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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가톨릭문화원 원문보기 글쓴이: 익명회원 입니다
축일 3월2일(3월6일)
성녀 아녜스는 1205년경 보헤미아의 왕 프레미슬라우스의 딸로 태어났다. 황제의 청혼을 거절하고 1236년 왕궁 근처에 가난한 자매 수도원을 지어 동정녀들을 살게 한 후 스스로 그곳에 입회하였고 오랫동안 수도원장으로 봉사하였다. 성녀 클라라와 특별한 우정을 나누었고 여러 번에 걸쳐 서신 교환을 하였다. 1280년에서 1283년 사이에 선종하였다.
*성녀 클라라(축일:8월11일.게시판1312번.1313번. 성클라라수도회창설자.문장:성체 현시대) *프라하의 성녀 아네스는 성 벤체슬라오(축일:9월28일.게시판1389번.체코슬로바키아의 수호성인)의 후손이며,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축일:11월17일.게시판1474번.재속프란치스코회의 수호성녀)의 사촌 자매이다.
3월2일 프라하의 성녀 아네스 (2회)
기도
묵상
성녀 클라라가 프라하의 성녀 아녜스에게 쓴 편지
프라하의 아녜스가 누구이며 그녀가 어떻게 클라라를 알게 되었을까? 아녜스는 1205년에 프라하에서 태어난 공주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보헤미아의 Premsyl Ottokar I세 임금(1197-1230)이고, 어머니는 헝가리의 Arpad 왕조 출신 Constance이다. 아녜스의 사촌 자매가 재속 프란치스코회의 수호성인인 헝가리의 성녀 엘리자베스이다.
아녜스가 3살밖에 되지 않았을 때, 믿을만한 전통에 의하면 Silesia의 공작의 아들인 Boleslaus와 약혼을 하게 되었는데, 이 사람이 금방 세상을 뜨게 되었다. 그녀는 Premonstratensian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았다. 한 때 그녀는 후에 헨리 4세 황제가 되는 프레데릭 2세 황제의 아들과 약혼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그는 오스트리아의 Luke Leopold 공작의 궁정에서 살았었다. 그래서 아녜스는 그 궁정으로 보내졌지만, 헨리가 Leopold의 딸과 결혼하는 바람에 그녀의 약혼은 후에 그녀의 아버지에 의해서 파기되었다. 아녜스는 프라하로 되돌아왔는데, 그 때 영국의 헨리 3세로부터 다시 한 번 약혼 신청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 젊은 공주는 동정 서원을 하였고, 모든 혼인 신청을 거절하였다.
성녀 클라라와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1225년에 첫 번째 작은 형제들이 오게 되었다. 아녜스는 그들을 통해 아시시의 클라라와 그녀의 자매들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한 편, 그녀의 사촌인 엘리자베스는 성 프란치스코가 창설한 참회자들의 회에 가입하여, Marburg에 병원을 짓고,거기에서 병자들을 돌보며 살았다.
1230년 아녜스의 아버지 Premsyl Ottokar I세가 죽자 그녀는 아시시의 성녀 클라라의 생활양식에 따라 자발적으로 가난의 삶의 받아들이기로 결심하였다. 그녀의 오빠인 Wensenslaus I세가 1232년에 그녀에게 땅을 주어서 거기에 성 프란치스코에게 봉헌하는 병원을 지어 그 병원을 Crosiers of the Red Star(빨간 별이 새싹들? - 이들은 나중에 성 아오스딩의 회칙을 받아들인 봉사단체이다) 에게 맡겨 운영하도록 하였다.
그녀는 또한 작은 형제들을 위하여 성당과 수도원을 지어 주었고, 1233년 교황 그레고리오 9세에게 명확히 청원하여 자신의 삶을 인준 받은 후, 트렌트에서 그녀의 삶에 함께 하고자 들어온 가난한 자매들을 위해 수도원을 지어 주었다. 아녜스는 성 다미아노의 가난한 자매들이 받아들인 복음적 삶이 양식에 따라 살기를 원했다. 그녀는 1282년에 프라하에서 죽었으며, 1874년에 비오 9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9년 11월 12일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녀를 시성하였다.
성 다미아노 수도원 회랑
클라라는 아녜스에게 여러 편의 편지를 썼다. 4개의 편지가 다 보존되어 있다. 세 번째 편지는 1238년으로 연대를 추정하는데, 그것은 1237년에 그레고리오 교황이 클라라회원들에게 시토회원들처럼 금육을 지키라고 권함에 따라 금육을 지키는 것과 관련한 어렴움들에 대한 답을 이 편지에서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 편지는 또한 자신이 성 프란치스코에게 봉헌하여 지은 병원(혹은 간호시설)이 다른 수도 단체에 의해 관리되어서 그녀 자신은 현세의 관심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한다는 것이 언급하고 있다. 교황 그레고리오 9세는 이 생각에 대해 애초에는 반대하였으나, 후에는 Crosiers of the Red Star에게 병원을 넘겨주는 것을 받아들였다. 마지막 편지는 한참 후인 1253년에 쓰여지는데, 이때는 클라라가 죽을 무렵인데, 연대를 그렇게 보는 이유는 이 편지에서 클라가 자신의 동생 아녜스를 언급하면서, 아녜스가 클라라의 죽음 몇 달 전에 Monticelli 수도원으로부터 돌아왔다고 쓰고 있기 때문이다.
