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은 정박하지 않는다
Dec 15, 2019 at 5:45 오후
Category: COVER STORY
효성 창업주 만우 조홍제 회장 생가 개방
(왼쪽부터) 안병준 향우회장, 조현식 한국타이어 부회장, 박용순 함안군 의회 의장, 조근제 함안군수,
조필제 대종회 명예회장, 조현준 효성 회장, 조현상 효성 총괄사장
2020년 새해에는 ‘기업가정신’의 고향 방문 사업이 활성화될 전망이다.
기업가정신을 되살리는 작업이야말로 경기회복의 불씨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효성은 11월14일 경남 함안군과 함께 창업주 故 만우 조홍제(晩愚 趙洪濟) 회장의 생가 개방식을 가졌다.
경남 함안 군북면 동촌리에 자리한 만우 생가는
문화유산 보호단체인 ‘아름지기’가 2017년부터 2018년까지 복원공사를 진행했다.
대지면적 총 1천225평(4,049m2)으로 조선후기 한옥의 특징인
아담한 건물배치의 실용성과, 장식을 배제한 담백함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기업가정신’의 뿌리 찾기 운동으로 발전을
효성은 함안군과 만우 생가를 상시 개방하는 데 합의했다. 함안군은 인근 대기업 창업주 생가를 활용한 관광 문화상품 개발을 위해 만우 생가 주변환경 정비와 주차장 조성 등 행정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날 개방식 행사에는 효성 조현준 회장과 조현상 총괄사장을 비롯해 함안 향우회, 조근제 군수 등 함안군 관계자와 지역주민들이 참석했다. 조현준 회장은 “생가를 복원하고 개방할 수 있도록 지원한 경남도, 함안군, 그리고 향우회에 감사한다”며 “국가와 민족을 밝히는 ‘동방명성(東方明星)’이 되자는 할아버님의 이상을 실천해 효성이 세계를 향해 더욱 뻗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에는 생가 개방식에 이어 송덕비, 좌상 제막식도 함께 진행됐다.
기술자립으로 효성 글로벌 소재산업의 기틀 마련도
“몸에 지닌 작은 기술이 천만금의 재산보다 낫다.”
만우 회장은 척박한 환경에서 한국경제의 기적을 이뤄낸 인물로 유명하다. 조 회장은 함안에서 터를 잡은 조선시대 생육신 어계 조려(漁溪 趙旅) 선생의 후손으로 1906년에 출생했다. 1926년 일제의 식민통치에 항거해 일어난 610 만세운동에도 참가해 옥고를 치른 바 있다.
만우 회장은 1962년 효성물산을 시작으로 1966년 동양나이론을 설립했다. 1971년 민간기업으로는 국내 최초 부설연구소인 효성기술원을 세워 글로벌 No.1 소재기업 효성의 토대를 마련했다. 효성기술연구소는 1978년 11월 정부가 나서 기업들에게 연구소 설립을 권장할 때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오늘날 효성과 한국타이어라는 두 개의 세계적 기업을 일궈낸 만우 회장은 한국기업의 선진화와 수출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금탑산업훈장 등 국가로부터 여러 차례 서훈을 받기도 했다.
솥바위를 중심으로 북쪽 의령군 정곡면에는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
남쪽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에는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회장,
동남쪽 함안군 군북면에는 효성그룹 창업주 조홍제 회장 생가가 위치한다.
기업가정신의 산실-경남 함안 ‘부자 솥바위’
경남 함안과 의령의 경계를 이루는 남강에는 솥 모양의 바위가 솟아 있는데, 이 바위 수면 아래 세 개의 발이 가리키는 주변 20리(약 8km) 이내에서 큰 부자가 난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전설대로 솥바위를 중심으로 북쪽 의령군 정곡면에는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 남쪽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에는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회장, 동남쪽으로는 효성그룹 창업주 조홍제 회장 생가가 있다. 최근 경남도의 시군 간 연계협력사업으로 ‘기업가 고향 관광테마마을 조성사업’이 선정되면서 진주시와 함안군, 의령군은 솥바위를 중심으로 기업가의 창업과 도전정신을 관광상품화하는 사업을 진행한다. 진주시는 LG, GS 창업주 생가가 모여 있는 지수면에 다양한 관광테마마을과 관광객이 머물 수 있는 한옥스테이를 조성하고, 의령군은 솥바위와 봉황대 등 명소를 둘러보고 지역 대표 음식을 즐기는 코스를 운영할 예정이다. 함안군 역시 만우 생가를 지역을 대표하는 명소로 남기고, 일반인들에게도 자유롭게 개방할 계획이다. 경남도는 이들 가문이 수대에 걸쳐 펼쳐 온 나눔과 베풂의 정신을 널리 알리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할 방침이다.
