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 특집 방송 원고
1. 본생담 이야기 인도사람들은 과거 오랜 세월부터 위대한 성인이나 부처님같은 훌륭하신 분이 이 세상에 오실때에는 반드시 과거전생에 선하고 착한 일을 많이 하여
그 결과로 이 세상에 오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도 당신의
과거 전생에 선업과 복업을 지어서 이 세상에 오셨고 그 내용을 담은 자타가 또는
본생담本生譚의 이야기 547가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불자여러분! 본생이란 무엇일까요? 과거생을 전생, 숙세라하고 현재를 현생, 금생이라하며 다음생을 내생이라합니다. 本生은 내가 보살이 되고자 원력을 세워서 살았던 생을
본생이라 합니다. 즉 근본이 된 생을 본생이라 합니다. 예를들어 성을 내거나 화를 내지 말아야지 하고 원을 세우고 일생을 살아간다면 그것이 본생이 되는 것입니다. 분노하지 않고 화를 내지 않고 본생으로 살았던 분은
바로 아촉불(약사여래부처님)입니다.
본생담에는 547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원숭이 이야기, 사자 이야기,
코끼리 이야기, 마음 착한 농부이야기, 어느 훌륭한 의사 이야기, 훌륭한 왕의 이야기. 어느 수행자 이야기등 휴머니즘에 대한 이야기, 인간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주제가 불석신명(不惜身命)인데, 부처님, 관세음보살님을 위하여 나의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해석은 나의 신명을 바쳐야 어떤 일을 성취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김광섭 시인은 본생담을 읽고 감동을 느껴서 토끼에 이야기를 시로 표현 하였습니다.
김광섭(金珖燮) 詩 헌신(獻身)
불심(佛心)이 선 것을 자랑하려고 여우와 원숭이와 토끼가 제석(帝釋)님을 찾아갔다. 어쩌나 보느라고 시장끼가 돈다 하니 여우는 잉어새끼를 물어오고, 원숭이는 도토리알을 들고 왔는데, 토끼만 빈 손에 와서, 모닥불을 피우더니, 불속에 폴각 뛰어들며, 익거든 내 고기 잡수시라 했다. 제석님이 그 진심(眞心)을 가상히 여겨, 유해나마 길이 우러러보라고, 달 속에 옮겨 놓아, 지금도 토끼가 달 속에 살고 있는 것은, 헌신(獻身)과 진심(眞心)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법당에서 부처님께 예배할 때 부처님 앞에 있는 초를 보십시오 자신의 온 몸을 다 받쳐 등불을 밝힙니다. 향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전체를 태워 아름다운 향음을 부처님께 올리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과거 전생도 토끼의 몸으로 살면서 자신의 몸을 제석님께 받쳐 그 인연공덕으로 오늘날 위대한 부처님으로 우리 곁에 온 것입니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쳐야 미친다.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노력해야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뜻이겠죠 불자 여러분 반드시 한생은 본생으로 살아야 합니다. 내 모든 것을 받쳐 살아가는 아름다움을 보여주셔야
미래에 보살이 되고 부처님이 됩니다.
2. 부처님 탄생 음력으로 4. 8일은 부처님오신날 입니다. 부처님의 어머니 마하마야왕비는 산월이 다가오자 태자의 출산을 위하여
친정의 나라 콜리성으로 가다가 룸비니동산에 이르러 산기를 느끼고
휘장을 두르고 시녀들의 시중을 받아 싯다르타 태자가 탄생하게 됩니다. 인도 룸비니에는 마야데비 사원이 있는데 마야왕비가 애기를 낳고 있는 부조가 있고 애기를 낳고 목욕을 했다는 구룡못이 그 옆에 있습니다. 부처님 열반하시고
200년 후에 인도를 통일한 아쇼카대왕이 룸비니를 참배하고 세운 아쇼카 석주가 있고, 티벳 절, 미얀마절, 태국절, 스리랑카절, 일본 사원등 여러 절이 있고
우리나라절 대성 석가사도 있습니다. 올해는 불기 2555년입니다.
