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을 다녀온 뒤에도 여독은 풀지 못하고 있었다.
찾아드는 발걸음들과 여행 후일담을 나누느라 계속 띵띵 팅팅 부은 얼굴과
치즈와 올리브와 다양한 빵고 매일 나오는 감자들을 폭풍 흡입한 덕분에 늘어난 뱃살로
온몸이 나른함과 펑퍼짐으로 몰려있어도 대책을 세울 겨를도 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와중에 하루, 일찌감치 남편이 서울로 길을 나선 후 오늘만큼은 아무 일도 하지 아니하고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냥 마구잡이 퍼져있어야지 라며 막 티비를 켜서 7박 9일 와중에 보지 못했던 내자 정말로 좋아하는 프로그램인 "문제적 남자" 재방송을 보고
뒤이어 얼마 전에 새롭게 JTBC에서 편성한 프로그램이자 똑똑하고 해박함이 주무기인그래서 쥔장이 좋아하는 "유시민"이 강사로 나서는
"차이나는 클래스" 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하려고 할 때 였다.
" 선생님 오늘 점심 함께 하셔도 되겠어요? 오후 1시쯤에 안성으로 오시는 분이랑 식사하시자구요. 시간이 넉넉치 않아 무설재까지는 못 들어갈 것 같네요"
"아, 그러세요...마침 지금은 혼자 있고 차실 예약은 오후이니 가능할 것 같아요"
"그런데 전회번호를 죄다 잃어버렸어요. 선생님 전번도...."
보이스톡으로 걸려온 내가 좋아하는 일본 여행 전문가 박인숙쌤의 메세지였다.
당연히 "콜"이다.
주말에 혼자 끼니를 챙겨먹는다는 것이 때론 민망스러울 때도 있어 재빨리 박쌤을 대신하여 그녀가 원하는
안성 '보나카바'에 예약을 하고 시간에 맞춰 약속 장소로 찾아들었더니만 조금 늦어지겠다는 후소식이 전해진다.
그러면 또 어떠냐?
서로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의 즐거운 한끼 식사를 위해서 그정도는 별 것 아닌 일이요
게다가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주어지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그야말로 긍금증이 증폭되어 기대되는데
아무려면 어떠랴 싶었다.
그리고 약속시간 십여분 후에 바쁜 걸음으로 들어온 박쎔은 봄날답게 화사하였고 동행한 뉴페이스 역시 은발의 낯설지 않은 평범한 남성이었다.
첫만남이니 만큼 서로 통성명을 하며 명함을 주고 받고 인사를 하자니 '제주도에서 올라온 촌놈'이라며 수줍게 말씀하시던 그 남자 강응선님.
의외로 첫 인상에 강단이 있어보여 슬쩍
"제가요, 처음 만난 사람에게는 이런저런 질문을 많이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더러 사진도 찍고 가능하다면 제 카페에 등장인물도 되는데..."
" 아, 제가 뭐 그럴 만큼 잘난 사람도 아닌데....그런데 상관은 없어요"
오호라...뉴페이스에 대한 방어막은 풀린 셈이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있어 담벼락 없이 무장해제되는 순간이다.
그렇게 시작된 점심 식사는 그야말로 동유럽 내내 즐기던 식사와 별 다를 바 없어 편편하고 여유있게 먹으며
그의 개인생활에 대해 묻기 시작하다가 결국엔 질문없이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전부를 듣게 되었다.
말을 하는 본인도 놀랐고 듣는 쥔장도 무심결에 전해지는 그의 오르락 내리락 하던 개인 성장사를 들으며
참으로 웬만해서는 앞으로 미래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거칠 것이 없을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일찌감치 홀로 된 홀어머니 밑에서 나름 기를 꺽이지 않고 살아내려고 악으로 발버둥치며 살았단다.
그러다보니 아버지의 부재를 절실하게 느끼게 되어 스스로 자립심을 키우며 스무살, 이른 나이에 사업에 도전을 하고
그 세상 험한 것을 미처 몰랐던 시기에 별별 경험치를 쌓으며 이를 악물던 시절에 찾아온 사업실패로 인해
술독에 빠져 자신의 삶을 마구잡이로 내팽개치듯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아니하고 기대치 없는 삶으로 바꿔탔단다.
그렇게 휘청거리며 비틀비틀 거친 생을 살아가면서 제 생의 밑바닥을 경험하고 나니 어느 순간에 까닫게 된 것은
사람이 무너지는 것과 사림이 폐인이 되어버리기는 하루 아침에 손바닥 뒤집기 같은 것이라는 것을 절실히 절감하였다는 말씀.
그래도 버팀목이 되어주신 홀어머니께서 다시 한번 삶의 의지를 북돋아주시며 -그것은 아무래도
어머니 본인이 감당해야 했던 질곡의 세월을 가늠하자면 더욱 그럴 수 있었겠다는 생각-
"스스로가 건재해야 자식을 건사할 수 있다"는 충고를 해주셔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시 한번 삶의 부활 의지를 불태우며 자각과 반성으로 새삶을 추구하였다는 것인데
와중에 도움이 되어준 일관도, 국제도덕협회의 손 내어밈이 커다란 힘이 되어주었다는 것.
이를테면 그동안 일궜던 그리고 잃어버렸던 모든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새롭게 재탄생되는 과정에서
먹을거리 조차 청구식, 이른바 채식으로 바꾸면서 온몸의 묵은 때를 벗겨내고 이름만, 허울만 반짝반짝 빛이 났던
"강사장"에서 내려와 처음으로 그냥 개인, 사람으로 존재하는 "응선"이라는 이름을 되찾는 계기를 마련하였던 바.
