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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0 사띠빳타나 4가지-1 (위뿔라냐니 식카와띠님)
<아비담맛타상가하> 7장 범주의 모음(사뭇짜야 상가하 samuccaya-saṅgaha) - 보디빡키야 - 사띠빳타나
사뭇짜야 장에서 보디빡키야 상가하(bodhipakkhiya-saṅgaha)입니다.
보디빡키야 상가하에서 보디빡키야의 뜻은 '도의 지혜를 얻는 데 필요한 구성 요소들'입니다. 그중에서 첫 번째가 네 가지 사띠빳타나입니다. 네 가지는 까야(kāya. 몸), 웨다나(vedanā. 느낌), 찟따(citta. 마음), 담마(dhamma. 법)입니다. 단어가 “보디(bodh)+빡카(pakkha)+이야(iya)”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보디(bodhi) - 도의 지혜”를 “빡카(pakkha) - 얻게 되는 부분들, 구성 요소들”, “이야(iya) - 된다”는 뜻입니다. 도의 지혜를 얻게 하는 구성 성분들이 보디빡키야인 거죠. 아라한 도를 얻게 하는 구성성분에 37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첫 번째가 사띠빳타나입니다.
Bodhipakkhiyasaṅgaho
30. Bodhipakkhiyasaṅgahe cattāro satipaṭṭhānā kāyānupassanāsatipaṭṭhānaṃ
vedanānupassanāsatipaṭṭhānaṃ cittānupassanāsatipaṭṭhānaṃ dhammānupassanāsatipaṭṭhānaṃ.
사띠빳타나의 뜻 : 대상에 아주 확고하게 머무름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는 사띠(sati)+빠(pa)+타나(ṭhāna)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빠(pa)는 ‘지나치다, 넘친다’는 뜻이고, 타나(ṭhāna)는 ‘머무른다’는 뜻입니다. 지나치게 확고하게 머무는 것, 확고하게 잡고 있는 것, 이게 사띠빳타나, ‘사띠를 확고하게 잡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어디에다? 네 가지 대상인 신수심법(身受心法), 까야, 웨다나, 찟따, 담마에 사띠가 확고하게 머무르는 것입니다. 아주 지나치게, 넘치게 이게 사띠빳타나의 뜻입니다. 단어 자체만 풀자면 이렇게 되는 거죠. ‘빠’는 ‘지나치게 넘치도록’, ‘타나’는 ‘꽉 물고, 머무른다.’는 뜻입니다. 확고하게 머무는 것.
사띠가 아주 아주 확고하게 넘치게 머무는데 어디에? 4가지 자리에. 사띠라는 말에 3가지 뜻이 있죠.
1) 모든 선업에 들어가는 마음부수로서의 사띠가 있습니다. 삿다, 사띠, 히리, 웃땁빠로 시작하는 모든 선업에 들어가는 마음부수 19개가 있습니다. 보시든 지계든 봉사든 수행이든 뭐든 선업을 지을 때는 사띠라는 마음부수가 일을 합니다.
2) “아난다 존자가 사띠 제일이다”라고 할 때의 사띠는, 아난다 존자가 수다원이니까 아라한만큼 사띠가 좋지 못할 텐데 사띠 제일이라고 했으니, 여기서 사띠는 부처님의 법문 암기를 잘했다는 거죠. 다 기억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띠 제일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띠는 기억력이 좋다는 뜻이죠.
3) 사띠빳타나에서의 사띠는 앞에서 말한 두 가지 사띠와 다릅니다. 사띠빳타나의 사띠는 위빳사나 수행에서의 사띠를 말합니다. 여기서의 사띠는 선업도 불선업도 짓지 않고 윤회에서 벗어나게 하는 수행입니다. 선업도 불선업도 짓지 않아야 윤회라는 바퀴에서 벗어 나지 않겠습니까? 선업이든 불선업이든 지으면 계속 12연기 바퀴를 계속 굴리는 게 되죠. 계속 굴리니까 벗어날 수가 없는 거죠. 선업도 불선업도 멈추어야 벗어날 수 있고, 그렇게 하는 사띠 이게 사띠빳타나의 사띠입니다.
1)의 세간 선업과 함께 하는 사띠는 3)의 윤회에서 벗어나는 사띠를 할 때 큰 도움을 주고 윤회에서 벗어나는 위빳사나 수행을 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줍니다.
사띠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여기 사띠빳타나에서의 사띠는 위빳사나 수행을 할 때의 사띠를 말하는 거죠.