부처님오신날을 축하하는 찬불가 부처님오신날을 불러 보겠습니다.
김어수 선생님 작사
꽃보라 휘날리는 룸비니 동산 한줄기 찬란한 빛이 우주를 덮고 거룩한 싯달태자 탄생하실 때 유아독존 큰 소리 누리 퍼지네. 사뿐히 자욱마다 바치는 연잎 태양보다 밝은 등 높이 드옵시고 사생의 모든 고난 녹여 주시고 이 세상에 오신날 사월초파일
불교경전에 보면 부처님은 어머니 마하마야왕비의 오른쪽 옆구리로 탄생하셨는데 이것을 우협탄생(右脇誕生)이라 합니다. 옛부터 인도인들은 바라문은 어머니의 머리로 태어나고, 크샤트리아는 어머니의 옆구리로 태어나며, 바이샤는 어머니의 무릎으로 태어나고, 수드라는 어머니의 발로 태어난다 하였습니다. 때문에 부처님은 어머님의 옆구리로 탄생하셔서 그 상징적 의미는 크샤트리아 출신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인도에서는 과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른쪽은 신성한 것이고 깨끗한 것이며 청정무결함을 의미합니다. 왼쪽은 불결하고 더럽고 불완전함을 표현합니다. 그래서 인도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물건을 줄때는 반드시 오른손으로 합니다. 부처님께서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로 탄생하셨다는 것은 부처님의 위대성과
맑고 깨끗한 청정무구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태자는 태어나자마자 사방 칠보로 걸어면서 오른쪽 손은 하늘을 가르치고
왼손은 땅을 가르치며 입으로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
(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라 설파 하였습니다.
“하늘 위 하늘 아래 내가 가장 존귀하다.
이 세상이 고통에 쌓여 있으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 어린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걸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태자 탄생게에서 던지는 상징적 메시지를 잘 관찰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첫째: 하늘위 하늘아래 나홀로 존귀하다는 의미는 유아독존적인 말이 아닙니다. 여기서 我는 개체적인 我가 아니라 보편적인 我를 말합니다.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인간성, 이 인간성이 존귀하고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격의 무한한 가능성” “내면의 본질을 극대화”
열반경에서 말하는 일체중생 개유불성(一切衆生 皆有佛性)입니다.
일체 모든 중생은 부처님과 똑같은 불성을 가지고 있다. 라는 것입니다. 부처님당시의 인도는 神이 인간사 제반사항을 주재하던 때라
태자의 탄생게는 하나의 충격이었습니다.
둘째는 온 세상이 괴로움 속에 있으니 내 이를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 하였습니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뜻은 고통에 빠져 신음하고 아파하는 우리들에게 아픔을 덜어주고 중생들을 구제하고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우리들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분 입니다.
내가 가장 어렵고 힘들고 비참할 때 내 곁에 와서 구원의 손길을 주시는 분입니다. 싯다르타 태자는 태어나자마자 사방 7보를 걸었습니다. 사방칠보의 상징성은 6도를 의미하는데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 6도를 초극하여
니르바나의 세계에 이르렀다. 육도윤회를 극복했다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3. 행복한 왕자 불자 여러분! 오스카 와일드는 영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입니다.
그는 1882년에 동화집 <행복한 왕자>를 저술하였는데
그 내용은 석가모니부처님의 태자시절 싯다르타를 말하고 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소설이라는 기법을 통하여 석가모니부처님을
우리에게 잘 보여주는예라고 하겠습니다.
어느 마을의 한 복판에 행복한 왕자의 상이 서 있었다.
왕자는 살아 있을때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생전 불행을 몰랐던 왕자는 죽어 동상이 되자 세상의 온갖 슬픈 일을 지켜보게 된다.
왕자의 눈은 사파이어였고, 그의 몸은 순금으로 덮여 있었고,
칼의 손잡이는 루비가 박혀 있었다.
