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맛 사탕 한 개
탁. 뿌리쳐 버렸다. 솔직히 그 순간, 가슴이 철렁 하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차갑게 내뱉
어 버렸다.
“혼자 가고 싶어.”
내가 뿌리친 팔을 힘없이 내리며, 영문도 모른 채 우울해할 게 분명했다. 주영이에게, 너무
나도 미안했다. 하지만, 난 다시 뒤돌아설 수 없었다.
.
.
.
“조별로 서요!”
체육 선생님이 목소리를 높이신다. 웅성웅성대던 우리는 한참 후에야 겨우 줄을 맞춰 섰
다. 선생님은 단단히 화가 나신 모양이다.
“너희 반 자꾸 이러면 최하 점수 줄 거야!”
무섭게 을러대신다. 그리곤 또 한 마디.
“1조부터 나와요.”
“에에?!”
1조 6명은 다들 비명 아닌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선생님은 계속해서 손짓을 하신다. 할
수 없이 나간 그 애들에게 선생님은 또 한 마디를 던지신다.
“청소년 체조, 가볍게 뛰기부터 숨쉬기까지, 시작!”
순식간에 어두워진 1조 애들의 먹구름 낀 얼굴이, 먹구름 낀 내 마음을 고스란히 내 보이
는 듯했다. 할 수 없이, 천천히 발을 떼자, 그 애들의 발밑에서 흙먼지가 마구 일어났다. 구
령도, 발짓도, 손짓도. 맞지 않는다.
“저쪽으로 가서 무릎 꿇고 손들어요.”
뒤돌아서 잔뜩 울상을 지으며, 할 수 없이 꿇어앉는 1조. 이젠 뻔하다. 선생님이 무얼 말씀
하실지.
“2조 나와요.”
그럼 그렇지. 우리 6명도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할 수 없이 나갔다. 하지만, 시작부
터 어째 삐꺼덕거린다.
“오른손 굽혀야지!”
“아니야! 왼손이야. 이쪽 다리니까 왼손이지!”
“아니라니까!”
가슴이 쿵쾅쿵쾅 뛰어온다. 선생님이 가만 계실 리가 없잖아. 역시나.
“2조도 가서 꿇어앉아요.”
우리 표정도 꾸깃꾸깃 접힌 휴지마냥 잔뜩 구겨져 버렸다. 할 수 없이 팔을 반쯤 들어 올렸
다.
‘우리가 잘못 했으니까 벌 받는 거지. 그래그래.’
양심은 그렇게 소리쳤지만, 내 마음은 그렇지가 못했다. 그런데 그 때. 방금 전 불려나간 3
조 아이들이 체조를 한다. 내가 보기엔 1조와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런데.
“3조는 들어가요.”
나는 기가 턱 막혔다. 어쩜 저럴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선생님을 슬쩍 돌아보았다. 하
지만, 선생님은 3조에게 체조 연습을 시키시곤, 다시 4조를 부르셨다. 이어서 나온 4조도, 5
조도··계속해서 꿇어앉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한참 후에야 선생님이 다시 입을 여셨다.
“모두 일어나서 제자리로 돌아가요.”
우리는 무릎에 잔뜩 묻은 흙먼지를 탈탈 털며, 팔을 꾹꾹 주무르며, 다시 줄을 맞춰 섰다.
벌을 서는 내내 내 양심은 소리쳤다.
‘니가 잘못했으니까, 연습을 열심히 안 했으니까 벌을 받지.’
하지만, 내 마음은 그렇지가 못했다.
‘왜 3조만 들여보내줘? 쟤네만 뭘 그리 잘했길래.’
그렇게 속이 부글부글 끓는 건, 아무리 가라앉히려 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띵동띵동 띵동댕동댕······.”
마침내, 길고 긴 체육 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운동장을 가득 메우며 멀리멀리 퍼져왔다.
