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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신라,가야토론방 기록이 부족한 문명은 역사의 범주로 볼 수 없는가?
신농 추천 0 조회 267 08.03.29 23:44 댓글 1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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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03.29 23:59

    첫댓글 잘봤스므니다!ㅋㅋ

  • 08.03.30 00:33

    신농님, Sorgai님 두분의 내공 깊은 토론을 잘 감상하고 있습니다...신농님의 본문에서 "김일제 가문이 신라, 가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 염두에 두고 있을 뿐입니다. 아마 이것도 김병모 교수의 주장을 접하지 않았다면 염두에 두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라는 문구가 있군요..김병모 교수분이 어느시기에 신라, 가야 김씨가 김일제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1978년 9월 20일자 柏文堂에서 간행된 문정창의 "加耶史"라는 책에 김수로왕이 소호금천씨의 김일제 후손이라는 주장을 하고 펼치고 있습니다...혹시 참고가 될런지요? .....^^*

  • 작성자 08.03.30 01:36

    재야사학에서 여러 재밌는 이설들이 등장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문정창 선생께서 그런 주장을 한 적이 있었죠. 다만 그분은 왕망의 성씨를 김씨로 착각하여 김왕망이라 잘못 주장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김병모 교수님은 좀 색다른 차원, 즉 문화적 측면에서 주장을 펼쳤는데, <김병모의 고고학 여행>이라는 책에서 그는 가야의 쌍어(雙魚) 문양의 기원을 찾다가 인도의 아요디아, 그리고 중국의 보주 지역을 유력한 경로로 지목했습니다. 그런데 이 보주 지역의 허씨 가문이 동시대 김일제 가문과 인척 관계였기 때문에, 허왕후의 도래와 마찬가지로 김씨 세력도 같이 도래하여 가야를 세웠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 08.03.30 19:51

    전 개인적으로 김병모 선생님의 설은 별 설득력이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사천성 보주 지역 출신의 허씨 가문이 해양세력이라는 부분을 선생님은 별로 지적을 안 하고 계신데(맞물리는 문헌기록과 보주라는 지명뿐) 삼국유사에 분명히 밝히고 있듯이...허황옥은 '돈을 받고'(이게 중요!) 물건과 사람을 옮겨주는 해양세력(상인이나 기타 등등)과 연관이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전 오히려 김성호 선생님의 견해가 더 적절하다고 봅니다. 장강 하류 주산군도의 보타도주와 연관시키는 설 말이죠. 갠적으로 선생님 썰 중에 허황옥을 인도 야유디아국이나 사천성 보주 일대와 연결시킨 것은 크나큰 오류라고 봅니다.

  • 08.03.30 23:12

    신농님 문정창 선생이 왕망의 성씨를 김씨로 착각하여 김왕망이라고 잘못 주장하기도 했다라고 말씀하시는데..문정창 선생은 나름대로 근거를 들어 김왕망으로 주장하고 있는데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當母南 卽莽母 功顯君 國産弟也 <前漢書 券68 金日磾> 투후 김당의 어머니인 南은 곧 왕망의 생모인데 그렇다면 투후 김당과 왕망은 형제가 됩니다.따라서 김당과 왕망은 김일제의 증손이 됩니다.

  • 08.03.30 23:17

    그래서 문정창 선생은 "加耶史"의 page 149 에서 "김일제 전은, 왕망과 김당이 다같이 그들의 生母인 南의 아들이라 했는데, 孝元皇后전의 고증은, 효원황후를 金當의 딸이라고 했으니 이 면으로 보면 왕망은 효원황후의 아우가 된다. 班固는, 효원황후와 왕망이 匈奴의 후예임을 감추기 위하여 兩人의 출자와 그 계보를 횡설수설로 꾸며 내 놓았다. 왕망은, 김당의 아들이니 왕망의 姓은 金씨 인 것이다." 라고 확신있기 주장하고 있군요.

  • 08.03.30 23:22

    중국사서가 이처럼 漢族에 불리한 계보에서는 횡설수설하는 내용과 삼국사기의 신라 선덕왕 김양상의 계보가 횡설수설 오리무중된 내용과 너무 흡사하여 삼국사기 역시 중국사서의 그릇된 불리한 계보 조작기법을 그대로 수입하여 왜곡시킨면에서는 서로 가 닮은 점이 많아 보입니다.

