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일이다. 미국의 두 주에서 합동으로 ‘한국전쟁 정전 50주년 기념식’을 거행했었다. 콜로라도와 뉴멕시코주- 그 곳에서 나는 영문소설 싸인회를 한 기억이 있다. 그 때 나를 맞아준 사람이 회장직을 맡고 있던 주안 고메즈(Juan Gomez) 퇴역중령이었다. 그는 한국전쟁 참전군인은 아니었다. 그러나 50대 후반의 매우 인상이 좋은 사람으로서 한국의 모부대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그는 키가 크고 잘 생겼을 뿐만 아니라 그 곳 유서 깊은 집안의 상속자였다. 특히 그 집안은 뉴멕시코주에 여러 개의 광활한 목장과 땅, 천연가스 공장을 가진 큰 부자였다. 그는 그 집안의 제일 맏이로서 든든한 기둥 역할을 하고 있었다.
효심이 강한 그는 목장으로 들어가는 길 옆에 잠들어 계신 모친의 산소에 아침저녁 꽃을 바치곤 했다. 사진으로 본 그의 모친 역시 서부개척자 후예답게 강하면서도 우아해 보였고 그윽한 눈매는 사랑으로 넘쳐 보였다. 그녀 역시 생전에 그 곳 주민들의 중심인물로 많은 희생과 봉사를 하여 많은 존경을 사고 있었다.
고메즈 중령은 자진해서 콜로라도주 참전군인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몇 년 째 무료 봉사를 하고 있었다. 또, 크고 작은 온갖 경비를 자신이 담당하고 있었다. 성실하고 과묵한 성격의 고메즈는 콜로라도와 뉴멕시코주 두 주에서 다 존경받고 사랑 받는 큰 인물이었다.
어쨌거나 두 주가 합동으로 2년 동안을 고심해서 준비했다는 그 행사는 사흘에 걸쳐 거행되었다. 두 주의 주민들은 멀리 있는 가족과 친척, 친구까지 초대해서 함께 이 행사를 즐겼다.
행사가 시작되자 이들은 모두 거리로 나와 뜨거운 햇살아래 시원한 나무 그늘을 찾아 의자를 펼쳐놓고 샌드위치를 먹으며 축제 분위기를 내었다. 특히 큰 관심을 보인 것은 한국전쟁과 관련있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었다.
주최측은 이 년 전부터 한국전쟁 실종자(MIA)의 가족을 수소문했다고 한다. 그들의 증언을 토대로 하나하나 새로운 파일이 만들어졌고 주소록과 연락처 생존해 있는 가족이나 자손들의 명단이 다시 만들어졌다고 한다.
'잊혀진 전쟁’의 대명사로 불리는 한국전쟁. 그러나 그 가족들은 아직껏 반세기가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한국전쟁 실종자들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행사의 목적이 바로 그들을 잊지 않고 그 가족들의 고통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었다.
구석구석에 흩어져 살고 있던 실종자들의 가족들은 행사에 빠짐없이 초대되었다. 반세기가 지난 까닭에 온 가족이 다 어디론가 떠나버려 가족을 찾지 못한 실종자도 있다고 했다. 행사장은 실종자 가족과 한국전쟁 참전군인들과 그 가족, 친척, 친구들, 한국전쟁에서 부상당하고 돌아온 사람들 등 수 백 명이 자리를 같이했다.
그들은 그 행사의 명예회장이요 한국전 참전군인인 콜로라도 주상원의원 루이스 엔쯔(Lewis Entz)씨를 선두로 화려한 거리 퍼레이드, 정겨운 리셉션이나 크고 작은 파티에서 위로 받았고 때맞추어 연 유서 깊은 로데오 경기장에서 수 천 명의 환호 속에서 한국전쟁의 의미를 되새기기도 했다.
이 시기에 맞추어 콜로라도주에서는 루이스 엔쯔 주상원의원이 주창하여 ‘한국전쟁 기념 하이웨이’와 기념도로를 개통했다. 빨간 셔츠를 입고 퍼레이드를 지휘하는 엔쯔 의원은 주민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었다. 그는 또 수 십 년 전에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한국지도가 그려진 차량 번호판이 달린 차를 직접 운전했다.
"난 살아 무사히 한국전쟁에서 돌아왔지만 돌아오지 못한 동료들을 항상 기억합니다.”
