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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3-05-18 오전 5:30:00
[이데일리 이지현 이다원 기자] “몇 년 전 대학원생 5명과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어요. 전원이 여성이었는데, 모두 아이를 안 낳겠다고 하더군요. 이건 사회적 현상입니다.”
김누리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는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8명까지 떨어진 상황에 대해 이같은 일화를 떠올렸다. 이유를 물으니 학생들은 ‘학교 다닐 때 행복한 기억이 없다’, ‘이 지옥 속에 내 아이를 처넣을 자신이 없다’ 등의 비슷한 답을 내놨다. 김 교수는 “그냥 넣는 것도 아니고 처넣는 그것이 너무 처절하고 가슴 아팠다”며 “(현재의) 저출산 상황은 20~30대 여성의 불행의식과 밀접하다”고 짚었다. 행복한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아이들에게 비슷한 경험을 되풀이시킨다는 게 옳지 않다고 여성들이 판단했고 이런 사회적 현상이 초저출산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다.
젊은 여성의 불행의식은 자살률에서도 확인된다. 2021년 기준 대한민국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3.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1.1명)의 2.1배 수준이다. 저출산율에 이어 자살률도 OECD 1위라는 오명을 쓴 것이다. 이 중 여성 자살은 한국이 (10만 명당) 14.9명, 2위인 벨기에와 아이슬란드가 8.4명이다. 압도적인 1위다. 연령별로 보면 △30대(20.7명) △20대(19.6명) △40대(17.1명) △50대(16.3명) △60대(13.1명) 등으로 20~30대 여성 자살사망자 비중이 높았다.
김 교수는 “어찌 보면 경제적 문제보다도 교육과 관련한 문제가 여성의 출산을 꺼리게 한 더 결정적 요인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개혁 닷 올랐지만…아이들 행복 저 멀리
윤석열 정부에서는 노동·연금 개혁과 함께 교육개혁에 초점을 두고 있다. 교육이 바뀌어야 인구문제도 개선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유·초·중등 부문에선 국가책임 강화, 고등부문에선 경우 대학 자율성 확대가 골자다. 디지털 전환 시대를 맞아 낡은 교육체계를 미래형 인재 양성에 맞게 혁파하는 데에도 초점이 맞춰져 있다.
김누리 교수는 “현재의 경쟁 교육 시스템으론 안 된다”며 “아이들을 괴물로 만드는 교육”이라고 비판했다. 경쟁에서 무조건 이겨야 하고 공부만 잘하면 모든 걸 용서해 주는 구조에선 타인에 대한 배려나 공감을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경쟁에서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걸 체화하고 있는 인간이 어떤 인간이 되겠느냐?”며 “한국 엘리트 중에서 성숙성이나 존엄성을 보이는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냥 기술자들”이라고 일갈했다. 이어 “이건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성향 때문이 아니다. 한국 교육을 12년 동안 받으면 그렇게 아주 미성숙하고 오만한 엘리트들이 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도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을 통해 능력주의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트럼프 현상’을 만든 근본적인 배경이 능력주의 경쟁 교육에 있다고 봤다. 능력주의 경쟁 교육 시스템으로 인해 소수의 오만방자한 엘리트와 절대다수의 굴욕감을 내면화하고 있는 대중들로 사회가 완전히 갈라져 있고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미국의 미래는 없다는 견해다.
김 교수도 “이것이 한국 사회에도 거의 적용이 된다”며 “어떤 이들은 자신이 누리는 부와 권력이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재능이 있어서, 좋은 대학을 나와서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 다른 이들은 ‘내가 능력이 없어서, 게을러서, 못나서, 좋은 대학 못 가서’라고 내 탓을 하며 불행해 한다”고 말했다.
獨 어떤 교육을 할까
그는 이를 구조적인 문제라고 봤다. 그러면서 8년 가까이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보고 놀랐던 것들을 쏟아냈다.