그래서 이 사띠빳타나 4가지, 신수심법 4가지를 대상으로 하는 사띠의 본질은 다음과 같다. 색계 선심 5가지, 색계 아라한 작용 마음 5가지, 무색계 선정마음 4가지, 무색계 아라한 작용 마음 4가지, 그리고 도 4가지, 과 4가지 모두 26가지, 여기에 욕계 선심 8가지와 욕계 아라한의 작용 마음 8가지에 있는 마음부수 사띠가 사띠빳타나 4가지에 있는 사띠의 본질이다. 이렇게 책에 나와 있습니다.
사띠빳타나 4가지의 본질은 '사띠' 마음부수
사띠의 본질은 사띠 하나인데 사띠는 마음부수입니다. 아름다운 마음에 항상 들어가는 마음부수로서의 사띠 한 가지인데, 이 마음부수 하나의 대상은 신수심법 4가지입니다. 그 4가지를 대상으로 보면서, 즉 몸과 느낌과 생각(마음)과 담마를 보면서, 그 대상에서 ‘아름답지 않다, 고통스럽다, 항상하지 않다, 그리고 무아이다.’ 이렇게 4가지 특성들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아름답다, 행복하다, 항상하다, 내가 있다’는 잘못된 견해 4가지가 떨어져 나갑니다.
우리는 ‘아름답다 행복하다 영원하다 계속 지속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죠. 계속 이럴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수행을 안 하고 살죠. ‘항상할 것이다. 그리고 내 마음대로 된다. 나이다 내 것이다 내가 했다.’ 이렇게 잘못 알고 있는데 4가지 대상에 사띠빳타나 하면 ‘아름답지 않고 고통스럽고 무상하고 내 뜻대로 되지 않고 내 것이 없고 내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거죠. ‘지금 좋아보여도 금세 바뀌고, 아름답지도 않고 고통스럽고 영원하지도 않고 계속 되지도 않고 내 마음대로 되지도 않네.’ 이렇게 압니다.
위빳사나 수행으로 알게 되는 것은 좋은 게 없네요. 4가지 모두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죠.
좋은 게 하나도 없으니 수행을 안 하려고 하는 거지. 좋은 게 있어야 수행을 할 텐데요. 수행해서 알게 되는 게 좋은 게 없네요. ‘영원한 신과 합일해야 하고, 아름다워야 되고, 행복해야 되고, 내 뜻대로 다 이루어져야' 하는데. 알게 되는 것들이 좋은 게 하나도 없어서.
그래서 수행하는 걸 그렇게 힘들어 하는군요. 저도 힘들었습니다. 내 뜻대로 안 되니까. 하지만 이게 진리이지 않습니까? 아름답지 않고 고통스럽고 무상하고 뜻대로 되지 않다는 걸 바르게 아는 것. 아는 게 중요하지, 내 뜻대로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진리를 아는 맛이 있지요.
그래서 네 가지 대상에 사띠를 하면 4가지를 알게 됩니다. 잘못된 4가지 견해에서 점점 멀어져서 바른 4가지 견해로 점점 다가갑니다. 이게 점점 확고해지는 거죠. 바른 견해가 확고해지고 아주 확고해졌을 때, 무아를 확실하게 보고, 그리고 열반을 봅니다. 도의 지혜, 과의 지혜를 얻고 열반을 보는 거죠.
사람들이 왜 위빳사나 지혜를 얻고 싶어 하지 않는지 알겠어요. 아름답고 행복하고 영원하고 이렇게 내 마음대로 돼야 되는데, 다 안 좋은 거니까 굳이 보고 싶지 않은 거지. 어떤 분이 선원에 찾아오셔서 말했습니다. 자기는 존재가 사라진다는 걸 상상도 할 수 없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전혀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고. 천상계에 태어나기 위해서 수행을 한다고. 천상계에 태어날 정도로만 수행을 해야 되는 거죠. 딱 그 정도까지만 해야 되는 거죠. 윤회에서 벗어날 만큼 하면 안 되고, 윤회에서 벗어나고 싶지도 않은 분들은 이 중에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띠빳타나를 하면 원치 않는 진실을 알게 됩니다.