사람들은 행복한 왕자의 상을 보며 찬사를 보내며 그 마을의 자랑으로 여겼다.
어느 날밤, 그 마을에 작은 제비 한 마리가 날아 온다.
그 제비의 친구들은 모두 다 따뜻한 나라로 이동했지만
그 제비는 때를 놓쳐 가지 못하고 그 마을로 오게 된 것이었다.
제비는 행복한 왕자의 다리 사이에 앉아 자려고 했지만 커다란 물방울들이 떨어졌다.
그 물방울들은 바로 왕자의 눈물이었다.
왕자는 어느 가난한 집의 창백하고 여윈 한 여자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여자의 아들은 앓아 누워 있었고, 그 집은 너무도 가난해서
약은커녕 먹을 식량도 없었다.
왕자는 제비에게 자신의 칼자루에 있는 루비를 빼서
그 남자의 아이에게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다.
제비는 처음엔 남자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내키지 않아 했지만
결국 왕자의 부탁을 들어준다. 그리고 제비는 그날 밤 따뜻한 나라로 떠나려 하지만
행복한 왕자는 하룻밤만 더 있어 달라며 추위에 떨고 배고파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몸에 치장되어 있는 보석을 제비에게 부탁하여 하나식 하나식 나누어 주게 된다.
남쪽으로 날아갈 시기를 놓친 제비는 왕자의 동상의 발아래 얼어 죽는다.
봄이 오자 마을 사람은 왕자의 동상이 흉한 모습으로 변한것을 보고 철거한다
불자여러분 내가 진정한 불자라고 생각한다면 부처님의 나라 인도에 성지순례를 다녀오세요. 인도는 나의 가난한 영혼을 위하여 한번은 다녀와야 할 곳입니다.
인도는 지식이 아닌 지혜를 가르쳐줍니다.
지혜는 내면적이고 본질적이며 사물의 본질을 통찰하는 원리입니다.
때문에 지혜는 동체대비이죠.
지식이 사람의 인체 가운데 머리라고 한다면 지혜는 가슴입니다.
머리에 있는 지식을 가슴으로 옳겨야 합니다.
이것이 불교의 수행이고 신앙입니다.
인도에 갈때는 그냥 가지말고 미리 부처님의 생애와 인도역사에 관한 책을
몇 권 읽고 출발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에 남는게 있습니다.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읽고, 기원정사에서 금강경을 읽고,
사르나트에 가서 아함경을 읽고, 부다가야에 가서 좌선을 하면
이 보다 더 큰 행복이 없습니다. 저는 1991년 12월 20일 걸망을 메고 혼자 인도 뉴델리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때 내 마음에 담은 시는 청마 유치환의 생명의 서입니다.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沙漠)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永劫)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神)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孤獨)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나’와 대면(對面)케 될지니, 하여‘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어느 사구(沙丘)에 회한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인도는 무한한 정신적 에너지를 주는 곳입니다. 우리들의 영혼이 황페하고 지쳐있을때 인도는 나의 영혼의 안식처입니다. 신라의 혜초스님으로부터 근년에 석지현스님, 법정스님, 윤호진스님 법륜스님등 많은 분들이 다녀와서 책을 남겼습니다. 호진스님은 부다가야에서 바라나시 사르나트까지 걸어셨고, 영축산에서 쿠시나가라까지 걸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호진스님처럼 난행고행은 못해도 인도는 다녀와야 하지 않을까요.
4. 출가수행 이야기 또 부처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부처님은 탄생 7만에 마야왕비는 세상을 떠나고 이모 마하파자파티에 의하여 양육됩니다. 부처님은 19세........야소다라와 결혼하고, 29세.......마부 찬다카를 데리고 수행자가 되기 위하여 출가합니다.
부처님 당시의 출가하여 수행자가 된다는 것은 상당히 보편적인 것이었습니다.
