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녀석은 김 선생을 아래위로 한참 뜯어보더니 “나 미성년자 아니에요. 아저씨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요.”
술 먹은 사람에게 긴말은 필요 없다. 청소년에게 하는 상투적인 교훈을 준 뒤 위엄을 보이며 점잖게 돌아섰다. 복싱선수가 시합 전에 눈싸움에 지면 불리한 것처럼 그들에게 권위와 위엄에 지면 불리하다.
혹시 미행할지 모르니까 집 반대 방향으로 걸어오는데, 뒤꼭지가 간질간질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저씨, 좀 봅시다.”
뒤를 돌아보니 역시 그 녀석들이었다. 보통내기가 아니다. 자칫하면 큰 봉변을 당할 순간이었다. 이때는 순간적인 위기에 강해야 한다. 청소년 선도 교육을 받은 대로 태도를 완전히 바꾸어 씽긋 웃으면서 그들의 어깨를 툭 쳤다.
“너, 나 모르겠나? 모르겠어? 허참~ 따라와.”
무조건 앞장서서 걸어가면 천하없는 녀석도 따라오게 되어 있다. 두 녀석은 따라오면서 친척인가? 동네 사람인가? 선배인가? 궁금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마침 사람이 꽉 차있는 술집이 하나 있었다. 그 곳에 들어가 일차 위기는 모면할 수 있었다. 될 수 있는 대로 실내 안쪽을 자리잡아야 한다. 그렇다고 경찰을 부르기에는 아직 상황이 위급하지 않았다.
“내 말 잘 들어봐. 인생이란 것이 한 번 삐꺽 잘못하면 평생을 망치는 거야.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
별달리 뾰족한 말이 나올 리 없었다. 아까 이야기한 것이 되풀이되었다.
“아저씨가 뭔데, 사람을 놀리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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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 김성원 |
음성이 높아지고,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말로는 쉽사리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술집 주인은 영업에 방해된다며 싸우려면 밖에 나가 싸우라고 김 선생을 밀어냈다. 밖에 나가면 맞아 죽을 판인데, 나갈 수가 없었다. 좌석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누구 하나 싸움을 말리려는 사람도 없고, 위기에서 구해주려는 사람도 없었다.
“사실, 나는 청소년선도위원인데…….”
“선도위원이면 신분증을 봅시다.”
인상이 별로 좋지 않은 녀석이 아까부터 못마땅한 표정으로 째려보고 있다가 한 마디 툭 던졌다.
호주머니를 아무리 뒤져도 그 증(證)이 나올 턱이 없었다. 김 선생은 평소에 주민등록증도 가지고 다니지 않는 성격이다. 쉽사리 물러설 녀석들이 아니었다. 할 수 없이 김 선생은 집으로 전화를 걸어 그 증을 가져오게 했다.
“당신, 또 일을 저질렀어요?”
아내의 앙칼진 목소리가 떨고 있었다. 전화를 끊었다. 뒤이어 아내가 경찰관과 함께 들이닥쳤다. 아내의 손에는 그 증이 들려 있었다. 경찰관을 보자 그들은 겁을 집어먹고,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경찰관을 돌려보내는데 진땀을 흘려야 했다.
벌을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한 인간을 올바르게 키우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굽어진 나무는 어릴 때부터 바로 잡아주어야 한다. 이 나라를 짊어지고 나아갈 세대가 아닌가? 김 선생은 오늘 좋은 일을 했다고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콧노래가 나왔다. 김 선생이 좋아하는 ‘Danny Boy’였다.
한때 시청 옆에 ‘동서남북’이란 별난 이름을 가진 서점이 있었다. 서점주인은 고향에서 같이 공부한 절친한 친구였다. 전통 유교사상이 강한 집안에서 태어나 비록 가난하고 배운 것은 별로 없어도 한학에 능하였고, 마음씨는 황소 같이 유순했지만 불의를 보고는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이 친구의 집은 산격동 변두리였다. 밤 12시쯤 귀갓길에 사람 살려달라는 여자의 비명소리에 황급히 달려가 보니 젊은 청년이 여자를 겁탈하려는 순간이었다.
“네이~ 이 놈!”
큰소리로 꾸지람을 하였다. 화가 난 범인은 큰 돌로 친구의 머리를 찍고 달아났다. 급히 병원으로 후송됐으면 친구는 살았을 것이다. 두 시간이나 신음을 해도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는 비정한 세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