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城北洞) 비둘기
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들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들을 성자(聖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돠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월간문학』 창간호, 1968. 11)
[어휘풀이]
-구공탄 : 구멍이 뚫린 연탄을 통들어 이르는 말. 십구공탄
[작품해설]
이 시는 1960년대 중반 이후 급격히 진행돈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황폐해진 자연으로부터 점차 소외되어 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성북동 비둘기’를 통해 보여 주는 작품이다. 따라서 비둘기는 사랑돠 평화, 축복의 메시지 전달자라는 일반적 상징을 뛰어넘어 근대화, 공업화로 소외되어 버린 현대인을 비추어 주는 거울이며, 그에 대한 관찰자 내지 비판자로 형상화되어 있다.
기·서·결 3연으로 구성된 이 시는 1, 2연에서 묘사를 통해 비둘기의 처지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다음, 3연에서 명시적으로 주제를 제시하고 있다. 먼저 ‘번지가 새로 생겼다’는 표현은 주택가가 들어섰다는 뜻이지만, 문명의 침투로 인한 자연의 파괴를 의미하며, ‘번지가 없어졌다’른 표현은 비둘기가 보금자리를 잃어버렸음을 뜻한다. 또한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 ‘채석장 포성’ 등은 현대 문명의 병폐를 의미하며, ‘가슴에 금이 갔다’는 것은 이러한 문명의 병폐로 인해 파괴된 인간성, 즉 사랑이나 평화가 모두 사라졌음을 뜻한다. 그리고 ‘새벽부터 돌 개는 산울림에 떨다가’와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와 같은 구절은 현대문명에 의해 파괴된 인간 존재의 애처로움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기계 문명으로 인해 점차 세속화되어 가는 현실 속에서, 이제는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어 버린 그들이 ‘금방 따낸 돌 온기에’ ‘향수’를 느낄 수밖에 없는 비극적 정경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이 시는 인간에 의해 저질러진 자연의 파괴로 말미암아 생존의 터를 상실한 비둘기가 채석장 포성에 지향없이 쫓기며 넉넉했던 옛날을 그리워하는 비극적 모습을 제시한다. 이 시는 이를 통해 오늘날의 황폐화된 인간 삶을 고발하고 참다운 삶의 회복을 희구하는 한편,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촉구한다. 그러므로 이 시는 ‘비둘기’를 통해서 현대 문명의 비정함과 소외의 비극을 제시하여 사랑과 평화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과 인간성 회복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보듯이, 감광섭의 시는 근원에의 향수와 사회 비평 의식에 입각해 있다. 그의 시는 현대적 의미의 관념을 깊이 간직하면서도 관념어의 구사나 표현의 추상적 부분을 제거하여 구체적 표현의 미를 세련된 솜씨로 나타낸 것이 특징이다.
[작가소개]
김광섭(金珖燮)
이산(怡山)
1905년 함경북도 경성 출생
1924년 중동학교 졸업
1932년 와세다대학 영문과 졸업, 극예술연구회 참가
1945년 중앙문화협회 창립
1950년 『문학』 발간
1952년 경희대학교 교수
1956년 『자유문학』 발간
1957년 서울시문화상 수상
1961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974년 예술원상 수상
1977년 사망
시집 : 『동경』(1938), 『마음』(1949), 『해바라기』(1957), 『이삭을 주을 때』(1965), 『성북동
비둘기』(1969), 『반응-사회시집』(1971), 『김광섭시전집』(1974), 『동경』(1974),
『겨울날』(1975), 『김광섭』(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