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삼회 116차 산행기 - 수정산
2007년 5월 4일 10시 지하철 1호선 부산진역
오늘의 참여자 - 조정, 김갑석, 이규상, 안혜자, 이숙자, 전흥, 정경권, 김창길, 최차랑,
박해량, 류근모 이상 11명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 첫 주 산행은 수정산이다.
水晶 은 무색투명한 돌로 우리 조상들이 삼국시대 때부터 장신구 만드는 자료로 삼은 귀한 보석이다. 옛날에 이 산에서 수정 캐는 광산이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흔적조차 없어지고 수정산으로, 수정동으로, 수정초등학교로 그 이름만 남았다.
“지금 가고 있다.” 라는 전화 때문에 오늘은 만남의 장소에서 30 분을 더 기다린 끝에 10시 30 분에 지하철역을 빠져나가 부산일보사 왼쪽 길을 택하여 수정동 재래시장 골목을
통과하다.
어물이며 각종 찬거리들, 계절과일들을 좌판에 벌여놓고 오가는 손님들에게 눈웃음을 보내는 아줌마들에게 고단한 서민생활의 애환이 느껴진다. 배낭 메고 놀러 다니는 게 괜히 미안할 정도다.
동구청 신축 현장 옆을 지나 이면 도로를 두세 개 건너 계속 주택가 비탈길을 오르니 덕산 빌라 - 1층 주차장이 텅 비어 있어 거기서 잠시 휴식.
전에도 여기서 한 번 쉰 적이 있다. 덕산은 김창길 친구의 호이기도 해서 기억이 분명하다.
버드나무가 바나나를, 덕산이 배즙 한 팩씩을 제공하여 에너지를 충전하고 발대식.
인근에 있는 경남 여고출신의 이숙자 친구를 오늘의 산행 대장으로 삼고
“출발 산삼!” 을 크게 외치니 빌라 2층에서 내려오던 젊은 아줌마가 웃는다.
- 미안해요 소리쳐서. 산삼보다 더 좋은 건강을 캐러 수정산에 올라가는 심마니들이요.
11시에 마지막 이면 도로를 가로질러 비로소 산에 진입하다.
바로 키 큰 전나무(fir) 들과 늘씬한 나무 메타세퀘이아 (metasequoia) 들을 만난다.
이는 잣나무의 일종인데 공룡시대부터 지구상에 살아온 오래된 낙엽 교목으로 외래종 - 근래에 우리나라에도 차츰 보급되고 있는 수종으로 전남 담양군에는 멋진 메타세퀘이아 가로수 길이 있다고 인터넷은 전한다.
한창 싱그러운 연두 빛 잎을 내뿜으며 주위를 압도한다.
가파르지 않은 신록의 산길을 친구들과 생각나는 대로 부담 없는 얘기들을 나누며 걷는다.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모습의 하나가 아닌가.
늘 건강 이야기들이 단골 메뉴다.
건강 정보, 의학 지식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덕목은 실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니
그저 삼 세끼 집사람이 차려주는 밥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 이렇게 3 잘로 간단히
요약 정리해서 그것들이나 잘 지키며 살면 천명은 누리리라.
11시 15 분경 처용천 (處容泉) 이라는 돌 새김글이 있는 곳에 이르니 수십 개의 나무 조각들이 울긋불긋 원색에 덮여 서 있다.
서왕모, 염라대왕, 백두대장군, 한라여장군, 난데없는 텔레토비 목인형까지.
골짜기 아래를 내려다보니 무슨 전각 같은 것이 있다. 전각 속에 샘이 있는가 보다.
처용은 신라 때의 동해 용왕의 아들이라고 일컬어졌던 인물. 여러 가지 질병 (疫) 을 다스렸다고 한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가 자는 이불 아래 다리가 네 개라.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누구의 것인고?’ 라는 유명한 향가 처용가를 남기고 집을 영원히 떠나 사람들의 병이나 고쳐주며 다녔다던가.
이후로 처용은 역병을 물리치는 무속가의 신으로 추앙을 받아왔으니
이 샘에 처용의 영험을 부여하여 수정동 일대의 점술가들이 굿하는 곳이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을 해 본다.
동해 용왕의 아들 처용이 이 수정산 계곡의 작은 옹달샘에서 현신한 것이다.
116차 산행까지 하면서도 저런 원색 나무 조각 전시장이며 처용천 같은 곳은 처음이니
앞으로 우리 산삼회의 산행지가 비록 대개 부산시내의 산들이라 할지라도 보고 배울 것은 계속 나온다고 봐야한다.
평생 같이 사는 집 사람도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계속 연구 대상인 것과 마찬가지로.
제법 땀이 밴다. 수정산 중턱 체육공원에서 잠시 휴식.
산소를 실어 나르는 산바람이 시원하다.
최차랑 친구가 요크루트를 제공 - 두 개씩 배급받아 홀짝 홀짝 마시는 재미가 괜찮다.
버드나무가 철봉에 매달려 턱걸이 스무 개를.
- 야, 대단하다. 청년이다.
친구들이 박수까지 쳐주지만 이 건 누구든지 계속하기만 하면 가능한 단순 기능이다.
철봉만 보면 매달리고 싶어 30 년 동안 매달린 결과일 뿐.