  • 작성자 08.03.30 01:56

    그리고 문무왕비문에 투후 김일제를 자신들의 선대 역사로서 기록했다는 점 등의 정황으로 볼 때, 신라와 가야의 김씨가 김일제 가문의 후손일 가능성이 있기는 합니다. 김일제 가문은 흉노족 출신이었기 때문에, 신라와 가야에서 북방계 유물이 출토되는 것도 연관지어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 예컨대 김일제 집안의 도래로 한국사가 시작되었다거나 고조선의 역사가 부정되어서는 안되겠지요. 이러한 현상은 어디까지나 여러 문화의 교류에 의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겠지요.

  • 08.03.30 23:42

    문무왕비문에 투후 김일제가 언급되어 있나요??..다만 비문의 "투후 제천지윤(秺侯祭天之胤)"에서 당시 투후 벼슬한 사람은 金日磾와 그후손에서 비롯되었기에 김일제를 지목한 것으로 보입니다..김일제 후손이 신라와 가야로 유입되어 그 지역의 지배자가 되었다면 기존 토착세력이 가진 문화와 이들이 가져온 문화가 서로 융화되어 그 세력권내에서 상당히 발전될 수도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 08.03.30 21:57

    잘 읽었습니다. 신농님 수고하셨습니다.^^

  • 08.03.30 22:04

    결정적으로 고조선이 하루아침에 뚝딱생겨서 뚝딱 그넓은 영토를 차지할 수는 없죠. 분명 그이전 역사는 존재하죠.

  • 작성자 08.03.31 01:05

    소호금천님/가급적이면 새로운 내용은 글로 올려주시길 바랍니다. 꼬리말이 너무 겹겹이 있어서 보기가 어렵습니다. 왕망의 가계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아본 바 없어서 "~했다고 합니다" 류로 썼는데, 제가 알기로 한서 왕망전에 그의 아버지로 왕씨 성을 가진 인물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조금밖에 확인을 못했기 때문에 제가 잘못 안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이에 대해 자세히 언급을 하고 싶으시다면 글로 올려주시길 바랍니다.

  • 작성자 08.03.31 01:28

    김일제가 기록되어있다는 것이 아니라, 투후가 기록되어있는데 김일제와 그 후손을 지목한 것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굳이 이런 것까지 일일이 따질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요..;; 김일제 가문의 도래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 의미를 강조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한 것은, 고금문을 주장하는 계열에서 김일제 가문의 도래로 한국사가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김일제 가문의 도래 가능성 여부는 위의 "가야 건국 세력" 글에서 다루었습니다.

  • 08.03.31 10:31

    아~ .저 부분에 대해 저도 어떠한 확신을 가질만한 지식을 가지지 못해서 신농님의 댓글을 반론한 것이 아니라 내용상 조금 애매한 부분에서 보다 정리하는 차원으로 덧붙인 댓글에 불과 합니다.

  • 작성자 08.03.31 01:28

    여휘님/그런 설도 있었군요. 음..허황옥 세력이 본래 해양 세력이었다고 본다면 분명 이야기가 달라질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김병모 교수님의 주장에 인상을 받았던 것은, 쌍어 문양의 이동 루트를 상세하게 파고들었다는 점입니다. "제4의 제국" 프로에서는 파형동기가 오키나와 -> 일본 열도 -> 가야로 전래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남방계 루트의 문제도 그리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 08.03.31 18:51

    김병모 교수의 쌍어문은 삽질이라고 봅니다. 이유는 쌍어문은 굳이 인도까지 가지 않더라도 중국의 유물에서도 적지 않게 발견되는 것이고, 우리 나라에서도 발견되는 것이니까요. 더구나 허왕후보다 훨씬 이전에 등장하니까 쌍어문은 이해되지 않는 것을 억지로 이해하려다보니 나타난 무리수지요. (혹시 원하시는 분이 있다면 사진을 올릴 방법을 알려주시는대로 쌍어문 유물을 올려드릴 수도 있습니다.) 거기다가 쌍어문은 허황후 사당에 있는게 아니었고 본래부터 쌍어문이 있었다는 어떤 근거도 없지요.

  • 08.03.31 19:48

    거기다가 님들이 인용하는 문정창 선생은 "한국고대사연구평/209p"에서 "이병도가 한무제때 귀화인 흉노태자 김일제의 후예인 것 같이 말한 것은 모두 유래를 중국에 구하려는 모화사상에 불과한 것"에 대해 '신라왕실에 대한 하나의 모독이 된다'고 단언하고 대당전쟁으로 당을 물리친 것 등을 들어서 반론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에서는 이병도를 기피하면서도 필요하면 이병도의 주장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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