왕자든, 부자집 아들이건, 평민의 자녀이건 수행자가 되어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자 했습니다.
불자 여러분! 출가와 가출, 어떻게 다를까요 출가는 어떤 목표가 뚜렷하게 있는 것입니다. 여자가 결혼한다든지 부처님의 제자가 되고자 스님이 된다든지 집을 나가는 목적이 분명한 것입니다. 그러나 가출은 달라요,
가출은 목적없이 집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붕~~떠서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출가와 가출의 차이입니다. 전통적으로 인도 바라문은 사주기를 실천 하였습니다. 유년시절에는 베다를 배우고 공부하는 범행기(梵行期) 청년이 되면 가장으로서 의무를 다하는 가주기(家住期) 자식이 성장하면 숲속에 들어가 명상하는 임서기(林捿期) 노년에는 스승을 찾아다니며 공부하는 유행기(遊行期) 우리나라 고려시대에도 아들이 3명이면 한사람은 출가 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태국이나 티벳트 같은 나라는 많은 사람들이 출가하고
또 보편적으로 출가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카필라성을 떠나 여러 스승을 참방합니다.
바가바, 알라라 칼라마, 우드라가라마푸드라,
이런 분들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현인이었습니다.
부처님은 그분들의 가르침을 받습니다.
하지만 큰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혼자 스스로 고행의 길을 갑니다. 이 때 아버지 정반왕이 보내준 오비구와 함께 고행을 하게 됩니다.
오비구는 카운디냐, 바드리카, 바시파, 아슈바짓, 마하나만입니다.
이 다섯명의 수행자와 함께 니련선하 강주변 고행림에서 수행을 했습니다. 파키스탄 라흐르 박물관에 가면 부처님의 고행상이 있습니다.
제가 인도에 갔을 때 파키스탄에도 혼자 갔습니다.
마침 금요일이라 라흐르 박물관은 휴관하는 날이더군요 그래서 하루를 기다려 토요일에 드디어 부처님 고행상을 친견하게 되었습니다.
찡하게 전율이 오면서 짜릿하더군요.
뼈만 있는 앙상한 몸에 동맥 혈관이 드러난 고행상은
그 수행의 처절함이 느껴지더군요
두 눈은 푹 들어가고 턱에는 수염이 났으며 얼굴은 거칠고 갈비뼈가 앙상하게 들어나 있었습니다.
세상에 이만큼 위대한 상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져 보았습니다.
죽음의 직전까지 간 부처님이 고행상, 인간 존재의 내면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하여 극한의 모습을 보이는 싯다르타수행자 그렇게 생활하기를 6년,
부처님은 어느날 조용히 니련선하 강으로가서 목욕을 합니다.
다섯명의 비구는 싯다르타가 고행을 포기한 것이라 보고 그의 곁을 떠납니다.
마침 수자타 소녀가 너무 허약해진 싯다르타 수행자를 보고
우유죽공양을 올립니다.
부처님은 천천히 받아 마십니다. 이것이 부처님에 대한 최초의 공양입니다. 부처님 고행상은 세계3대 불상 중에 하나입니다. 인도 사르나트에 있는 초전법륜상, 라흐르박물관 부처님 고행상
그리고 경주 석굴암 부처님입니다.
