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과 싸워서 이기는 법
아프리카나 남미의 여러 나라에서는 기본 영양을 섭취하지 못해 갖가지 질병에 시달리다가 죽어가는 영아 사망률이 매우 높다. 더욱 심각한 것은 빠른 시일 안에 이 비율이 낮아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도 40여 년 전까지는 영양 결핍으로 얼굴에 버짐이 피고, 각기병으로 고생하는 어린아이들이 많았다. 점심시간이면 친구들 몰래 밖으로 나가 수돗물로 배를 채우는 아이들도 비일비재했다.
물론 국민 소득이 급상승해서 세계 몇 위를 자랑하는 지금도 우리 사회 한쪽에서는 굶주리는 이들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또한 과도한 영양 섭취로 비만을 걱정하는 이들도 늘어나는 형편이다.
전국 곳곳에서 살을 빼기 위해 운동을 하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스포츠 센터가 성업 중이다. 비만 때문에 오는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 그만큼 크다는 반증이다.
몇 해 전 한 잡지에서는 ‘다이어트 - 21세기의 신흥 종교’라는 제목을 내걸고 이 ‘살빼기 전쟁’을 특집으로 다룬 적이 있다. 그때 이 기사를 처음 대하면서, “어떻게 종교라는 표현까지 쓸 수 있을까?” 했지만, 기사를 다 읽어보고 주변을 돌아본 뒤에는 “아, 과연 그럴 수 있겠다”라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굶주림’뿐 아니라 이제 ‘비만’도 인류 공동의 적이 된 것이다.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적당하게 나온 배가 높은 신분의 표시였다. 그래서 “미국 장군들과 달리 우리나라 장군들은 하나같이 배가 튀어 나와서 뒷짐을 지고 걷는다”는 말이 떠돌았다. 지금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인도 경제가 급성장하여 국민 소득 또한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지만, 그곳의 사정도 아프리카 여러 나라보다 그리 나을 게 없어 보인다. 경제 성장의 혜택을 보는 일부 계층은, “수 억 원을 들여 자식 결혼식을 치렀다”는 소식이 전해지는가 하면, 깨끗한 마실 거리와 먹을거리를 구하지 못해 굶주리다가 갖가지 질병에 시달리며 죽어가는 어린아이들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는다.
빠쎄나디 왕의 비만 퇴치법
비만’ 환자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면,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이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신자유주의 시대의 태생적 구조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처님 당시에도 비만 때문에 고생한 사람 이야기가 경전에 전해지는 것으로 보면, 이것이 꼭 신자유주의 시대만의 특별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부처님께서 가장 오래 머무셨던 싸밧티(舍衛城) 기원정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꼬쌀라(Cosala)의 빠쎄나디(Pasenadi) 왕은 함박 하나 정도의 밥과 카레를 먹곤 했습니다. 그때 빠쎄나디 왕이 식사를 마치고 배가 잔뜩 부른 채 숨을 헐떡거리면서 세존께 와서 예를 올리고 한쪽에 떨어져 앉았습니다. 그때 세존께서 빠쎄나디 왕이 배가 잔뜩 불러 숨을 헐떡거린다는 것을 아시고는 그 순간 이런 게송을 읊으셨습니다.
“항상 마음을 챙기고
자기가 먹는 음식을 절제할 줄 안다면,
그 사람의 병은 줄어들고
목숨을 보전하며 천천히 늙습니다.”
바로 그 순간 브라흐민(브라만)청년 쑤닷싸나(Sudassana)가 빠쎄나디 왕 뒤에 서 있었습니다. 빠쎄나디 왕이 그 젊은이에게 말하였습니다.
“자 쑤닷싸나야, 세존께 이 게송을 배워서 내가 식사를 할 때마다 그것을 내게 읊어다오. 그렇게 하면 네게 매일 종신 수당으로 100 냥(kahapana)씩을 주겠다.”
그 브라흐민 청년 쑤닷싸나가 “예, 전하.”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브라흐민 청년 쑤닷싸나는 세존께 이 게송을 배워서 빠쎄나디 왕이 식사를 할 때마다 읊었습니다.
“항상 마음을 챙기고
……
목숨을 보전하며 천천히 늙습니다.”
그 뒤로 꼬쌀라의 빠쎄나디 왕은 차츰 밥 양을 줄여 한 접시 분량까지 줄였습니다. 나중에 몸이 아주 날씬해져서, 손으로 사지를 어루만지게 되었고 그 순간 이런 감격의 말을 쏟아냈습니다.
“세존께서 두 종류의 선(善) - 현생과 내생에 속하는 선 - 과 관련해 내게 연민심[悲心]을 보여주셨네.” (『쌍윳따니까야』 1-3, 「음식물 한 함지박」)
음식에 대한 탐욕 때문에 살이 너무 쪄서 손으로 자기 팔다리를 제대로 어루만질 수도 없었던 빠쎄나디 왕이 부처님께서 처방해주신 다이어트 법으로 음식 조절에 성공해 살을 뺐고, 그 당장[현생]의 혜택을 보고 중도(中道)의 가르침을 체득하는 내생의 혜택까지 맛보게 되었던 것이다.
음식에 탐착하는 마음 없어야
사람의 수많은 욕심 가운데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욕심이 가장 원초적일지도 모른다. 이 욕심에서 다른 모든 욕심이 비롯되고, 탐욕으로 바뀌어갈 것이다. 그만큼 ‘먹고 마시는 욕심’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게 힘든 것이고, 옛날이나 지금이나 수많은 사람들이 갖가지 방법을 다 썼던 것이다.
매달 적지 않은 돈을 써가며 스포츠 센터에 가서 땀을 흠뻑 흘려서 살을 빼는 요즈음의 ‘비만 퇴치법’과 부처님께서 빠쎄나디 왕에게 처방해주었던 다이어트 법 중 어느 것이 오늘날 사람들에게 더 잘 맞을까?
그 판단은 각자의 몫이지만,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음식’을 바라보는 기본 시각을 다음과 같이 갖기만 한다면 ‘비만’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것은 유달리 먹는 것에 대한 탐욕이 강했던 밧달리(Bhaddali)에게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가르침이다.
“음식이란 맛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몸을 지탱하기 위한 것이오. 그러므로 음식을 얻었을 때에는 시주자의 은혜를 생각하고 먹되, 탐착하는 마음이 없어야 하오. 다만 그 음식으로 몸을 보존하여 묵은 병을 고치고 새로운 병이 생겨나지 않도록 기력을 충족하도록 해야 하오.” (『증일아함경』47, 「목우품(牧牛品)」)
(《여성불교》2009년 8월호, <붓다시대의 삶>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