인류의 모든 문명은 ‘도전과 응전’의 역사
함안군은 만우 조홍제 효성 창업주의 기업가정신과 경영철학을 기리고자 군북면 동촌리 신창마을에 소재한 생가 개방식과 군북면 덕대리 265∼2에 건립한 송덕비 제막식을 11월 14일 개최했다. 행사에는 조근제 함안군수, 박용순 함안군 의회 의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및 관계자, 안병정 재경함안향우회장 및 관계자, 관내 기관단체장, 종친회, 지역주민 등이 참석했으며 국내 굴지 기업인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방증하듯 생가 개방식에는 150여 명이, 제막식에는 1천여 명이 운집해 축제의 장을 방불케 했다. 이날 오전 10시에 거행된 생가 개방식은 군북 메구놀이보존회의 길놀이와 퓨전국악팀 ‘아리안’의 식전공연을 시작으로 테이프 커팅식 및 생가 견학 등이 있었다.
만우 회장 생가는 실용적인 공간 배치와 장식을 배제한 담백함이 돋보이는 소박하면서도 품격 있는 한옥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안채, 사랑채, 광채, 별채, 대문채, 화장실 등이 남아 있는데, 특히 별채는 원래 안채 우측에 있었던 것이 화재로 소실된 후 1985년에 현재의 자리에 다시 지은 것이다. 경상남도와 함안군은 생가 개방을 통해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명소로 만들고, 함안이 낳은 대표적인 기업가인 조홍제 창업주의 생과 기업가정신을 널리 알릴 계획이다. 이어 덕대리에 위치한 송덕비 공원으로 이동, 송덕비 건립 추진 경과보고, 기념식수 등 송덕비 및 좌상 제막식이 진행됐다.
만우 조홍제 창업주는 중앙고보 시절 6.10만세 사건 주모자의 한사람으로 옥고를 치렀으며, 군북금융조합의 3선 조합장으로서 면내 자작농 육성 및 군북산업조합을 인수 운영하면서 일제 징용대상자를 채용하여 징용을 모면토록 많은 주민들에게 혜택을 주는가 하면, 영남장학회를 설립하여 많은 학생들에게 학비를 지원하는 등 후진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였고, 재경함안군향우회를 결성하는 등 고향발전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많은 기여를 했다. 이에 재경함안군향우회에서는 1998년 초 정기총회에서 송덕비를 건립키로 의결하고, 2000년대 초부터 효성 측에 의뢰하여 건립 부지를 물색하는 한편, 2005년 9월부터 두 차례에 걸쳐 향우들이 자진 성금모금운동을 전개하여 기금을 확보하고 2017년 5월 현지에 152평의 토지를 매입함으로써, 송덕비 건립을 하게 됐다고 한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 박사는 “모든 인류 문명은 도전과 응전의 역사”였다며, “문명은 정박(碇泊)하지 않는다”고 갈파했다. 한 선구적 기업가의 기업가정신에 의해 창업, 발전되고 있는 효성의 이번 창업주 생가 개방이, 한국경제 발전에 기여한 다른 많은 기업가들의 생가도 개방돼, 기업가정신을 고양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효성 창업자
만우 조홍제 회장 약전(略傳)
조홍제 회장(1906-84) 좌상
그는 쉰여섯 살에 출발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늦었습니다. 처음 신학문에 접한 것이 17세였고, 고등보통학교에 들어간 것이 19세, 대학을 졸업한 것은 30세가 되어서였습니다. 사업의 세계에 입문한 것은 40세가 넘어서였고 독자적인 자기 사업을 시작한 것은 56세에 이르러서였습니다. 56세에 그렇게 첫발을 내디딘 사업, 그것이 효성그룹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는 기업가이면서 선비였습니다
그는 뿌리 깊은 선비의 가문에서 자라나 어린 시절 유학(儒學)을 공부했습니다. 그것이 그(만우 조홍제 회장)라는 인간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는 기업가였으나 그가 이상으로 삼은 것은 선비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익이 있을 때 그것이 의로운 것인가를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기업은 이윤 추구를 위한 목적이 아니라 인격 완성의 수단으로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그는 아마도 기업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 역사상 유일한 기업가일 것입니다.
그는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그는 우리 사회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장이 아니라 만인이 만인을 돕는 상생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인생은 단 한번뿐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 가장 최선의 것을 담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생각하는 인생은 달랐습니다. 그 하나를 위한 일이 아니라 우리 사회 수많은 성원들에게 보탬이 되는 일이 곧 그의 최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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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2월호 Copyright ⓒ 월간현대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