아무리 나이 들어도, 80 이 돼도, 근력은 계속하면 는다고 한다.
공부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계속 공부하고 운동합시다. 그 날 까지.
그것이야말로 치매, 중풍 안 걸리고 곱게 늙어가는 비결이 아닐까요.
수정산과 엄광산 경계를 이루는 고개턱쯤에서 마산고 출신 부경고 교사를 만나서 그의 안내를 받았다. 여산과 박해량 친구의 후배라고 우리를 깍듯이 선배 대접해준다.
수정산 정상 (315m) 을 오른편에 두고 엄광산 (504m) 기슭으로 넘어가 딱딱한 임도와 부드러운 산 오솔길을 번갈아 가며 걷다.
온통 푸르름 속에서 푸른 산소를 마시니 몸과 마음이 모두 녹색에 젖는다.
이어서 동의대 뒷산 경유 - 야구장에서 연습하는 모습이 보인다.
12시 반
어느 묏등 앞에 자리를 잡아 점심상을 펼치다. 창길 친구가 가져온 화려한 밥상을 가운데로 하여 11 명이 둘러앉으니 잘 어울린다.
이숙자 친구가 복분자 술을 제공하여 한 잔 씩 하고 밥들을 먹기 시작.
반찬들을 나누어 먹고 김밥들을 나누어 먹는다. 조정 친구가 방울토마토를, 혜자 친구가
바바나를 내놓아 디저트로 입가심.
식사 중 세미나 두 개.
- 늘그막에 집안을 편안케 하는 ‘3소’ 를 소개합니다. 버드나무.
마누라가 하는 말들에 ‘그렇소, 맞소, 좋소.’ 로 대응하는 것을 습관화하라.
우리가 어찌 마누라를 이길 수 있는가.
- 바보 시어머니 소개. 물순이 이숙자.
아직도 며느리를 딸로 생각하자고 마음먹는 시어머니는 바보 1호.
며느리의 남편을 아직도 아들로 생각하는 시어머니는 바보 2호.
점심 자리를 깨끗이 정리하고 일어서니 1시 반.
동서대학교 길을 택하여 내려오다.
삼삼오오 짝지어 다니는 남녀 대학생들이 마치 5월의 신록처럼 싱싱한 젊음을 풍긴다.
우리도 저런 시절이 있었던가.
장성만 목사가 1992년엔가 세운 동서공대가 동서대학교라는 종합대학으로 단시간에 엄청난 발전을 하였다.
아래에 있는 경남전문대와 더불어 주례동 골짜기를 대학촌으로 만들었다.
간선도로에 도달하기 전에 냉정을 만난다.
冷井 - 이름 그대로 옛날에는 청냉 (凊冷) 과 감미 (甘味) 를 자랑하던 우물.
조선시대 이 중환의 택리지에도 냉정을 조선 8 도에서 가장 물맛이 좋은 곳의 하나라고 옆에 서 있는 팻말은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오염되어 빨래 물로 전락, 한 아낙네가 방망이질 까지 하며 빨래 감을 두드리고 있다. 냉정마을, 냉정역의 이름 원조 대접한다고 우물터며 우물 지붕만 잘 해 놓았다.
냉정 우물가 정자에 앉아 잠시 휴식을 함으로서 우리 일행은 오늘의 산행을 마감한다.
총 보행 시간은 두 시간 반 정도, 평탄한 길이었다.
동구 수정동에서 출발 북구 주례동에서 마쳤으니 2개 구를 섭렵한 셈이랄까.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주 11일은 당리역 10십니다.
첫댓글 버드나무님의 산행기에 이끌리어 읽다보면 무식녀가 상식녀로 업그레이드 되는 기분이지요. 오손도손 정다운 간식 나누어 먹기, 요강도 엎어 버린다는 복분자주 마시기등 몸과 마음이 강건해 지는 산삼회원들의 산행에서 건강 폭포가 쏟아지길 바랍니다.
한 며칠 강릉에 여행갔다 왔습니다. 경포대의 절경을 보고 즐거운 2일을 보내고 왔습니다. 무궁화호를 타고 해운대에서 9시28분에 출발 강릉에 7시간 후 도착, 마치 외국여행가는 시간과 비슷하였지만 지루하지 않고 차창 밖으로 보이는 신록의 아름다움에 한껏 취했답니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라 더 더욱 즐거웠고요. 버드나무님의 산행기를 보면 유식해 지기도 하고 마음이 한껏 여유로워집니다. 희주님의 댓글은 정말 우리에게 건강폭포를 안겨 주는 군요. 산행기에서 많은 지식을 얻고 가족들과도 이야기 나누니 얼마나 유익한 정보인가요? 산을 타서 건강해 지고 , 산행기를 읽어 유식해 지고--
물순이 친구를 카페에서 자주 만나지 못해서 궁금했는데 경포대로 가족 여행을 다녀 왔다니 정말 보람있는 은퇴생활을 톡톡히 하고 있군요. 부럽습니다. 나도 지금쯤 은퇴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만 다 비운 줄 알았던 욕심이 남아있어 직장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처럼 정해진 은퇴연령이 있으면 억지로 라도 더욱 풍성한 노년을 즐길텐데 그러지 못하고 마음이 흔들흔들합니다. 남은 날들 더욱 더 좋은 시간들을 가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