우리는 얼른 인사를 하곤 교실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때였다. 저만치 떨어진 곳에
서, 내 단짝, 주영이가 달려왔다. 탁. 주영이의 팔이 내 팔을 감아왔다. 하지만, 난, 내 감
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탁. 뿌리쳐 버렸다. 그렇게 뿌리쳐 버렸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너무나도 미안해졌지
만, 난, 난, 어쩔 수 없었다.
“혼자 가고 싶어.”
그렇게 말하곤, 걸음을 빨리해 버렸다. 힐끗 돌아보니, 주영이의 어두워진 얼굴이 눈에 들
어왔다. 하지만 난, 뒤돌아설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밤늦게까지 학원을 다니는 주영이를 보며, 이번 중간고사에서 그 애에게 질까
봐, 은근히 속으로 질투해 왔던 나였다. 그런데, 3조만, 주영이가 속한 그 조만 잘 되자,
난, 주영이의 팔을 매몰차게 뿌리쳐버렸다. 그렇게 바보 같은 짓을 하고 말았다. 괜히 그렇
게 시샘하곤, 많이 후회되어 사과해야겠다 싶었지만, 쓸데없는 자존심에, 잔뜩 굳은 친구의
얼굴까지 더해져 쉽지 않았다.
결국 난 그렇게, 그냥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다녀왔습니다.”
인사도 흘리며, 나는 힘없이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온, 책상 위 사탕 한 개.
두 눈에 눈물이 핑 돌며, 눈앞이 흐려져 버렸다. 어제 점심시간, 긴 긴 줄에서 서로 떠밀
릴 때, 주먹 쥔 손을 슬쩍 내밀어, 내게 건네주던 츄파춥스. 그 사탕과 함께 전해진 친구의
온기. 그 속의 따뜻하고 진실 된 마음이, 지금 이 순간, 내가 잡은 사탕 위로 고스란히 다
시 밀려왔다. 파도처럼, 그렇게 밀려왔다.
친구의 마음을 몰라준 내가 너무나도 미웠다. 너무나도 바보 같았다. 쓸데없는 질투 따위
에 내 마음을 내맡겨, 친구의 그 마음을 잊어버린 내가 너무나도 미웠다. 하지만, 나는 감사
했다. 이제라도, 그 따뜻하고 진실한 우정을 소중한 사탕 한 개로 깨달았으니 말이다.
.
.
.
다음 날 학교에 가니, 주영이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왠지 서먹한 느낌에 인사도 못 건
네고 주영이 옆 내 자리에 천천히 앉았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지금 말을 건네는 게 옳을
까. 여러 생각이 동시에 꿈틀대고 올라왔다. 그 때, 주영이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선희야, 안녕!”
“어? 어, 어, 안녕.”
나는 괜스레 말을 더듬으며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주영이. 어제 일 때문에 많이 속상했을
텐데, 다행이다. 괜찮아 보여서. 아니, 괜찮은 척 대해 줘서. 그 때, 방송이 흘러나왔다.
“EBS 방송 시간이니, 각 반은 EBS 채널을 틀어주시기 바랍니다.”
맨 앞자리 민정이가 얼른 TV를 켰다. EBS 방송이 시작되고, 모두들 열심히 필기를 시작했
다. 그 때, 주영이가 내 팔을 들어 치우며 물어온다.
“너, 방금 전 거 적었어?”
빨리 지나가서 미처 필기를 못 한 모양이다. 집에서 이미 한 번 들은 내 공책에는, 이미 모
든 필기가 되어 있었다. 주영이는,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내가 필기한 것을 자신의 공책
에 옮겨 적기 시작했다. 나는 속에서 또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늘 저렇게, 내가 애써 필
기한 것을 슥슥 자신의 공책으로 옮겨 가는 주영이. 멋대로 내 팔을 치우곤, 슥슥 적어가는
주영이. 그럴 때면 주영이에게 소리라도 한 바탕 지르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아오는 나였
다. 지금도 내 마음속에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딸기맛 츄파츕스 한 개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속의 따뜻하고 진실
된 마음과, 잊혀지지 않는 따스한 온기를 다시금 상기했다. 그러는 순간, 내 입에는 다시 미
소가 머금어졌다. 겨우 이까짓 일로, 나는 딸기맛 츄파츕스의 진실을 잊어버릴 수 없었다.