사띠빳타나의 다른 뜻 : 대상에 깊숙이 잠기도록 들어간다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의 뜻을 좀 더 자세하게 풀어 놓은 책이 있습니다. 사띠빳타나는 “빠”가 앞에 붙은 “타”입니다. “빠+타”인 거죠. 앞에서는 “빠+타나”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빠 접두사가 붙은 “타” 어근(語根)입니다. 이 “빠”라는 접두사는 “지나치다, 넘치다.”는 뜻이 있습니다. 또 “들어간다”는 뜻이 있습니다. 몸이 물에 들어가듯이 들어가는 것이죠. 강가에 있다가 강 속으로 들어가듯이 그렇게 들어가는데 들어간다는 뜻이 있습니다. '빠'가 붙으면 '대상에 깊숙이 아주 푹 잠기도록 들어간다' 이런 뜻이 됩니다. 대상을 확고하게 잡고 있다는 거죠. 우리는 평소에 계속 마음이 ‘나’라는 몸 느낌 생각 여기에 있지 않고 계속 밖으로 나가죠. 우리의 마음이 계속해서 끊임없이 밖으로 나갑니다.
근데 사띠빳타나는 밖이 아니라 나에게, 나라는 몸·느낌·생각·담마 여기에 계속, 계속 거꾸로 붙이는 거죠. 이게 사띠빳타나입니다. 사띠빳타나 4가지, 신·수·심·법 4가지의 본질은 사띠, 마음부수인 사띠 딱 하나입니다. 이 하나가 신수심법 4가지 대상을 나누어 본다는 거죠.
왜 그렇게 되는가 하면 어쨌든 대상이 4개니까, 사띠빳타나 4가지, 이렇게 말한다는 거죠. 대상이 4개이니깐 4가지 사띠빳타나라고 이름 한다. 대상이 4개라서 4개라고 하지만 사띠는 하나입니다.
4가지 위빨라사(왜곡)에서 4가지 바른 견해로
위빨라사(vipallāsa)는 '왜곡'입니다. 비틀어진 것 있죠? 미얀마에서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 원래 온전한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어떤 계기로 제정신이 아닌 사람, 미친 것을 위빨라사라고 합니다. 마음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온전하지 않은 사람이라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죠. 말도 통하지 않고 일을 같이 도모할 수도 없고 섞일 수가 없습니다. 특별 보호 관리해야 되는 거죠. 이런 상태를 위빨라사라고 합니다. 세상에 있는 것들에 정상적이지 않아 잘못된, 비정상적인 것을 위빨라사라고 합니다. '위빨라사'는 우리로 하여금 잘못 알게 한다는 거죠. 항상하다고 왜곡해서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냥 말 그대로 하자면 항상하다고 제정신 아니게 보고 있다가 됩니다. 4가지 위빨라사가 있습니다.
① 수카 위빨라사(sukha-vipallāsa), 행복하다고 잘못 알고 있죠. ② 앋따 위빨라사(atta-vipallāsa), 내가 있다고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완전히 반대로 알고 있다는 거죠. 그다음에 ③ 수바 위빨라사(subha-vipallāsa), 아름답다고 왜곡해서 잘못 알고 있습니다. 잘못 정반대로 알고 있다는 거죠. ④ 닛짜 위빨라사(nicca-vipallāsa), 항상하다고 영원하다고 왜곡해서 잘못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네 가지 위빨라사가 있습니다. 네 가지는 왜곡해서 알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뭐가 잘못인가?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항상하고 행복하고 내가 있고 아름답고 이것을 원하는 거죠. 원하니까 누가 뭐라 해도 “나는 항상 영원하고 행복하고 내 마음대로 되고 아름다워” 이렇게 가고 싶은 거죠. 옆에서 아무리 바르게 말해도 듣지 않습니다. 이게 좋은 거겠죠. 그래서 네 가지 위빨라사가 있다.
그중에서 아닛짜(anicca), 무상(無常)이 가장 분명한데, 우리는 물질과 정신이 닛짜(nicca), 영원하다고 인식합니다. 이것이 '닛짜 위빨라사'입니다. 영원하다고 항상하다고 완전히 정반대로 알고 있는 거죠. 완전히 정반대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알고 싶으니까. 닛짜 위빨라사입니다. 둑카(dukkha)가 확실한데, 고통이 확실한데 물질과 정신을 내 몸과 나의 마음을 수카(sukha)라고 잘못 알고 있습니다.
