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 프로필 이미지
캄보디아 사랑방
 
 
 
카페 게시글
―‥‥남은 이야기 스크랩 봄밤의 야참, `홈메이드 만두`
권종상 추천 0 조회 49 09.05.06 14:28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시애틀의 봄은 오감을 모두 자극하며 다가옵니다. 화려한 꽃들이 시각을 자극하며 눈에 밟히는가 하면, 새봄을 맞아 짝짓기를 하는 새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립니다. 특히 로빈, 그러니까 붉은 가슴 울새, 혹은 종달새라고도 부르는 이 새의 노래는 꽤나 청아한 봄노래가 되어 줍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있으면, 조금 따뜻한 날이면 바다 내음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 안에 라일락 내음이 섞이기도 하고, 간혹 커피의 향이 섞여들때면 눈을 감고 그 향에 집중하려고 해 보기도 합니다. 특히 봄비라도 내릴 양이면, 팔 위로 후두득 떨어지는 비의 느낌과, 바람이 내 귓께를 간지르는 느낌과, 그 안에 섞여드는 커피의 향은 가히 유혹적입니다. 여기에, 가끔씩 아내가 해주는 맛있는 음식들은 봄 미각을 한층 돋워줍니다. 하긴, 언제나 잘 먹었나...?

 

"허니, 이리와서 이것 좀 짜주세요."

"짜? 뭘?"

아내가 보여주는 것은 송송 썰어놓은 숙주나물, 볶은 부추... 이런 겁니다. 아, 만두를 하려고 하는 모양이군. 맛있게 먹으려면... 말 잘 들어야지... 아내가 짜 달라는 것보다 더 꾹꾹 눌러서 짜 줍니다.

"기왕에 하는 거, 여기 배추 볶아 놓은 것도 잘 짜 주세요."

많이도 했네...

"아, 어머니 댁에 50개 정도 갖다 드리려구요."

아... 울 어머니, 아니 아버지께서 더 좋아하시겠네...

 

아내는 돼지고기를 잘 볶아 섞고, 양념의 간을 맞춰달라고 부탁했고, 이 재료를 모두 한 군데에 섞었습니다. "아직 위생장갑 벗으면 안 돼요! 할일이 더 있어요!" 응? 장갑 끼고 할 일이 더 있다고?

"두부 두 모가 저 재료들 안에 들어있어요. 그러니까, 두부를 으깨 가면서 재료랑 잘 섞어 주세요."

"알았어, 알았다고." 장갑을 벗고 컴퓨터로 도망가려던 저는 그대로 바닥에 퍼질러 앉아 아내가 해 달라는 일을 하기 시작합니다. 아내가 소금을 넣고 간을 보고 이젠 됐다고 말합니다. 그러더니 만두피를 준비하고선 예쁘게 만두를 빚습니다. 햐~ 기가 막힌 야참입니다.

당장 와인을 꺼냅니다. 마시던 몽 레동 끝내야되니 꺼내고, 콜럼비아 크레스트의 캡멀로 매그넘 따놓았던 걸 꺼냅니다. 시계를 보고 스스로 웃습니다. "미쳤군, 지금 이 시간에.." 그러나 그런 자괴감 자책감 따질 때가 아닙니다. 어차피 일 열심히 하면 빠질 살... 이라고 자위하며 아내가 쪄서 꺼내놓은 만두에 젓가락도 필요없이 손가락으로 달라듭니다(앗! 뜨거!...)

 

만두... 북방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즐기지만, 유럽에서도 이태리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음식입니다. 치즈로 속을 채운 조그만 만두인 또르뗄리니, 혹은 커다란 왕만두의 모습을 하고 피짜 양념과 고기와 치즈로 속을 채운 깔조네 등은 만두가 이태리에서도 생명을 얻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지요. 이젠 세계화가 된 만두, 지금은 특별할 때나 만들겠지만, 우리집에선 가끔 이렇게 만두를 먹는 특권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평안도가 고향이신 장인어른 덕인데, 원체 만두를 좋아하시는지라 아내는 어렸을 때부터 늘 만두를 빚고, 찌고, 즐겼다고 합니다. 아내가 어렸을 때 배운 입맛의 관성인지라, 저는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하하. 음... 둘이 열심히 재밌게 만들다보니 백개도 넘게 만들었네...

