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어스름 불빛에 달콤한 꿀잠은 언제나
간당 간당한 시간과의 갈등을 부추긴다.
간신히 유혹을 뿌리치고 졸음의 관심을 뉴스로
돌려 놓는다.

몇일 전부터 꽃샘 추위가 옷깃을 여미게 하더니
기어이 울움을 터뜨리고 말았다고 한다.
강원도와 영남 산간 지방엔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대부분 지방에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쳐 뭇 사람들의
시선을 독차지하던 꽃망울 위에 눈물과 재채기를
쏟아내 버렸다.

봄을 시샘한 겨울의 눈흘김 한번에 기대에 찬
꽃망울들은 제대로 관심도 받지 못하고 허무하게
고개를 떨궜다.
이런 4월의 버라이어티한 모습은 어쩌면 어떡 기억을
위한 자연의 퍼포먼스 일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허망하게 잃어버린 가여운 영혼들 말이다.
바닷물의 계절은 한계절을 뒤로하고 움직인다.
지상에 봄이오면 바다는 겨울이 시작되고 가장 차가운
감정을 품고 일렁인다.

ㅇ그 바다는 그렇게 빌었던 모두의 바람을 가차없이
삼켜버리고 냉정하게 슬픔의 포말만을 남기고 말이 없다.
춘래불사춘이다.
하지만 닭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하지 않았는가?
그 새벽같은 봄을 찾아 길을 나섰다.
오늘 가기로한 봄맞이 등반은 일산 클라이머스
정기산행 일정에 회장님인 정신 형님의 초대로
참석하게 됐다.
등반의 목적지는 경기도 이천 도드람산(저명산)에
개척 되어져 있는 돼지릿지 코스다.

도드람산은 높이 349m로 높이도 낮고 길이도
짧지만 전체가 암릉이라 '바위맛'만은 수도권서
손꼽는 산이라고 한다.
도드람산에는 조산설화와 효행설화 두 가지가 전한다.
옛날에 전국 명산의 신령들이 모여 한양을 만들었다.
이때 마고할미는 삼각산 봉우리 만드는 일에
참여하였는데, 계룡산에서 봉우리 하나를 등에 지고
이천에 이르러 잠시 쉬었다.

구경꾼 가운데 한 사람이 “산봉우리를 어디로
가져가는 길인가?” 하고 물었다.
마고할미가 사실대로 대답하자, “한양에는 이미
삼각산이 다 만들어졌다고 하니 그냥 우리 고을에
두고 가는 것이 어떻겠소?” 하였다.
마고할미는 하는 수 없이 이천까지 지고 온
산봉우리를 그 자리에 놓아둔 채 돌아갔다.
그렇게 도드란진 산이 생겨 '돋을 암(岩)' 자를써서
돋을암으로 불리다가 현재의 지명인 도드람산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 조산설화이다.
또 돼지가 울었다고하여 돗(돼지)저猪, 울 명(鳴)
돗울산으로 불리다가 도드람산이 되었다고도 한다.
그래서 도드람산은 한자명인 저명산으로도
불리우는데 그것이 바로 효행설화이다.
효행설화인 <효자를 구한 산돼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이 산 근처에 효자가 살았다.
어머니가 병으로 몸져눕자 정성을 다해
간호하였으나 차도가 없었다.
하루는 스님이 시주를 청하러 왔다가
“도드람산에서 자라는 석이버섯을 드리면
나을 것이다.”라고 일러 주었다.
효자는 한 가닥의 밧줄에 몸을 묶고 절벽을
내려가 버섯을 뜯고 있을 때 어디선가 산돼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상하게 생각한 효자는 절벽 위로 올라와 주변을
살폈는데, 산돼지는 간 곳이 없고 밧줄이 바위
모서리에 닳아서 거의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이로 인해 효자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것이 산신령이 멧돼지를 시켜 효심이 뛰어난
효자의 목숨을 구해줬다는 효행 설화이다.
(이 효자가 고승 이라고도 함.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그래서 입구에는 효자를 구한 맷돼지 동상이 있다.

목적은 달라도 효자가 그옛날에 바위를 탔으니
어쩌면 그가 바로 최초의 돼지릿지 개척자가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돼지릿지 루트는 산머루산다래 산악회에서 개척했다.
원래는 6피치였는데 2017년 1월에 예전 5, 6피치
사이에 1피치를 추가 개척하여 총 7피치로 구성된
코스다.