몇번의 도전을 거쳐 다시 일어서게 된 "강응선", 그 이름 석자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인생의 첫 관문을 넘기 시작하여
지금의 자신으로 건너올 수 있었다는 이야기...그 이야기를 듣는데 가슴 한켠이 아려왔다.
뿐만 아니라 어느 남자인들 그렇지 않겠는가만은 가장이라는 혹은 남편이라는, 아버지라는 이름 앞에 무겁디 무거운 어깨.
그 축처진 어깨를 다시 반듯하게 세우고 휘어진 허리를 곧추세우는 일이 말처럼 쉽더란 말인가 말이다.
그러게, 이브가 건네주는 사과를 먹은 죄는 평생을 짊어질 무게가 아니던가?
어쨋거나 그는 한발한발 다시 세상 속으로 걸어들어가 조심스럽게 내딛는 발끝으로 용감하게 한발을 걸어나갔다는 말인데
그렇게 시작된 그의 행보 앞에는 늘 부처님이 보고 계시다는 생각에 함부로 행동을 할 수 없었고
그리하여 5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부터는 조금씩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더욱더 열심을 내어 현실을 직시한지 십년차에 이르자 결국엔 모든 이들에게 인정받는 " 강응선"이 되어있더라는 말씀.
그가 식사하는 내내 아무렇지도 않게 슬쩍 슬쩍 내뱉는 자신의 인생사를 전해듣는데 고개를 끄덕거리면서도 괜히 뿌듯하다.
그리하여 1996년 5월 부터 시작된 동네 이장으로 부터 지금까지 21년째 마을과 제주도를 위해
헌신하고 노력해온 보람이 드디어 성과를 드러내기 시작하였으며 그 가치는 결국엔
"강응선"이라는 이름으로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이 되었다는 말에는
진심으로 흔쾌하게 저절로 박수를 보내고 마구 응원을 해주었다.
"할 수 있다"는 한 사람만의 캐치프레이즈가 아닌고로.
그렇게 일어서면서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 즈음에 도지사를 만나 스스로가 측정해낸 정확한 수치와 계산, 말하자면 도의 살림에서 지원받을 경제적 여건을 제시하고
그 일이 지역민을 위해 얼마나 이득이 되고 좋은지를 설명하며 그로 인한 추가 경제적 자립도를 일깨워 준
"남원의례회관"을 설립한 일이라고 했다....그것은 바로 하늘 여행을 떠난 영혼을 위로하는 회관이가도 하다.
지금은 전국에서 답사도 하고 관광상품으로 탈바꿈하여 지역내에 혐오시설이 아닌 기꺼운 장소가 되었다는 말도 되겠다.
역시 사심 없이 무슨 일을 해낸다는 것은 언젠가는 대가와 보답을 받는 일이 되겠으며
그리하여 자발적으로 선, 후임자가 서로 애썼다는 감사의 표창을 주고 받는 아름다운 선례까지 남긴 후일담은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일이 되어 지금까지도 지역민으로부터 회자되는 기억이기도 하다는 그의 추억어린 과거지사를 들으며
걸림돌 없이 지역 일을 치뤄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아는 사람으로서는 놀라울 뿐이다.
어쨋거나 그는 그렇게 성장을 하여 지금은 제주특별자치도의 전 '야구협회장'으로서 지역야구 발전을 위해 애써왔던 한편
사단법인 '농식품 연합회'에서 자신의 뼈를 깍으며 농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자 노력하는 중이라고 했다.
물론 개인적으로 감귤 및 한라봉 체험농장을 운영하고 잇으므로 농민으로서의 자부심은 대단하기도 하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해 농민으로서 혹은 제주도민으로서스스로 자존감을 지닌 채 자부심을 갖고
일년 365일 중에 363일을 일하며 자신을 돌보지 못한 채 앞만 보고 달려온 그가 이제 농민들의 울타리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사실은 쉼을 선택해도 좋으련만 그는 자신이 선사받은 나머지 보너스 인생은 미래를 위해 재창조하고 재투자를 하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그는 일편단심 민들레로 세월의 흐름을 인지하지 못하고 살았던 지난 날은 버리고
이제는 세상의 변화 속에 자신을 내던져 좀더 미래지향적인 농민의 삶으로 변화시켜 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중이라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 언뜻 보기에도 불의를 못참는 성질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서도
그는 농민을 위해 뭔가를 해낼 것 같은 그야말로 최선을 다해 농민을 어루만지고 그들의 입장을 대변할 것 같은 느낌이다.
밀려오는 파도에 맞아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파도를 헤쳐가면서도 상호보완의 파도의 흐름을 타겠다는 의지와
농민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며 그로인한 ' 통섭'의 길을 찾아가겠다는 그의 내심이 엿보이기도 했던,
그 짧은 점심시간이 즐거웠던 것은 역시 "사람이 좋다" 여서가 아니었을까?
누구에게나 어렵고 힘든 시기가 있다.
다만 그 내리막길의 고됨을 어떻게 차고 올라오는가가 내 삶의 흐름도 바꿀 것이고
그 타파의 시간을 개인적으로 잘 감내하고 견뎌내야만 혹독함으로 부터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주어지는 달콤한 열매는 달디 단 결과로 내게 건네지게 될 것이다.
그 남자 "강응선"의 인생이 그러 할 듯 하디는 개인적인 예감.
일요일이 주는 즐거움은 한가로움이다.
오늘 하루도 피폐하지 않을 영혼과 함께 온전히 내 것으로....
첫댓글 한사람의 인생을 접하면서 울컥하지 않을 인생이 있을까만은 또 한분의 좋은 지인이 생기신듯 합니다 ~! ^ ^
맞아요...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을 나눈다는 것이 되기도 하겠습니다.
세상엔 참으로 열심히 살아오신 분들이 많더라구요.
또 하나의 인연이 주는 기쁨도 함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