1970년에 이뤄진 독일의 교육개혁의 기본원리는 ‘경쟁 교육=야만’이었다. 경쟁 이데올로기가 극단화하면 아리안 족이 가장 우수하고 유대족이 가장 열등하다는 식의 차별의식과 우열사고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바탕이 됐다. 또다시 나치즘과 같은 야만이 나타나서는 안 된다는 자기비판이기도 했다. 이 개혁을 통해 학급 내 등수와 학교별 등급 등이 완전히 사라졌다. 대학입시가 아닌 ‘아비투어’라는 고교 졸업시험만 통과하면 누구나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게 한 것이다. 졸업시험의 난이도는 90% 이상이 합격할 수 있는 수준에 맞췄다.
만약 모두가 의대를 지원하면 어떻게 될까? 그는 “독일에서도 의대 인기가 가장 높다”며 껄껄 웃었다. 대부분 학과는 정원 내 추첨을 통해 정해지는데, 인기학과의 경우 △고교 졸업시험 점수 20% △대기시간 20% △자질 등을 반영한다. 예를 들어 의대에 들어가기 위해 3년 연속 도전했다면 20%의 가점이 반영돼 입학 기회가 생기는 구조다.
김 교수는 “원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기회를 준다”며 “그 이후는 타인과의 경쟁이 아닌 자기와의 경쟁을 하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대한민국의 교육시스템은 어디서부터 손질해야 할까? 수능을 개편하면 가능할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입시 방식을 바꾸는 건 교육개혁이 아니다”며 “대학 입시를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 입학시험을 없애고 △대학 서열 체제를 없애고 △대학 등록금을 없애면 비로소 교육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는 “기존 대학들은 평생교육 등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에서는 3~4개 대학을 다니는 경우가 많다. 베를린대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다가 잘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다른 대학으로 옮겨서 또 다른 전공을 공부한다. 누구나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있으니까 가능한 일이다. 김 교수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최대한 많은 가능성을 열어 줘야한다”며 “그래야 아이들의 잠재력이 최대한 발현하지 않겠나. 그래야 잘하고 또 열심히 하지 않겠나. 이게 사회에 더 유익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미안…이젠 바꿔야
우리 교육의 현주소는 어디에 있을까. 그는 “일본의 권위주의적 교육과 미국의 시장주의 교육 등 나쁜 점이 조합된 결과”라며 “우리 아이들이 시대착오적인 교육을 받고 있으니 모두가 자신의 적, 아니면 경쟁자라고 느끼고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도 잃어버렸다. 정신세계도 완전히 황폐해지게 됐다. 우리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대한민국의 교육에 희망의 싹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입시를 목표로한 치열한 경쟁 공부가 아니라 선생님을 중심으로 아이들 스스로 학습하고 스스로 탐구할 수 있도록 하는 혁신초등학교들이 생겨나고 있다. 교사와 학부모가 투표로 교장을 뽑는 학교도 나타나고 있다. 아이들이 다양한 사고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중학교로 올라가면 다시 입시 중심 바뀐다. 아이들에게는 헷갈릴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결국, 어느 한 부분만 수술하는 게 아니라 교육시스템 전반의 손질이 필요하다. 언제쯤 가능할까?
김 교수는 “사태를 낙관하지 않는다”면서도 “그러나 진 싸움도 해야 한다. 이긴다는 확신을 가지고는 못 싸운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우리 아이들은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구제의 대상”이라며 “아이들이 경쟁에서 승리해도 문제고 패배해도 문제다. 승리하면 자기가 누리는 모든 부와 권력을 다 자기가 잘해서, 자기가 이 전쟁터에서 승리해서 누리는 전리품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머지는 99%가 패자라고 느낀다. 그 애들은 평생 불행의식, 열등감을 외면하고 산다. 승자도 처참한 인간이 되고, 패자는 더 처절한 인간이 된다. 이런 교육 언제까지 할 건가. 이젠 정말로 바꿔야 한다. 여러분이 같이 협조해 그런 날이 좀 더 빨리 올 수 있게 노력하면 좋겠다.”
●김누리 교수는
△1960년 서울 출생 △서울대 독어교육학과 학사 △서울대 독어독문학 석사 △독일 브레멘대 문학 박사 △한국독어독문학회 회장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중앙대 독일유럽연구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