1피치에서 6피치까지 모두 2개씩 루트가 개척되어져
있어 자기 난이도에 맞춰 등반하면 된다.
하지만 비교적 쉬운 난이도의 5.9는 4피치와
7피치 뿐이고 모두 5.10 이상의 중급 루트로
만만히 봤다간 등반자가 돼지 울음을 낼수도 있다.
나도 처음 접하는 코스로 한동안 묵혀둔 몸이 걱정스런
원망으로 다가오지만 그래도 힘치게 길을 나서본다.
판교역에서 여주역까지 개통된 경강선에 올라타니
쌀쌀한 날씨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수많은 상춘객들로
가득하다.

이천역 하차 후 역앞 버스 정류장에서 22-7번 버스를
타면 도드람산 앞 gs25 편의점까지 갈 수 있다.
하지만 이 22-7번 버스는 하루에 두번밖에
운행하지않기때문에 다른 버스를 타고 표교1리
정류장에 하차 후 2키로 남짓 걸어가면 된다.
표교1리 정류장에 하차 후 100미터정도 직진하면
삼송사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표교 초등학교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표교초 까지 가면 Y자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좌측길로 1.5키로쯤 걸어가면
정면에 보이는 산이 도드람산이고 만남의
장소인 gs25 편의점이 있다.
자가용 이용시 서이천IC로 빠져나오면 된다.
만나기로한 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이천역에 내리니
22-7번 버스는 흔적도 보이지 않고 차고지에서
출발조차 하지않고 대기중이다.
여기서 버스를 이용할때는 터미널방향 버스를 타면
안된다.
터미널 쪽으로 가는 버스는 모두 버스 정면에 터미널
방향이라고 붉은색 푯말을 올려놓으니 참고하면 된다.
표교1리 가는 다른 버스를 타고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참았던 담배를 하나 물고 길을 잡는다.
촉촉히 젖은 논은 수확의 흔적만 남겨둔채 다음을
위한 자양분을 품고 뒤집기를 준비하고 있다.

가지치기로 몸집이 훌쩍 작아진 길가에 벗나무들은
꽃망울을 터뜨리고 난감한 바람을 이겨내기위해
안간힘을 쓰고있다.

잠시후에 있을 내 등반의 모습마냥 동질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 애처로움 또한 자연의 일부임을 알기에
기꺼이 반가운 탄성으로 시선을 빼앗겨준다.
그렇게 차가운 바람앞에 꽃과 나는 동료가되어
맞서 걸으니 어느덧 gs편의점 앞이다.

잠시후 일클 회원님들과 조우하여 반갑게 인사 후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 산행 참여 인원은 총 6명으로 등반과
산행팀으로 나눠 진행한다.
먼저 등반은 일클의 회장님이신 정신형님과 선등을
맡아주실 명렬 대장님, 이원표 3명이고, 산행은
성렬형님, 석경누님, 진경누님 이렇게 3명이 되겠다.
돼지릿지 들머리는 gs편의점을 정면으로 좌측
100미터 지나 체육공원 입구에서 시작한다.

어프로치 거리는 15분 정도로 아주 짧아 참 착하다.



첫피치에 도착하니 먼저 시작한 이천팀의 젊은
여성 선등자가 좌측루트(5.10b) 첫볼트 확보에
안간힘을 쓰며 재도전에 여념이 없지만 힘들어 보인다.

간단히 목을 축이고 우측10a의 루트로 오름짓을
시작한다.



크게 어렵지 않지만 처음 시작이 약간의 오버행이라
올라서기가 좀 애매하다.
올라서면 확보처까지 무난하게 등반할 수 있다.
등반인원이 3명이라 빠르게 첫피치를 완료하고
두번째 피치로 이동한다.
각 피치와 피치사이에 화살표 방향이 있어
길찾기는 크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무턱대고 가다보면 잠시 피치를 놓쳐
알바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바위에 표시된 화살표를 잘보고 가야힌다.
뜨거운? 몸부림으로 긴장을풀고 만나는 두번째 피치는
밸런스를 무너뜨리고 작은 홀드가 긴장감을 주지만
깊은 심호흡으로 잠재우며 마무리할 수 있다.





하지만 중간 오버행 구간 직상은 많은 경험과
대범함이 필요하다.

3피치는 좌측 10d와 우측 10a로 개척되어진 23미터
높이 바위탑으로 웅장하게 위용을 자랑하며 본격적인
등반을 예고한다.