5. 수하항마 이야기 불자여러분! 왜 부처님은 고행을 포기 하였을까요? 그것은 고행에 대한 무익함을 깨달은 것입니다. “고행은 고행일 뿐” 부처님은 니련선하에서 목욕을 하고 우유죽을 마셔
기력을 회복하여 보리수 나무아래로 나아가 몸과 마음을 정돈하고
자신의 내면세계에 깊은 곳, 본질에 침잠해 들어갑니다. 나의 존재 근원에 접근하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진정한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부처님께서 보리수 나무아래에서 깨달음은 내용은 생명과 존재의 실상,
이 세상은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 하는 존재의 본질,
존재의 진실. 존재의 법칙을 확연히 통찰하고 체득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실존적 의미를 사무치게 깨달은 것입니다. 인간의 삶의 양태가 어떤 것인지 인간의 어리석음과 인간의 탐욕
그리고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지혜와 불성을 깨달은 것입니다. 모든 존재는 홀로 독단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상의상관적 존재라는 십이연기,
비영원성 비지속성 끝없이 변한다는 재행무상,
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는 제법무아, 마음의 불을끄면 평화가 있다는 열반적정,
이것이 깨달음의 내용입니다
음력 12월 8일, 새벽 별빛이 찬란한 가운데 부처님은 조용히 내적 자증을 하고 계셨습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을 또 다른 표현으로 수하항마(樹下降魔)라 합니다.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마구니를 항복 받았다라는 말이죠
마구니는 마왕파순(魔王波旬)입니다
마왕파순은 마라, 악마, 마구니, 번뇌등 여러 가지로 부릅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는 번뇌, 욕망, 탐욕, 갈등, 애욕, 탐진치
이 모든것을 마왕파순이라 합니다. 경전에 보면 마왕파순은 호흡을 멈추기 직전까지
나를 따라 다니면서 고통을 준다고 합니다. 마왕파순은 자신의 딸들을 불러 공부하는 모든 수행자를 유혹하도록 명령하고,
서른두 가지 교태를 보이면서 갖은 아양을 떨면서 접근합니다.
사찰에 가면 부처님 고행상앞에 전나의 여인이 유혹하는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전나의 여인은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애욕과 탐욕과 번뇌입니다.
부처님이 되기 전 그러니까 깨달음을 얻기 전의 싯다르타 수행자의 마음에는
인간이 가지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번뇌가 있고 망상이 있고 복잡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우리들이 참선을 하기 위하여 좌복 위에 앉아 있으면
오만가지 엉뚱한 생각들이 머리에 가득찹니다. 이 많은 것을 불화를 그리는 화공들은 여자라는 이성을 그려 적나나하게 보여줍니다. 불자 여러분! 부처님의 번뇌는 무엇일까요 첫째는 깨달음에 대한 갈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깨달음을 이루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마음에 큰 번민이 있었습니다.
둘째는 자신의 나라, 카필라와 가족에 대한 연민과 생각입니다. 사찰에 가면 팔상전이 있는데 부처님의 생애를 여덟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1 도솔래의상(兜率來義相) 2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3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4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5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6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7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8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부처님의 깨달음을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이라 했습니다.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마구니를 항복 받았다는 뜻입니다. 나의 내면에 또 다른 내가 여러 개 있습니다. 술을 끊어야 하는데 술을 끊지 못하는 나, 도박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도박을 빠져 재산을 탕진 하는 나,
성을 내지 말아야 하는데 화를 내어서 상대방을 아프게 하는 나,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지 말아야 하는데 그 유혹을 끊지 못하는 나,
카드를 쓰면 안되는데 그것을 모르고 무작정 쓰는 나,
다른 이성을 교제하지 말아야 하는데 성욕을 참지 못하는 나, 남을 비방하면 안되는데 남의 허물을 즐겨 말하는 나,
남이 잘되면 기쁘하고 좋아해야 하는데 은근히 배가 아픈 나,
기 안 죽으려고 있는 것처럼 허세를 부리는 나, 사람 마음은 아주 간사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들을 둔 어머니가 결혼한 아들집을 찾아갔습니다. 아들이 퇴근하여 돌아오자마자 서슴없이 고무장갑을 끼고
부엌에 들어가 일을 하였습니다.
화가 난 어머니가 “짬깐 이리 나와 봐라 나하고 말 좀 하자” “이 등신 같은 놈아!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부엌에 들어가서 이 짓을 하고 있느냐?” “눈 톡 뛰어 나오고 입 튀어 나온 저 여자 사뀔 때 알아봤다.” 그 어머니는 아들집에서 하루밤을 자지 않고
곧 바로 시집을 간 딸 집을 찾아 갔습니다.
