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정 <동포세계신문> 편집위원 "한국생활 10주년 기념문집"《거꾸로 흐르는 압록강》을 발간내며
도서출판 동포세계는 지난 12월 1일 김충정 선생의 기념문집"거꾸로 흐르는 압록강"을 출간하였다. 본문은 김충정 선생이 서문으로 쓴 글이다.
“거꾸로 흐르는 압록강”이라는 책을 엮어본다. 한국에서 십년동안 있으면서, 여러 신문사에 글을 쓴답시고 말 타고 꽃 구경 하듯이, 기억 속의 꽃동산에서 동에서 한 포기, 서에서 두 포기 겨우겨우 이어가며 글쓰기를 지탱하여 오늘까지 걸어오니, 서산에 넘어가는 해로 어언간 고희지년(古熙之年)이 지난 지도 벌써 3년이 되었다.
만약 산 설고 물 선 고국에 처음으로 온 조선족들의 한국생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수만 있다면 필자는 무상의 안위를 느낀다. 이 책은 기본상 고국의 금수강산 명승지 유람기와 중국의 몇 곳 명승고적을 사진과 동봉하여 편집하였고, 동포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기행각들도 파 헤쳤다. 이 책에는 재한중국동포를 위하여 몸과 마음, 모든 재력과 생명까지도 불사하는 종교단체와 민간단체들의 노고(勞苦)도 게재하였고, 필자가 몸을 담고 있는 <동포세계신문사> 좌담회 토론 현장도 얼굴을 보이였다. 어찌 보면 재한조선족이 10년 동안 걸어온 발자취의 일각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누구라도 아름다운 동년이 있기 마련이다. 비록 겨울에 아버지가 ‘이잡이’를 하고, 어머니는 ‘가마시’를 짜고, 꼬마악당들은 마을의 옥수수를 도둑질하여 구워 먹는 65년 전의 암담한 추억이라 하지만 지금 그래도 그때가 그립다. 남들이 보면 웃을지는 몰라도, 나의 동년 몇 편을 독자들에게 보인다.
필자는 중국에서 문화대혁명 이전의 끝자락 본과 대학생으로 7년의 대학생활을 1970년도에 마치었다. 암담한 십년 동란으로 새 중국 창건 후 처음으로 문화 단층(斷層)이 생기게 되니 11계 3중 전회(78,12,18 ) 이후, 특히는 1987년 제13계 11중 전회에서 등소평이 군위주석으로 위촉된 후, 원래의 <구린내 나는 아홉째 >를(臭老九) 정부나 기업에서 관리급 공직인원으로 기용하였다. 동북림업대학 기계과 동기 졸업생들 속엔 국무원 림업부 부장, 성의 림업청 청장, 림업부 산하 각 림업국(현, 시급) 국장, 일부분은 현장. 시장, 성장까지도 위촉되었다. 동기 학생들은 기본상 싹쓰리로 관리급 공직인원이 된 셈이다. 망망한 대해에 거센 동풍이 부니 바다위에 떠다니는 작은 돛단배도 동쪽으로 가기 마련이다. 거센 바람의 힘에 끌리여 나도 림업부에서 조직하는 각 림업국 처장 이상 인원만으로 응집된 품질관리 감사단(ISO) 일원으로 전국을 돌아다니게 되었고, 후에는 길림성 품질관리감사단 일원으로도 길림성 곳곳을 돌아다니며 큰 소리 떵떵 거리며, 실속 없는 헛소리를 했으니 지금도 내가 나 자신을 질책하고 우숩게 생각하면서 어떤 때는 피식 웃기도 한다. 그때 감사를 받는 지역에서는 통일된 준칙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거액의 돈을 내여 부근의 명승고적을 관람시키는 일이다. 그래야 <림업부품질상>, 혹은 <국가급품질상(國家級質量獎)>을 따내어 상품도 잘 팔리고, 사람마다 급여가 오르니 할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 때의 그 나뿐 준칙으로 하여 필자는 전국의 방방곳곳을 많이 답사하게 되였는데 지금도 유람이 고질로 되었는지 한국에 와서도 시간만 나면 행장을 차려 유람길에 올랐다.
960만 평방키로미터 큰대지에 웅위로운 명승고적이 수 없이 많지만 한국의 그림과 같은 아름다움의 극치에 이르지는 못한다. 화려한 삼천리 금수강산,!! 그 본연의 참 모습을 세상에 널리 알리려고 무등 애를 썻지만, 한 초학자의 굶뜬 수평으로 글을 썼으니 삼천리 이 강산에 미안하기 그지없다.