성 다미아노 수도원 회랑의 다른 모습
이 편지들은 상당히 신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 편지들은 여성적 영성의 다양한 주제들을 발전시키고 있다: 특히 그리스도의 신비적인 정배에 관하여; 봉헌된 동정성; 가난의 찬미; 가난하고 못박히신 그리스도의 관상; 육화의 신비 안에서의 복되신 동정녀; 단식과 금식에 관한 실질적인 규정들; 그리스도의 여러 신비들 안에서 관조되는 그분의 겸손. 여기서 우리는 이 편지들에 대해서 몇 가지 질문들을 던지는 것으로 자족함이 좋겠다. 보헤미아의 아녜스에게 보낸 편지들은 1,2,3, 또는 4LAg라고 표기될 것이다.
“자매는 그분을 사랑할 때 정결하고, 그분을 만질 때 더 깨끗해지고, 그분을 맞일할 때 그대는 동정녀입니다”(1LAg 8)
“가난을 사랑하고 포옹하는 이들에게는 영원한 부(富)를 부여하는, 오 복된 가난이여! 가난을 소유하고 또 소유하기를 열망하는 이들에게는 하느님께서 하늘나라를 약속하시고 의심할 여지없이 영원한 영광과 복된 생명을 주시리니, 오 거룩한 가난이여!
말씀 하시자 존재하게 되었고 또 그렇게 존재한 하늘과 땅을 다스리셨으며 지금도 다스리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황송하옵게도 무엇보다 특별히 포옹하신, 오 성스러운 가난이여!“(1LAg 15-17).
“오히려 가난한 동정녀여, 가난하신 그리스도를 포옹하십시오”(2LAg 18).
"고귀하신 여왕이여, 그대의 정배를 닮으려는 열망으로 바라고, 깊이 생각하고, 관상하십시오“(2LAg 20).
“그대의 마음을 영원의 거울 앞에 놓으십시오. 그대의 영혼을 영광의 광채 속에 두십시오. 그대의 마음을 신적 실체의 형상 가운데에 두고, 그대의 전존재를 관상을 통하여 하느님의 모습 안에서 변화시키십시오. 그러면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태초부터 하느님 몸소 마련해 놓으신 분의 벗들이 느끼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3LAg 12-14).
“동정녀께서 잉태하시고 거룩한 태중의 작고 은밀한 곳에 보셨고, 동정의 품에서 기르신 그 위대한 하느님의 지극히 감미로우신 어머니께 매달리십시오”(3LAg 18-19).
“그러므로 지극히 사랑하는 자매여, 주님 안에서 부탁하고 간청합니다: 그대가 지켜 온 단식은 무분별하고도 불가능한 것으로 내가 알고 있는데 이 엄격함을 지혜롭고 신중하게 삼가시고...”(3LAg 40).
“예수 그리스도의 정배요. 오, 왕후이신 자매여, 이 거울을 매일 들여다보시고 지존하신 임금님의 딸과 지극히 정결한 정배가 단장해야 하는 모든 덕행의 꽃과 의복으로 속속들이 단장하고...
먼저, 거울의 맨 밑에서부터 보시고, 말구유 위에 강보에 싸여 주워 계시는 그 가난을 깊이 바라보십시오. 오, 놀라운 겸손이여, 오, 기막힌 가난이여! 천사들의 임금이시고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분이 구유에 누어 계시다니! 다음으로, 거울의 중간을 보시고 그분께서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 겪으신 무수한 수고와 고통 그리고 그분께서 지니신 겸손과 함께 복된 가난을 깊이 바라보십시오. 이제 끝으로 거울의 맨 위를 보시고 십자가 나무 위에서 고통 당하시고 거기에서 가장 수치스런 죽음을 맞이하시기를 원하신 그분의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을 깊이 바라보십시오” (4LAg 15; 19-23).