반백의 엔쯔 의원은 쓸쓸한 얼굴로 말했다.
우연히 그 행사에 참가하게 된 나는 오십 여 년 전 한국에서 벌어진 비극의 상처가 의외로 큰 것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미국 어디를 가건 누구를 만나건 간에 한국전쟁과 연관이 없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의 상처 역시 치유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다년간 이산가족 방송과 행사를 지켜보며 살아온 나로서 이번에는 미국인 이산가족들의 고통에 찌들린 얼굴을 보며 솟구치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실종자의 가족 역시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시고 형제들도 뿔뿔히 흐터져 버렸다. 그러나 우리나라 이산가족들이 그 가족을 잊지 않았듯이 미국인 역시 돌아오지 않는 그들의 사랑스런 가족을 기억하고 있었다.
한 번은 어떤 사람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지금까지 행방불명된 동생을 찾아달라며 내게 커다란 사진을 가지고 왔었다.
“내 동생은 형인 내가 참전하자 날 따라 한국전쟁에 참전했는데 나만 살아 돌아오고... 마지막 날 전투에 고지에 올라간 것을 본 사람은 있는데, 돌아온 것을 본 사람이 없어요. 중국이건, 한국이건, 아니, 어느 하늘 아래 건 살아 있기만 한다면...”
그는 말을 잇지 못하며 내게 사진을 맡기고 사라졌다.
어떤 가족은 실종자의 유해가 돌아올 경우에 대비해 온 가족의 DNA 샘플을 채취해서 병원에 보관해 놓기도 했다. 그들은 언젠가는 실종자가 그들 품으로 돌아올 것을 믿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품으로 돌아온 ‘형제’를 확인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택한 것이다.
행사 당시 주최측은 특별한 의식을 거행했다. 그들은 한국전쟁 중 한국전쟁에 참가한 미군함에 달려 있던 커다란 종을 옮겨왔다. 그리고 거리 퍼레이드 동안 그 종을 차에 싣고 거리를 돌았다.
뎅뎅뎅. 종소리는 큰 길에서 벌판으로, 사막으로 멀리멀리 울려 퍼졌고 길에 나와 퍼레이드를 구경하던 사람들은 경건하게 묵념을 하곤 했다. 두 주의 고등학생들, 주민들, 로데오 경기 출전자들, 이차대전, 월남전, 한국전쟁 용사들, 그리고 온갖 크고 작은 단체들이 깃발을 들고 차를 몰거나 말을 타고 행사에 참가했다.
인디언 주민들은 온 몸에 화려한 분장을 하고 깃털을 꼽고 말을 타고 나타나기도 했다. 지금은 카지노를 경영해 떼돈을 벌었지만 그들 역시 오십 년 전에 한국전쟁에 참전한 기록이 있었다. 그것을 기억하기 위해 행사에 참가했다고 한다. 인디언 대표격인 사람이 깃털을 들고나와 알 수 없는 주문을 외며 행사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을 위해 평화와 축복의 기도를 해 주기도 했다.
그 다음 콜로라도주 참전군인 센터가 있는 홈레이크(Homelake)의 본행사장에서는 한국전쟁 중 행방불명 된 실종자의 가족들이 하나씩 나와 그 커다란 종을 치며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는 사랑하는 이들의 이름을 불었다. 미국에 한국전쟁 실종자의 수는 통틀어 8천 명에 이른다고 했다.
“뎅, 뎅, 데엥.... 한국전쟁에서 돌아오지 않는 형님 로버트를 위해 기도합니다.”
“뎅, 뎅, 데엥... 한국전쟁에서 돌아오지 않는 제 동료 빌리를 위해...”
“뎅, 뎅, 뎅- 한국전쟁에서 돌아오지 않는 X 중대 전원을 기억하며...”
“뎅, 뎅, 뎅- 한국전쟁에서 돌아오지 않는 저의 아버지를 위하여...”
처음에는 머뭇거리며 나가지 않으려고 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종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 십 년 동안이나 가슴 속 깊이 묻어 놓았던 사랑하는 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종을 치기 시작했다. 이렇게 기도는 끊임없이 이어졌고 종소리는 멀리멀리 퍼져 나갔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미국 이산가족의 눈물을 보았다.
