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회장!!!....."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아네꼬(姉御) 사마(樣).... Longtime no see ....." "그건 그렇고 나제(何) 고꼬니(此所) 이루(居)까???? " "안이 답답하여서...." "그게 아니라 무슨 바람에 출두를 하셨는지?" "이야기 하자면 길어, 하옇튼 들어 가자고..."
그러기 조금전 우리는 "부민옥"에서 모임을 끝내고 각자 뿔뿔이 흩어져 더러는 당구를 치러가고 또 전원주택에 사는등 집이 먼 친구는 서둘러 귀가한후 별볼일 없는 몇명은 어슬렁 거리며 밤거리를 헤멨다. 나는 그날따라 생맥주 + 꼴뱅이가 간절하여 "태성골뱅이" 에 가려고 나섰는데 그쪽 검문소에서 딱 걸렸다. 이름하여 "도리방" - 다동네거리로 사통팔달에 있다.
잠간 상기 "부민옥" 으로 말하자면 1956년에 개업하여 미래유산에 등재된 음식점으로서 메뉴로 소양무침, 모듬전, 수육, 낙지볶음등 딱 노털들 식성에 맞는 음식으로 서울에서 그래도 방귀라도 뀌는 꼰대패거리들의 회식모임 장소로 유명하며 특히 육계장은 전국 5대 맛집 반열에서 한번도 벗어나본적이 없는 집이다.
한편, 하는수없이 꼴뱅이는 접고 "도리방" 여사장 아니 회장님을 따라 식당안으로 들어 가려니 몹시 등뒤의 눈초리가 따갑다. 식당안은 발디딜 틈이 없고 밖에 깔아놓은 좌판 3개도 만원사례에 또 웅성거리며 기다리는 팀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글쎄다 . 다이죠부(大丈夫 - 문제없다 )요 하며 나의 어깨를 밀어주어 들어간집에서 한쪽자리를 막 일어나려는팀에 눈치를 주고 서둘러 우리를 그자리로 안내하니 본의 아니게 주인장 주도하에 새치기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도리까이(鳥貝)가..." 하니 "그러지 말고 그냥 가이바시라(貝柱) 한분(半分)으로 모리아와세(盛 合)가 딱이야..." "하여튼 맛있게 구워줄께...." "Good..." "술은??.." "마침 쇼운(翔雲) 한병이 들어와 있는데" "그으ㄹ으려면~~ ㄱ~거걸로 하죠오오~" 나는 말꼬리를 흐리며 슬그머니 뒷지갑에 잠시 손이 갔었다. "쇼운(翔雲) - 수천종류의 일본술(日本酒)중에서 5대 명주인 햐꾸쯔루(白鶴) 의 준마이(純米) 다이긴죠(大昑釀) 의 하나로서 맛을 설명하긴 어렵고 딱히 양주를 빌어 표현하자면 Ballentain 30년 아니 21년 까지는 아니지만 17년산 정도는 되니 결코 싸구려는 아니다. 히야 (冷)??....." "아니요 히레(魚老日)로 따끈하게~~" "아니 왜??..." "이열치열(以熱治熱) 로요....." 나는 생맥주의 여운이 남아 마음에도 없게 떠들어 댔다.
"도리방" 서울 중구 다동 60번지 (다동네거리) 1979년 개업하여 어언 45년..... 명실공히 이일대에서는 노바다야끼(爐邊燒)집으로서 최고이며 그옛날부터 매년말이면 상업은행 명동지점(명동2가 33-2)가 명동 아니 전국에서 땅값이 제일 비싸다고 공지될때, 이곳은 이일대 즉 다동,무교동,서린동 일대에서 최고의 땅값으로 날렸었다. 나는 1981년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으니 조금있으면 반백년이 될겄이며 이집의 터줏대감 "정소ㅇ"님 (84세)과 같이 늙어가고있다.