밤에 잠이 오질 않아서 이리저리 몸을 뒤척였다.
새벽에 겨우 잠이 들었는데 뮌가 부엌에 소리가 났다.
나가보니 사위가 아침 준비를 위해 쌀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반색을 하면서 사위의 등을 두드리며
“내 너의 등 넓을때 알아봤다. 남자는 자고로 이렇게 자상해야 돼” 아들하고 사위하고 무엇이 차이가 납니까 우리는 내것, 내세끼, 내차, 내집이라는 아집에 허우적거리며 살아 갑니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류시화 시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부처님께서는 법구경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전쟁터에서 나가 백만대군을 싸워 이기기보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이 더욱 훌륭하다 라고
그만큼 또 다른 자기를 억제하고 제어하고 극복하는 것이 중요 합니다.
금강경에서 이것을 항복기심(降伏其心)이라 합니다.
그 마음을 항복 시켜라하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을 자유자재로 쓰는 사람 야구로 말하면 투수가 인코너, 아웃코너, 직구,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
마음 먹은대로 공을 잘 던지는 투수가 훌륭합니다. 사람도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리면서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지금 산과 들녘에는 봄꽃이 만개 합니다. 법화경에는 천우사화(天雨四花)를 말하는데
하늘에서 사방으로 꽃을 비오듯이 내린다는 뜻입니다.
음력 사월에는 봄처녀 노래처럼 우리 모두의 가슴에
부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 봄처녀처럼 다가오기를 바랍니다.
봄처녀
봄처녀 제 오시네 새풀 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쓰고 진주 이슬 신으셨네 꽃다발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 오시는고 님 찾아 가는길에 내 집 앞을 지나시나 이상도 하오시다 행여 내게 오심인가 미안코 어리석은 양 나가 물어 볼까나
5. 전도와 포교 35세에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은 전도와 포교의 길에 나섭니다. 구리가 장자는 부처님을 찾아와 진리의 법음을 듣고 설법 찬탄송을 읊조립니다.
설법 찬탄송
“위대하셔라 세존이시여! 위대하셔라 부처님이시여!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워 주시고, 길잃은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며,
어둠속에는 등불이 되어 주시고, 눈이 있는 사람들에게 와서 보라며
갖가지 진리의 말씀을 들려 주시는 부처님,
저는 이제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스님들께 귀의 하겠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저를 재가불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삼보님께 귀의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구리가 장자로부터 귀의 받은 후 카운디냐(교진여)와 야사 등
여러 출가 수행자들에게 전도. 전법을 선언하게 된다.
중생들이 고통을 받고 있으니 그들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하여
길을 떠나라고 합니다
단 두 사람이 같이 가지 말라고 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전도하고 포교하라는 부처님의 메시지입니다
유마거사의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중생이 아프니까 내가 이르다”라고 전도선언 전문을 읽어봅니다.
전도선언(傳道宣言)
“비구들이여! 이제 전도의 길을 떠나라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하여 길을 떠나라.
길을 가되 두 사람이 한길을 가지 말라
비구들이여,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게
논리와 표현을 갖추어 법을 설하라.
나도 우루벨라 장군촌으로 가리라”
이것을 전도선언, 전법선언이라 합니다.
바이샬리의 기적 부처님의 중생교화 가운데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것이 바이샬리의 기적입니다. 부처님이 마가다국 라자크라하에 계실 때 이웃 밧지국의 수도 바이샬리에 가뭄. 기근. 질병이 있어 사람들의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었습니다.
바라문교. 자이나교. 아지비카교가 있었지만 그 어려운 재난을 극복하고
사람들을 구제하지 못하였습니다. 바이샬리의 사람들은 이 어려운 재난을 극복하고자 족장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여러 사람들은 宗敎분야의 고문격인 마하리를
라자그라하의 부처님께 특사로 보내기로 했습니다.
