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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의 불순종과 그 결과
참고말씀: 창12:18,19; 20:7,9,10; 시13:3; 욘4:6-8; 마12:39,40; 행27:13,14; 벧후2:15,16
읽을말씀: 욘1:1-17
주제말씀: 욘1:12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욘1:3)
본문은 누구의 불순종을 기록하고 있습니까? 선지자 요나입니다.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3절 상)
그는 어떤 말씀에 불순종했습니까? 니느웨(앗수르)로 가서 그곳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외칠 것입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2절 상) 즉 그들의 죄악이 가득 찼으므로 지금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다는 내용을 그들에게 전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왜 니느웨로 가기를 싫어했습니까? 사실 니느웨(앗수르)는 이스라엘에게 원수의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침략하여 압박하고 괴롭혀왔던 원수의 나라였으므로, 이번 기회에 그들이 아주 망해버렸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디로 도망하려고 했습니까? 니느웨의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당시 땅 끝으로 여겨졌던 ‘다시스’(지금의 스페인)입니다.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3절 중) 그런데 때마침 무엇을 만날 수 있었습니까? 다시스로 가는 배입니다.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3절 중) 지금처럼 정기여객선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때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나서 탈 수 있었는지 참으로 신기할 따름입니다.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불순종의 길도 처음에는 호기(好期)를 만나거나 순풍(順風)이 부는 등 득의(得意)한 것처럼 느끼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3절 하) / “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행27:13)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어찌해야 합니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빨리 말씀 앞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어째서입니까? 이 같은 일시적인 호기나 순풍 뒤에는 언제나 광풍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라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행27:14)
아니나 다를까 오래지 않아 무엇을 만났습니까? 큰 바람과 큰 폭풍입니다.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4절 상) 그 결과 어떤 위기 가운데 처하게 되었습니까? 배가 거의 깨지게 될 지경입니다.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4절 하)
결국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개인적인 감정으로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지 않아야 하는 것과 혹 불순종했더라도 속히 돌이켜서 말씀 앞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점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혹 우리도 사적인 감정이나 개인적인 원한으로 맡은 바 사명을 거부하고 있지 않습니까? 또한 일시적 호기나 순풍 등을 득의한 것으로 착각하면서 여전히 불순종의 길을 걷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속히 말씀 앞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원합니다.
둘째, 일어나서 하나님께 구하고 문제의 원인을 제거해야 합니다!
“선장이 그에게 가서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하니라.”(욘1:6)
아니러니 하게도 큰 폭풍으로 배가 거의 다 깨어져갈 때에 요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배 밑층으로 내려가서 깊은 잠에 들어 있었습니다.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5절)
이 얼마나 기가 막히고 어처구니없는 광경입니까? 다른 사람들은 살아보겠다고 자신들의 신을 부르고 또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는 등 필사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데, 선지자라는 작자가 잠이나 쿨쿨 자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결국 그는 이방인 선장으로부터 어떤 책망을 들었습니까? ‘어찌하여 자느냐? 일어나서 무엇이라도 해보라 네가 믿는 신이 있다면 제발 그 신께 기도해보라’ 입니다. “선장이 그에게 가서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하니라.”(6절)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아무리 선지자라도(창20:7) 사망의 잠(시13:3)을 자고 있으면, 불신자에게 책망을 듣게 된다는 점입니다.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창12:18,19) /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느냐 내가 무슨 죄를 네게 범하였기에 네가 나와 내 나라가 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느냐 네가 합당하지 아니한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 하고 아비멜렉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렇게 하였느냐.”(창20:9,10)
심지어 발람 같은 경우는 누구에게 책망을 듣기도 했습니까? 자신이 일평생 타던 나귀입니다.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벧후2:15,16)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혹 우리의 경우도 요나처럼 사망의 잠을 자고 있지 않습니까?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시13:3) 원컨대 불순종은 우리로 사망의 잠을 자게 하는 것을 깨닫고, 속히 깊은 잠에서 깨어나서 하나님께 구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제비뽑기를 통해 문제(위기)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음이 밝혀졌습니까? 요나입니다.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서 이 재앙이 누구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아보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뽑힌지라.”(7절) 요나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이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중이라서 이런 일이 모두에게 임하였음을 이실직고(以實直告)했고, “자기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말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10절)
자신을 들어서 바다에 던져야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즉 문제의 원인을 제거하여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음을 피력한 것입니다.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하니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11,12절)
이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로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13절) 사람들이 다른 방법을 다 찾아봤지만 모두 헛수고였습니다. 오직 문제의 원인을 제거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15절)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문제의 원인을 깨닫고 이것을 제거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한편, 하나님은 요나를 위해서 이미 무엇을 예비해두고 있었습니까? 큰 물고기입니다. 즉 요나가 바다에 던져지자마자 큰 물고기로 하여금 그를 삼키게 했고 안전하게 사흘 동안이나 그를 보호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느니라.”(17절)
참고로, 이는 장차 무엇을 예표한 사건이기도 합니까? 예수께서 사흘 동안 무덤에 계실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마12:39,40)
이를 통해 또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사명자를 버리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항상 지키시며 그들을 위해 적절한 것들을 예비하신다는 점입니다. 본서에 ‘예비하사’라는 단어가 반복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17절 상) /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욘4:6-8)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이 같은 준비하심을 깨닫고 있습니까? 깨달을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해 감사하며 믿음으로 신실하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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