학을 운영하던 야학 선생 이민하는 감옥에 갔다가
6개월만에 풀려났단다.
안창세의 아버지는 화물선을 이용하여 사업하고 있었는데,
1943년에는 일제에서 강제로 군수품을 나르게 하여,
군수 물자를 나르는 일을 하셨어.
그런데 어느날 큰 파도를 만나 돌아가시고 말았단다.
이후 창세의 집은 살림은 무척 어려워졌단다.
강제 징용과 징병으로 조천리 마을은 텅텅 비다시피 했단다.
징용과 징병으로 빈 제주도에
만주에 있던 일본군인 관동군이 잔뜩 들어와 주둔하고 있었어.
왜냐하면 미군과 싸울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어.
진주만 사건이 이후 미군과 일본은 전쟁 중이었고,
미군이 일본 본토에 진입한다는 소식이 있어서
관동군은 제주에 훈련 받고 있다가 여차하면 일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였단다.
관동군의 군수품과 식량을 제주도민들이 대주어야 하다 보니,
제조도민들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단다.
뿐만 아니라 관동군이 제주도에 주둔하고 있다는 것을 안 미군은
전투기를 제주도로 보내 툭하면 폭격을 가했단다.
이로 인해 일본군뿐만 아니라 제주도 평범한 백성들도 많이 죽었어.
또 제주도와 일본을 오가는 여객선과 군용선도 공격을 받아 침몰되기도 했어.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은 물론이고 말이야.
…
안창세의 누이 안만옥은 해녀로 일하면서 집안 생계에 보탰단다.
만옥의 아주 친한 친구인 따알리아(본명 : 이순배)가
간호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어.
그런데 어느날 간호사들이 전쟁에 징집되었다는 소문에
만옥도 친구 따알리아 걱정을 했단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해방이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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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272)
면장을 마을 밖으로 내친 시위대는 예순살의 원로 김시범 선생을 모시고 동쪽으로 일주도로변에 위치한 만세동산으로 행진해갔다. 기미년 3.1만세운동 때 올라 만세를 불렀던 동산에 그 운동의 주역으로 징역살이를 한 김시범 선생을 모시고 오른 조천리민들의 가슴에는 참으로 만감이 교차했다. 조천리의 모든 항일운동의 원천은 만세동산이었고, 항일로 점철된 마을의 수난사는 언제나 그들의 자부심이었다. 그런 만세동산에서 만세 소리가 다시 터져나온 것이다. 만세동산의 남쪽 사면을 빈틈없이 뒤덮은 군중은 강풍 맞은 대숲처럼 다 함께 온몸을 흔들면서 열렬하게 만세를 불렀다. 이십육년 만에 터져나오는 “조선 독립 만세”였다. 열세살 창세도, 열여섯살 행필도 땅에 두 발을 쿵쿵 구르면서 목이 쉬도록 소리쳤다. 일제에 의해 억눌렸던 땅, 그 땅에서 기운이 솟아올라 그들의 몸에 넘쳐오르는 것 같았다. 온 세상, 온 우주가 환희로 가득 찬 느낌이었다. 한층 가깝게 다가온 한라산을 향하여, 그 아래 질펀하게 펼쳐진 푸른 들판을 향하여, 저 푸른 희망을 향하여 함성을 지르고 또 질렀다. 휑하니 비어 있는 일주도로 또한 밝은 미래를 향한 새로운 질주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조선 독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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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해방 제주
해방이 된 이후 징용, 징병 갔던 사람들이 하나 둘 돌아왔단다.
수십 년 일제와 친일파들에 억눌려 살았던 그들에게 이제 평화가 찾아올 것으로
다들 기쁨을 만끽했단다.
해방이 되자마자 친일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일본군들도 사라졌단다.
조천리 사람들도 서로서로 태극기를 만들고
대한민국 만세를 며칠 동안 목청껏 외쳤다고 하는구나.
아직 나라의 기틀이 없고 지방 자치도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인민위원회를 중심으로 마을을 이끌어가고 있었단다.
인민위원회는 청년들이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청년들은 자주 회의도 하고,
당시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등에 관한 책들도 읽으면서
어떻게 하면 좋은 나라, 좋은 마을을 만들지 고민들을 했어.
