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긴 손톱에 대한 단상 ............................................. 마광수
대체로 한국 남자들은 그로테스크할 정도로 야하게 몸치장을 한 여성을 별로 좋아하지 않
는 것 같다. 내가 손톱 긴 여자를 좋아하고, 오색 물감으로 염색한 머리털을 좋아한다고
친구들에게 넋두리처럼 하소연할 때마다, 친구들은 정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
로 응대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렇게 무시무시하고 끔찍하게 차린 여자를 어떻게 좋아할
수 있느냐, 그렇게 길게 손톱을 기른 여자를 창피해서 어떻게 남들 앞에 데리고 다닐 수
있느냐, 하는 정도가 고작 그들의 대답이었던 것이다.
관능적으로 야한 옷차림이나 긴 손톱의 여성이 한국의 보통 남성들에겐 그저 천박한 여자
정도로만 비쳐지는 모양이다. 우리나라 남성들, 특히 그 가운데서도 품격 높은 고상함을
최상의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계의 지식인들 (겉으로는 민중을 걱정하는 체하면서 별의별
미사여구를 늘어놓아가며 시대의 아픔, 민중의 아픔에 관한 글들을 쓰지만 사실은 위선과
허위의식으로 가득 찬 정신적 귀족주의자들이다) 은 손톱을 길게 기른 여자를 보면 역겹
다는 표정을 하며 질색을 한다 (아마 ‘하는 체’하는지도 몰라). 너무 불결해 보인다는 것이
다.
내가 긴 손톱이나 퇴폐적 의상 등의 이미지를 관능적 판타지로 사용하여 시와 소설을 쓰
면, 그네들은 나에게 그런 표현이 정말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냐, 아니면 위악적(僞惡的)
인 것이냐 하고 묻곤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정말로, 진심으로, 하늘에 맹세코 손톱을 아
주 길게 기른 여자를 좋아한다고 대답한다. 그러면 다시 그네들은, 그렇게 손톱을 길게
기른 여자가 음식을 만든다고 한번 생각해 봐라, 도대체 음식이 목에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으냐, 하고 묻는다. 그러면 나는 더이상 대답하기가 귀찮아져서 관능적 상상의 자유가
어쩌고저쩌고 하며 대충 얼버무려두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들의 사이비 결벽증이 한심스
럽게만 느껴졌었다.
그들은 손톱을 길게 기르는 여자가 손톱을 깨끗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는 하루에도 수십 번
씩 손을 씻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손톱을 짧게 깎으면 짧게 깎은 손톱만
믿고 손을 자주 씻지 않게 된다. 그건 내 경우만 봐도 그랬다. 손톱이 1 밀리미터라도 자라
있으면 손톱 사이로 때가 파고 들어가게 마련이어서 손끝에 신경이 가게 되고 아무래도
손을 자주 자주 씻게 되었다. 그것이 귀찮아서 손톱을 아주 바짝 깎은 날은 그것만 믿고
손을 하루 종일 안 씻게 되는 수가 많았다. 그러므로 손톱을 기른 여자의 손은 더럽고, 손
톱을 바짝 깎은 여자의 손은 깨끗하다는 얘기는 억설이요 낭설이 되는 셈이다.
재미있는 것은, 손톱이 길면 길수록 손톱 밑에 별로 때가 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때라는
놈은 좁은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가길 좋아해서, 손톱이 길면 길수록 손톱 밑에 뻥 뚫린
공간이 생기고 따라서 통풍(通風)이 잘되어 때가 들러붙기도 전에 날아가버린다. 그래서
나는 여자가 손톱을 길게 기르고서 매니큐어 칠을 안 했을 때, 손톱으로부터 뻗어나간 하
얗고 깨끗한 손톱이 무척 보기에 좋았다. 물론 현란한 색깔의 매니큐어가 주는 섹시한 이
미지를 능가하기 위해서는, 매니큐어 칠을 하지 않은 손톱은 정말 아주아주 엄청나게 길
어야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