- 작은형제회홈에서www.ofm.or.kr -
성녀 클라라와 자매들이 사용하였던 성 다미아노 성당 가대 글라라의 편지들은 복음의 실행에 전적으로 마음을 바친 영혼과 예수 그리스도 및 마리아를 뒤따르는 영혼을 그리면서 자기 자매들을 이 길로 이끌려는 열의를 보이고 있다. 글라라의 편지들은 자신이 체험한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다 :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그 실천 방법, 관상생활과 그 방법이 그것이다. 이 편지들은 글라라의 영성을 파악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회칙과 유언은 글라라가 봉헌된 생활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는 반면에, 편지들은 하느님과 단순하고도 심오한 일치를 이룬 그녀의 내적 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글라라가 말하고 있는 관상의 길과 영성은 그 당시에는 아주 독특한 것이었다. 글라라는 당대의 시대 풍조와 정신에 아주 탁월하게 개방적이었고, 프란치스꼬가 그녀에게 불어넣어 준 복음 정신을 잘 이해하였다. 복녀 아녜스에게 보낸 편지들의 신빙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또한 와딩(Wadding)의 연대기에서만 전해지고 있는 브르쥬의 에르멘뚜르디스 자매에게 보낸 편지도 그 신빙성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프라하의 복녀 아녜스는 1203년에 태어났다. 그녀는 1232년에 작은 형제들을 프라하에서 알게 되었고, 작은 형제들을 위하여 성당과 수도원을 지어 주었으며 병원도 지었다. 그리고 즉시 작은 형제들의 생활에 매력을 느껴, 1234년 6월 11일(성령강림 대축일)에 아녜스는 병원 근처에다 수녀원을 지은 다음에 다른 곳에서 글라라회 자매들을 데리고 와 함께 수도생활을 시작했다. 그 때부터 그녀는 글라라와 서신 왕래를 하기 시작하였고, 글라라와 마치 경쟁이나 하듯이 엄격한 생활양식을 실천하였다. 아녜스는 이 수녀원에 54년간 살았고, 1282년 3월 2일 세상을 떠났다. 아녜스는 일생 동안 한 번도 글라라를 만난 적은 없었다. 그녀는 교황 비오 9세로부터 1874년에 복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에르멘뚜르디스는 쾰른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고, 1240년에 고향을 떠나 은둔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녀는 지금의 벨지움에 있는 브르쥬로 가서 12년간 은둔생활을 하였고 그러다가 아씨시의 글라라에 관한 소식을 전해 듣고서는 성녀를 만나기 위하여 아씨시를 방문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글라라를 만났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녀는 은둔소로 다시 돌아와 자기의 은둔소를 글라라회 수녀원으로 바꾸었고, 그 후에 그 지방에다 많은 글라라회 수녀원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프라하의 복녀 아녜스에게 보내신 편지 Ⅰ : 글라라는 이 편지를 아녜스가 수녀원에 입회하기 전인 1234년에 썼다. 공주인 아녜스가 그렇게 어려운 생활을 받아들였다는 소문이 전 세계에 퍼져 이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 준 사건이 되었다. 교황 그레고리오 9세가 1234년 8월 30일에 아녜스에게 쓴 편지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글라라는 이 편지에서 아녜스에게 공경과 존경심을 표하는 동시에, 이승의 영화와 하늘나라의 복(福)을 대조하면서 그녀에게 용기와 격려를 보내고 있다. 프라하의 복녀 아녜스에게 보내신 편지 Ⅱ : 이 편지는 아녜스의 수도생활 초기인, 엘리아 형제가 작은 형제회의 총봉사자로 있던 시기에 씌어진 것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 편지를 1235 - 1236년 사이에 씌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오래 된 사본에서는 이 편지에 “훌륭한 생활양식에 대한 굳센 항구심”이라는 부제(副題)속에 항구할 수 있는 비결을 제시하고 있다. 즉 그 비결은 가난하신 그리스도를 사랑 안에서 끊임없이 바라보는 생활이라는 것이다. 프라하의 복녀 아녜스에게 보내신 편지 Ⅲ : 이 편지는 1238년 초에 쓴 것이다. 교황 그레고리오 9세가 아녜스에게 씨토회 수도자들처럼 완전한 금육을 요구했다. 이에 아녜스가 단식재와 금육재에 관하여 글라라에게 문의를 하였고, 글라라가 아녜스에게 답서를 보낸 것이 바로 이 편지다. 더 나아가서 글라라는 아녜스에게 기도와 가난에 엄격한 생활을 지혜롭게 하도록 격려를 보내고 있다. 프라하의 복녀 아녜스에게 보내신 편지 Ⅳ : 몬떼첼리 수도원에 거주하던 글라라의 친동생인 아녜스가 글라라의 임종을 지켜보기 위하여 성 다미아노 수녀원으로 돌아온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 편지는 1253년 글라라가 임종하기 얼마 전에 쓴 것이다. 이 편지는 우리가 글라라의 전생애를 통해서 느낄 수 있는 그녀의 찬란한 사랑을 반사하고 있다. 글라라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거울의 비유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브르쥬의 에르멘뚜르디스 자매에게 보내신 편지 : 루까 와딩에 의하면, 글라라가 에르멘뚜르디스에게 두 통의 편지를 썼다고 한다. 그러나 루까 와딩은 그 원본들을 전해 주지 않고 이 두 통의 편지를 하나로 요약해서 이렇게 전해 주고 있다. 문장의 성격은 글라라의 그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그 정신만큼은 글라라의 것이다.
[복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 읽는 성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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