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동정심<천수답의 일요칼럼>
목회하다 보면 정말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난다. 기대하지 않은 귀인을 만나기도 하고 보람과 기쁨이 넘치는 인연을 맺기도 한다. 그래서 목회자의 삶이란 참 기대되고 흥분되는 순간들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나 간혹 그런 목회에 갑자기 유리창을 깨고 날아든 돌덩이처럼 목회 평정심을 깨뜨리는 일들이 종종 있다.
며칠 전에 교회에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최근에 교회를 출석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자주 전화가 와서 잔뜩 기대하고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목사님이나 부목사님 좀 바꿔 주세요” “네, 전데요” “목사님, 거기가 새 울산 교회지요?” 이렇게 시작한 그는 이미 우리 교회를 다 조사한 사람처럼 교회의 주변 건물들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로 말을 이어갔다. 그는 포항 흥해읍에 사는 박모씨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우리 교회 옆에 살다가 수년 전에 포항으로 이사 가서 식당을 개업했지만 실패하고 어려운 처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 녀석 둘을 두고 아내는 집을 나갔고 애 둘을 키우며 살아 보려고 백방으로 노력해도 살아가기 버겁다는 푸념을 늘어놨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동안 겪어온 일들을 생각하며 그 사람의 이야기를 신뢰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온갖 생각이 다 스쳐 갔다. 그러면서 그는 아파트 관리비가 밀려서 결국 관리실에서 단수 조치에 들어간다며 조금만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아이들 밥은 해 먹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죽하면 한 번도 보지 못한 목사님께 전화했겠습니까? 세 사람 목숨 살리는 셈 치고 한 번만 도와주세요. 제가 일해서 반드시 갚겠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사는 아파트의 관리실 전화번호까지 주면서 확인해 보라는 것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아이들 밥은 먹여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에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관리실에 전화해 보니 그런 주민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관리비가 밀려 있다면서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래서 십만 원을 보냈다. 잠시 후 다시 전화가 왔다. 카카오톡으로 보내서인지 통장에 찍힌 이름으로 보고 내 이름을 대면서 “목사님, 단수되는 것을 막으려면 밀린 관리비 반은 내야 합니다. 지금 십만 원을 받았는데 삼십오만 원만 더 보내주십시오.”라고 한다. 얼마나 애걸하는지 가슴이 먹먹했지만 십만 원이야 속는 셈 치고 보냈지만, 목회자의 삶이 그렇게 여유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있어 보라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나서 전화벨이 두세 번 울렸지만 받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일 내일이라도 당장 ‘생활을 비관한 아버지 영해 한 아파트에서 두 아들과 숨진 채 발견’이라고 뉴스라도 난다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드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해서 그곳에 계신 지인에게 한 번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그랬더니 그런 사람이 있다면 자기라도 돕겠다면서 알아봐 준다고 했다. 현장을 확인한 후 돌아온 문자에는 “사기, 도와줄 필요 없어요”였다.
먹먹하던 가슴이 오히려 억울하고 아팠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내 경험에 불신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동정심에 상처를 주면서 저런 사기를 일삼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 알기나 할까? 진정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자기 때문에 도움에서 거절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아마 모를 것이다. 하기야 그런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는 사람이라면 저렇게 살아가지 않겠지. 그는 오늘도 전화기 앞에서 온종일 전국 교회 주소록을 펴놓고 나처럼 어리숙한 목사를 찾고 있을 것이다. 걸려들면 좋고 아니면 그만이고 이런 마음이겠지. 하지만 타인의 동정심을 이용해서 사기를 치는 것은 가장 흉한 죄 가운데 하나인데 그만큼 세상을 각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팟캐스트 방송)---
http://www.podbbang.com/ch/10726?e=24895861
---(Link-2)---
http://file.ssenhosting.com/data1/chunsd/240317.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