나는 팔을 좀더 비켜주었다. 필기하는 주영이의 손이 좀더 편하게 움직였다.
내 입에 좀 더 진한 미소가 머금어진다. 나는, 다시 EBS로 눈을 돌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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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은 많았다. 하루에도 여러 번. 질투심이 생겨날 때도 많고, 화나고, 기막힐 때도 많
았다. 주영이가 내가 애써 해 놓은 것을 슥 하니 가져간다고 생각될 때면, 이런 감정들이 주
체할 수 없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럴 때면, 나는 딸기맛 사탕을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미소 지을 수 있었다.
딸기맛 사탕 한 개. 때론 새콤한 맛에 얼굴을 찌푸리게도 하지만, 더없이 달콤한 그것처
럼, 우리 우정도, 꼭 딸기맛 사탕 한 개 같다는 생각이 든다.
때론 서로 질투하고, 싸우고. 그래도 결국 우리 우정은 너무나도 달콤한 딸기맛 사탕인 거
니까.
가끔씩 밀려드는 신 맛 때문에, 나의 딸기맛 사탕을 뱉어내지 않으련다. 조금만 참으
면, 아주 조금만 참으면, 내 입에 다시금, 그보다 훨씬 진한, 너무나도 달콤한, 그 우정이라
는 단맛이 한가득 밀려오니까 말이다.
‘사랑해, 주영아. 이젠 내가, 너에게 딸기맛 사탕을 나눠 줄게.’
창틈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실낱같은 바람에, 조용히 속삭여본다. 그 바람이 주영이에게,
내 속삭임 전해줄 거라, 조심스럽게 믿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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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딸기맛 사탕 한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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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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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희학교도 청소년체조하공 ㅠ EBS하고 ㅠ 힘듬 ㅋㅋ
맞아요~맞아요~어휴... 청소년 체조...정말....^^ 하지만 우리 모두 힘내요~~~^^ 감사합니다.^^ 좋은 저녁 보내세요.
저희가 일학년때청소년 체조했죠..지금은 에어로빅-0-이글에쓴말은 모든것이 옳아요. 사실저도 질투를 하지만 저도 친구에게 강요해서 억지로 한적도있으니깐요. 으아악 정말 좋은글이네여!
와~감사드려요~^^ 에어로빅이라~~~그래도 청소년 체조보단 나을듯?^^ 헤헤~진짜진짜 감사드려요~좋은 하루 보내세요.^^
으아, 잘읽구가요! 갑자기 딸기맛추파춥스가 먹고시퍼요 <-
추파춥스가 맛있긴 하죠~~~~^^ 꼭 드실 수 있길 바래요~~~^^ 잘 읽으셨다니~진짜진짜 감사드리구요~좋은 하루 보내세요!!!^^ 주말에 행복하시길.^^
지금 청소년체조 배우고 있는데... 짜증나 미치겠음 ㅜㅜ 잘 읽었어용!
아~~~진짜~그거 딴 애들이 배우는 거 보고 있을 땐 웃겨 죽는 줄 알았는데... 그걸 저도 해야 하니 참 슬플 따름입니다~~~ 그래도 우리 모두 힘내요!!! 파이팅!!!
우리가 1학년때는 2,3학년들이 청소년체조 하는거 같은체육시간인데도 못봤는데 우리가 2학년 올라오니깐 3학년 안하고 우리는 하고....ㅠㅠㅠㅠ
하... 청소년 체조 하는 건 정말 슬프지만... 어찌할 순 없으니까요... ^^ 힘내세요, tidvd님!!! 이제 곧 안 해도 되실 거예요~~~^^ 저도 그렇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