좌측 루트는 직벽처럼 반듯함을 감춘 기울기가 있어
쉽게 봤다간 온몸이 바닥으로 쏟아져 내리는 공포를
느끼게 된다.
물론 실력에 따라 말이다.
좀더 편안한 우측을 선택해 오른다.
그렇다고 우측도 쉬운것은 아니다.
반드시 그난이도에 맞는 크럭스가 있다.
두개의 루트 모두 약간의 오버행 구간이 있어
완력과 밸런스를 요한다.
보기엔 홀드가 좋아보여도 딱 붙으면 터질듯말듯
비웃으며 나를 시험한다.
늪속에서 헤매이듯 몇번의 텐션을 받고 늘어난
몸무게를 한탄하며 겨우 확보처에 이른다.
오랜만에 어금니 꽉물고 힘을쓰고 오르니
중부고속도로와 도드람산 주변 경관이 한눈에
들어오며 긴장감을 훔쳐간다.





확보처에서 조심스레 바위를타고 넘으면 멋진
조망과함께 일반 산행길을 만날 수 있다.
여기서 산행팀과 조우하여 가벼운 시장기를 달래고
나머지 등반을 진행하기로 한다.
다양한 먹거리 안에 눈에띄는 두부김치가
군침을 돌게하며 입맛을 당긴다.
나보다 먼저 서둘러 흔들리는 진달래 몇잎으로
데코를하니 그럴싸하게 어울린다.


세가지의 술들이 저마다 선택을 기다리며 얼굴을
붉히고 진달래마저 가지를 당기며 취해간다.
평범한 막걸리와 소주 사이로 와인이 눈에띈다.
와인 한모금에 허사를 누리고 두부김치 한입에
현실로 돌아온다.
와인과 두부김치?…뭔가 어색하지만 궁합이 좋다.
술이야 마셔서 취하는건 매한가지 이거늘 이렇게
장소와 종류, 사람에따라 색다른 감정을 선사한다.
묘한 이상과 현실 사이를 오가며 붉게 물들어간다.
이제 4피치로 이동한다.
4피치는 좌측 5.10d, 우측 5.9b의 난이도로
좌측은 오버행 구간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물론 내입장에서 말이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시간을갖고 붙어보면
재미있을듯 하다.
우측 코스로 빠르게 올라 마무리하니 술취한 바람이
어지럽다.


5피치는 좌측10b. 우측 10d로 중간 오버행
구간이 있지만 홀드가 양호하여 밸런스를 잘
잡으면 무난하게 오를 수 있다. 물론 좌측을 말한다.




6피치는 도드람산 정상밑에 마지막 7피치를 가다보면
우측에 7~8미터 정도의 바위가 덩그러니 솟아있는데
하강 자일이 매듭되어져 있다.
우측으로 돌아서 등반 시작점으로가면 15미터
높이의 난이도 좌측 10.c, 우측 10.b 코스로
역시나 만만치 않다.
좀 생뚱맞게 라인에서 벗어나 크게 등반의 의미가
없어보이고 기다리는 산행팀을 위해 패스하기로 한다.
다음 기회에 보자.

7피치는 도드람산 정상과 연결된 코스로 5.9d 난이도,
높이 22미터이다.
크랙이있고 홀드들이 양호하여 무난하게 등반할 수 있다.

오후3시경 모든 등반을 마치고 도드람산을 하산한다.
하산길은 주차장 이정표를 보고 가면 되고 길어야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주차장에서 장비를 점검하고 신속히 뒷풀이 장소로
이동한다.
오늘의 뒷풀이 장소는 진경 형수님께서 강력히
추천하신 하남의 마방(馬房)집이다.

말그대로 옛날 말이 교통수단이던시절 외양간,
또는 마굿간의 설비가 있는 주막집을 말한다.
하남의 마방집은 1920 년경 주막의 형태로
시작하여 100여년 가까운 세월동안 3 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어 꽤나 유명한 집이다.
지금은 한정식과 다원을 운영하며 많은이들에게
사랑받고있다.




이렇게 거나한 한상에 기분좋게 취하니 한마리
말이되어 초원을 누벼야할듯 하다.
말대신 입속의 말과 머릿속 생각들이 비틀거린다.

하얗게 세어가는 귀밑머리 봄바람에 휘날리고,
머리숱 가냘퍼짐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세월의
공평함일 것이다. 그것은 자연이주는 최고의 평등이다.
이세상에 내가 없어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오듯,
잠시 머물다간 주막의 객이 백년전 마방에 들러
세월 한 숟가락 들었다 놓고간다.
오늘 봄맞이 산행에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주신 일클 회원분들께 진짐으로 감사드립니다.