 

만두를 생각하면, 어렸을 때 길가의 분식집에서 전문으로 만두를 쪄 팔던 집들이 생각나곤 합니다. 시장통 한가운데에서도 동그란 찐만두는 늘 사람을 유혹하는 먹거리였지요. 만두는 또 다양한 주종들이 모두 어울려주지만, 독한 바이걸이나 까오리양 같은 중국술에도 좋고, 튀긴 만두 같은 경우는 맥주와도 잘 가고... 만두국과 소주도 그닥 나쁘지 않은 결합이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레드던, 화이트던 잘 어울려줍니다. 마치 이태리의 깔조네가 그렇듯...

 

몽 레동이 얼마 안 남았길래 그냥 끝내버리고, 콜럼비아 크레스트의 캡멀로를 따릅니다. 마치 막걸리처럼 언제나 편안하게 마실 수 있는 와인입니다. 저 매그넘 한 병에 10달러 49센트. 한병으로 따져도 5달러 조금 넘는 편입니다. 사실 약국 같은 데서 세일할 때는 병당 4.99 정도에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매그넘 병만의 매력이 있지요. 그냥 풍성하게 느껴지는. 맛도, 품질도 괜찮지만, 가장 좋은 것은 그 와인이 가진 적당한 품위입니다. 너무 튀는 품위가 아니라, 약간의 속물기도 느껴지는 그런 품위. 만두라는 음식이 그렇듯, 그냥 편안하지만 정성은 들어가 있는 듯한... 오히려 만두와의 궁합은 이쪽이 훨씬 편안한 것은 아마 그런 배경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맛있는 거 해줘서 고마워요."

"그래도, 허니가 물기 없이 꼭 짜줘서 더 맛있었어요."

서로에게 이렇게 한마디씩 격려도 해 주니, 음식이 훨씬 맛있습니다.

 

휴가 끝나고 첫날 일다녀와서 무척 피곤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뜻밖의 음식으로 저를 기쁘게 해 줍니다. 어느새 하루가 이렇게 가고, 내일 다시 일 가야겠습니다... 그리고 내일 아침도 이 만두 먹고 힘내서 하루를 잘 보내게 될 듯 합니다. 어느날 시애틀의 봄밤은... 이렇게 미각까지도 꽉 채우며 편안하게 지나갑니다.

 

 

시애틀에서...

 

 

 

 

 

 

 

 

 

 

 
다음검색
댓글
  • 09.05.06 19:05

    첫댓글 와우~~만두와 와인이라~~둘이는 왠지 어울릴것 같지 않은데 사진을 보니 뭐 그런대로 별미겠는데요~~종상님의 글과 사진을 접하다 보면 평소엔 생각 못했던 어울릴것 같지 않았던 음식들을 조합하는 기술이 있는것 같네요...또한 사람들의 내면속에서 잊혀졌던 추억들을 끄집어 내어 회상하게 만드는 놀라운 표현력을 갖고 계시네요...늘 좋은글 감사히 접합니다...

  • 09.05.06 20:17

    정말 대단하시죠? 만두로 빚은 사랑과 행복... 그리고 칭찬과 격려를 간장 양념 대신 찍어 드시고... ㅎ 아리아리 님, 중국 다시 들어가려고 6개월 복수 비자냈는데 이번에 못 갈 거 같아요. 아쉽지만 다음 기회로... 지송해요.

  • 09.05.06 20:31

    ~~!!혹시 시간 나면 장춘에 올수 있을지도 모른다기에 오실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건만~~~~~찌 못오신다고 하나이까!!~~정녕 제가 먼저 뻬루로 가야하나이까??

  • 09.05.07 06:15

    한번도 글 읽으면 침 안 넘어 간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은 귓가에 봄바람을 느끼며 만두를 빚었다....먹탐이라기 보단 미탐이군요. 어르신이 북쪽 미각이시라니 분명 어덴가에 따끈한 정통 순대도 살아 숨쉬고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이거 좋아하시는 포도주와 궁합... 어떻겠습니까? 거기에 얇게 쓴 간, 한두점 양념으로.... 미리 주문 합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