각설하고 나는 이곳에 애잔한 추억이 있다 그옛날 일본친구들과 어깨동무하고 몰려갔었던 오오사카(大阪), 우메다(梅田)의 우라마찌(裏町 - 뒷골목), 그야말로(내말이 아니고 최백호의 표현 ) 아메후로(雨降) 로지사까바(路地酒場) 그것도 가다스미(片隅) 에서 마시던 그분위기, 그맛이며 그쪽 친구들(즉 일본 패거리)이 한국에 올때면 이곳에 데려와 맛보이면, 엄지척에 "우마이(美味) 하며 합창을 했었엇다
그렇지만 그보다는 나의 어릴적 산촌의 겨울밤은 너무 길어 한번쯤 재미삼아 해보았던 참새사냥...... 일반인의 생각에는 새사냥이면 총, 그물등등 많은 장비를 떠올릴테지만 그렇지않다 그저 사다리와 후래시(ㄱ자형의 국방색 군용) 만 있으면 된다. 참새들은 시골 초가지붕 처마위 틈새에서 잠을 자는데 갑자기 후래쉬를 비추면 꼼짝없이 날아가지 못하고 잡히는데 그러나 그들의 아지트를 잘찾지못하니 밤새 뒤져도 두세마리밖에 잡지 못하고 참여자는 4~5명 수확량이 너무적다 따라서 며칠 노력봉사하여 몇마리 잡아 구워 먹었는데 1인당 반마리정도가 할당되었다 그렇지만 어떠랴 누구는 콩한쪽으로 모인 군중을 다먹이고도 남았다는데 꼭 많이 먹어야 대수랴...... 그야말로 먹은것이 너무나 조금이라는 "새발의 피(鳥足之血) 라는 우리말에 일본어로는 쓰쓰메 노 나미다 (雀之淚 - 참새의눈물) 이라니 어딜가나 새들의 수난이다
하여튼 그럭저럭 서울로 유학을 오니 포장마차마다 참새구이라고 써붙이고 잔뜩 쌓아놓고 파는데 나의 생각에는 어디서 무슨수로 저렇게 많이 잡아 파는지 의아스러웠으며(나중에 알기로는 그중에 병아리 새끼(?)도 더러 섞여 있었다한다) 어쨋던 주머니 사정상 그림의 떡으로 세월만 흘러보냈는데 좌우지간 시간이 지나 조금 여유가 생기고나니 그동안 그많던 참새구이집이 나의 주위에서 싹 사라져 눈닦고 찾아도 없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바로 이집 "도리방" 에서 맛을 보게 되었는데 그옛날의 맛은 기억이 없고 (겨우 반마리 먹은) 정종대포와 함께한 그때의맛은 지금도 기억한다
또 다찌노미(立飮) 히도리자케(1人酒) 가 가능하니 일과후 삼겹살에 소주판을 벌리기는 뭣하고 그렇다고 그냥 집에 가자니 조금 섭섭할때 이름그대로 서서 딱 한잔~~.... , 그냥 단골이 되었으며 그동안 나는 선박회사 과장대리에서 임원을 거쳐, 고속도로휴게소 회장이 되도록 몇단계나 출세를 거듭하였는데 우리 정소ㅇ 여사님은 그저 아주머니에서 아네꼬사마(姉御樣) 즉 큰(왕)누님 으로 진급하셨는데 반백년이 필요하였다
"ㅇ대장님!!! 여기 도리방의 도리(鳥) 는 따뜻한(??) 불판위에 누워 있는데 대장님은 히말라야 눈밭에서 떨고 있겠지요?... 아무사고 없이 어쩌구 돌아 오시고 저쩌구~ 오시면 바로 드실수있게 지금부터 굽는걸 시작할테니 어쩌구~~" 누가 들으면 "정읍사(井邑詞)의 한귀절을 페러디 했거나 성춘향(成春香)의 연서(戀書)인줄 알겠지만 이글은 음식점에서 일하는 "선ㅇ이 엄마" 의 글이다 술취하면 여편네나 패던 껍데기를 간암으로 일찍 떠나 보내고 딸(선ㅇ) 하나 데리고 덤으로 혹처럼 붙은 시어머니 봉양까지 하면서 살면서도 항상 웃으며 따뜻하게 손님을 맞이하니 다들 좋아 하였었다 그렇지만 이글하나로 우리사이를 색안경을 끼고보면 안된다 결코 그런사이가 아니었으니까...
"아니 아니 살다 그x보다 나쁜x은 본적이 없고 어쩌구 저쩌구~~%$#*&^%$##*&@#.........." "그래도 그렇지 십수년 본인이 마시던 샘물에 침뱉고 떠나는 x이 어딨어???......
姉御樣의 한탄에 나는 탁자위에 올려 놓았던 이번에 네팔에서 가져온 토산품 한점을 슬그머니 다시 집어 넣으며 "그래도 심성은 착했잖아요" 하며 일어섰다. 그렇지만 조금은 허전하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고부간( 그둘은 그런 사이는 아니지만) 의 갈등은 제3자의 판단이 불가능하다 안방의 시어머니의 말과 부엌의 며느리의 말의 간극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나는 지금 한쪽 말만 들었는데 상대편의 반론을 못들었으니 (아니 영원히 들을수없다) 어떤판단도 유보하고 단지 좋았던 추억만 기억하려 애쓸것이다
"아니 목단강(牧丹江)을 헤엄쳐 다녔다니까요...." 헤이룽쟝(黑龍江)쪽 강한 악센트의, 며칠전 부터 나오기 시작한 아가씨의 말투(남쪽의 옌벤(延邊) 과는 또 틀리다) 에 흥미를 느끼며 그녀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머리는 토미엄마 같이 지지고 볶았는데 새끼손가락에는 메니큐어가 덧보였다. "아니 목단강이 어디에 있어? 두만강(豆滿江) 옆에 있어?...." "아니 그것도 모르세요?.. 쑹하지양(松花江 )치이루(支流) 어저구, 저쩌구 하는데 이정도면 통역이 필요할것 같다.