이에 부처님은 마가다국의 왕 빔비사라의 허락을 받아 떠나게 되었습니다.
빔비사라왕과 신하 500여명이 갠지스강에 나와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전송하였습니다.
강을 건너 밧지국에 이르니 그 맑은 하늘에 구름이 모여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부처님과 그 제자들은 그 비를 맞으면서 3일을 걸으면서 수도 바이샬리에 도착하는데 길가에는 전염병이 돌아 시체가 여기 저기 놓여 있었습니다.
바이샬리에 도착하자 비가 그쳤고 부처님과 제자들은 보경(宝經)을 읽게 됩니다. 宝經은 라트나수드라인데 市民들도 경 읽기를 권유하였습니다. 부처님은 제자들과 함께 바이샬리 거리에 나가 바루에 물을 담고 솔가지를 꺽어 민가와 길거리를 뿌리면서 보경 경문을 7일동안 하였고
그리고 가뭄. 기근. 질병의 재해가 사라졌습니다. 지금도 스리랑카에서는 이와같은 재해가 있으면 宝經을 읽으며
부처님의 慈悲願力이宝經과 聖水로서 부처님의 위대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여인의 등불 불기 2555년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옵니다.
지금 전국의 모든 사찰에서는 4.8 행사준비를 하느라 분주합니다.
부처님오신날에 등불을 밝히는데 그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 가난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온 성안이 떠들썩하여 물어보니
프라세나짓왕이 기원정사에서 부처님과 스님을 모시고 많은 공양을 올리고 수천개의 연등을 밝힌다 하였습니다. “프라세나짓왕은 많은 공덕을 짓는구나 나는 가진게 없어
무엇으로 공양을 올릴까” 했습니다.
그녀는 동전 한닢을 구걸하여 기름집으로 갔다.
주인은 기름을 듬뿍 담아 주었습니다.
가난한 여인은 그 기름으로 등불을 켜 부처님이 지나가는 길에 켜 두었습니다. 그리고 등불 앞에 앉아 보잘 것 없는 등불이지만
“이 공덕으로 내생에도 저도 성불하여지이다”. 밤이 깊어 다른 등불은 다 꺼져가는데 이 여인의 불만 타고 있었습니다.
아난이 손으로 꺼려 했지만 꺼지지 않았다. 부처님이 이 광경을 보고 “아난아 이불은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
이 불은 가난하지만 마음이 착한 여인이 넓고 큰 서원으로 켜진 것이다.
이 공덕으로 여인은 반드시 성불 할 것이다” 이 말을 전해들은 프라세나짓왕은 항의조로
“부처님 저는 석달동안이나 부처님과 스님들께 공양. 의복. 와구. 의약을 공급했습니다.
저에게는 왜 수기를 주지 않습니까” 물었습니다. 부처님은 왕에게 ‘불도란 실로 그 뜻이 매우 깊어서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보시로서 얻을 수도 있지만
백천가지 보시로도 얻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자기가 쌓은 공덕을 내세우거나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금강경에 “무주상보시 기복덕 불가사량”이라고 했습니다.
5. 부처님 열반 부처님께서는 45년 동안 설법과 전도와 포교를 하시다가
쿠시나가라 싸라쌍수 나무 아래에서
아난다와 여러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반에 들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제자들이여 법과 승가와 도에 대하여
의심이 있으면 지금 물어라 이때를 놓치면 나중에 후회하리라”
하지만 아무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너희들은 저마다 자신의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여라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에 의지하여라 이밖에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라.---
모든 것은 덧없는 것이니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自燈明 法燈明 自歸依 法歸依 不放逸精進
부처님은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정각을 이루시고 길에서 중생을 교화하다가 길에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동체대비 대자대비의 위대한 사랑을 보여준 석가모니부처님입니다. 불자 여러분! 이번 부처님오신날 각자 자신의 원찰에 가족과 함께가서 자비와 사랑의 등불을 하나 밝혀 보세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