내 나이 고래희(古來熙)라 광복 전에 태여나, 어린아이 때에 토지개혁, 삼반오반, 숙반을 거쳤고, 중등학교 때에 반우파투쟁 (1956~1958), 인민공사, 대약진, 총로선, 삼면 홍기시대(1958~1960), 삼년 재해시기 (1959~1962), 문화대혁명 10년 동란시기(1966년~1976년), 11계3중전회(1978.12.18.) 이후부터 시작된 개혁개방시대 등을 거쳤다.
특히 조선족으로 놓고 볼때 가장 획기적인 시대, 한중 간 외교관계 정상화가 실현되어 오매에도 그리던 부모님들이 돌아가시면서 “뼈라도 고국에 묻어 달라”던 그렇게도 잊지 못할 고국에 돌아왔다. 어머님의 유언대로 고국에 돌아 왔지만 그렇게 평탄하지만 않은 삶 그 자체였다.
동포들에 향한 사기행각, 3대 자유, 불법체류자 강제출국 반대, 위명여권자사면, 중국동포의 권익향상을 위하여 동분서주하는 정직한 기독교인 서영희 대표, 김해성 대표, 서경석 대표, 연고가 없는 중국동포들에게 무료나 다름이 없는 사랑의 집을 제공하는 법무부 지정 중국동포체류센터, 동포교회 사랑의 집, 한중사랑교회 사랑의 집, 서울조선족교회 사랑의집. 필자는 중국동포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사건, 악인들과 은인들에 대하여 내 딴에는 정론을 펴느라고 억지를 썼지만 제대로 된 정론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한국에 10년 살면서 동포들의 희노애락, 망각된 삶, 다단계에 함몰되어 처절한 운명을 살아가는 열악한 인생에 대하여 신문에서 대서특필 하려 하였지만 뜻대로 된 것이란 얼마 없다. 나로 나 자신을 질책한다. 부끄러운 일이다.
이 책이 나오기 까지는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2008년 초 천진 ‘외국어서점’에서 우연하게 <한국은 없다>, <한국인이여 상놈이 되라>는 책을 사게 되었다. 한국행을 미끼로 한 한국 불법 브로커 사기에 대한 비판이고 한국에 대한 비판서였다. 연합뉴스 1997년 9월 30일 보도(한국행이 시작되어 1997년까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1997년 9월 외교부 국감 결과 발표, 진실성 인정되는 피해사례 2백70건, 피해자 3천여명 달해, ... 한국인 사기범 3백명, 사기금액 4천만 인민폐(한화 약 44억원)이다” 두 책을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3년 동안 필자는 고양시에서 3D업종 재활용회사에서 100여명 한국인들과 함께 쨍하고 해뜬 날도, 음침한 비온 날도 울고 웃으며 서로 부대끼며 땀방울도 한 곳으로 흘러버렸다. 한국의 하늘을 떠 바치고 있는 서민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더 깨끗하고 부지런하고 주인공적이였다. ‘한강의 기적’이 어떻게 되어 나왔는지 실감이 갔다.
어머님 생전에 그렇게도 가고 싶어하던 삼천리 금수강산을 필자가 대신하여 돌아보았다. 그림같은 땅, 억세고도 정직한 서민들.!! 몇몇 안 되는 인간 쓰레기 같은 불법 브로커가 있다 하여도, 조선족의 훌륭한 고국, 산 좋고 물 좋고 사람이 좋은 삼천리 금수강산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이 책이 나오게 될 때까지 여러 신문사 사장님들의 지지에 감사를 드린다.
어처구니 없는 문장이라도 동포세계신문 김용필 대표의 노고로 이 책을 만들어 놓았으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사)
(사)전국농업기술자협회 윤천영 회장님과 함께
저자 김충정 선생(사진 왼쪽)은 한국에 첫발을 내딛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한중사랑교회에서 중국동포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생활하면서 재한중국동포사회에 대한 글을 써서 동포세계신문 등에 기고해 왔다. 사진은 지난 12월 5일 한중사랑교회 목양실에서 서영희 목사와 이상부 장로에게 출간된 책을 선사하고 담소를 나누는 장면이다.
국적회복동포희망연대 이철구 회장과 함께
@동포세계신문(友好网報) 제347호 2015년 12월 15일 발행 동포세계신문 제347호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