아무튼 그녀에게 우리는 "어이! 언니야 우리가 그쪽 이름을 무라도리(村鷄)라고 지었으니 앞으로 그렇게 부를게.... " 하고 넘어갔다. 그후 만난 그녀는 "아니... 이쁜이라 해도 뭤한데 뭐 촌닭..... 아니 촌닭이 뭐예요? 사장님들 너무해요..." 원망의 소리가 드높다. 하여튼 그렇게 지내는데 한번은 그녀가 우리에게 애로사항을 털어 놓았다. 어머니와 같이 돈벌러 나온 그녀가 이곳 조선족교회에서 껍데기 하나를 사귀 었는데 변변한 직업이 없어 곤란하다나 어쩐다나.... "야아... 이곳의 젊은이도 SKY 아니면 다들 취직하기 어려워, 뭘 알고 얘기 해야지..." 해놓고 나니 조금 캥긴다
그래서 그래 "그 친구 주특기가 뭐래?..." 하며 "주특기" 란 단어에 대하여 한참 설명을 해주었더니 " 뭐 목수는 조금 따라다녔나봐요 " 한다 아니 우리나라 좋다는게 뭔가? 한다리만 건너면 다들 친구 또는 선후배 아니 친척이고 두다리면 대통령 친구와도 연결 되지 않는가? 즉석에 이렇게 저렇게 연결하여 "마석가구단지" 에 그자리에서 취직을 시켜주니 그녀는 고맙다고 절을 열번도 더하였고 그뒤 음식점 서비스도 좋았으며 그뒤로 봉급이 올랐다 진급을 하였다고 갈때마다 칭찬이 자자하여 잘살고 있는줄 알았는데 언제부터인가 보이지 않아 근황을 파악한 나는 벌린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옛날 산촌(山村)에 건장한 소금장수 하나가 방문하여 머슴들의 봉로방에서 하루밤 자고 가면 그이튿날 그동네 과부 하나가 없어젔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옛소꼽친구 첫사랑과 이국에서(한국이 그들에게는 이국) 눈이 맞아 십수년을 같이산 夫(껍데기) + 자식을 팽개치고 야반도주식으로 고국으로 달아났다니..... 아니 그여자 얼마나 신분상승에 목메고 또 팔자고칠일이라고 그런 무지막지한 일을 벌렸는지 모르겠다 하긴 내가 그옛날부터 조금 끼가 있다고 이야기 하지 않았던가.. 식당일하러 나오는 여자의 메니큐어로 단번에 알아봤었다 또 나는 한국에서 일하는 조선족을 좀체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중국인민이며 그이상, 이하도 아니다
하여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도리방"의 반백년의 역사가 이어지는 동안 나도 옛날 같이 자주 가지못하고 우리 주인 큰누님(姉御樣) 근력이 부재(현 84세) 둘째딸에게 물려주고 소일거리 삼아 심심할때 나와보는 정도 인데 나의 5~6개월의 공백기 동안에 뭔가 사단이 난게 틀림없다 둘째는 보이지 않고 첮째딸이 자리를 지키고 일하는 사람들은 전부 New Face 들인데 하나같이 전부 할머니들로 구성되어 있다 오늘은 너무 바쁘고 또 저녁시간에는 그럴틈이 없다 그러자면 하루 날잡아 낮술(혼술) 하러 나와야겠다
무릇 신경정신과 명의는 처방을 잘해서가 아니라 정성들여 들어주는 기술이 필요 하다고 하는데 까짓것 그쯤은 무허가인 나도 잘할수있다고 자부한다 주인누님의 어느누구에게도 말못하고 응어리진 가슴에 쌓여있는 일테면 "임금님귀는 당나귀 귀 다" 하는정도는 무난히 들어줄수 있으며 또 조금의 위로의 말을 건네는거는 별로 어렵지 않으리라 왜냐구? 같이한 세월이 반백년이라 이건 손님과 식당주인 아니 갑과을이 아니라 반 가족 같은 사이이며 앞으로도 "도리방"이 계속 번창하길 바라니까......
또 술한잔하고 횡설수설 되지도 않는 어설프게 구라빨만 늘어 놓아 죄송합니다 그냥 한귀로 흘려 보내시길바랍니다. 다만 우리의 옛속담중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가 "낮말은 참새가 듣고 밤말은 군참새가 듣는다" 로 고쳐졌는건 진실입니다
졸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불 비 례 2003년 8월 일 장 세 규 재배
다음날 아침 - 종로 청진동에서 내수동으로 이전한 "청진옥" 해장국집에서의 속풀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