오늘 들은 뉴스에 미얀마에서 학교 다니는 학생들을 산 채로 서른 명을 태워서 죽였다고 합니다. 좀 전에 들은 뉴스입니다. 이것은 듣기만 해도 끔찍한 둑카둑카(dukkha-dukkha. 苦苦性)이고, 우리의 지금 둑카는 위빠리나마 둑카(viparināma-dukkha. 壞苦性)이죠. '지금은 행복한 것 같은데 곧 불행해질 수 있는 둑카'죠. 죽음은 확실합니다. 죽을 것이라는 것은 확실한 위빠리나마 둑카. 오늘 들은 뉴스는 둑카둑카이고.
둑카가 확실한데 이 물질과 정신을 수카라고 잘못 알고 있는 것을, 수카 위빨라사, 수카라고 왜곡해서 압니다. 정반대로 뒤집어서 안다는 거죠.
그다음에 아낫따(anatta), 물질과 정신은 내 뜻대로 되지 않고 내 것이 아니고 내 맘대로 되지 않는데 앗따(atta)라고. 내 마음대로 된다고 잘못 압니다. 내 것이라고 나라고 잘못 아는 것은 앗따 위빨라사라고, 나라고 잘못 아는 것, ‘나’라고 잘못 아는 것을 바로 잡기가 제일 어렵지 않습니까? 나를 내가 아니라고 무아라고 아는 것이 제일 어렵죠. 이게 제일 끝에 있는 끝에 깨닫는 깨달음입니다.
다른 것들은 생각하면 알 수 있죠. 둑카(dukkha. 괴로움)이고 무상하고 아수바(asubha. 더러움)라는 것들은. 근데 무아를 알기는 어렵습니다. 무아를 나(앗따)라고 왜곡해서 알고 있습니다. 아수바, 부정하다, 아름답지 않은 것이 확실한데, 이것은 진실이 아니라 진리입니다. 진실은 바뀌지 않습니까? 여러분, 진실은 바뀝니다. 진실은 바뀌는데 진리는 바뀌지 않습니다. 진실은 시대가 바뀌면 바뀌죠. 관점이 바뀌면, 누가 보느냐에 따라서 진실은 바뀝니다. 바퀴벌레가 보는 시체와 사람이 보는 시체는 다를 거 아닙니까? 독수리가 보는 시체와 천신들이 보는 시체는 다르겠죠. 이렇게 독수리와 인간과 바퀴벌레에게 다르게 보이는 것은 진실이죠. 진리는 아수바입니다.
그 아수바가 분명한데, 이 물질과 정신을 수바, 아름답다고 잘못 아는 것이 ‘수바 위빨라사’입니다. 아름답다고 왜곡해서 아는 것입니다. '위빠리나마 둑카(괴고)'도 사람들이 왜곡해서 행복이라고 알지만 실제로는 고통인 행복입니다. 이렇게 잘못 아는 게 '수카 위빨라사'입니다. 고통인데 행복하다고 아는 것, 위빠리나마 둑카, 여기에서 마음이 잘못 아는 것, 그리고 사견(딧티diṭṭhi)이 잘못 아는 것, 산냐saññā가 잘못 아는 것 이렇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사띠빳타나 수행을 하면 사람들이 이 위빨라사로 왜곡해서 아는 것, 즉 눈에 색깔이 씌어서 잘못 아는 것이 제거됩니다.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도 때로 그대로 안 보이고 잘못 보지 않습니까? 범부들은 이렇게 잘못 보고 있는 것이 제거됩니다. 위빳사나를 하면, 사띠빳타나 수행을 하면 눈에 쓰여 있던 잘못된 왜곡들이 사라져서 제대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잘못 알고 있던 것들을 바로 알기 시작합니다.
바로 알고 싶지 않죠? 계속 행복하다 믿고 싶고, 계속 영원하다 믿고 싶고, 계속 내 뜻대로 돼야 하고, 계속 아름다워야 되죠. 계속 그렇게 돼야 하는데 있는 그대로 알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갑자기 매트릭스라는 영화가 생각이 나네요. 제대로 알면 예전의 나로 되돌릴 수 없습니다.
회향하겠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공덕이 우리를 번뇌의 소멸로 이끌기를.
이러한 우리의 공덕을 모든 존재들에게 회향합니다.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기를!
사-두 사-두 사-두
편집: 담마삐야
* 2023-07-10 인터넷(https://us05web.zoom.us/j/4694074327?pwd=b2pNRUk4VzExbWFMSitFa1Jkc0wyUT09)으로 하신 법문을 필사하였습니다. 필사 후 위뿔라냐니 식카와띠님께 보여드리고 요약, 수정, 추가한 부분이 있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사두 사두 사두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