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는 곧 불신앙입니다
◆ 말씀 묵상 : 마태복음 6장 25~34절
◆ 오늘 찬송 : 307장 공중 나는 새를 보라
[묵상말씀]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짧은 본문에 '염려'라는 말이 모두 여섯 번 나옵니다. "염려하지 마라, "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왜 염려해서는 안 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온르도 염려 가운데서 자유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우선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더 중요합니까? 공중 나는 새보다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네가 더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염려해서 키를 한 자 정도 키운 사람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들의 백합화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공중 나는 새도 먹이시고 들에 꽃도 아름답게 입혀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라고 도전하십니다. 결국 염려와 근심은 신앙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이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믿음이 없기에 염려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는
죄입니다. 믿어야 할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에 오는 결과입니다. 오늘도 내가 염려하며 산다는 자체를 부끄럽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염려가 엄습하거든 '내 믿음에 적신호가 들어왔구나.' 생각해야 합니다.
불신앙의 증거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염려와 근심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첫째,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에도 하나님 우선주의로 구하라는 것입니다. 의식주가 목적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목적 삼고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하면 더하여 주시겠다고 분명하게 약속하셨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둘째, 그날의 일만 가지고 염려하라는 것입니다. '수요일의 상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사업가가 염려에 시달려 노이로제 현상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결심하기를 상자를 만들어 놓고
염려스러운 일거리가 있을 때마다 적어서 집어넣고 매주 수요일에 개봉해서 하루만 염려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일주일 후에 개봉해 보니 스스로 해결된 문제, 그리고 별 것도 아닌 것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늘 현재에 충실한 사람, 최선 다 다하는 사람은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믿음이 있는 사람은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기도 : 주여, 나의 불신앙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염려대신 기도를 선택하는 지혜를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