그런데 얼마 전 그 고메즈 중령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슬픈 소식이 전해져 왔다. 그는 이번에는 뉴멕시코주의 이차대전 영웅 호세 발데즈(Jose Valdez)를 기념하기 위한 하이웨이를 개통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기념 하이웨이 개통을 며칠 앞두고 그를 잃은 두 주의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그러다 보니 2003년 여름에 성대하게 거행된 한국전쟁 정전 50주년 기념식이 그의 생애 마지막 업적이 되고 만 것이다.
나는 얼핏 그 기념행사가 끝나는 마지막 날을 기억했다. 콜로라도 참전군인 센터가 있는 바비큐 파티장에 칸트리 음악이 울려 퍼졌고 사람들은 하나 둘 씩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특히 이년 여에 걸친 행사준비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던 사람들은 서로 얼싸안고 춤을 추었다. 미국 국기로 앞치마를 해 입고 열심히 뛰어다니던 한 커다란 자원봉사자와 흥겹게 춤을 추던 고메즈 중령의 얼굴에 피어나던 조용한 미소...
그는 작년 행사 때, 미국 각지에서 초대된 한국전쟁 관계자들에게 자신의 목장을 공개했었다. 초청손님들은 며칠 씩 그의 목장에 묵으며 마음껏 맑은 공기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의 광활한 목장은 온갖 종류의 야생화로 뒤덮혀 있었으며 눈을 들면 목장의 끝은 아득한 지평선이었다.
끝없는 벌판 여기저기 떼를 지어 노니는 소와 말, 양떼와 라마..., 그리고 즐비한 천연가스 공장들... 이 모든 것을 두고 그는 떠나갔다. 작년 행사 때 고메즈를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도와주던 그의 연로한 부친의 모습도 겹쳐졌다.
“고메즈씨, 고마워요, 당신은 한국인과 한국전 참전군인들의 위해 무한한 사랑을 보여 주었습니다. 당신이 좀 더 평화로운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보여준 희생과 사랑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당신을 사랑하고 영원히 기억할 거예요- 신이 보낸 영웅으로.”
뉴멕시코주의 황량한 목장, 이름모를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핀 블랑코(Blanco)에 묻힌 젊은 영웅 고메즈를 나는 잊지 않을 것이다.
첫댓글영문소설가 전경애님의 강동적인 수필, 두번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산야에 있는 실종자들의 유해발굴작업도 게으른데 미국은 적극적입니다. 베트남 참전군인들에 대한 우리의 자세도 되새기게 하는 글입니다. 전쟁은 어디서나 비극입니다. 다시는 끔찍한 전쟁이 이땅에서 벌어지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도둑에게도 부지런한 점은 배워야 한다는 말이 있지요. 미국을 욕만 할게 아니라 그들에게 배울점은 배워야 한다는 뜻 입니다.. 미국이 세계에서 최강대국이 된 이유를 말하라면 풍부한 지하자원을 예로 듭니다..하지만 새벽 4시에도 횡단보도 앞에서 일단정지를 할 정도의 준법정신도 한 몫을 했다면 틀린 주장일까요
첫댓글 영문소설가 전경애님의 강동적인 수필, 두번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산야에 있는 실종자들의 유해발굴작업도 게으른데 미국은 적극적입니다. 베트남 참전군인들에 대한 우리의 자세도 되새기게 하는 글입니다. 전쟁은 어디서나 비극입니다. 다시는 끔찍한 전쟁이 이땅에서 벌어지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글을 읽으면서 선생님의 인간애, 평화를 향한 노력, 통일의 초석을 다지기 위한 힘든 노고가 새삼 다시 생각이 났습니다. 이런 선생님의 뜻을 우리가 널리 알리고, 자라나는 세대가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도둑에게도 부지런한 점은 배워야 한다는 말이 있지요. 미국을 욕만 할게 아니라 그들에게 배울점은 배워야 한다는 뜻 입니다.. 미국이 세계에서 최강대국이 된 이유를 말하라면 풍부한 지하자원을 예로 듭니다..하지만 새벽 4시에도 횡단보도 앞에서 일단정지를 할 정도의 준법정신도 한 몫을 했다면 틀린 주장일까요
실종된 참전용사의 시체를 찾으려고 인력과 재력을 아끼지 않는 미국이 부럽습니다.. 일만 열면 국민을 위해 국가안보를 부르대던 군사정권이 50년이 지나도록 발굴할 계획도 세우지 않았던 우리와는 너무나 대조적입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