멀리만 있던 희망이 현실로 다가오는 그런 기분이었어...
우리나라가 해방하는데 큰 공을 나라가 미국이었기에
미국에 고마움을 다들 느끼고 있었지.
그래서 맥아더 장군의 포고령에 의해
미군정이 들어오기 전까지 아직 철수하지 않은 일본군에게 치안을 맡겼을 때도
이해하려고 했단다.
하지만 일본군이 다시 총칼 들고 활보하는 것을 보고는
누군가는 옛 기억에 치를 떨기도 했단다.
얼마 후 미군정이 제주도에 들어오면서 일본군을 완전히 빠져나갔단다.
그런데 안 좋은 소식도 들려왔어.
삼팔선을 긋고 남쪽은 미군이, 북쪽은 소련이 통치를 한다는 거야.
그래도 당시만 해도 그 선이 모양이 바뀌면서 그렇게 오랫동안 이어질 거라 생각지 못했을 거야.
한시적으로 그랬다가 우리나라 정부가 온전히 구성되면
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
징병에서 돌아오는 사람들도
남으로 갈지 북으로 갈지 질문을 받았다고 하는데,
제주도 사람들은 남도 아이고 북도 아니고 제주도로 가겠다고 했다는구나.
그렇지, 제주도 사람들은 제주도 사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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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296)
“우리 삼팔선이 그어진 중도 몰랐수다. 전쟁 중에 정신없이 살아서…… 시모노세키 항구에서 출국심사하는 맥아더 사령부 미군이 우리한테 물읍디다. 북조선으로 가겠느냐, 남조선으로 가겠느냐고. 허 참! 북조선, 남조선이라니, 난생처음 듣는 말 아니우꽈? 그래서 물어십주. 거 무슨 말이냐고, 북조선은 뭐고 남조선은 뭐냐고 하니까 삼팔선이 그어졌다는 거라예. 허, 그것참!”
“그래서 모두 이구동성으로 말해십주. ‘우린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니고, 제주도로 가겠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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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시대에 소학교에서는 일본어만 가르쳐서
어린 학생들 중에는 한글을 모르는 이들도 있었대.
그래서 학교에서 시급하게 가르치려는 것은 한글이었다는구나.
…
1권의 이야기는 4.3 사건이 일어나기 5년 전부터
해방 직후까지 제주 조천리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로 끝이 났단다..
광복 후 청년들이 스스로 나라를 이끌려는 모습도 보기 좋았단다.
우리나라 스스로 충분히 나라를 이끌어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책에서 누군가 이야기한 것처럼 청년의 시대가 왔다고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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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
“청년 여러분, 지난날을 생각하면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저 악독한 왜놈들을 위해 종노릇한 일을 생각하면 참으로 지긋지긋해여마씸. 식민지 청년이란 얼마나 가난하고 누추하고 비굴한 존재였수과? 우리는 채찍 맞아 돌아가는 팽이처럼 날이면 날마다 매 맞고 구박을 당해야만 했수다. 그러나 이제는 해방이우다. 압제의 족쇄와 쇠사슬이 풀리고 해방이 왔수다. 금방 안세훈 선생님의 말씀, 참말로 옳은 말씀이우다. 이제 청년의 시대입니다. 우리의 시대란 말이우다!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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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등장인물들은 비극적인 미래가 있을지
아마 상상도 못하고 있었을 거야.
그 비극적이고 슬픈 이야기는 조만간에 이어서 해줄게.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내 이름은 임창근, 나이는 서른두살, 전주가 고향이고, 한살 아래인 안영미는 제주가 고향인데, 우리 둘은 결혼한 지 이년 반밖에 안 된 풋내기 부부이다.
책의 끝 문장: 양쪽 광대뼈가 돌멩이처럼 단단하게 불거진 그의 얼굴에 밝은 웃음이 번졌다.
책제목 : 제주도우다 1
지은이 : 현기영
펴낸곳 : 창비
페이지 : 380 page
책무게 : 425 g
펴낸날 : 2023년 07월 03일
책정가 : 17,000원
읽은날 : 2024.04.01~2024.04.03
글쓴날 : 2024.04.2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